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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울어 텅 비어 버렸는가? 이 매미 허물은 _ 바쇼 작

뜻하지 않은 선물이었다. 일본에서 두 달간 체류할 모든 여비를 제공받았다는 건. 2016년 9~10월 두 달간, 일본재단(Japan Foundation)과 국제문화회관(International House of Japan)이 진행하는 2016아시아리더십펠로우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된 걸 말하는 거다.

떠나는 마음은 한없이 무거웠다. 일본행 비행기를 타기 전날까지 세월호 가족들과 특조위원들이 단식농성을 하는 광화문에서 지냈던 터였다. 정부 발표대로라면, 특조위는 9월 말 강제 해산될 예정이었다. "갔다 오면, 시키는 일 군말 없이 다 하기다!" 선선히 보내주는 세월호 가족들과 4.16연대 동료들에게 한없이 미안했다.

눈을 질끈 감고 일본으로 떠난 것은 후쿠시마, 그곳에 꼭 가보고 싶어서이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 가족들과 일하기 시작하면서, 아니 그 이전부터 2011년 동일본대지진과 더불어 최악의 핵발전 사고가 난 그곳에 가서 거기 사는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고 생각해왔었다.

후쿠시마로 가는 길

핵발전소 사고 전 청정지역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전 청정지역 후쿠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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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발전 사고의 상흔이 남은 후쿠시마
 핵발전 사고의 상흔이 남은 후쿠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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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에서 후쿠시마시까지는 신간센(고속열차)으로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직선거리 220km 남짓이라니 서울에서 대전 간 거리 정도인 것 같았다. 후쿠시마역은 인구 30만에 이르는 후쿠시마현의 현청 소재지답게 꽤 세련되고 화려했다. 여기서 핵발전소 사고가 난 해안까지는 약 50km. 대부분의 시민들이 다른 곳으로 피난 가지 않고 핵발전 사고 후 피난 온 이들과 더불어 이 도시에 살고 있다.

역사 안에 '웰컴 후쿠시마'를 알리는 배너들과 함께 '후쿠시마 재생계획'과 지역축제 소개 부스가 설치되어 있다. 핵발전 사고의 상흔을 씻어내고자 하는 지역의 안간힘이 느껴졌지만 왠지 가슴을 더 답답하게 짓누른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특히 제1핵발전소는 사고 당시 연료봉이 녹아내려 대폭발 직전까지 갔었는데, 아직까지 오염수 유출과 지하수 유입 차단 방안이 완벽하게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후쿠시마는 캠핑, 온천, 유기농산물, 와규(화우, 일본소)로 유명한 곳이다. 한마디로 청정지역이었다. 왜 도시에서 필요한 전기를 생산하는 핵발전소는 천혜의 자연을 지닌 지역에 지어지는 걸까? 세계 어디서나 이 모순된 공식에는 예외가 없다.

역 광장에는 일본의 김삿갓 격인 방랑시인 바쇼의 동상이 있다. '하이쿠'로 알려진 일본의 짧은 시편들을 전 세계에 유명하게 만든 대표 시인의 한 명이다. 그가 머물다간 료칸(여관)도 후쿠시마에 있다. 바쇼가 썼다는 '방랑규칙'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위험하거나 불편한 지역에 가더라도 여행하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꼭 필요하다면 도중에 돌아서라."

에미코와 토시유키, 그리고 메이

국제연대활동가 에미코-토시유키 부부와 함께
 국제연대활동가 에미코-토시유키 부부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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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8시 이미 어두워진 역 플랫폼에서 환하게 반겨주는 에미코-토시유키 부부를 만났다. 에미코와 그의 남편은 독특한 이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에미코는 원래 네팔과 인도,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전역을 누비던 국제개발원조 활동가다. 인도가 너무 좋아 일본에 돌아오니 도리어 온갖 병이 나더라는 긴급구호 전문 풀뿌리 국제연대 활동가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직후 마침 일본에 머물고 있던 그에게 일본국제자원활동센터(JVC, Japan International Volunteer Center)가 긴급구호팀 합류를 제안했고, 그는 남편 토시유키와 함께 그 일에 자원했다. 에미코와 잘 어울리는 시원시원한 성격인 그의 남편도 JVC 출신인데, 외항선 선원으로 일하다가 후쿠시마 이후 다시 긴급구호 활동가로 복귀했다. 부부는 긴급구호 임무를 마친 후에도 아예 후쿠시마 시에 집을 구해 그들이 애지중지하는 '메이(May)'라는 누렁이 개와 함께 눌러앉았다. 시 외곽의 크지 않은 논에서 쌀농사도 짓고 있다.

여기서 부부는 후쿠시마 소식을 세계에 알리는 글로벌 시민 네트워크를 위한 후쿠시마 연락사무소(Fukushima Beacon for Global Citizens Network)를 운영하고 있다. 정기적인 영문 뉴스레터를 발행하거나 후쿠시마에 대한 국제교류활동을 지원한다. 나 같은 방문객을 현장에 안내하고 주민들과의 만남을 주선하는 것도 이들의 주요 활동이다.

바람만이 아는 대답, 방사능 피폭

후쿠시마 주민들이 직접 고안한 측정기로 방사능을 측정하고 있다
 후쿠시마 주민들이 직접 고안한 측정기로 방사능을 측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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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모그나 미세먼지와 달리 방사선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가을 하늘 아래 후쿠시마현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후쿠시마에 머물기 위해서는 '밀리시버트mSv'라는 낯선 용어에 익숙해져야 했다. '밀리시버트'는 방사선량을 측정하는 단위다. 국제방사선피해방지위원회ICRP가 발표한 일반인 연간 피폭 제한 기준치가 1밀리시버트인데, 한 사람이 평균적으로 지닌 모든 세포가 방사능에 한 번씩 피폭되는 것을 의미한다.

방사능도 종류가 많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당시 분출된 방사능은 요오드, 세슘, 플루토늄 등인데, 불행 중 다행으로 반감기(특정 방사성물질의 양이 반으로 줄어드는 데 걸리는 시간)가 2만 년 이상 오래 지속되고 그 효과도 치명적인 플루토늄은 극미량이었고, 주로는 반감기가 불과 2일인 방사성요오드131과 반감기가 2년인 세슘134, 30년인 세슘137이 주로 발생했다. 그 중 갑산성암 등에 가장 치명적인 것은 방사성 요오드131다. 초기대피가 중요했다는 얘기다. 후쿠시마의 비극은 그 초기대피에 완전히 실패한 것에 있다.

사고 후 일본 정부는 사고원전 반경 20km 이내를 의무피난지역, 즉 소개구역으로, 반경 20km 외곽지역은 옥내 대피 지역으로 발표했다. 하지만 사고원전에서 북서쪽으로 불어온 바람과 주변 산악지형의 영향에 따라 30km 밖에도 방사능 고선량 지역이 다수 발생했다. 게다가 방사능 물질 확산 예측 정보가 사고 후 12일이 지난 3월 23일에나 공표되어 주민들은 피난에 큰 혼란을 겪었다.

그 결과, 정부발표만 믿고 '옥내대피'를 선택했던 주민 다수가 피할 수 있던 피폭을 당하고 말았다. 갑상선암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진 요오드131에 직접적으로 노출되었던 거다. 소마군(相馬郡), 이이타테무라(飯館村), 후타바군(双葉郡), 가츠라오무라(葛尾村)등이 그 대표적인 지역이다.

보상을 요구하는 주민, 보상에 반대하는 주민

이들 지역 주민들은 정부에 진상규명과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이이타테무라에서 50두의 젖소를 길렀던 마을 지도자 케니치 하세가와씨는 정부의 뒤늦은 피난지시로 키우던 소를 모두 잃고 낙농업을 포기하게 되자, 마을 주민 6000명 중 약 3000여 명을 모아 도쿄전력TEPCO과 정부에 보상을 청구하는 운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일부 지방자치단체장들은 보상 요구나 처벌 요구를 탐탁지 않게 여긴다. 하세가와씨의 오랜 친구인 이이타테무라 촌장은 보상 반대 서한을 도쿄전력에 보냈다. 보상 액수가 피폭의 증거가 되어 마을이 차별받는 이유가 될 것을 걱정한 것이다. 그는 피난 지시 당시 피난 대상 지역에서 제외해 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후쿠시마 현지사 또한 피해사실을 강조하는데 소극적이다. 특히 현지사는 후쿠시마현에서 급증하고 있는 소아갑상선암의 실체를 부정하고 있다. 전수조사 결과 발견율이 높아진 것일 뿐 발병률이 높은 것이 입증된 바는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대다수 주민들이 우려하고 있는 2017년 3월 피난지시 해제에 대해서도 지지하는 입장이다. 그들은 '우리는 무사히 잘 지내고 있다', '후쿠시마는 건재하다'는 것을 과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피난지시 해제와 영구피난지역(No return Zone, 재생 불가능한 지역)

일본 정부는 제염작업 결과 연간 피폭 선량 20mSv 이하가 되는 지역에 대해서는 단계적으로 피난지시를 해제하고 있다. 2017년 3월에는 후쿠시마현 오오쿠마정(大熊町), 나미에정(浪江町), 도미오카(富岡町)등 원전 인근 일부 지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이 피난대상지역에서 해제될 예정이다. 피난지시가 해제되면 피난민들에 대한 대체주택지원도 중단된다(후쿠시마 사고로 자의로든 혹은 정부의 이주방침에 의해서든 삶의 터전을 떠난 이주민은 최소 12만명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후쿠시마시를 비롯한 현내 상당수의 거주 지역이 이른바 제염(decontamination)작업을 마쳤다고 한다. 그동안 약 2조엔가량의 예산이 사용되었다. 정부가 진행하는 제염방법은 겉흙을 걷어내는 방식이다. 하지만 시내외 곳곳에 쌓여있는 오염토를 해결할 방법도 마땅치 않아 보였다. 주민 증언에 따르면 일부 플라스틱 백은 이미 내구연한을 넘겨 훼손되고 있다고 한다. 75% 이상을 차지하는 숲은 사실상 손도 못 댄 상태다. 에미코와 그의 남편이 경작하는 논도 숲 언저리에 있는 다락 논이다.

현정부와 정부가 현 내 곳곳에 세운 측정시설들은 낮은 수치의 방사선량을 수치로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측정기가 1m 높이로 맞추어져 있어 지표면의 방사선량은 측정할 수 없게 설계되어 있었다.

방사능 측정 자원활동가와 옥내 놀이터

정부의 발표를 믿지 못하는 시민들은 직접 방사선 측정기를 소지하고 다닌다. 이 일을 전문으로 하는 활동가를 후쿠시마시에서 만났다. 후쿠시마시 소재 'NPO SHALOM'의 스태프인 히로유키 요시노씨는 자신이 직접 고안한 3단 측정기를 자전거에 설치하여 아이들이 자주 다니는 도로나 공원의 방사선을 직접 측정한다. 이 측정기는 지상 10cm, 50cm, 1m 높이의 방사선을 매 1m마다 측정하여 구글 맵에 자동으로 기록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 측정기를 가장 안전할 것으로 예상되는 후쿠시마 역 앞에서 사용해보았다. 일반 도로는 0.01mSv수준의 매우 낮은 방사선이 측정되었다. 하지만 불과 1m 옆에 위치한 화단의 10cm 높이에서는 2mSv에 가까운 높은 방사선이 검출된다.

요시노씨에게 매일 야외에서 이 일을 하는 것이 부담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후쿠시마 시민들이 매일 다니는 길을 다니는 거니까 괜찮다"고 답했다. 그런 그도 아이들과 부인은 현외로 보낸 상태다. 후쿠시마에 거주하는 많은 주민들이 아이들을 외지에 보내두고 있다.

아이들이 야외에서 노는 것이 어렵거나 불안하게 여겨지는 상황에 맞추어, 옥내 놀이시설을 운영하는 법인도 생겨났다. 후쿠시마 시에 3~4개의 옥내 놀이시설이 있다고 한다. 후쿠시마 아이들이 마음껏 야외에서 놀도록 초청하는 현 외 공공기관과 NGO들의 프로그램도 성행하고 있다.

후쿠시마에서의 유기농

사람들의 삶은 지속된다. 농부들은 유기농을 지속하고 있다.
 사람들의 삶은 지속된다. 농부들은 유기농을 지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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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삶은 지속된다. 농부인 세이지 수게노씨는 유기농을 지속하고 있다. 논에서 겉흙表土을 걷어내라는 정부의 방침을 거부하고 도리어 깊게 쟁기질을 하는 방법을 통해 겉흙의 방사능을 희석하는 역발상을 시도하고 있다. 유기농부에게 겉흙은 농사의 모든 것. 그걸 걷어내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정부의 제염 방식이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하다고 여겨지지도 않았던 까닭이다. 그는 이 방법을 지속하면서 자신의 논에서 세슘의 검출량이 극적으로 줄어들고, 쌀겨를 제거한 알곡에서는 세슘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현 정부는 현 내에서 생산되는 모든 쌀을 전량 조사하여 방사능을 측정하고 있다. 그런데 현내 배치된 측정기는 kg당 12베커렐Bq(방사성물질에서 방출되는 방사선의 양을 나타내는 국제단위, 1초 동안에 1개의 원자핵이 붕괴하는 방사능(1dps)을 1 베커렐로 정의한다) 이하의 방사능은 아예 측정하지 못한다(정부는 100 Bq/kg를 안전기준으로 삼고 있다). 세이지씨가 생산한 유기농 알곡도 이 측정기로 측정했던 걸까? 그렇다면 역시 12베커렐 이하의 세슘은 여전히 유기농 쌀에도 남아있는 건가? 나는 차마 그것까지 묻지 못했다. 후쿠시마에서 유기농을 고집하고 있는 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느꼈다.

대신 이렇게 물었다. "유기농쌀이 후쿠시마에서는 소비되나요?" 세이지씨는 노인이나 성인 주민들은 후쿠시마산 쌀을 먹지만, 아이들에겐 대부분의 가정에서 외지산 쌀밥을 먹이는 것이 현실이라고 답했다. 이런 상황은 종종 가족 간 갈등으로도 이어진다. 그 역시 이 지역의 유기농이 한동안 과거로 되돌아갈 수 없을 것을 잘 알고 있다. 절망 속에 자살한 유기농부들도 있다고 한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 피해를 입은 3개 현에서 재난관련 자살자로 판명된 158명 중 80명이 후쿠시마현 주민이다.

 후쿠시마 주민들이 재난관련 자살자 현황을 발표하고 있다.
 후쿠시마 주민들이 재난관련 자살자 현황을 발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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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에 머무는 동안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뉴스를 들었다. 청년시절 데모를 마친 뒤풀이에서 고래고래 불러대곤 했던 그 노래, '바람만이 아는 대답'을 만들고 불렀던 이. 후쿠시마의 푸른 대숲에서 리코더를 꺼내 그 노래를 나지막이 불어 보았다.

얼마나 긴 세월 흘러야 저 산이 바다가 되나?
얼마나 긴 세월 흘러야 사람들은 자유를 얻나?
… 얼마나 더 진실을 못 본 척 외면해야 하나?
얼마나 더 많은 귀를 가져야 사람들의 절규를 들을 수 있단 말인가?
얼마나 더 죽어야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인정할 텐가?
친구여, 저 부는 바람이 알고 있을까? 저 부는 바람은 알고 있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이태호님은 참여연대 정책위원장입니다.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3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6주기 '나비행진' 이 3월 11일 (토) 13:00~17:00
광화문 광장 및 종로 일대에서 있습니다. 많은 시민들이 함께 해주시기 부탁드립니다.
핵없는 세상을 위하여! 자세한 내용:http://www.peoplepower21.org/Peace/1484243



태그:#후쿠시마, #방사능, #원자력, #피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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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가 1995년부터 발행한 시민사회 정론지입니다. 올바른 시민사회 여론 형성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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