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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정 질서를 문란케 한 피의자 박근혜씨가 아직도 버티고 있습니다. 벌써 4개월째 접어듭니다. 검찰수사·특검조사·헌재출석마저 거부하며 국격을 떨어트리는 신기록 행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법을 불신하고 경시하는 풍조 속에서 '떼법 문화'가 만연하면서 사회적 비용이 증가하고 대외 경쟁력까지 실추되고 있다."

박 씨가 불과 6개월 전인 8.15 담화를 통해 주장한 내용입니다만, 이제 그녀로 대표되는 친 박근혜 세력은 '떼법 문화'의 아이콘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자인 국민을 상대로 한 이 무모한 도전의 끝은 어디일까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선고를 지연시키려는 변호인의 퍼포먼스를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정치적 중립성이 의심되어 수사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말까지 나올지는 몰랐습니다. 박근혜 정권은 불순한 정치적 의도에 따라 표적수사를 남발해왔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총선시민네트워크(아래 총선넷)에 대한 탄압입니다. 아시다시피 지난 4.13 총선에서 시민들의 바람에 따라 부적격 후보에 대한 낙선운동을 진행한 총선넷 활동가 22명은 하루아침에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피고인이 되어버렸습니다. 총선넷 공동정범이 된 제가 만일 그분처럼 몽니를 부렸다면 아마도 신속하게 영장이 발부되고 집행되었겠지요? 

특검수사와 탄핵정국 등 굵직굵직한 현안에 잊혔지만, 지난 2월 2일과 9일에는 총선넷 활동가들에 대한 공판이 있었습니다. 작년 11월 11일 첫 공판 이후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되는 셈입니다. 피고인이 많아서인지 재판은 줄곧 형사대법정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의 주역인 최씨가 다녀간 그 곳이더군요.

화장실조차 맘대로 못 가는 피고인, 기분 묘하더군요

지난 2일과 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대법정 417호에서 총선시민네트워크 공판이 열렸다. 최순실씨가 같은 장소를 이용하여 그녀의 흔적이 이곳저곳 묻어있었다.
▲ 최순실방청권 푯발 지난 2일과 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대법정 417호에서 총선시민네트워크 공판이 열렸다. 최순실씨가 같은 장소를 이용하여 그녀의 흔적이 이곳저곳 묻어있었다.
ⓒ 강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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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출입구 한편에 놓인 방청권 회수함 푯말까지 군데군데 그녀의 흔적이 묻어있었습니다. 오늘도 최순실 재판이냐고 해맑게 물어보시던 미화노동자님의 한마디로, 최씨에 대한 세간의 관심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증인신문만 하루 종일 이어지니 솔직히 좀 지루했습니다. 피고인이 많아서 일부는 방청석까지 앉게 되었고, 가만히 앉아있다 보니 마치 방청객으로 온 느낌이었습니다. 딱딱한 피고인석에서 적극적으로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큰 노동이더군요.

피고인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는 걸 실감한 건 오후 재판 때였습니다. 화장실 좀 가려고 문을 나서는데 덩치가 산만한 법원경위가 어디 가냐고 멈춰 세웠습니다.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온다고 하니 정말 안 되는데 선심 쓴다는 표정으로 한번만 다녀오시라, 피고인들은 재판 중에 나가면 안 된다 말하더군요.

심지어 정말 화장실을 가나 따라 나오기까지 했습니다. 화장실도 허락 맞고 가야하는건지 말 그대로 자유를 박탈당한 것 같아 기분이 묘했습니다. 피고인석에서 바라본 법대의 높이가 새삼스럽게 왜 그리 높아 보이던지….

지난 2일과 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대법정 417호에서 총선시민네트워크 활동가들에 대한 공판이 열렸다.
▲ 공판기일 통지서 지난 2일과 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대법정 417호에서 총선시민네트워크 활동가들에 대한 공판이 열렸다.
ⓒ 강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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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어 진행된 2·3차 공판은 주로 선관위 직원들과 캠프관계자들에 대한 증인신문이 이어졌습니다. 사실심리절차라고 하여 증거를 조사하고 피고인 등을 신문하는 형사재판의 핵심적인 단계이지요. 이날 증인으로 출석한 이들도 선거관리위원회(아래 선관위) 담당 직원들과 여당 측 선거캠프 관계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증언을 듣다보니 좀 이상했습니다. 총선넷에 대한 고발과정이 뭔가 자연스럽지 않아 보였습니다. 내용을 종합해보자면 이들은 작년 4월 11일 밤에서 4월 12일 오전 사이에 급히 총선넷 고발을 결정을 했고, 12일에 고발장을 작성과 내부 결재를 거쳐 접수까지 마쳤다는 겁니다. 하필 선거를 하루 앞둔 4월 12일 당일에 말이죠!

특히 구멍 뚫린 피켓(창문모양 피켓)이나 낙선투어 기자회견, 온라인으로 진행된 총선넷 워스트10 후보 선정 이벤트 등이 선거법에 위반되는지에 대해 중앙선관위에 유권해석과 문의도 하지 않고, 서울선관위 내부 판단만으로 총선넷을 고발했다는 주장은 잘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전국적으로 1000여 개의 시민단체들이 모인 총선넷의 선거법 위반 여부를 검토하면서 공식회의, 공식적인 검토과정도 없이 구두로, 전화통화로만 했다는 말이 정말 진실일까요?

담당 실무직원은 12일에 윗선의 지시를 받아 고발장 작성부터 제출까지 완료했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모른다고 하고, 선관위 간부들은 중요사건이 아니라고 판단해 중앙선관위에 구두로만 보고했다는데 어디서 많이 본 장면 같아 답답함이 밀려왔습니다.

공정하고 투명한 선거를 위해 국민의 혈세로 활동하는 선관위가 이렇게 설렁설렁 일하는 조직은 아니겠지요? 혹시 투표를 하루 앞두고 전격적으로 고발하게 된 것은 비로소 총선넷을 고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갑작스러운 사정이 생겼던 것은 아닐까 의문이 듭니다. 합당한 절차 없이 무언가 쫓기듯이 갑작스럽게 총선넷을 고발한 것 같아 씁쓸했습니다.

또한 일부 선관위 증인들은 관변단체들의 낙선운동에 대해서는 다른 잣대를 들이댔습니다. "1~2차례 단발성에 그쳤다"거나 "파악하지 못했다"는 등 무성의한 변명들을 듣고 있자니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선관위 및 경찰로부터 단 한 차례의 주의나 제지, 경고 같은 것을 들은 바 없는 총선넷의 낙선투어 기자회견은 뭘 해도 불법이고, 관변단체의 활동은 무엇이든 합법이라고 답을 정해놓은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사회를 좀먹는 좀비, 기생충... 낙선운동이 그리 잘못인가요?

지난 2월 2일과 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대법정 417호에서 총선시민네트워크 활동가들에 대한 공판이 진행되었다. 증인으로 출석한 일부 캠프 관계자는 총선넷활동에 대해 원색적인 모욕을 쏟아내었다.
 지난 2월 2일과 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대법정 417호에서 총선시민네트워크 활동가들에 대한 공판이 진행되었다. 증인으로 출석한 일부 캠프 관계자는 총선넷활동에 대해 원색적인 모욕을 쏟아내었다.
ⓒ 김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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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는 돌발 상황도 두 차례 있었습니다. 선서를 하기 전에 증인에게 피고인들과 친인척관계여부 묻는 재판장의 형식적인 질문에, 증인으로 출석한 인천선관위 직원이 긴장한 나머지 잘 모르겠다고 얼버무린 것입니다. 근엄하게 인상을 쓰고 있던 판사들을 비롯해 모두가 빵 터졌습니다. 법정에서 다시 이렇게 웃어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또 하나는 떠올리기가 썩 유쾌하지는 않습니다. 낙선한 어느 후보 선거사무소 관계자가 증인으로 출석했는데 작심한 듯 총선넷 활동을 원색적으로 모욕하더군요. 낙선운동에 담긴 시민들의 뜻은 이해하려 하지 않고, 낙선 이유를 총선넷 활동 탓으로만 돌리며 폭언을 쏟아냈습니다. 사회를 좀먹는 좀비·기생충… 이렇게 욕을 한 바가지 얻어먹은 덕분에 장수할 것 같습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헌법을 농단하고 법을 사유화면서도, 약자들에게만 엄격한 법의 준수를 요구하는 가짜법치의 시대를 살고 있어서, 아직 결과를 낙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꺼지지 않고 활활 타오르는 촛불처럼, 묵묵히 총선넷 활동을 응원해주신 시민들만 믿고 흔들림 없이 당당히 재판에 임하려고 합니다. 머지않은 따뜻한 봄날을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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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총선시민네트워크, #표적수사, #3차공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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