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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테츠 하지노사토역(土師ノ里)은 작은 시골 역이었다. 역에 내렸을 때는 바람이 부는데다가 빗방울까지 내려 궂은 날씨였다. 2월 14일(화), 오전 11시 오사카에서 여러 번의 열차를 갈아타고 근 2시간이 걸려 고구려 혜관스님이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이노가미데라(井上寺) 터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동행인은 하루 전날 교토 도시샤대학에서 가진 윤동주 추모회 때 만난 우에노 미야코 (上野 都, 70살) 시인으로 기꺼이 기자의 '고구려 혜관스님 발자취'를 찾아 나선 길에 동행을 흔쾌히 허락해주었다.

한국인이 일본의 옛 유적지를 답사한다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과거의 문헌이 있다해도 이미 시간적으로 1300여년의 시간이 흘러버려 해당지역에 실제 가보면 주택이나 빌딩이 들어서서 위치를 확인하기 어렵고 설사 위치가 확인되었다 하더라도 아예 땅이름이 과거를 연상할 수 없을 만큼 바뀌어 있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애로사항이 하나 둘이 아니다.

구석기 유적지 안내판, 이 일대는 고구려 혜관스님이 창건한 이노가미데라 절터는 거대한 구석기 유적지다.
▲ 구석기 유적지 구석기 유적지 안내판, 이 일대는 고구려 혜관스님이 창건한 이노가미데라 절터는 거대한 구석기 유적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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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대가 고구려 혜관스님이 지은 절터다
▲ 혜관스님이 지은 절터 이 일대가 고구려 혜관스님이 지은 절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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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우에노 시인과 기자가 의지하고 있는 것은 한국에서 미리 조사한 종이 한 장뿐이었다. 기자는 고구려 혜관스님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이날 기자의 손에 들고 있던 역사적 기록은 1702년에 일본의 만겐시반 스님이 지은 <혼초고소덴(本朝高僧傳)>으로 이 책에는 혜관스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석혜관은 고려(고구려) 사람이다. 수나라에 들어가 가상대사 길장을 따라 삼론종의 종지를 받았다. 스이코 33년 정월 초하루 본국(고구려)에서 일본으로 보내와 칙명으로 간고지에 머물러 있게 하였는데 공종(空宗, 곧 삼론종)을 부지런히 강설했다. 이 해 여름에 가물어서 임금이 혜관을 불러 비를 빌게 하였다. 혜관이 푸른 옷을 입고 삼론을 강설하니 비가 크게 와서 천황이 크게 기뻐하고 발탁하여 승정에 임명하였다. 하쿠호 10년 봄 2월에 와슈 젠린지가 완성되어 혜관을 청해다가 낙성을 경축하는 도사로 삼았다. 혜관은 또 가와치 시키군에 이노가미데라(河內志紀郡 井上寺)를 창건하여 삼론종을 널리 폈다.

나이 90에 입적하였는데 일본 삼론종의 시조가 되었다.

<釋慧灌 高麗人。入隨從嘉祥寺吉藏大師禀三論旨。推古三十三年正月元日。本國貢來。勅住元興寺。盛說空宗。是歲夏旱。詔灌祈雨。灌著靑衣演講三論。大雨卽下。天皇大悅。擢任僧正。白鳳十年春二月。和州禪林寺成。請灌爲落慶導師。灌又河內志紀郡創井上寺。弘通本宗。垂年九旬以滅度。爲本朝三論宗始祖焉。(後略) 《혼초고소덴(本朝高僧傳)》권 제1, p.64>

<혼초고소덴(本朝高僧傳), 1702>을 쓴 만겐시반 스님은 이 책을 쓰기 위해 30여 년간 일본 전역을 발로 뛰어 1600여명의 승려들의 행적을 기록한 사람이다. 이 이전의 고승들에 관한 기록으로 <겐코샤쿠쇼(元亨釋書), 1322>가 있으나 고구려 혜관스님에 관해서는 <혼초고소덴(本朝高僧傳)>보다 정확한 기록은 아직 보지 못했다.

우에노 시인과 기자가 찾아 나선 것은 바로 가와치 시키군(河內 志紀郡)에 있는 혜관스님 창건 절 이노가미데라(또는 이카미지, 井上寺)였다. 그러나 이 절은 현재 폐사(廢寺) 상태다. 가와치(河內)라는 지명은 현재 오사카부 동부(大阪府東部)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이곳에는 시키아가타누시신사(志貴県主神社)가 현존하는데 혜관스님이 창건한 이노가미데라(井上寺)가 있던 곳이 바로 시키군(志貴郡 또는 志紀郡)이었던 것이다.

오사카의 옛 지명인 "가와치"라고 쓰인 신사 표지석
▲ 신사 표지석 오사카의 옛 지명인 "가와치"라고 쓰인 신사 표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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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키아가타누시신사(志貴?主神社)로 이 근처 유적지에 고구려 혜관스님이 창건한 이노가미데라가 있었다.
▲ 시키아가타누시신사 시키아가타누시신사(志貴?主神社)로 이 근처 유적지에 고구려 혜관스님이 창건한 이노가미데라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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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시키아가타누시신사(志貴県主神社)는 현재 그리 규모가 크지 않지만 한때는 지역 신사의 총본사(総社 또는 惣社)로 막강한 재정과 신도들을 확보했던 곳이다. 특히 이노가미데라가 있던 고대 가와치(河内)지역은 이즈미(和泉), 셋츠(摂津), 야마토(大和), 야마시로(山城) 곧 지금의 나라, 교토, 오사카를 아우르는 천여 년 간 수도로 명성을 높이던 곳이다.

왕실의 절대적인 권위를 인정받았던 고구려 혜관스님이 이 지역에 이노가미데라(井上寺)를 세울 때만 해도 불교가 융성한 시기였다. 혜관스님 말고도 당시 고대 한국 출신 스님으로는 20년간 일본 왕실에서 쇼토쿠태자의 스승이 된 혜자스님을 비롯하여, 성실종의 시조인 백제승 도장스님, 천문·지리서, 역법(曆法)을 전한 관륵스님 등 쟁쟁한 고승들이 활약하던 시대였다.

특히 혜관스님은 와슈의 젠린지(和州 禪林寺)가 완공되었을 때 낙경도사(落慶導師, 절의 낙성식을 집전하던 고승)로 초대 되는 등 그 활약상은 일본의 고대 문헌에 반듯하게 기록되어 있어 그 발자취를 어렵지 않게 엿볼 수 있다.

문제는 고대 문헌 속의 현장 답사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백문이불여일견이라고 현장을 가봐야 그곳에서 울고 웃으며 살았던 사람들의 이미지를 떠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기자는 일본에 오기 전 경주의 황룡사 9층목탑이 우뚝하게 서있던 절터를 돌아본 바 있다. 지금은 황량한 절터지만 어마어마한 규모의 절터와 초석들을 보면서 문헌에서 느낄 수 없는 또 다른 감회를 맛보았다.

절이 들어 서 있던 땅은 변하지 않는다. 지상에 세워졌던 건물이란 큰불이 나면 한 줌의 재로 바뀌거나 화재가 아니라도 전쟁의 병화(兵禍) 또는 불교를 신봉하지 않는 정권을 만나면 하루아침에 폐사(廢寺)되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이 역사다. 조선 땅에서 불교가 유교이념에 의해 말살의 길을 걸은 것처럼 일본의 경우 특히 명치정부의 폐불훼석(廢佛毁釋)은 불교계에 치명적인 사건이었다.

현재 후지이데라시(藤井寺市)에 있는 고구려 혜관스님의 창건절 이노가미데라도 그러한 거듭되는 법난(法難)을 당해 지금은 황량한 터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실정이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후지이데라시 문화재보호과의 처사이다. 시(市) 이름에 절(寺) 자가 들어갈 만큼 후지이데라시(藤井寺市)는 역사의 보고(寶庫) 그 자체다.

이노가미데라가 존재했던 자리에 구석기유적지라는 빗돌이 서있다
▲ 구석기유적지 이노가미데라가 존재했던 자리에 구석기유적지라는 빗돌이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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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절 등 사람이 살았던 자리임을 입증하는 발굴 유물
▲ 발굴 유물 마을, 절 등 사람이 살았던 자리임을 입증하는 발굴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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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터에서 나온 유물들
▲ 발굴 유물 절 터에서 나온 유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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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서울에서 이곳 절터를 보러 오기 위해 후지이데라시 교육위원회(藤井寺市 教育委員会)에 <고구려 혜관스님의 이노가미데라에 관한 자료>를 얻고자 1회의 팩스와 1회의 메일을 보내둔 바 있다. 이곳에 자료문의 팩스를 보낸 것은 지난 1월 25일이었고 답을 기다리다 못해 다시 메일을 보낸 바 있으나 회신이 없어 그냥 현장을 찾아야 했다.

현장에 다녀온 뒤 이러한 사실을 동행한 우에노 시인에게 말했더니 즉각 해당 부서에 전화를 걸었다. 혹시 팩스 전달이 안 되었나 싶어 문의를 한 결과, 쌓여있는 팩스 용지 더미에서 기자가 서울에서 보낸 '질문지'가 발견되었으며 바로 답을 못해 미안하다는 공무원 우에다(上田)씨의 답이 있었다고 전했다.

회답도 회답이지만 현장에 절의 초석(礎石)이 남아 있다는 정보를 알고 갔으나 직접 가보니 초석은 보이질 않았다. 하여 동행한 우에노 시인이 담당 공무원에게 혹시 초석을 문화재보호과에서 다른 곳으로 옮겼는지를 문의하니, 아뿔싸! 우리가 찾아갔던 현장의 임시 공중변소 뒤편에 있었다는 전갈이다. 아무런 표지판도 현장에 없었기에 우리는 설마 후미진 공중변소 뒤에 초석이 있으리란 생각은 꿈에도 못했던 것이다. 아니 현장에 표지판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곳이 고우유적(國府遺跡)이라는 표지판은 하나 달랑 있었지만 초석이 있는 자리에 대한 안내는 없었다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후지이데라시(藤井寺市)에서 세워둔 <고우유적 (國府遺跡)>에 관한 요약문을 보면, "이곳은 구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곳으로 추정되며 무덤, 마을, 사원 등의 유적이 남아 있어 매장문화재지역으로 고우유적이라 부르고 있다. 발굴조사에 따르면 죠오몽토기, 야요이토기와 함께 90구의 인골이 출토되었으며 귀걸이 장식 등도 나왔다.  이곳은 2만년전부터 사람이 살던 곳으로 구석기시대의 석기가 발견되고 있다"고 기록됐다. - 국사적 (國史跡) 1974년 6월 25일 지정)-

숙소에 돌아와서 현장 사진을 살펴보니 먼발치에 공중변소 한 개가 눈에 띄었으나 이미 현장에 다녀온 터라 다른 일정으로 다시 그곳에 다녀 올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하여 후지이데라시 교육위원회에서는 기자의 자료 요청과 함께 현장 사진을 찍어 보내주기로 했다. 몇 번이나 사죄의 말과 함께 말이다. 일설에 따르면 이노가미데라(井上寺)의 초석을 근처에 있는 시키아가타누시신사(志貴県主神社)의 수리 시에 밑돌로 썼다는 기록들이 있어 이 부분을 포함하여 자세한 이야기는 후지이데라시 교육위원회(藤井寺市 教育委員会)의 자료가 도착되는 대로 확인하여 다시 쓸 예정이다.

고구려 혜관스님이 지은 절터를 찾기 위해 고심하는 모습, 사진은 동행한 우에노 미야코 시인
▲ 절터 고구려 혜관스님이 지은 절터를 찾기 위해 고심하는 모습, 사진은 동행한 우에노 미야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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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를 찾아가는 길은 주택가로 미로였다. 행인에게 수차례 물어 겨우 찾았다. 사진은 길 찾는 모습
▲ 길 찾는 모습 유적지를 찾아가는 길은 주택가로 미로였다. 행인에게 수차례 물어 겨우 찾았다. 사진은 길 찾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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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우유적지가 있는 도로변에는 세계문화유산등록을 하겠다는 펼침막이 줄지어 있다
▲ 고우유적지 고우유적지가 있는 도로변에는 세계문화유산등록을 하겠다는 펼침막이 줄지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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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보니 역에서  20여분 거리건만 표지판이 없는 바람에 고구려 혜관스님이 세운 절을 찾아 헤매다가 점심 밥도 먹지 못하고 겨우 찾은 유적지를 돌아보고 오사카로 돌아오기 위해 긴테츠 하지노사토역(近鐵 土師ノ里)으로 돌아 온 시각은 오후 3시, 역으로 돌아오는 도로변에는 이 지역 고분군을 세계문화유산에 등록하자는 펼침막이 사방에 붙어 있었다.

"세계문화유산에 등록하려면 아직 먼 것 같아요. 이 지역 문화재에 관심을 갖고 몇 차례나 문의한 이 기자님에게 회신하나 보낼 줄 모르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큰일을 하겠어요?"

고구려 혜관스님 유적지 답사에 일부러 귀한 시간을 내어 동행한 우에노 미야코 시인은 후지이데라시(藤井寺市) 공무원들의 안이한 문화재인식에 일침을 가했다.  이 기사는 해당기관의 자료가 도착하는대로 추가 집필할 예정이다.

고구려 혜관스님이 지은 절터에서 기자
▲ 절터2 고구려 혜관스님이 지은 절터에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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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혜관스님 창건 절 이노가미데라(井上寺) 터 가는 길
주소: 大阪府藤井寺市惣社 國府遺跡
긴테츠 미나미오오사카선(近鉄 南大阪線)을 타고 하지노 사토역(土師ノ里駅)에서 내려 역을 끼고 바로 오른쪽 도로로 3분 정도 가면 길 건너 편의점이 보인다. 이 편의점 옆길로 10여분 직진한 곳에 고우유적(国府遺跡) 터가 나오는데 직진이라고는 했지만 주택가 좁은 골목들이 있고 표지판이 없어 찾기가 매우 어렵다. 당국에서는 구석기유적지군으로 자랑하는 이곳에 대한 접근을 보다 쉽게 표지판을 세워두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이 기사에 나오는 일본어는 기자의 번역이며, 문헌 속의 한자는 당시 표기 대로이다. 다만 현재 지명 등은 신한자표기를 해야하나 지원이 안돼 구한자로 표기했음을 밝힌다.

덧붙이는 글 | 신한국문화신문에도 보냈습니다.



태그:#혜관스님, #이노가미데라, #시키아가타누시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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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시인.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한국외대 외국어연수평가원 교수,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 국립국어원 국어순화위원,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냄 저서 《사쿠라 훈민정음》, 《오염된국어사전》,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집《서간도에 들꽃 피다 》전 10권,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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