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000년 2월 22일 오후 2시 22분,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모토를 내걸고 <오마이뉴스>는 창간했습니다. 어느덧 창간한 지 17년이 지났고, 시민기자 수는 8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오랜 시간 꾸준히 활동해온 시민기자들의 창간 17주년 소감을 몇 차례에 걸쳐 싣습니다. [편집자말]
편집부로부터 전화가 왔다. 2월 22일 <오마이뉴스> 창립일을 맞아 기사를 하나 써달란다. 주제는 '오마이뉴스와 나'. 약간은 뜬금없는 요청에 망설이고 있는데 수화기 너머 편집기자가 한 마디 한다. 나의 페이스북에서 <오마이뉴스>에 대한 언급을 봤다고. 아뿔싸. 이쯤 되면 소위 '빼도박'이다. 알겠다고 하는 수밖에.

내가 페이스북에 적은 사연은 다음과 같다.

"기자님의 기사를 싣고 싶습니다"

세상이 좀 더 나아지길 바라며...
▲ 구의역 현장에 간 아이들 세상이 좀 더 나아지길 바라며...
ⓒ 이희동

관련사진보기


며칠 전이었다. 051로 시작되는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이희동 기자님이시죠? 부산 OO대학교 출판부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무슨 일이시죠?"
"저희가 이번에 글쓰기와 관련된 교재를 하나 만들고 있는데, 거기에다가 기자님의 기사를 싣고 싶어서 전화드렸습니다. 가능할까요?"

이야기인즉슨 작년에 내가 작성한 기사 "아빠, 그 삼촌은 왜 전철을 피하지 못했어?"를 책에 싣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 글은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일하던 청년 김군이 죽은 이후 아이들을 현장에 데리고 간 이야기를 육아일기 형식으로 쓴 것이었는데, 아마도 출판부는 이를 통해 일상의 경험을 어떻게 기사화할 수 있는지 예문으로 제시하는 듯했다.

비록 스스로 썩 잘 썼다고 생각하는 글은 아니었지만, 대학교 글쓰기 교재에 싣는다고 하니 굳이 마다할 필요는 없었다. 아니,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어쨌든 나의 글이 그만큼 인정을 받았다는 거 아닌가. 이런 경우 저작권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오마이뉴스> 편집부에 문의한 이후 기사의 인용을 수락했다.

사실 <오마이뉴스>에 500편 넘게 글을 써 오면서 이와 같은 제의는 낯선 일이 아니다. <오마이뉴스>는 특히 방송작가들이 많이 보는 편인데, 그동안 나의 기사를 보고 라디오나 TV 방송작가들이 연락한 경우도 적지 않았으며, 기사들을 모아 출판을 하자던 제의도 가끔 있었다. 다만, 이번에는 그 기분이 조금 남달랐는데 그것은 내가 <오마이뉴스>에 글을 쓴 지 어느덧 10년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오마이뉴스>, 10년의 시간

10년 정도 쓰면 여러 경험이 쌓인다.
▲ 강의도 가끔 한다 10년 정도 쓰면 여러 경험이 쌓인다.
ⓒ 이희동

관련사진보기


내가 처음 <오마이뉴스>를 쓴 건 2006년 대학원을 졸업하고 나서였다. 취업 준비를 하던 그때, 나는 대학원까지 다니면서 생활화했던 글쓰기를 놓고 싶지 않았고, 또한 사회를 바꾸고 싶다는 초심을 잃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취업을 하고 일선 경제현장에 뛰어들고 보니 학생 때처럼 사회에 대한 치열한 문제의식을 가지기 힘들었다. 하루하루 매출 증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했고, 고된 일과가 끝나면 동료들과 술 마시기 바빴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출퇴근 시간을 이용해 짬짬이 지하철에서 기사를 썼다. 그것은 현실에 매몰되지 않으려는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이런 생활은 결혼을 하고나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여유가 없어졌다. 결혼과 동시에 아이를 갖게 되면서 예전보다 여행을 다니지 못했고, 심야영화도 보기 힘들어졌는데 그것이 치명적이었다. 당시 나의 기사는 여행과 영화를 소재로 삼아 현실을 풀어내는 것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글을 쓰고 싶었던 시절.
▲ 둘째를 업고 어떻게든 글을 쓰고 싶었던 시절.
ⓒ 정가람

관련사진보기


여행, 영화와 관련된 기사도 쓸 수 없는 상황. 그럼 난 뭘 쓰지? 이때 눈에 들어온 것이 나의 일상이었다. 우리네 삶처럼 정치적인 영역이 또 있을까? 모든 것은 정치와 맞닿아 있다는 것이 평소 나의 지론이었다. 나는 그때부터 영화나 여행 대신 생활에 대해 쓰기 시작했다. 포털에는 '이게 수필이냐', '신변잡기는 일기장에 쓰라'는 악플들이 달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결국 일상에서 정치를 이야기하는 것이 시민기자가 상근기자와 다른 점이었다.

이후 나는 편집부가 가끔 원고 청탁을 하는 시민기자가 되었다. 글을 얼마나 잘 쓰느냐와 별개로, 얼마 되지 않는 30대 회사원이라는 희소성 때문인 듯했다. 나는 삼겹살 값이 오르면 회식하기 힘들다고 썼으며, 전셋값이 오르면 이를 방치하고 있는 국가의 문제점을 지목했다. 나의 기사는 일반인의 시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졌고, 때로는 현실의 변화를 추동하기도 했다. 짜릿했다. 이렇게나마 내가 사회를 바꾸는 데 일조한다는 사실이 고무적이었다.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기사쓰기를 많이 권유하고 다녔다. 사회가 좀 더 나아지기 위해서는 나와 같은 보통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더 많이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언론의 '오래된 미래'라고 믿었다. 아내도 나의 설득으로 기사를 쓰기 시작했는데, 현재 우리 부부는 육아일기를 통해 좀 더 많은 이들과 소통하려 노력 중이다. 글을 통해 함께 육아를 고민하고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꾸고자 하고 있다.

시민기자 10년의 힘

그런데 며칠 전 부산의 대학교에서 연락이 온 것이다. 평소 같았으면 으레 그러려니 했을 테지만 유독 그 제안에 신경이 쓰였던 것은 10년이라는 세월의 무게 때문이었다. 오롯이 30대를 시민기자라는 별칭과 함께 했던 바로 그 시간.

사실 사회의 어느 분야든 10년이라는 세월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사람이 무엇을 하든 간에 10년이면 그 분야의 장인은 못 되더라도 최소한 전문가라는 소리는 들을 수 있기 마련이다. 실제로 대학에 남은 나의 동기들은 북한전문가가 되어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대학원 졸업 뒤 취업했던 물류 기업의 동기들은 지금 그 조직의 과장, 차장급이 되어 회사를 지탱하고 있다.

그렇다면 난 북한 전문가나 물류 전문가가 되는 대신 무엇을 택한 것일까? 물론 지금이야 사회적경제 분야에 몸담고 있지만, 아직 채 4년 밖에 되지 않았으니 어디 가서 명함을 내밀 수준은 못 된다. 과연 나는 10년 동안 무엇을 한 것일까?

개인적으로 자랑스러워 하는 상이다.
▲ 2월 22일상 개인적으로 자랑스러워 하는 상이다.
ⓒ 이희동

관련사진보기


이 질문에 대해 나는 감히 글쓰기를 떠올렸다. 비록 북한학을 공부했고, 물류 기업을 다녔으며, 현재는 사회적경제와 관련된 활동가의 삶을 살고 있지만 나의 10년을 관통하는 것은 시민기자로서의 삶이요, 글쓰기였다. 남들이 나름 각자의 분야에서 전문가가 될 때 나는 계속해서 글을 썼다.

나는 글쓰기 덕분에 대학원 졸업 이후 나의 선택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을 수 있었다. 대학원 동기들은 국정원이다, 통일부다 하고 들어갔지만 그 조직에 들어갔더라면 난 이렇게 내 생각을 글로나마 발설하지 못했을 것이고, 꽤 심한 자괴감을 느꼈을 것이다. 또한 기업에 그대로 남아 있었더라면 글 쓸 시간도 없을 뿐더러 독립성을 지키며 글을 쓰기 어려웠을 것이다. 당장 예전 회사 사장은 기사에서 접한 나의 정치적 성향 때문에 백안시하지 않았던가.

현재 몸담고 있는 사회적경제 분야에서도 나의 글쓰기는 여전히 유효하다. 다행히 이곳에서 나는 자유스럽게 글을 쓰는 편인데, 나는 10년간 다듬어진 글쓰기 능력을 통해 조직의 발전에 한몫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나의 가치를 높이고 있는 중이다.

경제적으로 좀 궁곤하면 어떠한가. 내가 좋아하는 걸 할 수 있고, 거기서 보람을 느낀다면,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뜻하지 않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면 만족할 수 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내가 시민기자로서 글을 자유롭게 쓸 수 있기 때문이며, 그 속에서 내가 그토록 바라는 사회의 변화를 비교적 용이하게 꿈꿀 수 있기 때문이다.

10년이란 시간은 결코 허투루 흘러가지 않는다. 나는 10년 동안 글을 썼고 이제는 그 업이 내게 되돌아오고 있다. 어쩌면 며칠 전 걸려온 대학교의 제안은 그 과정인지도 모른다. 앞으로 또다시 10년. 나의 글쓰기는 내게 어떻게 말을 걸어올까?


태그:#시민기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오마이뉴스, #오마이뉴스 창간 17주년, #오마이뉴스와 나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