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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원이란 이름은 특히 <오마이뉴스> 독자들에게는 그리 낯선 이름이 아닙니다. 2003년부터 시민기자로 활동을 시작, 때로는 따뜻하게 또 때로는 예리하게 자신과 주변을 살폈습니다. 그리고 점점 그 시선은 장애인, 외로운 노인, 결혼 이주 여성 등 사회적 약자에게로 확장됐습니다. 그의 기사는 독자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고, 2006년 <타임>은 올해의 인물 중 한 명으로 그를 지목하기도 했죠.

8일, 상암동 사옥에서 <오마이뉴스> 수습기자들이 김혜원 시민기자를 만났습니다. '모든 시민은 기자'란 철학에 아직 생소할 수 있는 수습기자들 눈에 김혜원 기자는 어떻게 비쳤을까요. 또 그들에게 오랫동안 활동한 이 시민기자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줬을까요. 그 '소감'을 수습기자들이 기사로 풀어냈습니다. 김성욱·배지현·신민정·신지수, 이상 수습기자 4명의 기사를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편집자말]
지난 2013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나는 시민기자다>(오마이북) 저자와의 대화'에 참석한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 가운데 마이크를 잡고 있는 사람이 김혜원 시민기자.
 지난 2013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나는 시민기자다>(오마이북) 저자와의 대화'에 참석한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 가운데 마이크를 잡고 있는 사람이 김혜원 시민기자.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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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이 뽑은 2006년 올해의 인물. 서번트 증후군을 다룬 기사로 모은 스토리펀딩 금액 1118만2천 원. 독거노인을 다룬 책 <나 같은 늙은이 찾아와줘서 고마워>와 장애인 가족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특별한 너라서 고마워>의 저자. 지난 8일 김혜원(56)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를 만났다. 화려한 수식어의 주인공은 자신을 '아줌마 시민기자'라고 소개했다. 대단한 시민기자라고 칭찬하자 그녀는 수줍게 웃으며 손을 휘저었다.

"저는 그냥 가정주부예요. 한 시민이 내 정체성이죠.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은 다양하고 그 안에서 쓸 내용도 무궁무진해요. 엄마는 모든 분야의 전문가잖아요. 기왕이면 내가 겪고, 보고, 듣고, 만져본 얘기만 하려고 해요."

필리핀 결혼이주여성 아멜리아 기사 이후 주변으로 시선 돌려

김혜원 시민기자가 오마이뉴스에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건 2003년이었다. 고3병에 걸린 아들과 우울증에 시달리는 남편 얘기(관련 기사: 남편은 우울증, 아들은 시험중, 나는 고민중)를 썼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에 독자들이 공감했다. 14년 동안 565개의 기사를 올렸다. 그런 그녀가 시민기자로서 책임감을 느끼게 된 계기는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아멜리아를 만나면서였다.

김혜원씨는 암에 걸린 결혼이주여성의 목소리를 대신해 기사로 담았다. 치료비가 없어 친정으로 다시 떠난 아멜리아와 남겨진 가족을 다룬 기사 <나무꾼과 선녀처럼 살고 싶었어요>에 공감한 독자들이 자발적으로 1700만 원을 모았다. 김씨는 "(아멜리아 기사 이후) 시민의 행동을 이끌어낼 수 있는 시민기자 역할이 무겁게 느껴졌다"고 했다. 그녀는 '나'에서 '주변'으로 시선을 돌렸다.

김혜원 시민기자는 장애인 봉사만 15년을 했다. 이 경험은 저시력 청소년과 서번트 증후군을 가진 장애 청소년에 대한 스토리펀딩 기사로 이어졌다. 자폐성 장애, 코넬리아디란지 증후군 등 11명의 장애아이와 그의 부모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특별한 너라서 고마워>도 그렇게 나왔다.

"제가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봉사를 했으니까 취재하러 가면 그 심정을 잘 이해할 수 있었어요. 기사로 쓰기 위해 봉사를 한 건 아니었지만 장애인 이야기는 풀어가기 쉬운 분야가 됐어요. 기자가 아무 준비 없이 현장에 가면 안 되잖아요."

일회성 취재에 그치지 않고 제도적 변화 만들어야

<오마이뉴스> 김혜원 시민기자.
 <오마이뉴스> 김혜원 시민기자.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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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부모님을 가까이 모시고 살면서 자연스레 노인 문제에도 관심이 갔다. 그러나 서울에 사는 독거노인을 취재하기 위해 찾아갔을 땐 마음의 문을 닫은 경우도 많았다.

"그분들이 가진 기성 언론에 대한 불신이 너무 컸어요. 기자나 PD가 찾아가서 한번 찍고 끝내니까 스스로 소비되는 느낌이었던 거죠. 좋은 의도로 찍는다고 설득한 다음에 정작 방송 내용을 다르게 편집하는 경우도 꽤 있잖아요. 어떤 할머니는 KBS에서 나오라는 데도 안 갔다면서 말해주면 뭐 줄 거냐고 물으시기도 했어요."

김혜원 시민기자는 노인들의 마음이 열릴 때까지 기다렸다. 기자와 취재원이 아닌 딸이나 며느리로 다가가려 노력했다. 이야기를 꺼낼 때까지 2~3시간을 기다리기도 했고 한 번으로 안 되면 계속 찾아갔다. 김 씨는 "그분들에게 잘 돌려서 얘기하고 설득하면 결국 마음을 열 수 있었다"며 "(언론사는) 소위 그림이 되는 것에 집중하는 것보단 그들의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스토리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중파 방송 PD나 작가들에게 연락 많이 왔어요. 방송에 나가는 영상을 위해 더 짠한 사연을 찾아요. 그 사람들을 위해선 취재비만 주고 일회성으로 끝내는 게 아니라 집중적으로 다뤄야죠. 취재원에 대한 책임을 느끼고 제도적 관심을 끌어낼 때까지 꾸준히 취재해야죠."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게 시민기자"

사회적 약자를 다루면서 생기는 부작용도 있었다. 독거노인을 취재하고 오는 길엔 늘 마음이 무거웠다. 김혜원 시민기자는 "너무나 처연하고 초라한 상황을 듣고 오면 힘들었다"며 "나도 위로가 필요해 한동안 회복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고 고백했다. 그런데도 계속 시민기자로 활동하는 이유는 뭘까.

"필요한 말이 많은데 시민에게 들리지 않는 목소리가 있잖아요. 이주노동자, 결혼이주여성과 자녀들. 그 사람들이 소리 내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아요. 정말 그들이 뭘 힘들어하는지 무슨 대우를 받고 싶어 하는지 들어주거나 대신 말해줄 공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전 계속 그들의 목소리를 전달해줄 거예요. 그게 시민기자인 내 정체성이죠."

김혜원씨의 약자를 향한 눈길은 국내에만 머물지 않는다. 2015년엔 인도 하층민의 삶을 보기 위해 직접 인도로 떠났다. 그녀는 지나치게 깨끗한 깔리갓센터(인도의 호스피스센터)에서 쉴새 없이 닦고 움직일 누군가의 손을 떠올렸다. 그렇게 인도에서 보고 듣고 겪은 경험을 <아줌마 인도 가다>라는 기사로 녹여냈다. 평소 무언가를 이뤄낸 사람보다 시장에서 일하는 노인을 훨씬 존경한다는 그녀. 김혜원 시민기자의 다음 기사가 기대되는 이유다.


태그:#KBS, #김혜원, #시민기자, #약자, #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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