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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1일 오전 서울 국회 정론관에서 대선 불출마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1일 오전 서울 국회 정론관에서 대선 불출마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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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견된 퇴장이었다. 어느 대선후보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설 이후 후보직을 사퇴할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예언하기도 했었다. 세인들의 관심 속에 등장한 반기문, 씁쓸함 속에 정치권에 쓴 소리를 하면서 퇴장하였다. 여러가지 아쉬움을 남겼지만 결국 그가 감당해야할 것들을 이겨내지 못한 것이다.

유엔 사무총장을 그만둔 다음 곧바로 대통령에 출마하는 것이 유엔 헌장에 반하는 것은 아닌지, 국내 거주요건을 충족시킨 것인지, 동생들과 조카의 비리에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인지, 태광그룹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것이 아닌지에 대한 끊임없는 의문이 그를 옥죄고 있었다. 유엔 안팎에서 그에 대한 평가도 호의적이지 않았다. 반 총장의 친동생 반기호씨가 미얀마에서 사업체를 운영하는 과정에 최순실과 관련성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중도 포기의 결정적 이유라는 말도 있었다.

사실 반기문 전 총장에게 대선후보라는 타이틀은 우연히 굴러들어온 것이다.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은 그의 능력과 노력으로 얻어진 것이 아니다. 유엔 사무총장(United nations Secretary General)은 '세계 대통령', '세계 최고 외교관' 등으로 불린다. 국제사회에서 갖는 권위와 위상이 그만큼 높다는 이야기다. 4만여 명의 인사권과 40억 달러에 달하는 예산 집행권을 갖는다고 한다.

유엔 사무총장, 과연 반기문의 능력 덕분인가

유엔 사무총장은 안전보장이사회가 후보를 추천하고 총회가 이를 추인하는 절차를 거친다. 안보리 추천은 안보리 15개 이사국 중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등 5개 상임이사국을 포함해 9개국 이상의 지지를 얻어야 가능하다. 단, 상임이사국 중 한 국가라도 반대하면 탈락이다. 상임이사국은 임기가 영구적이며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임기 2년의 비상임이사국은 지역별 배분 원칙에 따라 선출되고 거부권은 갖지 않는다. 후보 추천을 위한 안보리 예비투표는 총 4차례 실시되고, 후보 인준은 총회에서 회원국들의 박수로 대신하는 게 관례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반기문 사무총장은 2007년부터 2011년까지 5년, 그리고 재임에 성공해서 2016년까지 10년 동안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것이다.

유엔 사무총장은 대륙별 순환 규정이 명시적인 것은 아니지만 국제 역학관계에 기초해서 대륙별 안배 원칙이 불문율로 여겨진다. 이런 역학관계에서 반기문 사무총장이 탄생한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사람이 유엔 사무총장을 해야 할 시기에 반기문이 선택되었을 뿐이다.

그 이전에 중앙일보 회장인 홍석현 주미대사가 있었다. 홍 회장은 이미 2004년경 당시 반기문 외교부 장관보다 먼저 유엔 사무총장 후보로 내정됐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러나 2005년 7월 MBC가 '삼성 X파일'을 폭로하면서 주미대사 직을 사임하였고, 그 결과 유엔 진출은 물 건너갔다. 그 자리를 이어 받아서 반기문 외교부 장관이 유엔 사무총장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재임에 성공한 것은 그의 능력 때문일까? 역대 사무총장 중 6대(1992~1996) 사무총장을 지낸 이집트의 부트로스 갈리는 연임에 성공하지 못했다. 보스니아 사태를 둘러싼 미국과의 갈등이 주요 원인으로 안보리 이사국 15개국 중 14개국의 지지를 확보하고도 미국의 거부권 행사로 재임에 성공하지 못한 것이다. 나머지 7명은 모두 연임에 성공했다.

어떻든 반기문은 우리나라 최초로 유엔 사무총장이 되었고, 그것도 연임에 성공해서 10년을 경험하였다. 대통령 후보로 손색이 없는 경험이다. 그러나 그가 유엔 사무총장에 올랐던 방식으로 대통령이 될 수는 없었다.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특정 대륙의 나라에서 사무총장이 나와야 하고, 그 나라에서 추천을 하면 나머지 절차는 강대국 사이의 힘의 논리에 의해서 결정된다. 다른 아무런 절차가 필요 없게 된다.

그러나 대통령은 다르다. 당연히 상대 후보들이나 언론에서 집요한 검증절차에 돌입할 것이기 때문이다. 없는 사실도 관련지어 검증을 하는데, 유엔헌장이나 친인척 비리, 박연차 금품수수 등의 의혹은 좋은 먹잇감이 된 것이다.

국내 정치 너무 몰랐던 반기문

반기문 사무총장의 태도부터 살펴보자. 사무총장으로 있으면서도 임기 막바지에는 사실상 대권후보의 행보를 보여 왔다. 그럼에도 본인은 명확하게 출마여부를 미룬다. 유엔 사무총장으로 있으면서 대권출마를 미리 밝힐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표리가 부동한 것이다. 오랫동안 외교관으로 있었던 그의 모습에 어울리지 않는다.

보수층에 이렇다 할 후보가 없고, 충청권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을 것이라 생각해서인지 상당히 고무된 모습이었다. 어서 빨리 총장의 임기가 끝나면 국내에 들어가 본격적인 대선행보를 이어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지지율도 급상승할 것이라 미리 짐작한 때문이다. 그러다가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이 발생하였고, 보수적인 이미지의 반기문에게도 불똥이 튄다. 그러면서 문재인 대표에게 지지율 수위자리를 내준 상태에서 사무총장의 임기를 마치고 국내로 귀환하기에 이른다.

국내로 복귀하면서 반기문이 보여준 모습은 국민들이 그에게 기대했던 새로운 모습이 없었다. 어느 정치인들과 마찬가지의 행보, 그것도 조금은 우왕좌왕 하는 모습이었다. 그가 보여줬어야 할 세련미와 책임감, 솔직하게 소통하는 모습, 그리고 강력한 리더십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박근혜의 보수와 반기문의 보수가 어떻게 다른지 차별성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다. 추상적인 단어를 나열하기에 급급해 하는 모습이 다른 정치인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을 너무 가볍게 생각한 것이다.

국내로 들어오면서 대선행보를 보이는 과정 하나하나가 주목의 대상이 된다. 사소한 것들도 놓치지 않는 것이 기자 정신이다. 당연히 언론의 칼날 위에 서 춤을 출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의 행보는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오랫동안 대선후보 수위를 달리면서 대선출마를 기정사실화 한 상황에서 허점투성이 너무 많은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그동안 우리나라 대통령선거의 표심은 크게 지역적인 대결양상을 보였고, 이념에 따라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져 있었다. 진보도 아니고 보수도 아니거나, 진보와 보수 모두를 아우르는 후보는 지지층을 모으기가 어려운 구도였다. 반기문은 양쪽을 모두 아우를 생각에서 정치교체를 들고 나오고, 스스로를 진보적 보수주의자로 자처하면서 반반(半半)행보를 걸었다.

그러다 보니 보수층에서는 이념적 성향을 분명히 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진보 층에서는 아무런 관심도 끌지 못하면서 애매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 이념적 성향을 넘어서 정치인을 만나도 어느 한사람 따뜻하게 맞아주지 않았던 이유기도 하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다 모두 놓치는 꼴이 된 것이다. 지지율을 높이려는 조바심에서 광속행보를 보이던 그가 뚜렷한 좌표를 설정하지 못한 채 표류했던 셈이다.

솔직하고 순진한 게 아니라 준비가 덜 된 것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2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음식점에서 캠프 직원과 오찬을 갖기 전 발언을 하고 있다.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2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음식점에서 캠프 직원과 오찬을 갖기 전 발언을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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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은 자신이 솔직하고 순진했던 것을 낙마의 이유로 거론한다. 정확하게는 그렇지 않다. 어리숙하고 준비가 덜 되었을 뿐이다. 주위에 국내 상황을 명확히 파악해서 준비를 하도록 조언하는 사람들이 없었거나 그런 조언을 무시하고 자신의 위상만을 생각한 때문이다.

거의 1년 이상을 대선후보로 거론된 사람이다. 대선에 도전할 생각이 있었다면 보다 치밀한 대비가 있어야 했다. 대선후보로 거론되는 사람들의 성향, 그들의 지지세력, 자신에게 호의적인 사람들의 범위, 외연을 확대하는 방안들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계획이 있어야 했다. 유엔 사무총장까지 지냈으니 알아서 따라오리라는 생각이었다면 오산이다.

자신의 입장을 솔직하게 내세우는 것도 실패했다. 유엔 내에서의 자신에 대한 비판, 유엔 헌장의 위반여부 등에 대하여 명확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히지 않고 다른 사람일인 듯 넘어가는 태도는 다른 정치인과 같은 모습이었다. 20일의 국내행적에서 국민들이 생각하는 반기문 다운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반 총장은 자신이 만나본 정치인들 모두가 따로 계산이 있더라고 말한다. 너무 당연하다. 계산 없는 정치인이 도대체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모든 정치인들이 반기문 자신을 위주로 계산을 해야 한다는 것인지 되묻고 싶다. 정치인은 여러 가지 계산을 하면서 이합집산을 거듭한다. 자신과 정체성이 맞으면 같은 길을 가고, 그렇지 않으면 다른 길을 간다. 서로 다른 생각을 하면서 합종연횡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인의 계산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오히려 계산 없는 정치인이 이상한 것 아닌가?

자신을 소모품으로 생각하는 정치인도 있었다는 소회를 밝힌다. 반 총장 또한 다른 정치인을 소모품으로 생각하는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자유롭게 경쟁하고 치열한 경쟁을 통해서 살아남기도 하고 소모품으로 사라지기도 하는 것이 정치다. 국내 정치인들이 우물 안 개구리 식으로 국제정세를 살피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대통령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데서 비롯된 발언이다.

대통령은 국민들의 다양한 이해충돌을 조정하는 역할이 가장 큰 몫이다. 유엔 사무총장을 지냈다고 해서 국제정세를 마음대로 운영할 수도 없다. 외교는 국익의 충돌을 전제로 한다. 사무총장이 중립적인 입장에서 바라보는 외교와 대통령으로 국익을 우선시해야 하는 외교는 다르다. 유엔 사무총장을 지냈다고 해서 외교부분의 사안들을 탁월하게 해결할 것이라는 생각은 난센스다.

정치는 힘이고, 힘은 사람에서 나오며, 사람은 돈이라는 얘기가 있다. 반기문은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받아들여 정치를 하려 했을 뿐 정말로 자신이 필요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그들을 어떻게 자기편으로 만들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외교관 그룹이 일차적인 장막을 치고, 이명박 대통령을 따랐던 사람들이 합류한 방식에 불과했다. 잘 알고 있듯이 외교관은 순응적인 태도가 몸에 익어 창조적인 역할을 맡는 데 한계가 있다. 의전을 중시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흙탕물 싸움도 마다하지 않아야 하는 정치판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들이 장막을 치면서 다른 정치인들이 합류하는데 주저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을 따랐던 사람들이 하나둘 전면에 나서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았다. 이미 실패한 대통령의 가신들 아닌가? 뭔가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데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반기문 캠프에 모여든 사람들이 그의 인기에 영합해서 정권을 잡으려는 욕심으로 뭉쳤을 뿐 반기문이라는 상품을 어떻게 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부족했다. 사람들이 함께 공유하면서 방향을 설정해야 할 반기문의 철학이 준비되지도 않은 상태였다. 그러므로 서로 공감대를 형성해서 화합하는 것도 불가능하였던 것이다.

반기문은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직함을 지나치게 큰 것으로 생각했다. 자신이 그 정도의 역할을 했으므로 국내 대통령의 자격은 충분하고, 어떤 다른 후보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자질이 있는 것으로 스스로 자리매김을 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국내로 복귀하면 유력정치인들이 자신과 함께 할 것이고, 지지율도 수직상승할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유력 정치인들이 반기문을 따르려 했던 것은 그의 인기와 지지율 때문이다. 지지율이 낮아지면 그들이 쉽게 합류하지 않을 것임은 너무 당연하다. 그걸 염두에 두면서 자신의 행보를 가야 하는 것이다. 일정한 지지율을 유지해야 하는 것은 그의 역할이고, 책임이다. 그동안 꽃신을 신고 꽃가마를 타면서 꽃길만을 걸었던 반기문이 생각하기 어려운 험로다.

정치는 반대파가 있고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며 결과에 책임을 지는 것이다. 스스로 길을 닦으면서 나가는 것이어야 하며 다른 사람들이 받들어주는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반기문이 부족했던 이유다. 국민들의 관심 속에 등장했다가 20일간 정치활동을 하고 유엔 사무총장의 명예마저도 함께 묻어버리면서 홀연히 떠난 그의 무책임하고 소극적인 태도가 아쉽다.

덧붙이는 글 | 김정범 변호사(법무법인 민우,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태그:#반기문대선후보, #반기문사무총장, #유엔사무총장, #반기문후보사퇴, #반기문대권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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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변호사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겸임교수(기업법, 세법 등)로 활동하고 있는 김정범입니다. 공정한 사회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함께 더불어사는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배치되는 비민주적 태도, 패거리, 꼼수를 무척 싫어합니다. 나의 편이라도 잘못된 것은 과감히 비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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