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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모두 모여요! 오늘도 진료소 준비 시작 할게요~"

오늘도 시작이다. 돌아오는 매주 토요일. 우리 프리메드(FREEMED) 진료소가 열리는 날. 그럼 오늘도 하루도 힘차게 시작해볼까.

우리 프리메드(FREEMED)는 다양한 전공의 대학생들이 모인 NGO로, 의료소외계층에 무상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무료 진료소를 운영하고 있다. 진료소는 매주 토요일 6시부터 7시반까지 서울역 9번 출구에서 열리는데, 6시 시작을 위해 우리 프리메드 단원들은 늘 4시 40분까지 서울역에 모인다. 이는 진료소의 의료 전문성을 좀 더 높이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단원 교육' 때문이다.

비 전문적인 우리가 진료소를 대하는 태도

우리 진료소는 총 4개의 PART로 구성된다. 접수를 받는 PART 1, 간단한 문진 및 의사 선생님의 진료가 이루어지는 PART 2, 약을 처방하는 PART 3, 한방치료가 이루어지는 PART 4. 물론 면허증을 가진 선생님들께서 주도적으로 환자를 봐주시지만, 간단한 문진 및 약 조제는 우리 대학생들이 하기에 단원 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 간단한 의료행위지만 의료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토요일마다 단원 교육을 받는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면허증을 가진 선생님들의 진두지휘 아래에서 이루어지니 섣부른 오해는 하지 마시길. 처음엔 신기했지만 계속 받으면 지루해지는 게 사실이다. 그래도 꾹~ 참고 교육을 받아본다. 그만큼 우리의 책임이 크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오늘 내가 배정받은 곳은 PART 2. 여기에서 환자분들을 안내해드리는 Transfer가 오늘 나의 임무.

'아싸, 오늘은 더 재밌겠구나!!!!!'

수혜자분들을 안내하는 Transfer 특성상 다른 부서들에 비해 수혜자분들과 얘기할 기회가 더 많다. 사실 나의 정체는 백의의 천사 나이팅게일. 아직은 간호 학부생일지라도 학교에서 배운 것들을 잘 활용하고 있으니 나이팅게일이나 진배없지. 수혜자분들의 진료는 의사선생님께서 봐주시지만, 다른 수혜자분들의 진료를 기다리는 동안 수혜자분들은 우리 transfer들에게 많이들 아픔을 호소하신다. 이 때 주 호소와 혈압, 혈당 등을 바탕으로 간단히 할 수 있는 생활 습관의 교정 방향을 알려 드리면 그렇게 보람을 느낄 수가 없다. 의사 선생님의 진단과 복약 지도를 옆에서 들으며 전공 수업에서 배웠던 이론이 실제 상황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 직접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자, 이제 준비 되었으면 수혜자분들을 맞이해볼까. 오늘은 어떤 분들이 오실까.

어떤 할머니께서 다리통증을 호소하시며 자리에 앉아계신다. 얘기를 전해들으니 이 분은 현재 프리메드 무료 진료소와 연계병원인 성북중앙병원에서 정형외과 치료를 받고 계신 분인데, 수술이 필요함에도 계속 거부하고 계신단다. 아파서 병원을 찾았는데 수술은 거부한다? 백의의 천사 나이팅게일이 가만히 있을 수 있나. 할머님께 다가갔다. 그리고 물었다. 왜 수술을 거부하시냐고.

"나도 수술 받고 싶제~ 근데 못 받어, 지금 수술 받으면 나 일하러 못 가거든. 그럼 나 뭐 먹고사느냔 말이야 돈도 없고. 그리고 수술받으면 간병인도 필요한데 간병인은 뭐 공짜로 구해지는감. 돈도 없고 사람도 못 구하고, 우리 아들덜은 바빠서 못 오고… 아무튼 나도 받고 싶어도 못 받는겨~."

워킹실버, 이제는 한국에서 익숙한 풍경

통계청, 2017 ‘주요국 은퇴소득 비교 및 시사점’ 보고서
▲ 유엔 통계청 통계청, 2017 ‘주요국 은퇴소득 비교 및 시사점’ 보고서
ⓒ 통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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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노인'을 뜻하는 '워킹실버(working-silver)가 2010년 297만명에 육박했다고 통계청은 발표했다. 전체 고용률은 39.1%로 5명 중의 2명이 일하는 셈이다. 이는 OECD 주요국들의 '노년의 노동참여율'에서 더 두드러지는데, 프랑스의 1.3%에 비하면 한국은 29.3%이다. 개발도상국들의 노년 참여율이 23%인 것을 보면 참담한 수치다(통계청,2017 '주요국 은퇴소득 비교 및 시사점' 보고서) 놀랍다. 하지만 여기서 놀라긴 이르다. 바로 엊그제. 29일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2016년 처음으로 60대 취업자 수가 20대를 앞질렀다고 발표했다. 60세 이상 취업자는 388만4000명으로 전년보다 22만3000명 증가했으나 20대 취업자는 5만3000명 늘어 374만6000명에 그쳤다. 60세 이상 취업자가 20대 취업자보다 13만8000명 많은 것이다.

이러한 기형학적 통계는 인구구조 변화가 한 몫 했는데, 고령화가 가속화되며 60세 이상 인구는 2000년 521만3000명에서 지난해 987만명까지 늘었지만 같은 기간 20대 인구는 747만4000명에서 642만2000명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경기둔화로 인한 고용한파로 기업들이 신규채용을 꺼리는 상황까지 합세한 덕이다.

더욱 가슴이 아픈 것은 일하기를 희망하는 노년층이 전체 비율의 60%라는 것이다. 이들 중 과반수는 '생활비에 보탬이 되고 싶다'고 통계청의 부가조사에서 답했다. 무엇이 노년층을 여기까지 내몰았을까. 단순한 인구구조의 변화만은 아닐 것이다. 

언젠가, 먼 훗날을 기약하며, 지금에 최선을 다하며

지금은 혈압 측정 중
 지금은 혈압 측정 중
ⓒ 강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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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게 정답게
 정답게 정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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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여 괜찮여, 나 주사 맞고, 여기서 약 먹고, 그러면 괜찮여."

할머니는 연신 괜찮다고만 하셨다. 간병인은 차치하고라도 당장 생활비가 없기 때문에 한 순간도 손에서 일을 놓을 수 없다는 할머니의 상황이 너무 가슴아팠다. 하지만 내가 지금 해드릴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가슴이 너무 아팠다. 그렇게 할머니는 약을 받고는 '고맙다'는 말씀을 남기시고 집으로 가셨다.

저녁 8시 30분. 드디어 모든 진료가 끝났다. 우리는 서둘러 진료소 물품을 정리했고, 오늘 진료소 활동에 대한 서로의 피드백을 주고 받으며 오늘의 진료소를 완전히 마무리 했다.

내가 진료소를 선택한 것은 사회적으로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는 분들을 대상으로 직접 진단을 내리고 약을 조제해드리면서 실질적인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무료 진료소가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진료받으시고 처방받아가시는 분들을 보면 정말로 기쁘다. 하지만 오늘처럼 우리 진료소가 어쩔 수 없는 환자분들이 나타나면 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절망적이기까지 하다. 그래도 나는 진료소를 계속 할 것이다. 우리 프리메드 진료소가 처음에는 달리는 버스로 시작하여 지금의 진료소까지 왔듯이, 언젠가는 지금보다 더 큰 차원으로 의료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있겠지.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처럼 늘 여기에서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수혜자분들을 맞이하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태그:#프리메드, #FREEMED, #의료사각지대해소, #청년들의 열정으로 의료사각지대를 해소한다, #모두가 치료받을 수 있는 병원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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