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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천산 회랑을 잇는 실크로드

장안성의 중심 종루
 장안성의 중심 종루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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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도시가 장안(長安)이다. 역사적으로 장안은 실크로드의 출발지 또는 목적지로 여겨져 왔다. 그것은 장안이 중국 고대국가의 수도로 천 년간 번성을 누렸기 때문이다. 장안은 기원전 206년 한나라의 수도가 되었고. 그리고 한무제 때인 기원전 139년부터 126년 사이 장건(張騫)을 서역에 파견하면서 동서교통로가 열리게 되었다. 그 후 말, 비단, 차, 향료, 옥, 도자기 등이 이 길을 따라 오고가며 거의 이천 년간 번성을 누렸다.

실크로드의 전성기는 아무래도 당나라 때다. 당 태종이 648년 서역 경영에 나서 쿠차(庫車)에 안서도호부를 설치한다. 그리고 658년까지 호탄(和田), 카쉬가르(喀什), 옌치(焉耆) 지역을 장악, 타클라마칸 서쪽지역까지 진출한다. 이를 통해 천산산맥(天山山脈)을 넘어 인도와 중앙아시아로 가는 길이 완전히 뚫리게 되었다. 물론 법현이나 현장 같은 스님이 법을 구하기 위해 인도를 왕복한 적이 있지만, 완벽한 교통로가 형성된 것은 당 태종(626-649)과 고종(649-683) 때다.

양관 고성
 양관 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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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의 중국구간은 장안에서 출발 천산산맥까지 이어진다. 이 구간에서는 대상을 통해 의식주에 필요한 상품이 이동했다.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 종교도 전해졌다. 이를 통해 삶의 방식이 바뀌고 도시가 새로운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도시설계가 바뀌고 새로운 건축이 만들어져 삶의 공간이 다른 모습으로 변했다. 그러므로 실크로드는 당대 최첨단의 유행이 흘러가는 길이고 루트였다.

이 구간에는 33개 특별한 유적이 남아 있다. 한에서 원나라에 이르는 중국의 수도, 궁궐, 교역도시, 석굴과 사찰, 고대 통행로, 역참, 관문, 봉수대, 만리장성의 일부 구역, 성곽, 묘역, 종교 시설 등이 대표적이다. 중국은 공식적인 역참과 봉수 체계를 통하여 교역을 촉진했다. 중앙아시아 지역은 요새와 병참, 관문과 카라반 숙소, 중간 기착지를 운영해 교역을 도왔다.

이 구간은 다섯 가지 이유에서 201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되었다. 첫째 인류 문화교류를 증명한다. 둘째 특별한 문화 전통이나 문명을 보여준다. 셋째 건물이나 건축, 조경 등이 두드러진다. 넷째 보존가치가 있는 삶의 흔적을 보여준다. 다섯째 역사적인 이념이나 정신을 반영한다.  

실크로드 출발지에 서다

실크로드 출발지 조형물
 실크로드 출발지 조형물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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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안에 있는 실크로드 출발지로 간다. 그러나 어떤 고증을 거쳐 확인된 실크로드의 출발지점은 아니다. 서안의 서쪽 외곽에 공원을 만들고, 그곳에 조형물을 세워 놓았을 뿐이다. 조형물의 중심은 낙타와 대상(隊商)이다. 대상은 서역과 서양인이다. 동양에서 서양으로 가는 사람들보다는 서양에서 중국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표현한 것 같다. 그렇다면 실크로드 종착지라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이곳 장안을 출발한 대상은 먼저 감숙성(甘肅省)의 성도인 난주(蘭州)까지 간다. 난주는 황하의 상류로, 기련산맥을 따라 나 있는 하서주랑으로 들어가는 기점이다. 여기서 돈황의 서쪽 옥문관과 양관에 이르는 동안 맥적산(麥積山)석굴, 병령사(炳靈寺)석굴 같은 불교 문화유산을 만날 수 있다. 돈황에는 또한 불교문화의 보고인 막고굴(莫高窟)이 있다.

실크로드 총도
 실크로드 총도
ⓒ 김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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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황에서 실크로드 오아시스길은 남쪽과 북쪽 두 갈래로 나뉜다. 북쪽은 옥문관에서 출발 투르판 쿠차를 거쳐 카쉬가르로 이어진다. 이 길은 타클라마칸 사막의 북쪽 오아시스를 따라 나 있으며,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이용했다. 남쪽은 양관에서 출발 누란 호탄을 거쳐 카쉬가르로 이어진다. 이 길은 타클라마칸 사막의 남쪽 오아시스를 따라 나 있으며, 쿤제랍 고개를 넘어 인도로 가는 지름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북쪽 오아시스길인 서역북로를 따라 여행한 경험이 있다. 이 길은 천산 남쪽에 있어 천산남로로 불리기도 한다. 삼장법사 현장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재구성한 <서유기>의 배경이 된 곳이 천산남로 지방이다. 파초선 이야기가 나오는 화염산은 투르판 인근에 있고, 현장이 한 달간 머물며 왕을 위해 설법한 고창고성은 투르판과 쿠차 사이에 있다.

실크로드는 오아시스길 연구에서 시작되었다

파미르고원도
 파미르고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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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는 크게 세 갈래 길이 있다. 첫째가 오아시스길이다. 장안을 출발해 둔황에 이른 다음, 타클라마칸 사막을 지나 파미르 고원을 넘는 길이다. 파미르 고원을 넘는 길은 남로와 북로로 나누어진다. 남로는 파키스탄과 인도로 이어지고, 북로는 키르기스탄과 타지키스탄으로 이어진다. 이들 길은 사마르칸트와 발흐를 거쳐 이스탄불까지 연결된다. 일부 학자들은 오아시스길을 동쪽으로 경주까지, 서쪽으로 로마까지 연결하기도 한다.

둘째가 초원길이다. 몽골의 카라코룸으로 해서 중가리아 분지와 알타이 산맥을 넘어 아랄해 카스피해로 연결되는 길이다. 이 지역은 초원이 발달해 있어 스텝로드(Steppe Road)라고도 불린다. 셋째가 바닷길이다. 중국의 남쪽 광주(廣州)를 출발, 말래카 해협을 통해 인도에 이르는 길이다. 바닷길은 여기서 다시 바그다드나 알렉산드리아로 이어진다.

실크로드를 따라 인도로 가는 구법승
 실크로드를 따라 인도로 가는 구법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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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세 갈래 길 중 문명사적으로 더 중요한 길이 오아시스길과 바닷길이다. 이 두 길을 통해 비단과 향료 등이 교류되고 종교가 전해졌기 때문이다. 실크로드 고전여행기 중 우리는 법현(法顯)의 <불국기> 현장(玄奘)의 <대당서역기> 혜초(慧超)의 <왕오천축국전>을 가장 자주 이야기한다. 그것은 <불국기>가 최초의 실크로드 여행기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당서역기>는 실크로드 여행기의 백과사전에 해당한다. <왕오천축국전>은 신라인 혜초가 쓴 여행기이기 때문에 관심의 대상이다. 

오아시스길과 바닷길을 따라 인도에 다녀온 두 스님 이야기

<불국기>와 <왕오천축국전>은 오아시스길과 바닷길을 통해 여행한 기록이어서 실크로드를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하다. <불국기>를 쓴 법현 스님은 장안을 출발 난주 서녕(西寧)을 거쳐 돈황에 이른다. 돈황에서 호탄에 이르는 길은 서역북로를 통해 남로로 내려간다. 왜냐하면 쿠차에서 호탄까지 타클라마칸사막을 남북으로 종단하기 때문이다.

총령(파미르)을 넘는 길
 총령(파미르)을 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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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탄에서 인도로 가는 길은 타쉬구르칸에서 총령(蔥嶺)을 넘어 길기트로 이어진다. 총령은 범어로 파미르(Pamir)고, 페르시아어로 바미둔야(Bam-i-dunya)다. 파미르는 황야라는 뜻이고, 바미둔야는 평평한 지붕이라는 뜻이다. 파미르는 실제로 힌두쿠시, 카라코럼, 천산산맥에 둘러싸인 황량한 세계의 지붕이다.

"총령의 산에는 겨울이나 여름이나 눈이 쌓여 있다. 또한 독룡(毒龍)이 있어 만약 그가 노하면 혹독한 바람과 눈비를 토하여 모래와 자갈 그리고 돌이 날아다닌다. 사람이 이때를 만나면 한 사람도 온전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그 산을 설산(雪山)이라 부른다."

법현
 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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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천축에 이른 법현은 인더스강의 여러 도시를 지나 중천축으로 들어간다. 중천축은 부처님의 법이 생겨난 곳이다. 법현은 그 흔적을 찾아 갠지스강을 따라 내려간다. 법현은 부처님의 자취를 따라가면서 깨달음을 얻고 또 법을 담은 경전을 구해 고향으로 돌아간다. 돌아가는 길은 육로가 아닌 해로다. 이것이 갠지스강 하류 탐룩을 출발, 스리랑카, 자바, 광주, 양주(揚州)로 이어지는 바닷길이다. 

<왕오천축국전>을 쓴 혜초 스님은 광주를 출발 말래카 해협의 팔렘방을 거쳐 인도의 탐룩으로 들어간다. 법현과 달리 혜초는 갠지스강을 따라 올라가면서 부처님의 법과 흔적을 찾아낸다. 그리고 인더스강 주변의 불교유적을 찾아보고 불경을 구해 와칸(Wakhan: 護蜜國)주랑을 통해 파미르(播蜜川)를 넘어간다. 15일 걸려 파미르 고개를 넘은 혜초는 총령진(蔥嶺鎭: 타쉬구르칸)에 이른다.

소안탑이 있는 천복사
 소안탑이 있는 천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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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혜초는 천산남로를 따라 돈황에 이른 다음 장안으로 들어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왕오천축국전>필사본은 소륵(疎勒: 카쉬가르), 구자국(龜玆國: 쿠차), 우전국(于闐國: 호탄), 언기국(焉耆國: 옌치)에 대한 이야기로 끝난다. 그것은 돈황 막고굴에서 발견된 <왕오천축국전>필사본이 훼손되었기 때문이다. 혜초가 귀국 후 장안에서 활동했음은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修大藏經)>을 통해 확인된다.

혜초는 733년부터 천복사(薦福寺)에서 금강지삼장을 모시고 8년 동안 불경을 번역한다. 천복사는 대자은사, 대흥선사와 함께 불경을 번역하고 연구하는 중심사찰이었다. 혜초는 금강지삼장의 제자인 불공삼장이 사자국에서 불경을 구해온 746년부터는 그를 도와 다시 불경번역에 종사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불공삼장이 774년 입적하면서 남긴 유서를 통해 확인된다. 밀교의 비법을 전수한 6명의 제자 중 세 번째로 혜초의 이름이 보이기 때문이다. 

서안이라는 지명은 중화인민공화국시대부터 사용되었다

장안(서안)
 장안(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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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은 13개 왕조의 수도로 1200년 동안이나 그 지위를 누려왔다. 가장 먼저 주(周)의 275년 동안 수도였으며, 당시 이름이 호경(鎬京)이었다. 이어 275년 동안 전국시대 진(秦)나라의 수도였다. 진나라의 수도는 함양이었지만, 위수의 이쪽과 저쪽이라는 의미에서 장안에 포함시킬 수 있다. 더욱이 천하를 통일한 시황제의 진나라는 수도의 영역을 위수 너머 장안지역까지 넓히게 되었다.

그리고 장안이 명실상부하게 중국의 수도로 등장한 것은 한나라 때다. 장안은 기원전 202년부터 기원후 8년까지 210년 동안 한나라의 수도였다. 장안, 오랫동안 편안한 도시 장안은 그 후 수나라와 당나라의 수도로 300년 이상 그 역할을 했다. 중간에 30년 내외씩 전진, 서위, 북주 등의 수도였으니, 이들을 합치면 1200년 고도가 되는 것이다. 

서안공항
 서안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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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이라는 이름이 중화민국 시대에 와서 서경(西京)으로 바뀌었고, 중화인민공화국 시대에 와서 서안으로 바뀌었다. 사서(史書)에 서안이라는 명칭은 명(明)나라 때부터 사용되었지만, 장안이라는 명칭의 상징성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지금도 사서에서 중국의 수도를 이야기 할 때는 장안이라고 쓰고 있는 것이다. 장안은 중국의 영원한 수도다. 그리고 중국 사람들의 마음의 고향이다.

우리는 장안에 있는 실크로드 출발지를 보고 다시 현실의 세계로 돌아온다. 주변은 온통 공사판이다. 서안은 지금 중국 서부의 신산업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우리 버스는 육촌보(六村堡) 톨게이트로 들어간 다음 위하(渭河)를 건넌다. G70고속도로를 타고 위성구(渭城區)를 지나 서안함양 국제기장(國際機場)에 이른다. 우리는 12시 50분 비행기를 타고 인천으로 향한다. 오후 4시 40분이면 인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다. 세 시간이 안 걸리는 가까운 거리다.

과거 당나라로 가던 한반도의 사신들이 3개월 이상 걸렸을 이 길을 우리는 단 세 시간 만에 도착한다. 휴전선이 열리고 압록강 철교가 연결되더라도, 기차로 가면 3일 정도 걸리는 길이다. 우리의 처음 여행계획은 <열하일기>를 따라 북경으로 해서 열하(承德)에 다녀오는 것이었다. 청나라 수도인 북경과 여름궁전인 승덕을 다녀오려던 계획이, 이번 한과 당나라 수도인 장안으로 바뀌었다. 고대 중국의 문화유산을 살펴보았으니, 다음 행선지는 근현대 중국의 수도 북경으로 잡아야겠다.

덧붙이는 글 | [중국의 고대문화 들여다보기]는 30회로 연재를 마친다. 서안과 함양을 중심으로 중국의 고대 문화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진나라에서 당나라에 이르는 1000년 제국의 문화유산을 찾아가는 과거로의 여행이었다. 마지막에는 장안을 기점으로 파미르고원 너머 서역까지 이어지는 실크로드를 잠깐 따라가 보았다.



태그:#실크로드, #유네스코 세계유산, #실크로드 출발지, #오아시스길, #바닷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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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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