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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는 사람들.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는 사람들.
ⓒ 최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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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방학이 되면 졸업을 앞둔 대학생들의 마음이 더욱 초조해진다. 사상 최악의 구직난과 꽁꽁 얼어붙은 경제상황 탓에 '내가 원하는 회사에서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들어서다. 여기 저기 이력서를 제출하고, 면접까지 봤지만 '최종 합격'이라는 확신이 들지 않은 이들이 훨씬 많아 보인다.

'취업을 위해 무슨 짓이라도 해야'하는 상황에서 대학생들은 스펙을 쌓느라 여념이 없다. 지난 주말 나는 지역의 공공도서관에 들렀다. 쌀쌀한 날씨와 학생들의 얼굴은 묘한 공통점이 있었다. 핏기 하나 없는 모습, 슬리퍼와 추리닝으로 대표되는 취업 준비생의 민낯은 따스함이라고 찾아 볼 수 없는 추운 겨울과 무척 닮아 있었다.

도서관 로비로 들어서자 '구직 게시판'이 한 눈에 들어왔다. 게시판은 인턴과 아르바이트,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구분해 일자리 정보를 제공하고 있었다. 학생들의 눈길은 단연 정규직 사무직에 가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중소기업 계약직으로 출발해 2년 뒤 업무 평가를 통해 정규사원으로 '등업'해준다는 내용이었다. 안정적인 직장을 원하는 대학생 입장에선 계약직이라는 말에 왠지 마음이 불안해진다.

그나마 학생들이 관심을 보인 광고는 인턴 모집 글이다. 단기간 일을 하며 스펙을 쌓고, '잘하면' 정규직 확률이 높아 보였기 때문이다. 기업은 적은 돈으로 인력을 구할 수 있으니 이 제도는 누구 하나 불리하지 않은 게임인 듯하다.

그러나 인턴만큼 노동 착취적인 제도는 찾아 볼 수 없다. '취업난'이라는 전대미문의 상황에서 태생한 인턴은 의대생들이 흔히 경험하는 '일을 배우는' 과정이 아니다. 값싼 노동력을 확보한 기업은 인턴사원을 고용하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버리면 그만'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인턴은 합리적 제도일까?

대학교를 막 졸업할 즈음 나는 지역의 한 작은 언론사에 취업했다. 6개월 동안 인턴사원으로 근무한 다음 업무 평가를 통해 정규직 전환을 해준다는 조건이었다. 꼬박 4년 전의 일이었지만 지금이나 그때나 인턴제도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학생에서 노동자로 변신한 나는 첫 직장이라는 설렘도 잊은 채 회사가 시키는 일을 하느라 분주하게 하루를 보냈다. 신분은 기자였지만 글쓰는 일과 무관한 업무를 담당했다. 작업복을 입고 창고로 들어가 회사가 배송해야 할 옷가지를 포장하는 일이었다. 포장과 짐 옮기기, 전화 응대 등을 두 달가량 했을 때는 내가 마치 배송직원이 된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당시 이 언론사는 'OO 티셔츠'를 판매하는 사업을 벌였다. 기자들은 각 출입처에서 공무원들에게 티셔츠를 구매하라고 강요했다. 마침 어느 때는 'OO의 날'이라며 '공무원들이 애국심을 발휘해야 할 때'라는 반 협박용 지면 광고도 했다. 본부장은 기자들에게 판매 건수를 채워야 한다고 압박을 가했고, 성과지표를 만들어 사내 게시판에 공개하기도 했다.

그런데 상황이 안 좋아졌다. 동료 인턴들이 업무와 무관한 일을 담당하는 것은 물론 잦은 야근과 직원들의 소통 부재 등으로 직장을 떠나려고 했다. 사실 여기에는 본부장의 상황 인식도 한몫했다. 일손이 부족하면 매번 인맥을 통해 사람을 채용했다. 늦은 밤 회의실에선 '누가 어느 대학에 나왔으니 한 번 써보자', '내 친구 아들인데 믿을 만해'라는 말이 자주 들리곤 했다. 실력으로 승부해야 한다는 프로의 세계에서 인사전횡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인사 프로세스가 명확하지 않고 투명성도 없다 보니 인턴들의 불만은 더욱 높아졌다. 결국 3개월 만에 남은 인턴은 나 혼자밖에 없었다.

이처럼 인턴의 삶은 희망과 불안으로 가득 차 있다. 회사에서 잘 견디면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살아가지만 반대로 언제 잘릴지 모른다. '경험을 쌓을 수 있다'는 허울 아래 대학생들이 인턴에 도전하지만 기업은 사람을 쉽게 부려먹는다.

잘못된 정책이 노동 인권마저 악화시켜

한 대학교 게시판에 붙은 취업 관련 프로그램 홍보지
 한 대학교 게시판에 붙은 취업 관련 프로그램 홍보지
ⓒ 최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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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런 문제 의식은 나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닌 듯하다. '청년층 인턴문화에 관한 연구'에서 윤민재 교수는 "인턴경험자들이 정규직 전환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한시적 공공근로자나 단기 비정규직으로 전락하고 있다"며 "정부는 제대로 된 정규직 일자리를 늘리기보다 오히려 단기 인턴직을 늘리는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정책실패는 청년고용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인턴사원에 대한 비인간적 대우도 빼놓을 수 없는 문제다. 인턴들은 정식 사원이 아니지만 업무내용이나 활동 등에서 회사의 규칙에 따라 일을 하게 된다. 하지만 공식적 업무 외에 비공식적 업무를 하는 경우도 있고, 법적으로 미취업자로 분류돼 회사로부터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는 것도 흔하다. 인턴을 경험한 한 대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있는 공개적인 장소를 가리지 않고 멍청하냐는 등 비인간적인 말을 자주 했습니다. 그 사람이 나에게 대했던 눈빛과 표정, 비언어적인 행위들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상처가 될 거 같습니다."('청년층 인턴문화에 관한 연구' 중)

많은 청년들은 취업을 위해 경쟁적으로 스펙을 쌓고 남들과 다른 경험을 원한다. 그중 인턴은 자신을 상품화할 수 있는 대표적인 스펙에 속한다. 물론 인턴이 갖는 긍정적인 요소도 있다. 취업 준비생은 정규사원이 되기 전 미리 회사업무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회사가 나를 채용할 권리가 있다면 나도 회사를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취업난이 가중된 한국사회에서 인턴은 그 본질적 속성과는 무관하게 다양한 문제를 낳고 있다. 인턴사원들은 대부분 최소한의 생계유지를 위한 소득을 벌기 어렵고 언제 회사에서 잘 릴 지 모르는 불안함에 시달려야 한다. 직업탐색에 대한 사회적 논의 없이 오직 취업만 하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이 잡혀 있는 이상 인턴은 개선의 여지없이 청년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태그:#인턴, #인턴직, #청년취업, #청년인턴, #취업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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