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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바라보는 관점.

"어떤 수식어도 붙이지 않는다면 어떤 수식어도 될 수 있다."

청소년들을 만나기 시작한 후, 한 재단과 청소년 캠프를 진행할 때 특별한 경험들이 많은데 그 경험들은 거의 한 군데로 모인다.

"관점." 

* 관점: 사물이나 현상을 관찰할 때, 그 사람이 보고 생각하는 태도나 방향 또는 처지

얼굴과 표정까지 뚜렷한 한 친구에 대한 기억이 있다. 처음 눈이 마주칠 때부터 고요한 슬픔과 발랄한 기대를 동시에 갖고 사는 아이 같았다. 그 당시 중학교 3학년이었고 사람을 쳐다볼 때 한참을 쳐다보는 특징이 있는 아이였다.

캠프를 시작하기 전에 참가자들은 각 지역아동센터가 제출하는 아이에 대한 정보(가정사, 성격, 당부)와 자신이 직접 작성하는 20문 20답을 받는다.

캠프 한달 전에 항상 대학생 멘토들을 사전 교육하고 준비하는 시간이 있는데 이때 20문 20답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다. 다만 아이들이 혹시 상처받을 수 있는 질문이나 섣부른 조언 등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교육과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의 역할은 '리액션'이라는 것에 대한 세뇌(^^)를 한다. 각 멘토들에게 맡는 조의 아이들 정보를 알려주지 않는 이유는 분명하다. 어떤 선입견이나 판단도 없이 만나라는 것.

그 아이가 참석한 그 캠프도 역시 그러했고, 늘 그렇듯이 조에서 알아서 조장과 부조장을 선정하게 한다. 점심을 먹고 나서 조장과 부조장을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 친구가 조장이 되어 있는 것이다. 조장과 부조장을 선정하는 기준과 방법은 각 조 멘토들에게 맡기기 때문에 어떻게 그 친구가 조장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잘 어울린다와 잘 어울리지 않는다가 동시에 작동했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그 친구는 조장을 맡고 나서 정말 열성적으로 그리고 조심스러우면서도 따스한 리더십을 발휘했다. 첫날 저녁 모든 조의 대학생 멘토들과 강사 멘토들이 모여 회의를 하는데 담당 멘토들이 그 친구에 대한 놀라움과 감탄을 연신 고백했더랬다. 누구 하나 소외시킴 없이 조원들을 이끄는 리더라면서.

인상깊었던 장면은 밤에 진행되는 프로그램인 미래파티에서 조장과 부조장의 댄스 대결이 있는데 그 친구가 긴 머리를 흔들면서 춤을 췄던 장면이다.(다년 간의 댄스 대결 무대에 서본 사람으로서 그 친구의 춤은 생전 처음 춤을 추는 사람의 그것이었다. 무척 어색했지만 무척 열심이었고 무엇보다 눈을 감고 모든 것을 놓아버린 듯한 표정이 동작과는 다르게 감동을 일으켰다.)

둘째날에도 그 친구의 조장으로서의 역할은 뛰어났다. 밖에서 조원 전체가 뛰면서 미션을 수행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그 조가 꼴찌인가 꼴찌에서 두번째인가를 했다. 마무리 하는 시간에 그 친구가 다른 조원들을 고요하게 토닥이는 모습을 보았고, 그것을 조원들이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친구가 처음 풍겼던 고요한 슬픔은 고요한 기대로 변모된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조원들에게 고요하게 흘러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캠프가 모두 마무리 되고, 각 지역아동센터 선생님들에게 피드백을 받는 시간이 있는데, 그 친구가 속한 지역아동센터 선생님이 직접 전화를 했다.

"얘기 듣고 깜짝 놀랬어요. 우리 OO가 조장을 하다니요? 이 아이는 평소에 워낙 말이 없고 좀 차가운 면도 많고요, 좀처럼 나서는 일이 없어요. 사실은 거기 캠프 가서 돌출 행동으로 방해가 될까봐 조마조마했는데 조장을 했다고 해서 뭘 어떻게 하신 거지 했습니다. 아니면 일부러 그러셨나요?"

통화를 들으면서 사실 더 놀란 것은 우리였다. 전혀 그런 느낌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차갑거나 돌출 행동 이런 면은 발견된 순간이 없었다. 우리 모두가 기억하는 캠프에서의 모습은 리더로서 아주 탁월한 그 모습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착한 그 친구의 소감문.

"캠프를 참가하면서 나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내 꿈에 대한 의지는 더욱 더 확실해졌다. 얼떨결에 조장을 맡았는데, 내가 말하는 것마다 잘한다고 해주시고 명언이라고 하고 진짜 리더십이 뛰어나다고 말해주셔서 내가 좋은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내가 있는 센터 아이들에게 꿈을 찾아주는 일을 하고 싶다."

그리고 이 친구와는 지금도 연락하고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다른 아이들과도 이런 경험은 아주 많았다. 가끔 회상을 한다. 그때 캠프에서의 이 친구의 모습은 없던 모습이 새롭게 드러난 모습이 아니라, 원래 가지고 있던 모습을 드러날 기회를 만난 거라고 그 기회는 바로 아무런 선입견이나 판단이 없었던 그것이었을 것이다. 그 아이를 어떻게도 바라보지 않은 것 말이다.

그 아이를 만나기 전에 어떠어떠한 수식어를 사전에 붙이지 않은 것, 그것이 그 아이가 마음껏 자신을 발산할 수 있던 기회였을 거라 확신한다.

관점이란,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넘어서 어떻게도 바라보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냥 그 존재함 그 자체.



태그:#청소년, #관점, #캠프, #조장, #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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