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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3일 조계종 봉은사 역사문화환경 보존 대책위원회가 박원순 서울시장 퇴진을 촉구하며 가두시위에 나서고 있는 모습.
▲ 한전부지 환수를 주장하며 행진하는 조계종과 봉은사 관계자들 지난 10월 13일 조계종 봉은사 역사문화환경 보존 대책위원회가 박원순 서울시장 퇴진을 촉구하며 가두시위에 나서고 있는 모습.
ⓒ 불교포커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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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올초부터 삼성동 한전부지 환수운동 전개

조계종이 2014년 현대차에 매각된 서울 삼성동 한전부지(옛 봉은사 부지)가 "과거 정권에 의해 불법 강탈된 것"라고 주장하며 박원순 서울시장을 상대로 환수운동을 추진하고 있지만 별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수행환경 훼손'까지 들고 나오면서 박시장에 대한 사찰 출입을 금지하고 올해안으로 주민소환운동 전개를 들고 나왔지만 역시 반응은 싸늘하다. 만약 그렇게 문제가 된다면 부지매각이 이루어지기 전 한전이나 과거 정권에 책임을 물었어야 하는데 그땐 침묵하다가 느닷없이 특정 정치인을 대상으로 문제제기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우리와 관련이 없다"고 일축하면서 "한전부지 매각은 법적으로 우리시와 무관하며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며 "사실관계를 비추어 볼 때, 토지 매수자인 한전 등 정부기관과 정부, 조계종 및 봉은사와의 관계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애초 조계종단은 1960년대 이후 숙원사업이었던 총무원 청사, 즉 불교회관 건립과 동국대에 필요한 주변건물을 매입한다는 명분으로 1970년 10월 한전 부지가 포함된 강남구 삼성동 일대 33만578㎡(약 10만평)을 5억3000만 원을 받고 정부에 매각했다. 토지가격은 3.3㎡(1평)당 5300원으로 한전이 현대차에 매각한 3.3㎡당 4억3879만 원과 비교하면 약 8만2790배 차이가 난다.

1970년 당시 담배 한 갑과 시내버스 요금이 10원, 라면이 20원, 자장면 한 그릇이 100원이었는데, 현재 자장면 한 그릇 가격이 대략 5000원 임을 감안할 때 봉은사가 매각한 한전 부지 땅값 상승률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그 점에서 조계종단이 헐값매각에 대해 분노하는 것은 당연해 보일 수 있다. 당시에도 봉은사 주지였던 서운 스님은 '가격이 너무 싸다'는 이유로 매각에 분신을 불사하며 매각에 반대했다.

법정스님은 1970년 <불교신문>에 '봄한테는 미안하지만'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기고하면서 그때 상황을 상세히 설명했다.

지난 2월이던가? 우리 절(봉은사) 주지 스님이 불의 앞에 '분신자살'을 하겠다고 선언했었다. 상좌들을 모아놓고 눈물을 흘리면서 유언하는 비장한 장면을 보고, 같은 도량에 살고 있던 대중들은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면 우리 종단에서 삼보정재를 지키기 위해 분신자살로서 항거한 일은 일찍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불의란 10여 만 평에 달한 봉은사 임야매각에 따른 총무원 당국의 비승가적인 처사를 가리킨 것이었다.

법정스님도 문제점 인식 매각반대

이 당시 서운 스님 외에 다른 종단 인사들도 1960년대부터 시작된 강남개발로 봉은사와 지척거리에 있는 압구정 일대가 이미 개발이 시작되는 등 절 인근 땅값도 오르리라는 사실을 누구나 알 수 있는 상황에서 왜 매각을 서두르냐고 반발하기도 했다. 법정 스님 역시 "봉은사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이라거나 불교 중흥의 도량이라는 점을 굳이 들지 않더라도 한수 이남에 자리 잡은 입지 여건으로 보아 앞으로 다각도로 활용할 수 있는 아주 요긴한 도량"이라고 강조하면서 매각에 부정적 입장을 표명했다.

그럼에도 조계종 총무원이 왜 그토록 무리하게 봉은사 부지 매각을 강행했는지에 대해서 여러 설이 있다. 가장 유력한 것은 통치자금이 필요했던 청와대의 지시에 따라 조계종 신도회장을 맡았던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이 막후에서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들이 종단 원로들을 만나 매각을 종용하고 종단 집행부까지 나서자 서운 스님 홀로 이를 막아내기는 역부족이었다는 것.

지난 4월 29일 오후 조계종 스님들이 한전부지 개발 인허가 중단 촉구와 환수를 기원하며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서울시청 방면으로 삼보일배를 하고 있다. 2016.4.29
▲ 한전부지 환수 촉구, 거리나선 스님들 지난 4월 29일 오후 조계종 스님들이 한전부지 개발 인허가 중단 촉구와 환수를 기원하며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서울시청 방면으로 삼보일배를 하고 있다. 2016.4.29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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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44년이 지난 2014년 9월 한전부지가 천문학적 금액으로 팔려나가자 조계종단은 서울시와 한전을 대상으로 한전부지 환수를 주장하고 나섰다. 정치권의 강압에 의해 진행된 매각이므로 부당이익을 취하는 한전을 그냥 지켜볼 수 없다는 판단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시 정권의 압박이 있다 하더라도 불교계에도 책임이 있다. 우선 내부의 타당하고 합리적인 반대를 무릅쓰고 종단 차원에서 매각에 나섰다는 점이다. 그리고 지난 40여 년 동안 어떤 문제제기도 하지 않다가 급작스럽게 환수를 주장하는 것은 누가 봐도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면서 어떻게든 이득을 취해보겠다는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불교지식인네트워크인 지지(智止)협동조합 김경호 이사장은 "최초 매각당시와 그 이후 불교 내부의 잘못된 절차와 인물들에 대한 엄정한 평가와 반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는 누가 나섰는지, 누구를 통했는지, 총무원에서 누가 개입했는지, 당시 봉은사 주지 서운 스님을 소외시키고 매각을 강행한 자들에 대한 책임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이 밝혀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원순 시장이 아니라 박정희에게 원초적 책임

조계종의 주장대로 매각이 원인무효라면 박원순 시장이나 서울시를 대상으로 시위를 할 것이 아니라 국가를 상대로 토지반환소송을 내고, 한전의 토지매각이 원인무효임을 밝히는 것이 순서다. 그런데도 박원순 시장이 원인제공자인 것처럼 하는 것은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정치인을 상대로 협박하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그리고 매각절차가 종료된 상태에서 인허가를 하지 말라고 주장하는 것은 한전부지를 다시 매입하기 위한 것인지 의문부호를 던질 수 밖에 없다.

현 시점에서 조계종단의 환수운동이 사회적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불교계 내부 지적대로 ▲ 1970년 당시 매각 과정에 대한 투명한 공개 ▲ 박정희 정권의 부당한 압력에 대한 진상규명 ▲ 현 정부를 대상으로 토지반환소송을 내는 것이다.

애먼 박원순이 아니라 박정희-박근혜에게 책임을 물으라는 것이다. 한국최대 불교종단이 답이 나와 있음에도 억지를 부리며 엉뚱한 곳에서 답을 찾는 것은 정도가 아니다.


태그:#한전부지, #조계종 , #박원순, #봉은사,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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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모.함석헌 선생을 기리는 씨알재단에서 홍보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씨알정신을 선양하고 시민사회발전에 기여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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