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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 한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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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뻥튀기 트럭 주변에서는 주위의 장돌뱅이들이 모여서 연탄불 위에 소시지를 구워서 간식으로 먹고 있었다.
5일장은 정찰제를 할 수가 없다

반갑기 그지없는 차양을 친 5일장
▲ 봉평시장 반갑기 그지없는 차양을 친 5일장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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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가뭄에 콩 나듯이'라는 말이 과분할 정도로 전통 5일장이 드물다. 재래시장을 좋아하는 나는 어쩌다 진짜 5일장이 서는 곳을 만나면 가슴이 뛸 정도로 반갑다. 5일장에도 진짜와 가짜가 있느냐며 의아해 하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말하는 진짜 5일장은 장돌뱅이들이 5일마다 장소를 옮겨가며 장을 세우는 것을 말한다. 인터넷이나 블로그에 5일장이 있다고 해서 찾아가 보면 상설시장이기 일쑤다. 장이 서는 날짜까지 버젓이 있는데도 말이다.

이를테면 화개장터가 그렇고, 정읍의 샘골시장이 그렇다. 각자 100년이 넘었네, 몇십 년이 됐네, 하며 세월이 오래된 것만 가지고 자랑을 하지만, 정작 가서 보면 고정된 건물에 정찰제를 한답시고 가격표를 붙여 놓았다.

5일장은 정찰제를 할 수가 없다. 대부분의 5일장은 시골에 서기 때문이다. 시골이라고 정찰제를 하지 말라는 법 또한 없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이어져온 5일장은 공산품을 제외하고는 그때그때 거둔 수확물들을 가지고 나와서 팔거나 물물교환을 했으므로 그 해의 수확량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11월22일 H마트에 갔더니 배추 세 포기를 묶어놓고 1만 원을 받고 있었다. 시골이라고 해서 더 싼 것은 없다. 열다섯 포기를 사면 배추 값만 5만 원이다. 그런데 강원도 영월의 한 농가에서 유기농 절임배추를 주문했더니 30kg(약 13포기 정도)에 5만8300원이다.

좀더 비싸다고는 하지만 그곳에서는 유기농 배추를 천일염에 절인 후 깨끗이 씻어서 쪽파와 무까지 서비스로 보내준다. 택배비는 물론 그쪽에서 지불한다. 전화를 걸어서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그러면 손해를 보는 거 아니냐고 했더니 "그래도 남으니까 팔지요"라고 했다.

고춧가루는 유기농을 샀더니 1근에 2만 원이다. 일반 고춧가루보다 조금 비싸기는 하지만 청양고춧가루 1근을 덤으로 주었다. 배추와 고춧가루로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요즘이 김장철이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찾은 봉평장, 내가 좋아하는 엿장수는 없었지만...

메밀꽃필무렵의 주인공들 상을 재미있게 세워 놓았다.
▲ 봉평시장 메밀꽃필무렵의 주인공들 상을 재미있게 세워 놓았다.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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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만에 서는 봉평장에서는 배추 3포기를 한 단으로 묶어서 7천 원에 팔고 있었다. 봉평장날은 2일과 7일이다. 모처럼 마음먹고 서울을 거쳐서 봉평까지 갔다. 오랜만에 들썩거리는 장 분위기에 취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시장을 돌아다녔다. 내가 좋아하는 엿장수는 없었지만 마트나 상설시장에서는 볼 수 없는 재미와 인정을 듬뿍 맛보았다.

시장 입구 좀 한가한 곳에서는 전통가구를 팔고 있었다. 트럭 위에 상품을 진열한 관계로 물건들은 거의 소품들이지만 제법 큰 것도 몇 개 있었다. 평소에 구입하고 싶어 하던 약장도 있었다. 부르는 가격은 28만 원이었으나 첫손님을 놓치기 싫다며 24만 원을 달란다.

판매자와 구매자간에 본격적인 흥정이 시작됐다. 20여 분 정도 줄다리기를 하다가 현금가 20만 원에 낙찰을 봤다. 인터넷으로 똑 같은 상표에 똑 같은 제품을 확인해 보니 32만 원에 팔고 있었다. 돈을 지불하고 돌아서는데 기분이 엄청 좋았다. 정말 오랜만에 흥정하는 묘미와 재미도 느낄 수 있었다.

조금 더 올라가니 뻥튀기 장수가 있었는데 기계는 트럭 위의 이글거리는 불 위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트럭 위에서 하는 건 처음 보네요. 내려놓고 하시면 더 편리하지 않나요?"
"편하기는 한데, 갑자기 비라도 내리면 곤란하지요. 뻥튀기는 바삭해야 제 맛인데 비라도 맞아 봐요, 그러면 그날 장사는 망친다니까요. 뿐만 아니라 이동하기도 편하잖아요."

이곳이야말로 양말 백화점. 봉평장에서.
▲ 양말 이곳이야말로 양말 백화점. 봉평장에서.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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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져만 봐도 복이 온다? 믿거나 말거나.
▲ 코뚜레 만져만 봐도 복이 온다? 믿거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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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화에 관해서는 없는 게 없는 노점 잡화상
▲ 잡화 잡화에 관해서는 없는 게 없는 노점 잡화상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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뻥튀기 트럭 주변에서는 주위의 장돌뱅이들이 모여서 연탄불 위에 소시지를 구워서 간식으로 먹고 있었다. 아주머니 한 분이 투박한 손으로 소시지를 집어 주면서 먹으라고 권했다. 그다지 수더분한 성미가 아닌데도 나는 망설임 없이 손으로 받아먹었다. 마켓이나 상설시장에서는 턱도 없는 얘기고 인심이다.

또 다른 골목은 메밀 음식 천국이다. 봉평의 특성을 아주 잘 살린 먹거리들이 즐비하다. 메밀 막국수, 메밀 칼국수, 메밀 전, 메밀전병, 메밀 빵 등등, 특별한 솜씨가 없더라도 메밀이라는 것만으로도 손님을 끌 수 있다.

천막 안에는 이른 시간인데도 손님들이 제법 많았다. 구수한 음식 냄새와 고소한 기름 냄새가 회를 동하게 만들었다. 점심으로 뜨끈한 메밀 칼국수와 메밀전병을 먹었다. 점심을 먹고 또 장을 돌아보았다. 갔던 데 또 가도 재미있었다.

산속에 함초롬히 핀 소박한 구절초 같은 커피 한 잔

한잔에 몇 만원씩 한다는 더치커피! 
비록 에스프레소 잔이지만 서비스로 줘서 마셨다.
▲ 더치커피 한잔에 몇 만원씩 한다는 더치커피! 비록 에스프레소 잔이지만 서비스로 줘서 마셨다.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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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쌀쌀하니 따뜻한 커피가 생각났다. 주위에 물어보니 봉평의 명물 커피가 있단다. 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한때, 작은 트럭을 커피카페로 개조해서 전국을 돌아다닐 생각을 한 적도 있기에 명물커피가 있다는 말을 듣자 곧장 그곳으로 향했다.

카페마노는 허름했다. 주인장마저 수수했다. 하지만 커피 맛만은 최고였다. 혹시 '지가 커피를 알어?' 할까봐 밝힌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일반인들은 바리스타라는 직업이 생소하게 느낄 무렵인 2006년도에 바리스타 자격증을 땄다. 그리고 커피에 미쳐서 꼬박 2년을 카페에서 일을 했다.

카페마노의 커피는 겨우 생두를 면할 정도만 볶았다. 그러니 맛은 순하고 향기는 은은했다. 커피 향을 꽃에 비유하자면, 시중의 커피는 화려한 다알리아 같고 카페마노의 커피는 산속에 함초롬히 핀 소박한 구절초 같았다.

한 잔을 마시니 아쉬웠다. 조심스럽게 주인에게 리필이 되느냐고 물었더니, 리필은 안 되지만 다른 커피를 맛보라고 했다. 이번에 내온 커피는 더치커피였다. 냉장고에서 밤새 내린 더치커피! 카페마노의 주인이 중병을 앓을 때 이 커피를 마시고 병이 많이 호전되었고, 그에 홀려(?)서 커피숍을 하게 됐단다.

봉평은 메밀만큼 유명한 것이 있다. <메밀꽃필무렵>의 이효석 문학관! 11월 하순의 해는 노루꼬리보다 짧게 느껴졌다. 부랴부랴 문학관으로 갔다. 문학관은 산 중턱쯤에 있었고, 아래쪽에는 물레방앗간이 있었다.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봇물주변에는 하얀 고드름이 달려 있어서 초록의 이끼와 환상의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이효석 문학관 아래에 있는 물레방아
▲ 물레방아 이효석 문학관 아래에 있는 물레방아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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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앗간 안에는 뜻밖에도 디딜방아가 있었다. 잠시 고향에 온 착각과 함께 어린 시절의 아련한 추억이 되살아나기도 했다. 물레방앗간에서 나오니 둘레길이 보였다. 둘레길은 안전하고 아름다웠다. 한 시간가량 둘레길을 산책하니 해가 저물었다. 문학관 내부는 몇 번이나 가 봤기에 오늘은 생략했다.

봉평은 가볼 만 한 곳이 제법 많다. 봄에는 온갖 꽃과 식물이 향기를 내뿜는 허브나라가 있고, 여름에는 차갑고 맑은 물이 흐르는 흥정계곡이 있다. 가을에는 금당계곡이 아름답다. 겨울에는 휘닉스파크에서 운영하는 스키장이 있다.

이렇게 봉평에는 매력물이 꽤 많다. 이번 겨울에는 봉평 장날에 맞춰서 겨울나들이를 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월간 문학바탕 12월호에도 게재합니다



태그:#5일장, #재래시장, #봉평, #메밀꽃필무렵, #메밀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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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는 시원한 청량제, 겨울에는 따뜻한 화로가 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쓴 책 : 김경내 산문집<덧칠하지 말자> 김경내 동시집<난리 날 만하더라고> 김경내 단편 동화집<별이 된 까치밥> e-mail : ok_0926@daum.net 글을 써야 숨을 쉬는 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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