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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뭍으로 변한 드넓은 시화호를 달렸다.
 바다에서 뭍으로 변한 드넓은 시화호를 달렸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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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5일 경기도 화성시 문화재단에서 진행했던 '성석제와 함께 떠나는 자전거 여행'에 참가했다. 작가 성석제와 함께 당성, 마산포, 어섬, 형도, 우음도로 이어지는 시화호 일대를 달렸다. 화성시의 역사 유적지와 바다에서 뭍이 된 드넓은 초원을 지나는 흥미로운 여행이었다.

알고 보니 화성시는 서울시의 1.4배나 되는 큰 땅이었다. 고대 실크로드의 관문이자 대중국 교류의 핵심이었던 당성과 마산포에 얽힌 역사적 가치와 발굴현장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내게 인상적이었던 건 오랫동안 바다와 갯벌이었던 들판을 자전거 타고 달리는 것이었다.

'상상과 실제, 농담과 진담, 과거와 현재 사이의 경계를 미묘하게 넘나드는 개성적인 이야기꾼'이라는 평을 듣는 성석제 작가는 자전거 박물관이 있는 자전거 도시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현재는 경기도 안양에 살면서 주로 안양천과 수리산에서 자전거를 탄다고 한다.

시화호, 시화방조제가 생겨난 진짜 이유

시화방조제가 생기면서 바다에서 뭍으로 변한 화성시 송산면 앞바다.
 시화방조제가 생기면서 바다에서 뭍으로 변한 화성시 송산면 앞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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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화호(경기도 시흥 오이도~안산 대부도 약 12km)는 1987년 착공되었다가 많은 논란 끝에 1994년 완공되면서 만들어진 인공호수이다. 시화호란 이름은 당시 행정구역인 옛 시흥군과 화성군에서 각 앞 글자를 따온 것이다. 이후 경기도 시흥시 오이도부터 화성시 서신면까지 바다를 이어 붙여 거대한 호수와 간척지가 생겨났다.

1987년 6월 '동양 최대 간척 사업', '국토 확장의 꿈'이란 거창한 구호와 함께 건설을 시작했던 시화 방조제. 동행했던 화성시 문화재단 담당자에게 들은 시화호와 방조제 탄생 '비화'는 처음 들어본 조금은 놀라운 이야기였다.

1970년대 후반, 중동 건설 경기가 쇠퇴하면서 철수한 건설장비들을 활용할 방안이 마땅치 않았다. 기업들은 건설 경기가 국내에서 계속 이어지길 바랐고, 이런 요구는 정부의 공업단지 육성, 국토확장 개발 정책과 맞아 떨어졌다. 정부는 반월과 시화에 대규모 공업단지를 조성하고, 간척 농지도 만들었다.

공장과 농경지에 물을 공급하려면 큰 호수가 필요했다. 안산 지역은 큰 하천이 없어 공업용수를 공급하기가 어려웠다. 이런 필요에 의해 오이도와 대부도 사이의 너른 만(灣)을 둑으로 막아 저수조를 만들게 된다. 시화방조제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간척으로 뭍이 된 바다 위에서 쉬고 있는 성석제 작가.
 간척으로 뭍이 된 바다 위에서 쉬고 있는 성석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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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방조제가 완성된 후 3년이 지나자 사람들은 이런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뒤늦게 깨닫게 된다. 거대한 인공 호수의 수질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된 것이다. 콘크리트 방조제에 막힌 인공호수에 살던 수많은 생명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죽음의 호수'가 된 거다.

죽은 조개와 어류가 무덤처럼 쌓였고 악취가 진동했다. 1998년 정부는 마침내 담수를 포기하고 해수 유통을 재개해 물길을 트고 습지를 조성했다. 역시 불통은 물이나 사람에게나 모두 해로운 일이지 싶다.

이후 시화 방조제 안쪽에 다시 바다가 출렁이고, 화성 해안가엔 간척으로 너른 땅이 생겨났고 갈대숲이 끝없이 펼쳐진 낯선 풍경이 펼쳐지게 됐다. 수많은 생명체를 죽이고 환경을 오염시키던 인공호수 덕분에 보기 드문 대자연의 초원 풍경이 생겨나다니... 시화호는 호수를 품은 땅의 아이러니와 여러모로 닮았다.

시화호 안에는 사람이 사는 섬이 3개 있었다. 어섬, 형도, 우음도로 모두 화성시 송산면 지역이다. 지금은 모두 간척지가 되어 이름만 남은 섬의 흔적을 찾아 더듬더듬 달려갔다.

육지가 된 화성의 유인도, 어섬·형도·우음도

곳곳에 핀 붉은 칠면초가 한때 이곳이 바닷가였음을 증언하고 있다.
 곳곳에 핀 붉은 칠면초가 한때 이곳이 바닷가였음을 증언하고 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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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오군란 후 청나라로 압송된 흥선대원군이 중국행 배를 탔던 마산포 (화성시 송산면 고포리)에 들어섰지만 이름처럼 포구였다는 사실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마진포 앞에 있는 어섬도 마찬가지. 어섬은 화성시 송산면의 작은 섬으로 물고기가 많아 그런 이름이 붙었단다.

섬 앞 갯벌이었을 곳에 갈대, 칠면초, 삘기(띠풀)가 융단처럼 깔린 들판엔 경비행기와 모터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경기도는 앞으로 안산 시화호와 화성 어섬 등을 민간레저항공 거점으로 적극 육성할 방침이란다.

갯벌에서 소금을 먹고 사는 일곱 번이나 몸 색깔이 변해서 이름 붙은 칠면초가 이곳이 갯벌이었음을 증언하듯 군데군데 들판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어섬에서 형도를 지나 공룡알 화석지가 있는 우음도까지, 화성의 해안은 갯벌과 바다였다가 육지로 변하고 있는 중이다. 작은 바위섬들은 뭍의 언덕이 됐다. 철새와 갈매기들이 내려 앉아 숨을 고르며 쉬었을 바위섬에서 자전거 여행자들이 쉬어갔다.

주변 방조제, 도로를 짓기 위해 채석장으로 변한 형도의 산.
 주변 방조제, 도로를 짓기 위해 채석장으로 변한 형도의 산.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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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만 년에 걸쳐서 일어나야 할 변화가 단 20년 만에 바뀌고 있다. 그래서일까 자전거 페달을 돌리면 돌릴수록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이 무척 생경했다. 흡사 태양계의 행성 가운데 하나로 영화에 자주 나오는 화성(火星) 어느 곳을 달리는 것 같았다.

사진 애호가들 사이엔 이국적인 풍광이라며 유명한 촬영지가 된 곳이지만, 형도에 있는 산 모습을 보면 시선은 애처로운 눈길로 바뀐다. 섬을 품은 든든한 산의 모습이 이상하게 어색하고 괴이했다. 자세히 보니 치명상을 입은 거인처럼 곳곳이 패이고 깎였다.

시화 방조제, 대송 방조제와 시설물, 도로 등을 짓기 위한 골재를 얻기 위해 산을 채석장으로 쓰고 있단다. 벌판 위 덩그러니 떠있는 바위섬들과 언제 골재로 파갈까 불안한 듯 웅크린 산들은 시화호 간척지의 황량함과 광막함을 더했다.

바다위에 떠있었을 바위섬, 뭍의 언덕이 됐다.
 바다위에 떠있었을 바위섬, 뭍의 언덕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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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한 갈대숲 위에 띄엄띄엄 홀로 서서 살아가는 나무들을 보니 "살아서는 그 나무에 가지 못하네, 그 나무 그늘에 앉아 평생 쉬지 못하네"로 시작하는 정호승 시인의 시 <슬픔의 나무>가 문득 생각났다. 어섬, 형도, 우음도에서 대대로 물고기를 잡으며 평화롭게 살다가 그만 쫓겨나고만 주민들의 얄궂은 운명이 떠올라서였는지도 모르겠다.  

끝없이 펼쳐진 갈대숲과 바람만이 지나다니는 이곳 송산면 해안은 바다에서 인공호수로 다시 초원의 들판 모습을 한 대자연이 됐지만, 다시 거대한 도시로 바뀔 예정이다. 송산그린시티라는 신도시를 짓는단다. 미국 네바다주 사막 한가운데 지은 도시 라스베이거스(Las Vegas)가 떠올랐다. 시간과 자연을 거스르는 인간의 힘은 참 대단하구나 싶었다. 그런 인간의 강력한 힘도 공룡 앞에서는 어쩔 수 없구나 싶은 곳을 만났다. 우음도 앞에 있는 공룡알 화석지(송산면 고정리)다.

신도시 개발에서 살아남은 초원의 들판, 공룡알 화석지.
 신도시 개발에서 살아남은 초원의 들판, 공룡알 화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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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9년 방조제가 생기고 바닷물이 빠지며 이 속에 잠겨있던 땅이 드러나면서 공룡알 화석이 나타났다. 바다이기 훨씬 더 전에 이 간척지는 본래 육지였던 셈이다. 2000년 3월 국가지정문화재인 천연기념물(제414호)로 지정되면서 공룡알 화석지 안의 너른 간척지는 어떤 개발사업도 할 수 없게 됐다.

공룡들이 낳은 알 덕택에 아파트와 고층빌딩이 빽빽하게 들어설 이 땅에서 갈대들이 춤추는 초원의 풍경을 볼 수 있게 됐다. 공룡알 화석지(031-357-3951)는 입장료가 없으며, 매주 화~일요일 문화관광해설사가 상주하며 안내를 해준다. 이곳에서 약 3km 거리에 송산면 지역의 시화호가 한 눈에 보이는 우음도 전망대(혹은 송산그린시티 전망대)가 있다.

덧붙이는 글 | * 문의 : 화성시청 문화관광과 (1577-4200, http://tour.hscity.go.kr)
제 블로그(sunnyk21.blog.me)에도 송고했습니다.



태그:#화성자전거여행, #시화호, #시화방조제, #어섬, #공룡알화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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