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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툴서당, 우리 집 이름이다. 내가 서예가로서 작품 창작을 하는 곳이고, 서예를 배우러 오는 사람, 한문을 배우러 오는 학생들이 찾는, 말 그대로 서당이다. 서예 동호인들 뿐만 아니라 대부분 나를 아는 사람들은 우리 집을 그냥 서당이라 부르는데, 내가 사는 곳 지명이 센툴(Setul)이어서 센툴서당으로 불린다.

사실 서당이란 말은 케케묵은 느낌이 없지 않다. 그래서 한국에서 활동할 때는 사용할 엄두도 내지 않던 이름이다. 한국의 서예가 누구도 지금 이런 명칭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2003년 내가 자카르타에서 활동을 시작할 때 나와 내 일의 특성을 명쾌하게 드러낼 말을 찾다가 쓰게 된 것인데, 오히려 예스러운 맛이 있어 변함없이 쓰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집 개들은 그야말로 영락없는 '서당 개'가 되었다.

 붓을 물고 노는 꽃순이
 붓을 물고 노는 꽃순이
ⓒ 손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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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엔 쓰던 붓 한 자루 가지고 노는 것을 빼앗아 걸었는데 나중엔 쓰지도 않은 새붓을 끄집어 내려 제 것으로 삼았다.
 처음엔 쓰던 붓 한 자루 가지고 노는 것을 빼앗아 걸었는데 나중엔 쓰지도 않은 새붓을 끄집어 내려 제 것으로 삼았다.
ⓒ 손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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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평소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속담을 참 많이 쓴다. 평소 보고 듣는 것이 행동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를 암시하는 속담이다. 그런데 우리 집 강아지 한 마리가 딱 그 짝이다. 누가 서당 개 아니랄까 봐 늘 붓을 물고 놀며 서당 개 티를 낸다. 생후 5개월짜리 진돗개 꽃순이다.

꽃순이는 제 엄마가 네 번째 출산한 다섯 마리 중 하나다. 넷은 분양으로 떠나보내고 혼자만 제 엄마 아빠 곁에 남았다. 꽃순이가 붓 놀이를 즐기는 시간은 주로 저녁을 먹고 난 후다. 제 아빠 엄마 그맘때는 서당에 살면서도 시도하지 않던 붓 놀이다. 꽃순이의 붓 놀이를 보며 제 엄마 아빠도 붓을 놓고 다투기도 하는데 항상 붓 놀이는 꽃순이 차지다.

 서당 한쪽 구석의 붓 걸이
 서당 한쪽 구석의 붓 걸이
ⓒ 손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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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순이 붓 놀이에 쓸 수가 없게 된 붓 두 자루
 꽃순이 붓 놀이에 쓸 수가 없게 된 붓 두 자루
ⓒ 손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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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탁자 위 붓걸이에서 헌 붓을 내려 놀 때만 해도 호기심에 그렇겠지 하고 붓을 빼앗아 다시 붓걸이에 걸었다. 그런데 붓 놀이에 맛을 들인 꽃순이는 기회만 되면 호시탐탐 붓을 노렸다. 나중엔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새 붓을 골라 제 것으로 삼고 말았다.

값 좀 나가는 좋은 붓이니 아내에게 한바탕 훈시를 듣기도 했는데, 어쨌든 그 뒤로 붓 두 자루는 꽃순이 전용이 되고 말았다.

 아내는 먹이를 주면서 훈시를 한다. 그러나 얌전한 모습은 그때뿐
 아내는 먹이를 주면서 훈시를 한다. 그러나 얌전한 모습은 그때뿐
ⓒ 손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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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마을에 햇살이 퍼지는 아침이면 마을을 내려다보며 사색을 즐기는 꽃순이
 산마을에 햇살이 퍼지는 아침이면 마을을 내려다보며 사색을 즐기는 꽃순이
ⓒ 손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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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순이는 사색도 좋아한다. 아침을 먹고 나면 꼭 2층으로 올라와 테라스 난간에 앉아 녹음 우거진 산마을을 내려다보며 한참 동안 사색을 즐긴다. 때로 커피 한 잔 놓고 작품을 구상하는 나보다 훨씬 진지하다.

이 녀석은 주인의 전용 공간 이층을 마치 제 집 드나들 듯 하는데, 골프공 놀이나 하라고 굴려주면 한 번 물었다 놓고는 그냥 뒤돌아 탁자 밑으로 들어가 잠이나 청하고 만다.

 골프공 놀이에는 별 취미가 없는 꽃순이
 골프공 놀이에는 별 취미가 없는 꽃순이
ⓒ 손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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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색이 서당 개인데 골프공 놀이는 취향이 아니란 의미이겠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의 고사를 서당에서 태어나 서당에서 살아가는 강아지에게서 다시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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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가. 2015년 5월 인사동에서 산을 주재로 개인전을 열고 17번째 책 <山情無限> 발간. 2016, 대한민국서예대전 심사위원장 역임. 현재 자카르타 남쪽 보고르 산마을에 작은 서원을 일구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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