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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시 동양시멘트 공장 인근에 걸린 현수막
 삼척시 동양시멘트 공장 인근에 걸린 현수막
ⓒ 박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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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광장 뒤편에는 외딴 '섬'이 있다. 바로 동양시멘트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농성장이다. 그들은 지난해 8월부터 본사인 삼표그룹 건물 앞에서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다.

강원도 삼척시 시멘트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왜 400일이 넘게 서울 도심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을까. 최창동 동양시멘트 노조 지부장과 조합원들을 만나 그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동양시멘트 최창동 지부장
 동양시멘트 최창동 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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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막농성을 시작하게 된 이유와 과정이 궁금합니다.
최 지부장 : "저는 26년 전 동양시멘트 협력사에서 사무관리 업무를 맡아 일을 시작했죠. 하지만 IMF 시기에 회사가 없어져 시멘트공정 업무를 맡고 있는 하청업체 '두성'으로 직장을 옮겼습니다. 2006년에는 대형면허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다시 하청업체 '동일'로 발령이 났죠. 저를 포함한 6명이 회사를 옮기라는 강제지시를 받았습니다.

이때부터 원청의 횡포와 하청업체 비정규직에 대한 부당대우가 점점 심해졌습니다. 정규직에게 지시를 받고 원청 노동자와 거의 같은 일을 했지만 우리의 임금은 그들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밖에도 수많은 차별이 존재했습니다. 그래서 2014년 5월 12일 노동조합을 만들고, 6월 19일 고용노동부 태백지청에 불법파견 및 위장도급에 관한 진정을 냈습니다.

고용부는 지난해 2월 13일 동양시멘트와 하청업체 간의 '묵시적 근로계약'을 인정하고 사측에 '직접 고용'을 하라는 의견을 전달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가 나온 지 한 시간 만에 하청업체 '동일'과 도급계약을 해지하고 5일 뒤 '해고예고'를 통보했습니다. 15일 뒤 28일에는 일방적인 '해고'를 단행했습니다.

그 뒤로 사측은 강원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했습니다. 두 곳 모두 노동자 손을 들어주었고, 동양시멘트는 과징금을 냈습니다. 하지만 회사는 아직까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은 법원에서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 중이며 1심 판결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정부 기관도 무시하는 동양시멘트'

- 함께 투쟁하는 노조원들의 생활이 궁금합니다.
"일단 경제적 어려움이 가장 큽니다. 고용부 의견을 근거로 법원이 '동양시멘트가 1인당 100만 원을 줘야 한다'라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 돈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 가정 생활비로는 턱 없이 부족합니다. 해고된 상태에서 회사와 장기간 투쟁을 이어나가는 게 쉽지 않습니다. 맞벌이 가정은 조금 덜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매우 어려운 상황입니다."

조합원 박호기
 조합원 박호기
ⓒ 박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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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히 상황이 어려운 조합원이 있나요.
"계속해서 혈액 투석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중환자실에 계시는 부모님을 모셔야 하는 경우도 여럿 있습니다. 그 밖에도 경제사정이 어려워 다른 일을 하는 인원도 많습니다. 대부분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 장기간 농성을 거치면서 가장 힘든 부분은 무엇인가요?
"시간이 지나다 보니 조금은 익숙해져서 특별히 힘든 점은 없습니다. 여름 더위와 겨울 추위도 지금은 그러려니 합니다. 힘든 것보다 빨리 사측과 협상을 해서 우리의 권리를 찾고 삶이 정상화되면 좋겠습니다."

- 현재 서울 상경농성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작년까지는 7개 조로 인원을 나누어 천막투쟁을 벌였습니다. 올해부터는 '3개 조'로 바뀌었습니다. 해고된 상태이므로 생계활동을 해야 하는 동지가 많습니다. 이외에도 건강 등 개인적인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있어 부득이하게 인원이 줄었습니다."

- 다가오는 12월 6일.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1심 판결 예정일입니다. 어떻게 전망하시나요.
"예상하기가 어렵습니다. 지금까지 사측은 '법의 판단을 받아와라'고 말했습니다. 1심 결과를 사측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사실상 대법원까지 갈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 시간 동안 회사는 노동자를 회유할 테죠. 시간이 길어질수록 투쟁 인원이 줄어들까 걱정입니다. 이렇게 오래 걸리는 과정은 자본가만 좋은 일 시켜주는 것 같습니다."

조합원 박동기
 조합원 박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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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인 어려움보다 무서운 시민들의 무관심'

- 거리농성을 진행하면서 시민들의 무관심을 많이 느끼셨을 것 같습니다.
"저도 이런 집회를 하는 게 처음입니다. 사람들이 무관심하다는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부당해고를 당한 이들이 거리에서 시위를 해도 다들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소외감을 느낍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더욱 부당함을 알리고자 합니다.

하지만 잘못한 기업보다 저희에게 '시끄럽다', '조용히 해 달라' 등의 말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안타깝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과 관계없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저 조차도 예전에는 그랬으니까요."

- 지역사회 반응은 어떤가요.
"저희를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삼척시장과 시의원들에게는 많이 실망했습니다. 그들은 고용노동부 의견에 함께 하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사측과 타협하라는 입장입니다."

동양시멘트 수석부지부장 김경래
 동양시멘트 수석부지부장 김경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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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일을 겪으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졌을 것 같습니다. 어떠하신가요.
"엄청난 변화가 있었죠. 솔직히 대한민국이 미웠습니다. 준사법기관인 노동위원회의 통보를 무시하는 기업이 버젓이 버티는 현실을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다른 사회적인 쟁점들을 보면서도 '자본가와 정부는 아예 한 통 속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 앞으로 사측과의 투쟁, 어떻게 보시나요?
"특별한 전략 변화는 없습니다. 일단 1심 판결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사측에 입장이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법의 판단에 따라 더 강하게 목소리를 낼 생각입니다."

- 파견과 도급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장치입니다. 없애야 합니다."

- 앞으로 상황 전망 어떻게 하시나요.
"우리는 이미 정부 기관의 판단을 받았습니다. 그것을 근거로 끝까지 싸울 생각입니다. 어찌 보면 저희 판결이 위장도급 정규직화에 관한 최초가 될 것 같습니다. 좋은 결과가 나오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같은 노동자들이 조금 더 나은 환경에서 근무하기를 희망합니다. 물론 우리 노조원들도 정규직이 되어 하루 빨리 가정으로 돌아가기 바랍니다."

사측의 횡포를 모두 담기는 어려웠다. 너무 많아서다. 끝이 없다. 향토기업이라는 특성상, 지역사회와 유착이 의심되는 정황도 있다. 노조원들이 상대하기에 동양시멘트는 너무 거대한 조직이다. 그들이 더 이상 외딴 '섬'이 되지 않도록 정부와 언론의 진정한 관심과 대책이 절실하다.

곧 겨울이다. 가혹한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칼바람은 그들의 몸과 마음을 또 얼마나 지치게 만들까. 차가운 도로 위에서 농성을 이어갈 그들의 모습을 상상하면 벌써부터 마음이 편치 않다. 다만 12월 6일, 그 섬에서 나갈 수 있는 순풍이 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기대해본다.


태그:#동양시멘트, #하청노동자, #삼표, #비정규직, #갑의 횡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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