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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는 시대의 흐름을 반영합니다. 대중들이 원하는 삶이 어떤 삶인지 들여다보기 원한다면 천만 관객을 불러들이는 영화의 메시지가 무엇인지 곱씹어보고, 대중 매체를 휘감는 유행가의 가사를 되새겨보면 됩니다.

<복면가왕> <히든 싱어> <신의 목소리> 등 대중음악프로그램이 넘쳐나는 것은 삶이 고달파 음악을 통해 위로 받고 싶은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음악이야말로 세계의 본질을 드러내는 것이며 음악 속에서 죽음이 극복되고, 디오니소스적 황홀경을 맛볼 수 있다고 여긴 철학자 니체의 생각이 맞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천만 영화 <변호인> <명량> <암살> 등에서 관객들이 느끼는 카타르시스는 지금 이 시대를 이끌어갈 리더의 부재가 만들어낸 아픔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도 지나가지 마!> 이자벨 미뇨스 마르틴스 글, 베르나르두 카르발류 그림/ 민찬기 역
 <아무도 지나가지 마!> 이자벨 미뇨스 마르틴스 글, 베르나르두 카르발류 그림/ 민찬기 역
ⓒ 그림책 공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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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는 지금 약자의 편에서 그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함께 할 리더를 필요로 하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민중의 힘을 실어주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그림책 <아무도 지나가지마!>는 제목에서 느껴지는 그대로 권력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명령하는 자'의 독재성이 고스란히 드러난 이야기이지요.

"내 말을 명심해라. 이제부터 너는 꼼짝 말고 아무도 못 지나가게 지켜!"


말을 탄 장군 알칸자르는 어처구니없게도 그림책의 오른쪽 면으로 모든 등장인물이 지나가지 못하게 합니다. 이유는 그저 자신이 언제든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비워두라는 것이지요. 애, 어른 할 것 없이 그림책의 등장인물 62명은 이 말도 안 되는 명령에 어쩔 줄 몰라 하며 그림책 왼쪽 면에만 복닥복닥 모여 있습니다.

금발머리 아가씨는 중요한 약속이 있어 가야 하고, 빨간 모자는 심부름을 가야 하고, 탈옥수들은 도망을 가야 합니다. 외계인은 교신을 하러 가야 하는데 장군의 명령을 받은 군인 구아르다는 사람들을 막아설 수밖에 없지요.

구아르다도 사람들도 어쩔 줄 몰라하던 그 순간 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공이 그림책 오른쪽 면으로 '통, 통, 통' 튕겨나가고 사람들의 시선은 공으로 쏠립니다. '구아르다'는 결단을 해야 합니다. 장군의 말을 들을지, 아니면 사람들의 안타까운 사정들을 들을지.

민주주의는 이 순간에 시작됩니다. '구아르다'는 사람들을 보내기로 결심합니다. 드디어 하얗게 비었던 그림책 오른쪽 면이 채워집니다.

그때 알칸자르 장군이 군대를 이끌고 다시 등장 하지요. "아무도 지나가지 못하게 하랬잖아! 저 녀석부터 당장 잡아!"소리를 지르면서요.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알칸자르의 고함은 통하지 않습니다. 아이들과 모든 사람들이 "누구 맘대로!" 하고 맞대응합니다. 그리고 모두 말합니다. "그는 우리의 영웅이야!" '구아르다'는 "나?" 하고 어리둥절해 하지만 성난 군중은 장군을 나쁜 사람, 악당이라 비난하며 '구아르다'를 보호합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이 책은 우리 모두의 것이야!"

명령에 따라 길을 막아선 군인 구아르다.
 명령에 따라 길을 막아선 군인 구아르다.
ⓒ 그림책 공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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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 알칸자르가 타고나온 '말'은 장군이 등장하는 첫 장면부터 화가 나 있습니다. 소리만 버럭버럭 지르고, 독재자인 주인이 못마땅한 것입니다. 그러다 결국 성난 군중들 앞에서 화를 내며 주인인 알칸자르를 떨어뜨려버리고 군중들 속으로 달려갑니다. 장군과 함께 온 군인들까지 모두 군중들 속으로 가버리고 장군은 혼자 남습니다. 휑하니 비어버린 그림책 공간에서 혼자 소리를 지르지요.

"나는 이제 여기를 떠나겠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도대체 누구란 말이냐?"

이야기의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우리의 영웅은 누구일까요? 장군의 명령을 어기고 사람들의 편에선 군인 '구아르다'일까요? 아니면 장군을 떨어뜨려버린 '성난 말'일까요?

진정한 영웅은 바로 이들 모두가 함께 하는 '민중'들인 것입니다. 강력한 권력의 힘에 굴하지 않고 자유과 권리, 정의를 찾아 민주 사회를 이루려는 '민중'들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영웅입니다. 4월 13일, 자유와 권리를 찾아 나의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는 우리 모두는 영웅입니다.


아무도 지나가지 마!

베르나르두 카르발류 그림, 이자벨 미뇨스 마르틴스 글, 그림책공작소(2016)


태그:#그림책, #아무도 지나가지 마, #그림책 공작소, #민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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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속 보물들을 찾아 헤매는 의미 탐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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