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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책을 쌓아놓을 곳이 없어 작은방 앉은뱅이 책상에도 책을 잔뜩 쌓아놨다. 어느 날 보니 위판이 휘어버렸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책을 들어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방 구석구석에도 책이 쌓여 있어 어디 쌓아 놓을 데가 없다. 침대가 문제다. 내 방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는 침대만 없으면 그곳에 책장을 들여놓고 깨끗하게 정리될 텐데, 저걸 어떻게 없앨까.

침대는 1998년에 이 집으로 이사오면서 산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침대에서 잠을 자 본 적이 없다. 아니, 딱 3일은 잠을 잤다. 그런데 따뜻하지도 않고 허리가 아팠다. 결국 침대와 장롱 사이 옆 좁은 방바닥에 이불을 깔고 자기 시작해 지금까지 지내고 있다. 그러니까 거의 20년 가까이 사용하지 않는 침대가 내 방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나는 가끔 아내와 침대 때문에 입씨름을 한다.

나는 얼마나 쓸모없는 물건을 껴안고 살았나

필요없는 침대가 반을 차지하고 있다.
▲ 내 방 필요없는 침대가 반을 차지하고 있다.
ⓒ 안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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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침대를 없애면 안 돼?"
"그 비싼 침대를 왜 없애?"
"쓰지도 않는 침대를 왜 평생 껴안고 사냐?"


요즘 나는 조금씩 버리고 살기로 마음먹었다. 얼마 전 지인이 책 정리를 한다고 해서 몇 권 얻을까 갔다가 그 집에 필요 없는 물건이 너무 많아 놀랐다. 걸지 않은 액자, 비디오테이프, 시디를 넣어 쓰는 오래된 카세트와 시디플레이어 같은 물건들이었다. 분리수거할 쓰레기 말고도 일반 쓰레기가 100리터 쓰레기봉투로 열댓 뭉치가 나왔다. 책도 너무 많았다. 기증할 책, 버리는 책 합쳐 1톤 정도를 버렸다. 그중 쓸 만한 책 50권 얻었다. 그 집 청소를 도와주면서 나 또한 그렇게 쓸모없는 물건들을 껴안고 사나 돌아봤다.

집에 와서 둘러보니 우리 집도 그 집 못지않았다. 작은 방을 보니 못 쓰는 컴퓨터와 프린터가 있다. 서랍을 보니 평생 한 번도 쓰지 않을 물건들이 너무 많았다. 볼펜이 한 30개, 아들이 썼던 물감통과 붓들, 화소가 딸려 쓰지 못하는 디지털 카메라들, 컴퓨터를 연결하는 선들, 멈춰 있는 시계들이 있었다. 아내 물건도 많았다. 심지어는 누가 택배를 보낼 때 포장한 스티로폼 박스도 몇 달 동안 그대로 있었다.

모두 분리수거하고 버릴 건 버렸다. 선물을 포장했던 빈 박스들과 종이 손가방, 아내 동네 언니들이 준 옷들, 세탁소에서 옷을 가져올 때 씌운 비닐도 버렸다. 며칠 뒤 아내는 그 포장 박스들을 왜 버렸냐고 타박했다. 아내는 말했다.

"당신 책이나 좀 버려. 다 본 책하고 안 보는 책들은 왜 갖고 있어?"

내가 생각하기에도 책이 많다. 하지만 책은 내게 살아가는 길을 알려주는 길잡이이다. 책을 보면서 이 세상을 배웠고, 올바로 살아가는 법을 깨닫게 됐다. 책을 좋아하게 된 뒤로 나는 보는 것보다 사는 게 더 빠를 정도로 사들였다. 볼만한 신간이 나오면 혹시 나중에 잊어버릴까봐 무조건 사 뒀다. 가끔 헌책방도 들러 헌책도 무더기로 사 왔다. 책장이 여덟 개 정도 되지만 꽉 차서 거실과 부엌 여기 저기 쌓여 있다.

대체 아내는 왜 침대를 버리지 못하는 걸까

침대 위에 책을 쌓아 놓으면 이렇게 자리가 난다.
▲ 내 방 침대 위에 책을 쌓아 놓으면 이렇게 자리가 난다.
ⓒ 안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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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이 책들을 버리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 집은 지인의 집보다 넓다. 침대를 없애고 책장을 들여놓고 책을 꽂으면 정리가 된다. 그런데 아내는 왜 그 침대를 버리지 못하게 할까? 침대 위에 책을 막 쌓아 놓으면 아내가 혹시 침대를 없앤다고 하지 않을까? 하루는 아내가 외출한 사이 앉은뱅이 책상 위에 있던 책을 침대 위에다 쌓아놨다. 침대 한쪽이 푹 꺼지고 침대를 밟으면 책이 흔들흔들거린다. 그래도 찾을 책이 눈에 띄어 좋다.

그런데 그 다음날 침대 위에 있던 책들이 다 없어졌다. 어디다 치워 놨나 봤더니 방 구석구석에 쌓아놓고 거실에도 내놨다. 없어진 책들도 있어서 한참을 뒤졌다. 헉, 고개를 숙여 침대 밑을 보니 거기에도 잔뜩 쌓여 있다. 아내는 침대 위에 책이 있는 꼴을 보지 못한다. 집에 누가 한 번도 찾아오지 않은데 그 침대 위엔 베개 말고 다른 게 올려 있으면 안 된다. 심지어 기타도 침대에 올려놓으면 안 된다. 아내가 침대를 그렇게 아끼는 까닭을 이해 못하겠다.

무소유를 실천했던 법정스님은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책도 불필요한 '물질'일까? 아니다. 난 해탈한 스님이 아니다. 책이 필요한 속물이다. 그런데 저 침대는 아니다. 기필코 없애야 한다. 저 침대만 없으면 책장 세 개는 들여놓을 수 있다. 어떻게 없애지? 계속 책을 사들이고, 내 사무실에 있는 책까지 집에 가져다 놔야겠다. 그러면 아내가 침대를 없애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안건모 님은 '세상을 바꾸는 따뜻한 이야기' 월간 <작은책> 발행인입니다.



태그:#작은책, #생활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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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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