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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 전 대법관은 취임부터 엄청난 화제를 몰고 왔던 법조인의 한 사람이다.

고령의 남성들이 하던 대법관을 50도 안 된 사람이 한다는 것 자체가 보수적인 법조계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더 큰 충격은 김영란 전 대법관이 여성이었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김소영, 박보영 대법관이 대법원에 있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 여성 대법관은 상상하기 어려운 존재였다. 최초의 여성 대법관의 탄생은 단순한 인적 구성의 변화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취임 이후 김영란 전 대법관은 대법원의 독수리 5형제(김영란·박시환·김지형·이홍훈·전수안 대법관의 5명이 진보적 소수의견을 자주 낸 것을 빗댄 별명)의 일원이 되어 진보적인 의견을 냈다. 대법관 퇴임 이후에는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통칭 '김영란 법'을 제안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책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는 김영란 전 대법관이 대법관으로 있으면서 재판한 10건의 사건에 관해 쓴 책이다.

존엄사 논란부터 퇴직금 분할지급까지 10건의 판결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는 10건이다. 존엄사·주식회사·표현의 자유·종교의 자유·사립학교의 자율성·성전환자 성별정정·호주제 이후의 관습법·대규모 국책사업·출퇴근 재해·퇴직금 분할지급이라는 10가지 큰 주제에 그와 관련된 몇가지 사건들이 설명된다. 우선 과거 사건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 사실 관계를 설명하고, 1·2심 법원에서 어떤 판결을 거쳐서 대법원에 오르게 되었는지를 정리한다. 이후엔 대법원 판례, 김영란 전 대법관이 제시한 현직 시절의 의견과 지금 와서 다시 바라본 느낌이 나열되어 있다. 이 책에 나온 사건들은 사회적 논란이 컸었기 때문에 전원일치로 결론이 나지 않고 다수의견과 소수의견이 나뉘었던 경우가 많다. 김영란 전 대법관이 소수의견으로 판단한 부분이 꽤 되기 때문에 양 의견의 논조를 전부 살펴야 책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대법원 판례 자체가 국회의 법률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하급법원은 대법원에서 파기될 판결은 좀처럼 하지 않기 때문에 판례의 실제 영향력은 엄청나다. 이런 막대한 판례들을 다시 살피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다. 이 책에서 김영란 전 대법관은 자신이 참여했던 판례에 대해서 많은 평을 남겼다. 마지막 장 '퇴직금 분할지급' 사건에서 다수의견은 퇴직금을 분할해 월급과 함께 주는 약정은 근로기준법에 위배되는 것이며, 이미 근로자가 받은 퇴직금은 부당이득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김영란 전 대법관을 비롯한 소수의견은 다수의견의 결론에 따르면 회사는 손해가 하나도 없어 퇴직금 제도 자체가 유명무실해질 수도 있다며 날카롭게 비판한다.

김영란 전 대법관이 특히 대규모 환경 사업에 대해서 많은 의견을 남긴 것이 눈에 띈다. 새만금 사건에서 다수의견은 대규모 국책 사업이니 공익을 이유로 계속할 것을 명하여 그대로 판결이 났다. 그러나 김영란 전 대법관을 비롯한 소수의견은 새만금 부지는 본래 목적인 농지로 쓰이기 어려운 상황이며 민관합동조사단의 주장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들 것이라고 반박했다. 결국 다수의견에 따라 새만금 개발은 진행되었지만 농지로 쓰이긴 어렵게 되었다. 김영란 전 대법관은 농지로 쓰이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재판 당시에도 예측가능했었다고 크게 아쉬워한다.

판례의 '되새김' 그 판결은 꼭 그랬어야 했을까

이미 시간이 지나서 확정된 대법원 판례들이지만, 지금 와서 다시 되돌아 볼 의의는 충분하다. 워낙 굵직굵직하고 사회적 파장이 컸던 판례들이었기 때문에 역사적 의미를 곱씹는 것도 충분히 가치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 읽다보면 겨우 10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무려 10년이나 지났다는 것을 체감하게 하는 판례도 있다. 물론 그때는 꼭 그랬어야 했을까 하고 아쉬움을 느끼게 하는 판례도 있다. 김영란 전 대법관이 곱씹으며 생각한 바도 적혀 있어 음미할 만한 책이다.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 - 한국사회를 움직인 대법원 10대 논쟁

김영란 지음, 창비(2015)


태그:#김영란, #대법원, #판례, #판결, #새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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