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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보육을 놓고 엎치락뒤치락해 온 지난 3년 동안 한국 복지의 민낯은 여과 없이 드러났다. 2016년 새해에도 어김없이 대통령의 대표 공약인 '국가 책임 보육'을 둘러싸고 온 나라가 살얼음판이다.

정부와 시도교육청, 여당과 야당, 유치원과 어린이집까지.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이 무상보육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만3~5세 공통교육 '누리과정' 예산에 대한 책임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의 '고래 싸움'에 노심초사하는 사람들이 있다. 시설 이용을 포기하는 학부모와 아이들, 예산이 없어 임금도 받지 못하는 교사들, 지원이 중단되면서 존폐위기에 처한 어린이집 등으로 피해가 확산되고 있다.

대선 후보 시절 "아버지의 꿈은 복지국가였다"며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은 올해로 집권 4년 차를 맞는다. 보수 정당의 대통령 후보가 '무상 복지'를 전면에 내세워 당선된 것도 이례적인 데다, 준비 없는 복지에 대한 걱정도 컸다. 기존 우려대로 박 정부의 국정운영 전반은 '불통'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공약마저 후퇴하면서 거센 비판이 가해지고 있다.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는 '축소, 폐기'

그렇다면 박근혜 정부가 한국형 복지 모델로 내건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는 얼마나 실현되었고, 어떤 평가를 내릴 수 있나? 18대 대선공약, 인수위에서 채택한 국정과제 그리고 집권 3년간 실행과정을 비교해 보자. 박근혜 정부의 복지는 대선 공약보다 축소 혹은 아예 폐기되면서 '선별복지'와 '재정복지'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확실한 국가책임 보육'은 지켜지지 않으면서 '확실한 국가기피 보육'이 되었다. 대선공약은 만0~2세 영아와 만3~5세 유아 누리과정 보육비 및 교육비를 지원하겠다는 안이었다. 여기에는 인수위 국정과제에서 누리과정 지원비를 연차적으로 올려 올해 30만 원으로 현실화해 부모 부담을 줄이겠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영아 보육료 지원은 기존대로 보건복지부가 담당하고 있다. 누리과정은 지난해까지 연차적으로 지자체 교육청이 주관하는 지방교육 재정교부금으로 넘어와 지원하도록 설계되었다. 그러나 경기침체로 세수가 줄어들면서 교부금 여력도 바닥을 치면서 누리과정 예산은 지자체가 부담하게 되었다. 지난 3년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그리고 교육부와 교육청 간 다툼이 이어지는 가운데, 정부는 국가사업을 책임지기보다는 지자체와 교육청의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맞춤형 보육'은 그야말로 다양한 보육의 수요에 맞게 영아 돌봄서비스 확대와 기관 내 시간제 보육체계를 만들어가는 정책이다. 그러나 이 정책은 '재정 맞춤형' 보육시스템으로 바뀌어 올 하반기부터 시행될 계획이다. 전업맘과 직장맘 간 어린이집 사용시간을 차별화하고, 전업맘의 시설 이용지원비도 줄이는 안이다.

정부는 이용이 불편했던 직장맘의 수요를 중심으로 이용시간을 차등화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직장맘이 시설 이용이 어려운 이유는 노동시간 시간과 일치하지 않는 어린이집 보육시간, 장시간 노동을 감내할 만큼 대우받지 못하는 보육교사의 처우문제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는 근본 해결에 나서기보다는 무상보육을 후퇴시키고, 전업맘과 직장맘 간 다툼으로 정책을 재설계하고 있다.

한편 '초등 온종일 돌봄'은 '무늬만 온종일 돌봄'으로 불만을 사고 있다. 초등 온종일 돌봄 정책이 나왔을 때, 오후 10시까지 학교 돌봄이 아이들에게 인권적으로 맞는가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오후 10시까지 돌봄은커녕, 오후 돌봄도 원하는 모든 학부모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게다가 초3~6학년 고학년 돌봄을 시행하는 학교는 손에 꼽을 정도로 시작조차 제대로 되지 못했다.

저소득층이나 맞벌이를 위한 아동 돌봄도 학교 안에서 이뤄지지 않았다. 지역아동센터나 아동돌봄서비스 이용은 양적으로나 비용 면에서 제약이 크다. 이런 이유로 인해 학교 안에서의 돌봄 공약은 30~40대 부모들에게 환영을 받았으나, 지금은 거짓공약이 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에는 누리과정뿐 아니라 학교 돌봄교실도 교육청이 책임져야 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반발이 나오고 있다. 올해 교육부에서 초등 고학년 돌봄 계획을 발표했으나, 예산은 편성하지 않고 그 책임을 또 다시 교육청에 떠넘길 가능성이 크다.

고교 무상교육은 아예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많은 공약들이 계획대로 시행되지 않으면서 고교 무상교육은 자연스레 후순위로 밀려났다. 반면 성남시는 교육복지의 일환으로 중학교 신입생에게 무상교복을 지원하면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그간 학부모의 교육 부담이 컸던 교복비를 정상화하는 방안도 구상되었다. 성남시 내 인력과 자재로만 교복을 생산하고, 영세 생산자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 대기업이 독점하던 관행까지도 바로잡을 계획이다. 

소득하위 80%까지 반값등록금을 순차적으로 늘려가겠다던 약속은 현재 기초생활수급자와 소득 1~2분위 학생들에 등록금 일부를 지원하는 것에 그친 상태다(임희성·김삼호, "교육부 '반값등록금 완성' 광고, 그 진실은?", 대학교육연구소,  2016.1.20). 저소득 대학생의 등록금 부채는 줄어들지 않고 계속 늘고 있다고 한다. 근본적으로 대학에 유보금만 쌓아놓고 등록금에 의존하는 학교 운영을 개선하지 않고서는 반값등록금 현실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박근혜 정부는 4대 중증질환에 대해 급여 부분 뿐 아니라 비급여 부문에 대해서도 건강보험으로 해결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4대 중증 질환 건강보험 부담률과 환자 부담비율이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특히 비급여 부문이 계속 확대되고 있다. 이는 근본적으로 의료 공공성이 보장되지 못하고, 민영화가 가속화되면서 개인의 의료비 부담은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박근혜 정부는 실현가능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65세 어르신 모두에게 기초연금을 월 20만 원씩 지원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우면서 고령 유권자들의 득표를 받았다. 그러나 실제 전개과정에서 기초연금 20만 원은 소득하위 70%로 재조정되고, 국민연금과 연동되면서 오히려 성실한 국민연금 납부자를 소외시키는 정책으로 논란을 키웠다.

기초연금이 물가와 연동됨에 따라 그 인상폭도 더디게 진행돼 원래 의도했던 노인들의 소득보장정책에는 한참 못 미치고 있다. 한국은 생계를 감당하지 못하고 자살하는 노인 비율이 세계 최고이며, 노인 빈곤 속도도 가장 빠르다. 근본적으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현실화해 올리는 방안이나, 어르신들의 소득 구분 없이 보편적으로 기본소득을 보장하는 안 등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송파 세 모녀 사태'로 긴급지원 법안이 발의되기로 했으나, 우리 사회 저변에 기초생활보장 기준이 변경되지 않고 있다. 기초생활보장제 혜택 범위와 수준을 가로막고 있는 부양의무자 기준과 소득정산 기준 등이 바뀌어야 기초생활보장의 사각지대를 없앨 수 있으나 이 장벽은 여전히 높다.

자료: 제18대 대통령선거 새누리당 정책공약, "세상을 바꾸는 약속 책임있는 변화", 2012;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박근혜정부 국정과제", 2013.
▲ 표1. 박근혜정부 대선 복지공약과 집권 3년 평가 비교 자료: 제18대 대통령선거 새누리당 정책공약, "세상을 바꾸는 약속 책임있는 변화", 2012;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박근혜정부 국정과제",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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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과 분열'의 복지

복지는 한번 시행하면 다시 되돌리기 어렵고 이에 대한 저항도 크기 때문에 사전에 재정 준비나 합의과정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복지공약은 현실성 없는 선심성 공약이었음을 지난 3년간 국민 다수가 느끼고 있다. 공약 책임을 재정 탓으로 돌리거나, 개인의 부담이나 지방정부의 몫으로 떠넘기거나,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특히 영유아에 대한 지원은 미래세대를 키우는 투자로서 선진국에서는 아까워하지 않고 늘려가는 부분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에서는 3년 내내 복지 예산 책임 공방이 계속되었다. 영유아 관련 복지 사업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재정의 매칭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보니, 대통령이 공약했더라도 이에 합당한 국가 책임이 뒤따르지 않으면 지자체와 합의를 이뤄내기 어려운 것이다.

아무리 대통령이 공약한 것이라 하더라도 지자체 재정이 여의치 않으면 시행할 수가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지자체는 지방채를 발행하고, 정부는 우회지원으로 예산을 보조하는 방식이 계속되었다. 매해 반복되는 갈등을 멈추기 위해 근본 대안을 세우자는 논의를 수차례 이어왔으나, 정부는 공약을 지자체의 의무사업으로 규정하는 법을 바꾸면서 계속 지자체의 책임을 따지고 있다.

결국 사회 여러 주체들이 자원들을 모아 사회에 필요한 복지를 나눠 맡는 '협력과 연대'가 중요하다. 그러나 현 정부의 한국형 복지는 선별복지로, 복지 혜택에 따라 세대 간 그리고 세대 내 분열과 갈등만 남겼다. 대표적인 사례가 맞춤 보육으로 설계하면서 전업맘과 직장맘의 이용시간을 차별화해 편 가르기를 한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누리과정 지원을 둘러싸고 교육부 산하의 유치원과 보건복지부 관할의 어린이집 간 충돌을 야기했다.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을 연동하면서 국민연금 가입자와 미가입자 간 혜택 범위가 달라 첨예한 갈등을 만들었다. 누리과정 예산 때문에 다른 교육비를 편성하지 못하면서 정책 간 충돌이 일었다. 게다가 누리과정 예산은 편성한 지자체에 예비비를 먼저 주면서 지방자치를 후퇴시켰으며, 지자체 간 갈등도 불러왔다.

이처럼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는 생애 전반에 걸쳐 국민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기 보다는 삶의 퍽퍽함을 다시금 확인시켜주고 있다. 재정적인 제약 안에서 한국형 복지는 오히려 곳곳에 싸움의 불씨를 남기며 분열과 갈등을 만들기까지 했다.

나열식 사업 벗어나 근본 문제 대응해야

1997년 외환위기와 2007년 미국 발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한국 사회도 고실업과 노동유연화의 바람을 피해가지 못했다. 한국 사회에 불어 닥친 신자유주의의 폐해로 인해 기존의 협소한 복지제도 한계도 바닥을 드러냈다. 실업, 질병, 고령 이외에도 임금노동 밖의 사회 구성원이 급증했다. 일을 해도 가난한 '워킹푸어'까지 등장하면서 복지 사각지대 대응이 절실하다.

'한국이 어떤 복지국가로 발전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진행 중이다. 사회안전망이 탄탄한 북유럽의 사민주의 복지의 효과를 기대하며, 영미식 최소복지와 독일 등지에서의 근로와 연계된 복지의 경계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다. 정부와 시장, 시민이 협력해 제3의 영역으로 부상한 사회적경제를 통해 복지 생태계를 만들려는 실험들도 이어지고 있다.

이 모든 노력들은 한국 사회의 현재와 미래를 불투명하게 만드는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사회의 방향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 현재 한국은 소득 불평등이 매우 심각하다. 수출에 의존한 경제성장이 어렵다면, 내수를 통해 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소득이 부족하고, 가계부채는 쌓여가고, 부의 양극화로 인해 중산층이 무너지는 가운데 내수를 통한 경제성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로 인해 불평등의 재생산 위험이 커지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복지 재원을 근본적으로 마련하기 보다는 세입과 세출을 쥐어짜면서 사회 곳곳에 파열음을 내고 있다. 법인세 감면은 계속되면서 저소득자나 영세 자영업자들의 세금만 올리는 것으로는 방대한 복지를 실현할 수 없다.

한국형 복지는 돈을 쓰는 만큼 제 효과를 내지 못하는 근본 한계를 안고 있다. 고용과 복지 견인을 기대하는 사회서비스는 시장화됨으로써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지 못하고 있고, 의료민영화로 개인 의료비 부담은 계속 오를 수밖에 없다.

쉽게 해고할 수 있는 노동유연화와 저임금의 불안한 비정규직 일자리가 만연한 노동시장 이중화까지 사회 각계 각층에 만연한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그러지 않는 이상 공적 예산이 투입되더라도 국민에게 더 큰 혜택이 돌아가기 어려운 기현상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의 최정은 연구원입니다. 이 기사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http://saesayon.or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박근혜정부, #복지평가, #무상보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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