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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18일부터 23일까지 5박 6일간 2016 청소년 환경연수단이 오사카·교토 등 일본 간사이 지역에 환경연수를 다녀왔다. 문화유산으로 보는 한일 교류의 역사, 에콜로지센터와 기후변화, 우토로 마을과 한일관계, 원전제로 모임, COP21 모의 당사국 총회, 커뮤니티디자인과 모두농원 등 환경을 중심으로 역사와 문화까지 다양한 분야의 공부를 하고 왔다.

이번 2016청소년 해외환경연수는 대전충남녹색연합과 한국가스공사 충청지역본부가 주최하였으며, 오사카 시민네트워크, Studio-L, (사)디모스, KEB하나은행이 도움을 주었다. 환경연수단은 2015년 8월부터 11월까지 진행된 청소년 환경대상 수상자와 대학생 자원봉사자, 스태프, 통역 등 23명으로 구성되었다.

앞으로 청소년들이 바라본 한국과 일본의 환경, 역사, 문화에 대하여 연재를 할 계획이다.

2016 청소년 환경연수단은 1월 18일~23일, 5박 6일간의 환경 연수를 위해 일본으로 향했다. 첫째 날에는 '문화유산으로 보는 한일 교류 2000년의 역사'를 테마로 은각사(긴카쿠지), 도시샤 대학, 상국사를 거치며 한일 교류의 역사를 뒤쫓아 보았다.

윤동주, 한국 아닌 일본에서 만나다

청소년환경연수단이 교토 도시샤대학에 위치한 윤동주 시비를 찾았다.
▲ 윤동주시비를 찾은 청소년환경연수단 청소년환경연수단이 교토 도시샤대학에 위치한 윤동주 시비를 찾았다.
ⓒ 대전충남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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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청소년 환경연수단은 1월 18일 일본 교토의 도시샤 대학을 방문했다. 그곳에서는 가슴 아프지만 꼭 기억해야 할 역사를 만날 수 있었다. 도시샤 대학은 한국인이 사랑한 시인 윤동주와 정지용이 유학하던 학교로 그곳에는 그들을 기리는 윤동주 시비와 정지용 시비가 있다. 시비 앞에는 그들의 시를 사랑한 방문객들이 놓고 간 꽃, 시집, 소주 등의 추모 물품들이 수북했다.

1995년 평화와 자유에 대한 염원을 담아 윤동주를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그의 시비에는 그의 대표작 <서시>가 한글과 일본어로 표기되어 있다. 시인 윤동주는 한글로 시를 썼다는 이유로 민족운동으로 간주돼 사상범으로 체포되어 후쿠오카 감옥에 투옥되었으며, 1945년 2월 옥중에서 생을 마감했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에서 우리 민족의 얼을 한글 시로 표현해낸 윤동주와 정지용, 일본의 무차별적인 폭력과 지배에도 억압되지 않았던 그들의 굳센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조선통신사의 발자취 남은 상국사(相國寺)

일본 교토를 대표하는 사찰인 상국사(相國寺)는 통신사들이 남긴 
각종 시문과 서화 100여점을 보관하고 있다.
▲ 상국사 일본 교토를 대표하는 사찰인 상국사(相國寺)는 통신사들이 남긴 각종 시문과 서화 100여점을 보관하고 있다.
ⓒ 대전충남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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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청소년 환경연수단은 첫째 날 마지막 일정으로 상국사에 방문했다. 상국사에서 일본 연수의 첫 일정을 도와주신 하야카와 선생님을 통해 조선통신사와 상국사의 관계, 그에 따른 한일 관계의 역사에 대하여 설명을 들었다.

조선통신사는 한·일 양국의 평화를 위한 국가 사절단으로서 조선과 일본은 '통신(通信)' 이란 말처럼 신의를 나누었다. 1607년부터 1811년까지의 약 200여 년간 조선통신사는 일본을 12번에 걸쳐 방문하였다. 조선통신사는 오사카에서 요도가와 강을 거슬러 올라와 교토에 머물렀는데 이 때 통신사들이 머물던 곳이 상국사였다.

한국과 일본이 교류했던 것으로 알려진 것은 삼국시대의 백제부터다. 왕인 박사를 비롯한 도래인들은 한반도와 대륙의 문화를 일본으로 전파하여 일본의 아스카 문화와 나라 문화를 세우는 데 기초를 닦았다.

청소년 환경연수단은 조선통신사 왕래에 대하여 강의를 들었다.
▲ 조선통신사 왕래 청소년 환경연수단은 조선통신사 왕래에 대하여 강의를 들었다.
ⓒ 대전충남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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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일본과의 외교에서 교린(交隣) 정책을 유지하면서 계속되는 왜구의 침범으로 세종 때 쓰시마 섬을 정벌하기도 했다. 삼포를 개항하여 평화적인 무역 관계를 맺기도 했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1607년(선조 40년)에 통신사를 일본에 파견하면서 다시 교류를 시작했다.

양국은 17~18세기에 통신사를 통해 활발한 교류를 했으나, 20세기 이후에는 일본의 침략과 통치로 양국 간의 사이가 급격히 틀어진다. 1965년에는 대한민국과 일본 간의 정식 외교 관계가 수립되었으며 현재는 국가적 교류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한일교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앞으로의 한일교류는 민간 교류가 핵심

한일 청소년들이 함께 모여 핵 없는 세상에 대한 생각을 그림으로 그려 표현하고 있다.
▲ 한일 청소년교류회 한일 청소년들이 함께 모여 핵 없는 세상에 대한 생각을 그림으로 그려 표현하고 있다.
ⓒ 대전충남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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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23일, 2016 청소년 일본 환경연수단은 한일 청소년 교류회를 갖고 21세기의 통신사 역할을 했다.

이 날 양국의 청소년들은 지난 2011년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인한 엄청난 피해 이후 일본 청년들의 이야기와 한국과 대전지역의 에너지 문제를 공유하며 대체에너지에 대해 토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토의 내용을 그림, 표 등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시간도 가졌다. '환경'이라는 공통의 주제로 의견을 나누면서 교류를 하는 뜻 깊은 시간이었다.

이날 교류회에 참가한 홍근영(대전고 2) 학생은 "말은 잘 안통하지만 일본의 학생들과 금방 친해질 수 있었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평소에 일본인에 대해 안 좋게 생각했는데, 오늘 교류회를 하면서 일본인에 대해 편견을 가진 제 자신을 반성했다"라며 참가소감을 말했다.

이 날 교류회를 지켜본 오사카 시민네트워크 후지나가 노부요 대표는 "한국과 일본의 청소년들이 모여 환경과 관련한 토론을 하는 것을 보니 앞으로의 밝은 미래가 눈에 보인다. 앞으로는 국가가 아닌 개인들의 관계가 바람직한 한일관계를 만들 것이다"라고 말했다.

2016 청소년 환경연수를 주최한 대전충남녹색연합의 임종윤 간사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한일 교류의 핵심은 개인 교류"라고 말했다.

"최근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합의 때문에 양국 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고, 반한·반일 감정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청소년 환경연수단과 지난 과거를 반성하고, 평화와 탈핵 활동을 하는 일본 청소년들의 교류에서 악화되고 있는 한일관계를 풀 수 있는 작은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청소년 환경연수단은 첫날 한국과 일본 교류의 2000년 역사를 문화유산과 강의를 통해 배웠다. 한일 양국은 때로는 평화롭게 교류를 했고, 때로는 교류를 단절하기도 했고, 때로는 윤동주 시인의 경우처럼 서로에게 아픔을 주기도 했다.

과거의 교류는 국가 간의 교류 중심이었지만 앞으로는 개인과 개인의 교류가 중심이 될 것이다. 개인을 무시한 정부와 정부의 담합으로 위안부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지금, 국가 간의 담합이 아닌 개인과 개인의 의미 있는 교류가 앞으로 어떤 한일관계를 만들어 갈지 기대가 모아진다.


태그:#청소년환경연수, #대전충남녹색연합, #환경연수, #청소년교류회, #윤동주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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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충남녹색연합은 1997년도에 창립하여 대전 충남지역의 환경을 지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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