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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비리(Zubiri)에서 팜플로나(Pamplona)까지 20.5km를 걸어야 하는 날 아침, 또 비가 왔다. 까미노를 걷는 내내 만났다 헤어지기를 반복했던 '비님'이라 순례가 끝날 즈음에는 놀랍지도 않았지만, 순례 첫 3일 동안 계속해서 흐리고 비가 오다보니 처음에는 참 불편하고 난감했다.

하지만 부스럭대는 비옷의 불편함을 토로하며 수비리의 공립 알베르게(순례자 숙소)를 나서는 순간, 나의 불평은 쏙 들어갔다. 2인용 자전거에 짐까지 매달고 노란 비옷을 펄럭이며 자전거 순례 길에 나선 노부부를 만난 거다. 지금 나의 기분이 그들의 불편함이나 힘겨움만 할까 싶어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수비리 공립알베르게를 떠나면서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 2인용 자전거로 순례에 나선 노부부 수비리 공립알베르게를 떠나면서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 박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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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부는 우리의 "부엔 까미노(Buen Camino, 좋은 길 되세요)" 인사에, 밝은 표정으로
"그라시아스(Gracias, 감사합니다)"라 답하며 길을 떠났다.

사실 불편하지 않으려면 길을 나서면 안 된다. '집 떠나면 고생이다'란 말은 맞고, 그 고생을 사서 할 만큼의 무언가가 있을 때 길을 떠나야 하는 것이며, 그렇게 떠난 길이라면 그 길에서 무얼 보든 무얼 만나든 후회란 없어야 한다. 고생도 실수도 번복도 번뇌도 그 길이 나에게 남긴 '무엇'이기 때문이다. 평생 잊지 못할 무엇.

수비리를 빠져나오는 길은 그리 아름답지 않다. 수비리가 인근 공장지대 때문에 생긴 마을이란 설명도 있는데, 그 공장지대가 끝나는 곳까지는 참 매력 없는 길이다.

인근 공장지대 때문에 생긴 마을이라 볼품이 없다는데, 지나와 보니 풍경과 어우러져 멋져 보인다.
▲ 멀리 보이는 수비리 마을 인근 공장지대 때문에 생긴 마을이라 볼품이 없다는데, 지나와 보니 풍경과 어우러져 멋져 보인다.
ⓒ 박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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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람 마음이, 사람 눈이, 참 신기하다. 가까이 있으면 지긋지긋하던 사람도 멀리 떨어져 있으면 왠지 애틋해지고 그리운 마음이 생기는 것처럼, 수비리란 마을도 가까이서 볼 때는 별 특색도 없는 현대식 건물들에다 삭막하고 참 볼품 없다 싶었는데 멀리 떠나와서 내려다 보니 산자락과 어우러져 아름답게만 보인다.

수비리 외곽의 긴 공장지대를 지나고 좁은 돌길을 따라 걷다 보면, 정말 '손바닥 만하다'는 말이 어울릴 작고 아름다운 마을, 이라야츠(Ilarratz)에 다다른다.

로망과는 다를 때가 훨씬 많은 산티아고길

손바닥만한 마을이란 말이 딱 맞을 정도로 작지만 예쁜 마을이다.
▲ 이라야츠 마을 손바닥만한 마을이란 말이 딱 맞을 정도로 작지만 예쁜 마을이다.
ⓒ 박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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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터 오른쪽에는 1917년에 만들어진 식수대가 있다.
▲ 이라야츠 마을의 식수대와 쉼터 쉼터 오른쪽에는 1917년에 만들어진 식수대가 있다.
ⓒ 박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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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야츠 마을엔 1917년에 만들어진 식수대가 있고, 그 옆으로는 비가 오면 비를 피하고 해가 나면 해도 피할 수 있는 널찍한 쉼터가 있다. 그러니 이곳에선 물도 마시고 물통에 물도 채우고 다른 순례자들과 인사 나누며 쉬어가면 딱 좋다.

길을 다 걷고 난 후에 쓰는 이 글이 진실이 아닐까 싶어 때론 걱정되는 게 사실이다. 그리고 앞으로 계속 쓰게 될 이야기지만, 현대를 사는 다수의 이들에게 로망이 된 이 산티아고 길은 실제 걷게 되면 그 로망과는 다를 때가 훨씬 많은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걱정도 현실도 어쩌지 못하는 명백한 진실 하나가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 위에 서면 나와는 다른 모습, 다른 이야기를 지닌 수많은 나의 사람들이 마치 동지처럼 나와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다는 것.

이라야츠 마을에서 같이 물을 마시며 쉬었던 순례자들이 나와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다.
 이라야츠 마을에서 같이 물을 마시며 쉬었던 순례자들이 나와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다.
ⓒ 박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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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비리에서 5.5km를 걸어 라라소아냐(Larrasoana)에 도착했다. 라라소아냐는 카미노의 발전과 함께 생겨나서 중세시대 순례자들에게 병원과 숙소를 제공했던 마을이다. 그런데 당시엔 순례자가 많이 들르는 만큼, 도둑들도 많았던 모양이다.

라라소야냐로 들어가는 '시글로 14세의 다리(Puente del Siglo XIV)'에는 중세풍의 아름다운 자태와는 다른 섬뜩한 별명이 붙어 있는데, 바로 '도둑들의 다리'다. 중세시대 때 라라소아냐를 지나치는 순례자들의 돈을 노리는 도둑과 강도들이 이 다리 근처에 숨어서 순례자를 기다렸기 때문이라는데, 지금은 도둑들은 사라지고 아름다운 풍경만이 순례자를 기다린다.

일명 '도둑들의 다리', 중세시대 때 라라소아냐를 지나치는 순례자들의 돈과 목숨을 노리는 도둑과 강도들이 이 다리 근처에 숨어서 순례자를 기다렸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 라라소야냐 마을로 이어져 있는 시글로 14세의 다리(Puente del Siglo XIV) 일명 '도둑들의 다리', 중세시대 때 라라소아냐를 지나치는 순례자들의 돈과 목숨을 노리는 도둑과 강도들이 이 다리 근처에 숨어서 순례자를 기다렸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 박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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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도 먹지 못한 채 5.5km를 걸은 우리 부부는 라라소아냐에서 아침을 먹고 싶었지만, 시간이 너무 이른 탓에 문을 연 레스토랑이나 바가 없었다. 하지만 순례자들에게 친절하기로 소문난 라라소아냐가 아니던가.

라라소아냐의 알베르게 앞에는 친절하게도 샌드위치 자판기와 커피 자판기, 음료 자판기가 있었다. 그냥 식빵 사이에 치즈와 햄이 한 장씩 들어있는 소박한 샌드위치였지만 아침 요기를 하기에 충분했고, 가격도 쌌다.

우리는 자판기에서 뽑은 소박한 아침 식사를 들고 그 어느 멋진 레스토랑에 뒤지지 않을 마을의 명당자리에 앉아 아침을 먹었다. 우리가 멋진 나무 아래 명당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건 모두 한국에서 가져간 '1인용 소풍 매트'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자리가 어느 순례자나 탐낼 만큼 멋지고 좋았지만 아침 이슬 때문에 의자가 축축하게 젖어 있었으니 깔개가 있는 자만이 라라소아냐의 명당을 차지할 수 있었다고나 할까.

산티아고 순례 계획이 있다면 정말 1인용 매트(유치원 아이들 소풍용. 우리는 직접 운영하던 가게에서 팔고 남은 것을 가져갔다)를 강력 추천한다. 접으면 부피가 손바닥 만해지고, 비닐 재질이라 무게도 부담 없다. 우리 부부의 '깔개'를 다들 얼마나 부러워하던지. 흙바닥에 깔개를 깔고 앉아서 쉬노라면, 지나가던 각국의 순례자들이 엄지손가락을 들어줬다.

순례자들이 모두 탐낸 아이템 '1인용 소풍 매트'

우리 부부는 라라소아냐의 명당자리에 '1인용 소풍 매트'를 깔고 아침을 먹었다.
 우리 부부는 라라소아냐의 명당자리에 '1인용 소풍 매트'를 깔고 아침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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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소아냐에서 아침을 먹고, 충분히 휴식하고, 마을의 작은 기도소에서 하루의 안녕을 비는 기도도 드리고, 다시 중세의 다리를 건너 길을 떠나려는데, 반가운 목소리가 들린다.

"하이(Hi)~ 바이블(Bible, 나) & 휘(Hwi, 남편)~~"

칼린이다. 생 장 피드 포르에서 순례를 시작하는 날 아침 오리송 루트가 폐쇄됐다는 걸 알려줬고, 론세스바예스에 도착하기 전 깔딱 고개 아래서 같이 휴식했고, 어제 수비리의 공립 알베르게에서 찬물로 샤워한 후 덜덜 떨면서 만났던 그 칼린이다.

밝은 표정으로 순례 내내 많은 도움을 줬는데, 이 당시 투병중이었다는 사실을 이후에 알게 됐다.
▲ 미국인 순례자 칼린과 함께 밝은 표정으로 순례 내내 많은 도움을 줬는데, 이 당시 투병중이었다는 사실을 이후에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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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뒤 그녀의 SNS를 통해서 알게 됐는데, 그녀는 카미노를 걷던 이때 림프암 판정을 받고 투병 중이었다고 한다. 미국으로 돌아간 뒤 갑자기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가고 한참 동안 병원신세를 졌다고 하는데, 그때 남긴 글에서 그녀는 암을 배척하지 않고 암과 '함께 춤을 추겠다'며 웃었다.

그녀의 그런 밝고 긍정적인 성격이 함께 찍은 사진 한 장에 다 담겨있는 듯하다. 칼린의 쾌유를 빈다, 진정.

카미노를 걸으면서는 참 많은 배려를 만난다. 성 야고보 동상과 가리비 조각을 순례길을 향해 세워둔 어느 가정집 앞마당에서 순례자의 안녕을 비는 스페인 사람들의 고마운 마음을 만나고, 산길 옆 벌목 현장에 놓여있는 통나무 의자에선 순례자들 잠시 쉬어 가라는 어느 노동자의 투박한 인정을 만난다.

같이 카미노를 걷는 순례자들의 인정도 넘친다. 순례 첫 날부터 순례 끝 날 산티아고를 떠나는 공항에서까지 만난 오스트리아 순례자(아래 사진 백발의 커트머리)와 그녀의 친구 미국 순례자(아래 사진 핑크 모자)는 수비리에서 팜플로나로 가는 동안 만날 때마다 우리 부부를 챙겼다.

우리 부부를 만날 때마다 챙겨줬던 고마운 두 여성 순례자.
 우리 부부를 만날 때마다 챙겨줬던 고마운 두 여성 순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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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탕이나 견과류 같은 간식거리도 나눠주고, 우리 부부가 무거운 배낭에 카메라까지 메고 걷는데도 등산 스틱이 없이 걷는 걸 안쓰럽게 여겨 스틱을 빌려주며 사용법까지 시연해줬다. 그리고 스틱이 있으면 체력소모가 훨씬 덜하다고, 팜플로나 같은 큰 도시에선 스틱을 살 수 있을 테니 마을에 도착하면 꼭 사라고 당부에 당부를 했다.

사실 우리도 다 아는 내용이었다. 한국에서부터 등산 스틱을 가져갈까 말까 많은 고민을 했지만, DSLR 카메라에 캠코더까지 메고 간 우리에겐 스틱이 오히려 짐이 된다고 여겨서 일부러 가져가지 않은 거였다. 하지만 그녀들의 걱정이 고마워, 우린 꼭 그러겠노라 웃으며 다짐해 보였다.

오락가락하는 비 때문에 우비를 입었다 벗었다 반복하며 이로츠(Irotz)에 도착했다. 수비리에서 12km를 걸어왔다는 의미다. 이로츠는 19세기까지 인근에서 가장 번화한 마을이었다고 하는데, 오늘날에는 '명상하기 좋은 고요함'이 있다고 책에 표현돼 있듯 번화함과 혼잡함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다 보면 순례를 하다 숨진 이들의 묘를 자주 만나게 된다.
▲ 이로츠 마을에서 팜플로나를 향해 걷는 길 위 십자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다 보면 순례를 하다 숨진 이들의 묘를 자주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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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츠에서부터 팜플로나까지 가는 길은 두 갈래다. 약 12km에 이르는 푸르비알 산책길과 약 9km를 걷는 공식 카미노 길이 있다. 책을 보면, 푸르비알 산책길은 자전거와 도보 순례자를 위해 길이 잘 정비돼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길을 알려주는 노란 화살표를 찾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고 한다.

당시 우린 그렇게 길이 두 갈래인 줄도 몰랐다. 그냥 노란 화살표만 따라 걷다 보니, 두 길 중에서 사발디카 마을을 지나는 공식 카미노 길을 걷게 됐다. 얼마나 걸었을까. 남편이 아래 사진에 나오는 다리를 보더니, 드디어 오늘의 목적지인 '팜플로나에 입성한다'고 했다. 난 정말 그런 줄로만 알았다. 다 왔다니, 정말 기뻤다. 그런데 현실은 저 다리를 건넌 뒤에도 2시간은 넘게 걸어야 했다. '진짜' 팜플로나에 도착하기 까지.

여섯 개의 아치가 단아하고 예쁘며, 기원은 로마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 트리니닷 다리(Puente de la Trinidad) 여섯 개의 아치가 단아하고 예쁘며, 기원은 로마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 박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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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남편이 가리킨 다리는 팜플로나에서 4km나 떨어진 외곽 도시 트리니다드 데 아레(Trinidad de Arre)에 있는 트리니다드 다리(Puente de la Trinidad)였다. 남편이 '진짜' 팜플로나 입구에 있는 막달레나 다리와 헷갈렸던 것이다. 트리니다드 다리는 여섯 개의 아치가 단아하고 예쁘며 그 기원은 로마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하는데, 당시엔 그 아름다움이나 역사를 느끼기 보다는 목적지에 다 왔다는 기쁨에만 들떠 있었다.

다 왔나, 정말 다 왔나, 이번엔 진짜 다 왔겠지... 그러고서도 목적지가 보이지 않아 결국 길 옆 벤치에 짐을 내리고 한 번을 더 쉬어야 했다. 조가비로 벽면에 멋진 문장을 새겨 넣고 아름다운 꽃과 '청바지 화분'으로 독특하게 장식한 집도 구경하면서 한참을 걷고 나서야, 오늘의 목적지에 다다랐음을 알았다.

아까 그 다리가 아니라 바로 이 다리다!

팜플로나로 연결된 다리, 아르가 강 위에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다.
▲ 막달레나 다리(Puente de la Magdalena) 팜플로나로 연결된 다리, 아르가 강 위에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다.
ⓒ 박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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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3년 건설될 수말라카레기 문(Portal de Zumalacarregui) 안으로 발을 들여놓아야 진짜 팜플로나 입성이다.
▲ 오래된 성곽도시 팜플로나로 들어가는 길 1553년 건설될 수말라카레기 문(Portal de Zumalacarregui) 안으로 발을 들여놓아야 진짜 팜플로나 입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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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길을 팜플로나로 이어주는 다리는 막달레나 다리(Puente de la Magdalena)다. 아르가 강 위에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이 다리를 건너야, 진짜 오늘의 목적지 팜플로나(Pamplona)다.

팜플로나는 정말 '입성'이란 말이 어울린다. 이곳은 로마의 총독이었던 폼페이가 만들었다고 하는데, 5개의 요새가 별 모양으로 지어진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오래된 성곽 도시다. 막달레나 다리를 건너 수말라카레기 문(Portal de Zumalacarregui) 안으로 발을 들여놓아야, 팜플로나에 진짜 '들어간' 것이다.

1553년 건설됐다는 수말라카레기 문 안쪽, 16세기 적들의 침략을 꽁꽁 막아줬던 튼튼한 성벽 안쪽, 진짜 팜플로나는 어떤 모습일까.

우리 부부는 팜플로나에 입성하면서 결정했다. 내일 바로 이곳을 떠나지 않고, 하루를 더 이 성벽 안 도시에 머무르면서 팜플로나 순례를 하기로.



태그:#산티아고 순례, #카미노, #수비리, #팜플로나, #순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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