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뭄바이행 기차 안에서 다시 만난 스페인 여행자, 비리.
▲ 여행자 뭄바이행 기차 안에서 다시 만난 스페인 여행자, 비리.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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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그날은 혼자가 아니었다. 물론 그런 경험은 혼자가 아닌 것이 좋다. 그런 익사이팅한 경험을 혼자했다면 아쉬움에 주체를 못했을지도 모른다. 스페인의 '쿨녀' 비리와는 우다이푸르에서 만났다. 그녀의 첫 인상은 그렇게 친근하지만은 않았다. 호탕한 웃음을 갖고 있었지만 목소리가 너무 컸고, 모국어가 아닌 영어 탓인지 사람을 대할 때 '저건 좀 무례하지 않은가' 싶은 때도 있었다. 때문에 우리는 우다이푸르에서는 그리 끈끈한 관계가 아니었다.

그곳을 떠나는 기차역에서 우연히 다시 만났다. 얘기를 하다 보니 그녀 또한 고아(Goa)로 간다고 했다. 고아로 가기 위해선 뭄바이에서 갈아타야 하므로 그녀의 종착지도 뭄바이였다. 얘기를 하다 보니 그녀가 나와 동갑이라는 것, 싱글이라는 것, 뭄바이에서는 숙박하지 않고 바로 고아로 향하고 싶다는 것 등 공통점이 많았다.

같은 곳을 거쳤어도 사람마다의 반응이 다르듯 그녀는 나와 다르게 인도의 몇몇 곳을 거론하며 정말 지저분하고 별로였다며, 어서 빨리 바다가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고 조바심냈다. 함께 있는 시간이 허락된 만큼 우린 서로에 대해 친근해졌고 동행이 있는 것에 안도했다. 특히나 뭄바이에 도착해선 더더욱.

동행이란 상대의 매력을 발견하는 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뭄바이의 빅토리아기차역
▲ 뭄바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뭄바이의 빅토리아기차역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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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자마자 enquiry(안내소)라는 문구를 찾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기차역에는 enquiry라는 문구를 걸은 사무실이 있는데 이곳에서 표에 대한 문의를 할 수 있다.

기다란 줄의 문의가 모두 끝나고 나서야 우리 차례가 왔다. 뭄바이에서 밤을 보내지 않는 당일의 고아행은 큰 행운이 따라야 하는 일임을 나중에 깨닫게 되었다. 긴 시간의 기다림 뒤의 대답은 좌석이 모두 매진이며 그래도 꼭 가야 한다면 자유석은 특별히 사게 해주겠다는 것.

원래 외국인에게는 팔지 않는다는 그 표를 얻는다면 그날 저녁, 고아행 기차를 탈 수 있다. 처음 이용해보는 좌석이었다. 자리가 나면 앉고 아니면 대충 껴서 눈치껏 가야 하는 자리! 혼자가 아니니 더 용감해져서 우린 그날 저녁 떠나는 기차를 타기로 했다. 그 기차를 타기 위해서 전철을 타고 역을 이동해야 했다. 어느 정도의 기다림 후, 열차가 들어왔다.

사람이 몰리는 전철 칸
▲ 인도의 전철 사람이 몰리는 전철 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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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몰리는 전철 칸
▲ 인도의 전철 사람이 몰리는 전철 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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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를 보자마자 우리는 접근할 생각도 않은 채, 입을 벌리며 바라만 보고 있었다. 우리의 기를 확 꺾는 분란함이었다. 한국, 서울의 출근길 4호선 따위는 비교 자체를 할 수 없을 만큼의 내공이 필요했다. 비리와 나는 상의도 필요없이 조용히 바라보며 기차를 보냈다. 건장한 남자들 또한 자리를 비집다 못해 문에 매달렸다. 혹여 서커스라도 보는 기분이었다. 내 편견에 부합되는 인도의 모습이었다. 다행히 그 다음 열차에서는 여성칸을 발견했다.

뭄바이는 '볼리우드(Bollywood, 인도 영화 산업을 가리키는 말, 봄베이와 할리우드의 합성어)' 스타들의 도시다. 도시의 외관만 봐도 타 인도지역과는 확연히 차이를 보이는 세련됨과 고풍스러운 건물들, 항만기능을 가진 경제중심지로 성장하며 인도 특유의 문화가 잘 결합되어 있는 도시다. 우리가 거친 뭄바이의 철도역만 해도, 유네스코 지정 문화재였다. 어쩐지 고풍스러운 건물이 꽤 멋있다 했다. 비리와 뭄바이를 음미하며 느릿느릿 다녔다. 그리고 기차 시간이 왔다.

인도 전철의 여성칸
▲ 인도 전철 인도 전철의 여성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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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분위기를 닮은 카페.
▲ 뭄바이의 카페 도시의 분위기를 닮은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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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객들이 뒤엉킨 기차 안은 아비규환

우리 기차가 올 레인에는 딱 봐도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이 처음인 우리로는 어느 지점이 열차에 오를 수 있는가를 아는 것이 아주 중요했다. 고아까지는 밤새 달려 내일 정오에나 도착할 거였다. 자리를 확보해야 했다.

기차가 오기 전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까 낮에 한 대 보내버린 전철이, 신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워밍업이었다는 것을. 비리와 나 자신에게 몇 번이고 "잘 뛸 수 있지?"라고 묻듯이 다짐하며 좀 더 구체적인 방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입구를 아는 게 중요한데. 전혀 표시가 없으니 알 수가 없네? 비리! 보통은 입구 쪽에 화장실이 있잖아!"

급기야 우리는 킁킁대며 선로를 바라보았다. 그냥 안 볼 것을... 선로로 집중된 시야엔 온갖 통통한 쥐들이 보였다. 상쾌하지 못한 냄새들이 온몸에 달라붙는 느낌이었다. 결국에 우린 서로 눈길을 부딪히며 킥킥대고 웃는 것으로 철로에서 어느 지점이 화장실인가 알아내기 위한 노력을 멈췄다.

기차 안의 자리를 찾아 위로 올라간 사람들
▲ 짐 칸의 사람들 기차 안의 자리를 찾아 위로 올라간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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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소리가 들리며 기차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기차가 속도를 줄이자, 여전히 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자들은 입구로 뛰어올랐다. 따라하고 싶었지만, 배낭이 아니라도 몸뚱아리는 무거운 상태라 마음만이었다. 입구로 뛰어오르기 위해 승객들도 같이 달렸다. 이쪽으로 뛰어오는 사람들의 기에 눌려 두려웠지만, 밤새 자리를 얻지 못하고 서성일 것이 더 두려웠다.

그리고 마침내 인도에서의 최고의 경험이 밀려왔다. 열차에 탔으나 내가 오른 때는 이미 기차가 멈추었으므로 모든 전기도 꺼진 상태였다. 타는 승객들에 대한 배려 따위는 없는 모양이었다. 어두웠고 모든 사람들이 뒤엉켜 있었다.

내 발이지만 내 몸을 이끌 수 없는 상태였고 사람들과 겹쳐져서 열차 안은 아비규환이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에 의존해 자리를 찾았으나 여기저기 치이는 사람들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고, 행하는 자들도 의도치 않았을 낯선 터치가 달갑지 않았다. 살짝 치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크게 소리 질렀다.

"아아악~!"

그러면서 또 다른 이에게 떠밀려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어떤 남자가 자리에 앉아 옆자리까지 모두 맡아놓고 있었다. 기다리는 사람들이라도 있는 모양이었다. 의도치 않게 떠밀려 얼떨결에 자리에 앉았다. 소리를 지르며 떠밀려 앉은 내게 남자는 뭐라고 하진 못하고 슬며시 자리를 내주었다. 다만 내 뒤에 있던 사람들도 옳다구나 자리에 앉았기에 남자가 사람들에게 말했다.

"여기, 자리 있어요. 다른 데 가서 앉아요."
"자리가 있는 게 어딨어요. 이렇게 사람 많은 것 안 보여요? 이런 식으로 자리를 맡아놓는 게 말이 됩니까?"


자리를 맡고 있던 남자와 앉은 사람들의 실랑이는 짧았다. 멀지 않은 곳에서 남자의 가족이 그를 불렀기 때문이었다. 남자가 일어나고 비리가 왔다. 세 명 정원의 좌석이었으나 네 명 혹은 다섯 명도 앉았다.

그리고 잠시 후, 자리를 확보하지 못한 사람들은 제각기 공간확보에 여념이 없었다. 누군가 자신의 발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들의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머리 위의 짐칸에도 두 사람씩 앉았고(심지어 그들은 잠도 잤다!) 각 통로에도 사람들이 빼곡히 앉았다.

아, 이 경험을 하지 않았다면 편했을 것이나 진정한 인도의 삶을 엿보았다고는 말하지 못했을 터였다.

그리고 비리는 점차 그녀의 매력을 내게 노출하고 있었다. 한밤이 되자 너무 졸리다며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자신의 큰 자켓을 폈다. 사람들은 도발적인 그녀의 행동에 기꺼이 자신의 발을 오므려 주었고, 그녀는 그 발들 사이의 좁은 공간에 누워, 깊은 잠에 빠졌다. 대단했다. 그 냄새를 무시하고 거기서 눕다니...

아비규환을 함께 거쳐낸 사람들은 각각의 동지애를 발휘해 살뜰히 서로의 어깨를 내주며 잠들기도 하고, 음식을 건네기도 하며 점차 고아에 가까워졌다.

여느 인도와 분위기가 다른 고아의 해변.
▲ 고아 여느 인도와 분위기가 다른 고아의 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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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2013년 12월부터 2014년 2월에 걸친 인도의 종단여행을 바탕으로 합니다. 현지 장소의 표기는 현지에서 이용하는 발음을 기준으로 합니다.



태그:#인도여행, #뭄바이, #고아, #인도의 기차, #세계배낭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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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를 담은 사진에세이 [same same but Different]의 저자 박설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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