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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 탄 인도 신랑의 행차에 아줌마 가슴은 뛰고
 백마 탄 인도 신랑의 행차에 아줌마 가슴은 뛰고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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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여행 5일 차. 온갖 신들과 똥(?)들의 도시 바라나시를 떠나 뉴델리로 향했다. 솔직히 지난 5일간의 인도는 아프리카나 아시아 저개발국과 다르지 않았다. 수학을 잘하는 나라 인도, IT산업 강국, 놀라운 경제 성장력, 조만간 중국을 제칠 것 등의 뉴스를 심심치 않게 접했던 나로서는 여러모로 낙후된 인도의 환경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뉴델리로 향하는 마음은 기대에 차 있었다. 델리도 아니고 '뉴'~델리인데. 적어도 인도의 서울인데… 호텔도 좋고 거리도 깨끗할 거야. 당연히 와이파이도 팡팡 터지고… 틀림없이 신세계가 나타날 거야. 그럴 거야. 아니 꼭 그래야 해….

기대는 여지없이 빗나갔다. 아주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캘커타나 바라나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도로는 여전히 막혔고 자동차들은 무지막지한 소음과 매연을 내뿜었으며 도로 사이로 소와 말 심지어 돼지들까지 사람들과 함께 한덩어리가 돼 움직였다. 차가 막힐 때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구걸하는 사람들이 차창을 두드렸다.

누더기를 걸친 아이들, 간난 아기를 안은 엄마, 노인과 장애인 그리고 화려한 화장과 치장을 한 히즈라(불가촉천민중 하나, 마흐짜라마타 신을 섬기기 위해 거세한 남성들로 여장을 하고 여성처럼 행동하며 인도에서는 이들을 제3의 성으로 인정한다)까지…. 다양성의 나라라는 인도답게 거리를 누비는 걸인들마저 다양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고층빌딩과 최신식 호텔, 쇼핑몰들이 들어서 있는 거리에 그보다 더 많은 수의 노숙인들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다녀야 할 인도는 대부분 노숙인들의 천막이 차치하고 있었고 공원 근처나 역 근처, 고가차도나 육교 아래 심지어 하루종일 수많은 차량들이 오가는 4차선 도로의 중앙분리대 위에도 빈틈없이 사람들이 살고 있다. 어디든 천막하나 박스 하나 펼칠 땅만 있으면 그곳이 바로 그들의 집인 것이다.

걸인 뚫고 닿은 호텔, 수영장에서는 파티가...

인도 상류층의 호텔 결혼식
 인도 상류층의 호텔 결혼식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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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남의 농사지어서는 먹고 살 수 없으니 도시로 올라오는 겁니다. 차라리 도시에 와서 구걸을 하는 것이 수입이 좋거든요. 도시에 사는 걸인들이 명절이 되면 좋은 옷 입고 선물 사가지고 시골 고향에 갑니다. 금의환향이랄까…. 그걸 보고 다른 젊은이들도 도시로 올라오죠. 도시에는 점점 더 걸인이 늘어나고 시골엔 농사지을 사람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악순환이에요."

걸인과 노숙자 엄청난 교통 혼잡과 매연을 뚫고 호텔에 들어서니 신세계가 따로 없다. 화려한 조명과 멋진 인테리어, 깨끗한 공기 속에 은은히 풍겨오는 고급스러운 향수 냄새. 그런 장소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화려한 옷을 입은 여인들과 잘생긴 남성들이 여유 있는 표정으로 커피를 마시고, 담소를 나누고,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시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고 환상적이라 한동안 눈을 뗄 수 없을 정도였다.

호텔에 짐을 풀며 창밖을 내려다보니 수영장에서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아름다운 옷을 차려입은 남녀가 모여 춤을 추기도 하고 뷔페식으로 차려진 음식을 가져다 먹기도 한다. 한쪽에 선물이 잔뜩 쌓여 있는 걸 보니 잔치인 것 같은데 호텔 직원에게 물어보니 결혼식이란다. 본 예식은 오후 7시부터 열리지만 행사는 이렇게 온종일 계속되는 모양이었다.

창문에 얼굴을 붙이고 내려다 보니 신부로 보이는 젊고 예쁜 여인 주변에 많은 여인들이 모여 있다. 가지고 온 선물을 풀어 신부와 친지 앞에 펼쳐 보이는 사람, 신부의 팔에 순금으로 된 종모양의 장식을 걸어주는 사람, 지폐를 꺼내 신부 머리 위를 휘휘 둘러 건네는 사람…. 한국의 결혼식과는 사뭇 다른 모습에 일행들은 한동안 창문에 붙인 얼굴을 떼지 못했다. 

"부자들은 호텔을 통째로 빌려서 며칠씩 결혼식을 하기도 해요. 이 정도 호텔에서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1박 2일로 결혼식을 하려면 억 원대로 돈을 써야 할 텐데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네요.

인도에는 결혼 때문에 자살하는 여성들이 많아서 사회 문제가 되기도 해요. 여성들에게 엄청난 예단(지참금)을 요구하는 풍습 때문이죠. 지참금을 많이 가져오지 않으면 신랑집에서 무시하고 학대받고 그러다 자살을 하기도 하고, 지참금 마련이 어려워 자살하는 신부들도 있고요."

"인도인들은 인생의 70%를 길에서 소비해요"

결혼식은 하루 종일 열린다
 결혼식은 하루 종일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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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을 더 지켜보고 싶었지만 호텔에서 좀 떨어진 도심의 대형 쇼핑몰에서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기에 호텔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대형 쇼핑몰로 가는 길 역시 혼잡의 연속이었다. 어딜가나 막히는 길과 그때마다 나타나는 걸인들. 이럴 거면 차라리 호텔에서 열린 결혼식에 축의금을 내고 그들과 함께 저녁을 먹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진심 어린 농담이 오갔다. 다행히도 난과 탄두리치킨 그리고 케밥은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만큼 맛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먹고 돌아오기까지 4시간을 길에서 소비하다니….

"인도 사람은 인생의 70%를 길에서 소비해요. 이렇게 하루종일 길이 막히니 그럴 수밖에 없지요."

현지인 드라이버는 늘 그렇다는 듯 느긋했지만 성질 급한 한국 사람들은 차 안에서 막히는 길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다 아까 먹은 저녁식사가 체할 정도였다. 실제로 몇몇 일행은 멀미와 소화 불량 때문에 몸져눕기까지 했다.

저녁 식사를 하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은 퇴근시간까지 겹쳐 말 그대로 주차장이었다. 그러다 보니 불법 유턴과 역주행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난다. 수많은 차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울리는 경적 소리는 트라우마가 돼 잠자리에서까지 환청으로 들릴 정도였다.

크고 작은 사고가 빈번하지만 사람이 크게 다치지 않는 한 피해자가 가해자를 몇 대(사고의 크기에 따라) 때리는 것으로 합의를 마친다고 한다. 자동차보험 대신 체력 단련이 필수일 것 같다. 지루해질 때쯤 일행 중 한 사람이 퀴즈를 낸다. 

"자동차에 클랙슨과 브레이크가 모두 고장 났어요. 그런데 돈이 없어서 하나밖에 못 고쳐요. 인도 사람이라면 뭘 고칠까?"

우리는 생각할 것도 없이 입을 모아 외쳤다.

"클랙슨!!!"

지옥 같은 교통혼잡을 뚫고 호텔 맞은편 도로에 다다른 순간 다시 차들이 멈춰 섰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휘황찬란한 조명과 요란한 악기 소리가 도로를 막고 있다.

"신랑 행렬 때문에 차가 막혀요. 신부가 있는 호텔로 신랑이 마차를 타고 들어가는 거예요. 인도의 결혼은 이스라엘의 결혼 풍습과 비슷해요. 한국도 옛날에는 그랬지요. 신랑이 말을 타고 신부집으로 가서 며칠 동안 잔치를 한 후에 신부를 데리고 가지요."

낮에 보았던 결혼식이 파티는 그 시간까지 계속되고 있었고 신랑의 행렬은 바야흐로 호텔 옆 도로에 다가서는 중이었다. 어디서부터 저런 대열로 오고 있었던 것인지 모르지만 꽉 막힌 도로의 한 차선을 넘게 차지하며 혼잡을 가중시키는 신랑의 행렬을 향해 뭐라는 사람은 없었다.

백마 탄 남성의 미소에 나도 모르게... "오빠 멋져!"

화려한 결혼식 뒤엔 안쓰러운 소년들의 땀이 있었다
 화려한 결혼식 뒤엔 안쓰러운 소년들의 땀이 있었다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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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신만고(?) 끝에 호텔에 도착 로비에 들어서니 인도 전통 복장을 한 남녀들이 가득하다. 금색실로 수 놓인 옷들과 화려한 장식품으로 치장한 하객들이 축하연을 하면서 신랑을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객실로 올라가 창밖을 내려다 보니 호텔로 들어올 때 길가에 있던 신랑의 행렬이 호텔 담 옆까지 와 있다. 요란한 관악기와 타악기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춤을 추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행렬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좋은 기회. 신랑의 행렬을 보기 위해 호텔 밖으로 나가보았다.

신랑의 행렬 주변은 대낮처럼 밝았다. 사람 키만한 조명을 어깨에 얹은 사람들이 신랑의 마차 주변을 환하게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조명이 길을 밝힌 가운데 요란한 음악이 연주되고 그 음악에 맞춰 친척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흥겹게 춤을 춘다.

그들 사이에 지폐를 뿌리며 흥을 돋우는 사람은 신부의 친척으로 보이는데 신랑 측과 '밀당'을 하는 것이 우리의 함 파는 모습과 비슷하다. 마차 앞에서 격렬하게 춤을 추고 돈을 뿌리고 나면 몇 걸음을 이동하고, 그렇게 하기를 몇 차례…. 마차는 호텔 입구에 다다랐다.

이들의 음악과 춤에 매료돼 넋을 잃다가 문득 백마가 끄는 마차 위에 앉은 신랑의 얼굴이 궁금해졌다. 틀림없이 인도의 부잣집 아들이며 높은 카스트인 브라만일터. 호기심에 마차 옆까지 다가가니 한눈에도 외국인임을 알아보겠는지 나를 향해(우리를 향해) 활짝 웃어 답례한다. 어찌나 멋진지 나도 모르게 환호가 나온다.

"오빠 멋져요~! 결혼 축하해요~! 콩그레츄레이션~!"

신랑의 도착을 알리는 듯 악기의 소리가 최고조에 달한다. 꽃가루도 뿌리고, 금가루도 뿌리고, 술도 뿌리고, 돈도 뿌리며 자신들의 재력과 배경을 한껏 자랑하는 인도의 부자들. 거리를 돌아다니는 수많은 걸인들도 그랬지만 그들의 모습도 이방인에게는 낯설고 신기하기 짝이 없었다.

담 하나 사이로 이렇게 다른 세상이...

결혼식 행렬의 등을 들고가던 소년. 표정이 굳어 있다.
 결혼식 행렬의 등을 들고가던 소년. 표정이 굳어 있다.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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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란한 환영과 함께 신랑이 호텔 안으로 들어가고 나니 갑자기 사방이 어둡고 조용해졌다. 조금 전까지 악기를 연주하던 사람들과 휘황한 조명을 어깨에 메고 있던 사람들이 이제야 무거운 짐을 잠시 땅에 내리고 땀을 닦으며 물을 마신다. 가까이 보니 놀랍게도 10대로 보이는 어린 소년들이 적지 않다.                  

동양인 아줌마는 금방 소년들의 관심대상이 됐다. 휴대폰을 꺼내니 사진을 찍어 달라고 손짓을 한다. 그리고 친구를 불쑥 내 옆에 밀어주며 함께 사진을 찍으라고 한다. 어색하게 "치즈~ 스마일~" 했지만 소년은 웃지 않았다. 몇 시간 동안의 힘든 노동 끝에 찾아온 휴식시간. 소년은 웃을 힘조차 없는 듯 보였다.

소년과 헤어져 호텔로 들어오니 호텔 중앙 행사장 화면에 결혼식이 생중계되고 있다. 늦은 밤이지만 술과 음식들이 넘쳐나고 아름다운 남녀와 예쁜 아이들, 우아한 노인들이 모여 환상적인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렇게 다른 세상이 존재할 수 있다니….  

"힌두교의 사상은 자신의 현재 지위에 충실히 하는 겁니다. 이 생의 삶은 전생에 지는 업(業, karma)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신분이 거지이거나 청소부이거나 더 비천한 자라 해도 불만을 갖지 않습니다. 거지면 거지 일에 충실히 하고 청소부면 청소부 일에 충실해야 합니다. 이 생에서 바른 삶(다르마, Dharma)을 살아야 다음 생에 더 높은 카스트로 태어난다고 믿기 때문이지요."

인도인들의 삶을 깊이 지배하고 있는 힌두 사상을 모르면 인도를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혼란스럽다. 어쩌면 왕자 싯다르타 고타마(석가모니)도 이런 혼란과 충격 속에서 번민하다 고행의 길을 택한 것을 아니었을까.

힌두교도와 불교도들이 즐겨 독송한다는 '옴 마니 파드메(반메) 훔'(Om Mani Padme Hum : 고통스러운 윤회를 벗어나 열반이 들기를)이 절로 입에서 흘러나왔다. 옴 마니 파드메 훔. 옴 마니 파드메 훔.

○ 편집ㅣ김지현 기자



태그:#인도여행, #인도결혼식, #뉴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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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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