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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근처의 지하철 역, 발랑스에서 파리로, 파리에서 지하철을 갈아타고 숙소 근처로 왔다.
▲ St-Jacques 숙소 근처의 지하철 역, 발랑스에서 파리로, 파리에서 지하철을 갈아타고 숙소 근처로 왔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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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랑스에서 TGV를 타고 2시간 50여분 만에 파리에 도착(11월 14일)했다.
파리 테러 다음날이라 잔뜩 긴장을 했는데, 중무장한 경찰이 간혹 보이긴 하지만 그저 평온한듯하다.

파리에서 다시 지하철을 타고 숙소가 있는 샤퀴(St-Jacques)역에 도착했다. 지하철역 같지도 않고 공중화장실 같은 느낌이다. 역무원도 없고, 승차권도 회수하지 않는다. 한번 구입하면 메트로 내에서는 그날에 한하여 계속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여행자들은 지하철 표를 기념품으로 소장할 수도 있다.

파리 메트로,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 St. Bercy 파리 메트로,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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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된 풍경에서 만날듯한 모습의 지하철이다.
▲ 파리 메트로 아주 오래된 풍경에서 만날듯한 모습의 지하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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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모습이 공존하는 것 같았다.

마치 불편함은 그냥 감수하겠다는 듯, 지하철은 우리네 지하철과 비교하면 아주 오래된 것 같았다. 파리에서 숙소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고 짐도 무거운 편이라 출입구 옆 의자 뒷켠에 케리어를 놓고 기대어 앉았다.

한 정거장을 왔을까?
자동으로 문이 열릴거라 생각했는데, 내가 서 있는 곳은 열리질 않는다.

'어라? 내가 내려야 할 때 문이 안 열리면 어떻게 하지?'

숙제는 곧 풀렸다.

안이나 밖에서 출입구 문에 있는 버튼을 누르거나 손잡이를 돌리면 문이 열린다. 눈썰미로 파악한 후, 내가 내릴 역에서 이미 나는 다 안다는 듯이 손잡이 버튼을 누르고 전혀 낯설지 않은 도시에 온 듯 내렸다.

그리고 미약하나마 와이파이가 터지는 숙소에 도착해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기전 11월 14일자 한국소식을 들었다.

뒷편에서 바라본 노트르담 성당, 앞면과 뒷면을 마치 다른 성당을 보는 듯하다.
▲ 노트르담 성당 뒷편에서 바라본 노트르담 성당, 앞면과 뒷면을 마치 다른 성당을 보는 듯하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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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에 의한 대국민테러'로 규정지을 수밖에 없었다.

파리에 와서는 잠시 나랏일에 신경 끄자고 다짐했는데, 어쩔 수 없는 대한민국 국민인가 보다. '파리는 IS에게 대한민국은 정부에게' 테러를 당한 것이다(관련기사 :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테러"-물대포에 흥분하는 파리 시민). 이 이야기는 앞의 여행기에서 다뤘다.

다음날 아침, 본격적인 파리여행이 시작되었으나 이미 루브르박물관은 입장할 수 없다는 소식이고, 시내 구경이나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추이를 봐가며 움직이자고 했고, 테러가 발생한 곳은 아직 위험해서 가급적이면 그 근처는 피하겠다고 했다.

멋드러진 성당이 보인다.

"우와! 저 성당 이름이 뭐예요?"
"예, 저게 그 유명한 노트르담 성당입니다."
"헉!!!"

성당에서 기도하는 여행자, 그의 간절한 기도는 무엇일까?
▲ 노트르담 성당 성당에서 기도하는 여행자, 그의 간절한 기도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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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노트르담 성당은 출입이 가능했다.

수많은 조각상들과 스테인글라스와 성물들 만으로도 경건해 지기에 충분했다. 이른 시간인데다가 테러 다음날이라서인지 관광객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 중 성당에 앉아 정면에 있는 성모마리아상(피에타) 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여행자의 모습은 나의 마음을 더욱 더 경건해지게 했다. 그곳에서 나도 기도했다. 파리 테러 희생자들을 위한 기도와 대한민국을 위한 기도와 종교간의 화해, 강대국들의 회개 등 거창한 기도와 개인적인 소소한 소망을 담은 기도였다.

기도란, 그저 무조건 달라고 떼쓰는 수단이 아니다. 신과 인간이 대화하며, 보이지 않는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나는 이렇게 고백한다. 그래서 거창한 기도건 소소한 기도건 잘 보이지 않지만, 그 길의 가능성을 보여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파리 시내, 노트르담 성당에서 시테섬으로 넘어가는 다리
▲ 프랑스 경찰 파리 시내, 노트르담 성당에서 시테섬으로 넘어가는 다리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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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파리는 생각했던 것보다 평온했다.

중무장한 경찰들이 간혹 보이긴 했지만, 대체로 경계를 서는 정도였고, 심지어는 신고로 폭발물처리반이 도착한 곳에서조차도 차량통행만을 금지할뿐이었다.

폭발물처리반이 검색을 마치고 돌아가자 마자 그곳의 일상은 다시 시작되었다. 어쩌면, 의도적으로라도 일상을 지켜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카페의 내부, 포도주와 각종 음료수들의 진열이 잘 되어있다.
▲ 프랑스 카페 카페의 내부, 포도주와 각종 음료수들의 진열이 잘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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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의 기념품 가게도 우리네 기념품 가게와 다르지 않다.
▲ 기념품가게 프랑스 파리의 기념품 가게도 우리네 기념품 가게와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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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는 테러이전과 이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관광객들이 줄긴 했어요. 그래도 파리지엥들은 일상과 다르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고 있지요. 이대 좋은 점은 경찰이 평상시보다 많기 때문에 소매치기 걱정 같은 것은 안 해도 된다는 점이지요."

낭만의 도시 파리, 그곳 역시도 사람이 사는 곳이기에 또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오로지 세계를 깊게 인식하고, 깊이있는 삶을 살아가는 이들은 자기의 삶에 진지한 사람들일 것이다.

"음악을 듣다가 눈물을 흘려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시를 읽다가 눈물을 흘려본 적이 있으신가요? 영화를 보다가 눈물을 흘려본 적은 있으신가요? 화가의 작품을 보다가, 작가의 사진을 보다가 눈물을 흘려보신적은요? 그런 경험이 없다면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못한 것과 다르지 않아요."

가이드의 입담은 가히 시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는 오랫동안 프랑스에서 활동해온 문학작가였고 아내는 유화를 전공하고 있었다.

유럽 건물 창문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 창문이다. '창문을 열어다오!'라는 노래가 절로 나올만 하다.
▲ 창문 유럽 건물 창문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 창문이다. '창문을 열어다오!'라는 노래가 절로 나올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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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집들은 비슷비슷한데, 특히 창문의 구조가 그렇다.

사랑하는 연인의 집, 창가에서 부르는 세레나데는 르네상스 시대 유럽에서 급속도로 유행을 타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창문을 열어다오, 나의 사랑하는 마리아~'

집들마다 오밀조밀하게 난 창문들을 보면서 어찌 그렇지 않을까 싶었다.

대문은 좁고, 집과 집 사이의 간격은 없고, 오로지 길과 소통하는 곳은 창문밖에 없으며, 그 많은 창문들이 있었으니 창밖에서 세레나데를 부르는 것은 공식적인 사랑고백이라 할 수 있겠다.

자기를 향해 부르는 세레나데가 아니라도 축복해 주고, 부러워 하고, 나이가 들었다면 사랑에 불타올라 세레나레를 불렀던 추억들을 떠올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를 사랑하는 이가 창밖에서 세레나데를 부르는 꿈을 꿀수도 있었겠지.

사랑의 열쇠, 여느 곳이나 사랑하고, 고백하고, 그 사랑 영원하길 바라는 마음은 다르지 않으며 표현하는 방식도 그런 것 같다.
▲ 사랑의 열쇠 사랑의 열쇠, 여느 곳이나 사랑하고, 고백하고, 그 사랑 영원하길 바라는 마음은 다르지 않으며 표현하는 방식도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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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트르담 성당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면 시떼섬이 있다.

지금은 다리로 연결되어 있지만, 엄연한 섬이다. 그곳 다리 난간에 사랑의 열쇠가 걸려있었다.

이렇게 연인들, 사랑하는 이들은 이렇게 사랑하는 이와 영원히 변치않는 사랑을 하기를 원하고 있구나. 이 사랑의 열쇠가 남산에만 있는 것이 아니구나.

그러고 보니 남산에서도 쌈짓길에서도 사랑의 열쇠가 즐비하게 걸려있는 것을 보았고, 덴마크 코펜하겐 뉘하운 운하에서도 사랑의 열쇠고리를 만났다. 아마도 내가 가보지 못한 곳, 그 어디든 사랑의 열쇠고리는 수도 없이 많은 장소에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세상 어느 곳이든 사람이 사는 곳이니 삶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들이 뭐 그리 다르겠는가. 더욱이 사랑이나 신앙 같은 것은 뭐가 그리 다를까? 다르지 않으면서도, 각 문화마다의 차이가 있는 것이니 서로서로 사랑하는 방식이든, 신앙의 방식이든 인정해 주는 것이 더불어 사는 삶의 시작이 아닐까?


태그:#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사랑의 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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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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