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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숙씨가 운영하는 샘뿔인문학연구소에서 빗살문학회원들이 문학공부를 하고 있다. 이민숙씨가 토론을 주관하고 있다
 이민숙씨가 운영하는 샘뿔인문학연구소에서 빗살문학회원들이 문학공부를 하고 있다. 이민숙씨가 토론을 주관하고 있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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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기쁜 소식이 있어 전화 드립니다. 제 시집이 2015년도 문화관광부 주관 <세종도서문학나눔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되었어요. 차 한잔하게 연구소로 오시죠."

여수시에서 샘뿔인문학연구소를 운영하며 독서지도와 글쓰기 교육에 여념이 없는 이민숙씨로부터 온 반가운 전화다. 약속된 시간에 연구소로 들어가니 회원 몇 명이 차와 과일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좋은 사람들 모임이어서일까 아늑하고 따뜻한 분위기다.

정확한 내용을 알기 위해 "그게 무슨 상인가?"를 묻자 이민숙씨가 자세한 내막을 알려준다. 4월 중순경 자신이 낸 시집 <동그라미, 기어이 동그랗다>가 문화관광부 선정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됐다. 문화관광부는 1000만 원 이하의 도서를 구입해 전국 공공도서관 및 병영도서관에 비치하게 된다는 것.

5평 정도의 연구실 책장에는 문학과 철학 관련 서적이 가득하다. 11명의 '빗살문학' 회원들은 매주 목요일 저녁 7시부터 12시까지 문학작품 감상과 논어역주, 근현대 시인의 작품을 읽고 감상평을 쓴다. 

8년의 역사를 간직한 연구소에는 3개의 인문학팀도 운영한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인문학 관련 서적을 읽고 토론을 하다보면 "사회를 구제할 결론을 내보자!"며 의기투합할 때도 있다. "왜 하필이면 빗살문학인가?"를 묻자 이민숙씨가 대답했다.

"구석기시대를 지나 신석기시대에 들어 삶의 도구를 만든 인간문명의 시원이기도 하고요. 문학인들 모임이 끝나 화장동에 있는 고인돌공원에서 차 한 잔하며 모임 명칭을 뭘로 할까 고민하다가 문득 빗살무늬토기가 생각나 빗살문학이라고 하자는 생각이 들었죠."

이민숙씨가 펴낸 시집 <동그라미, 기어이 동그랗다> 모습. 2015년도 문화관광부 주관 세종도서문학나눔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돼 전국 1000여개 도서관과 병영에 비치될 예정이다.
 이민숙씨가 펴낸 시집 <동그라미, 기어이 동그랗다> 모습. 2015년도 문화관광부 주관 세종도서문학나눔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돼 전국 1000여개 도서관과 병영에 비치될 예정이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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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이나 국수에 뜨거운 국물을 부었다 따랐다 하여 덥게 하는 조리법을 '토렴'이라고 한다. 잘 토렴한 국밥은 밥알에 국물이 잘 배어 한 그릇을 다 먹도록 그 맛이 사라지지 않는다. 이씨의 시는 빗살무늬 뚝배기에 시심을 담아 한참을 음미해야 진미를 알 수 있는 토렴국밥이다. 그녀의 시 <동그라미>다.

"토마토는 붉게 동그랗다. 수박은 초록으로 동그랗다. 나팔꽃 나팔 주둥이는 분홍으로 동그랗다. 나팔꽃에 입 맞추는 네 입술은 고요히 동그랗다. 구름이랑 보름달은 뭉게뭉게 동그랗다.

쥐눈이콩은 새알보다 더 콩 만하게 동그랗다. 강물을 살짝 떠올리는 물수제비는 날아갈 듯 온몸으로 동그랗다. 엄마의 정수리에서 대가족을 봉양했던 또아리는 철철이 누런 가난으로 동그랗다.

남북으로 왔다 갔다 하는 탁구공은 콩닥콩닥 대책도 없이 동그랗다. 바다 한가운데에 묻힌 아이들의 눈동자가 가만히 있어서 처절참담 동그랗다.

스스로는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하는 동그라미. 보듬어서 서로 기대어 살아야 할 동그라미. 뾰족할 수 없어 기어이 동그랗다"

우리네 삶 주변에 펼쳐진 동그라미들. 대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머리에 또아리를 얻고 시장에 나갔다가 해질녘에야 돌아오는 고달픈 어머니의 때묻은 또아리의 동그라미. 동그랗게 살지 못하고 서로 반목하는 남북동포들. 세월호 속에 갇혀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한 아이들의 동그란 눈망울들. 각진 모서리를 없애고 동그라미가 되어 서로 보듬고 기대어 살자는 그녀의 시는 빗살무늬 뚝배기 속 토렴 국밥이다.

자존감을 높여준 문학공부

바쁜 중에도 짬을 낸 문학공부는 삶을 변화시켰다. 항상 누구의 아내, 엄마, 며느리, 딸로 살면서 내 생각보다는 상대방의 생각과 형편을 배려하기만 했던 존재감 없던 여인들의 자존감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지식과 지혜에 대한 갈급으로 허전하기만 했던 자기 영혼에 빚도 갚았다. 양미자씨가 경험담을 얘기했다.

"늦바람난 것 같아요.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라 시 한 편을 써 회원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어 자동차 속도를 내며 달리는 나를 바라보며 애인 만나러 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저녁밥 먹고 애기를 데리고 와 토론장 옆에 재워놓고 밤12시까지 공부하고 갔더니 하루는 남편이 도대제 뭐가 그리 좋아서 그러는지 보고 싶다며 따라 왔다가 서방님이 회원이 되어버렸어요. 남편의 어렸을 적을 노래한 시를 보며 남편을 더욱 이해하게 됐어요."     

초등학교 6학년 쌍둥이를 둔 임현정씨가 입을 열었다.

"처음에는 엄마 욕심으로 애들을 만들려고 했는데 문학공부를 하며 애들이 하고 싶은 걸 잘 할 수 있도록 지지해 주고 격려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애들이 꿈을 찾아 꿈을 이루도록 후원해 주고 싶어요."

빗살문학회원들이 펴낸 문학작품집들
 빗살문학회원들이 펴낸 문학작품집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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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살문학공부는 시간가는 줄 모르는 공부"라는 이수진씨는 작년 3월경 환경도서관에서 자녀독서프로그램 강의를 들은 후 회원이 되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과정이 힘들지만 너무나 행복했던 시간들"이라며 환하게 웃는 그녀를 보며 나까지 행복해졌다.

회원들은 매년 하루 '빗살의 날'을 정해 1박2일 동안 여행을 떠난다. 논어공부를 마치고 공자의 고향을 찾아 중국여행도 다녀왔다. 양미자씨가 '문학이 삶에 끼치는 영향과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이렇게 썼다. 

"글을 쓰고 시를 쓰며 산다는 것은 신앙을 가진 것과도 유사한 점이 있는데 그것은 함부로(?) 살아버리고 싶은 것에서 한 발 물러나게 하고 때론 밀도 있게 잘 살아야지 하는 다짐을 하게도 합니다."

덧붙이는 글 | 여수넷통에도 송고합니다



태그:#이민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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