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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침대 속에서 한 마리의 흉측한 벌레로 변해있음을 발견했다." - 카프카의 <변신> 중에서

'그레고르 잠자'만 하루아침에 벌레로 변하지는 않는 것 같다,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수없이 많은 '충'(蟲)들이 생겨나고 있다. 가장 많이 알려진 '일베충'부터 '진지충' '설명충' '노인충' '맘충' '수시충' 등으로 급속하게 번져가고 있다. 이러다 한국인 모두가 '벌레'로 '변신'하는 날이 멀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왜 '-충'이라는 접미사 아닌 접미사가 나날이 신조어를 만들어내고 있는지부터 살펴보고자 한다. 벌레는 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곤충을 비롯하여 기생충과 같은 하등 동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굳이 사전적인 의미를 빌리지 않더라도 벌레는 남녀를 통틀어 대체로 징그러워하고 혐오하는 대상이다. 하등해서 무시하고 싶고, 징그러워서 혐오스러운 대상들이 우리 사회에 왜 이토록 늘어만 가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헬조선에 살면서 어찌 '-충' 딱지 안 붙일 수 있을까

한국의 현실을 자조적으로 풍자하는, 헬조선의 지옥불반도(지옥불과 반도의 합성어다) 지도. 온라인 게임 와우(WOW)의 게임맵을 변주한 게 눈길을 끈다.
▲ 지옥불반도 한국의 현실을 자조적으로 풍자하는, 헬조선의 지옥불반도(지옥불과 반도의 합성어다) 지도. 온라인 게임 와우(WOW)의 게임맵을 변주한 게 눈길을 끈다.
ⓒ 플레이XP/인벤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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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이 척박할 때, 사람은 분노하게 된다. 한국은 현재 무한경쟁사회다. 초, 중, 고등학교 내내 열심히 공부해서 소위 말하는 '좋은 대학'에 입학해도 끝이 아니다. 취업하기 좋은 '스펙'을 쌓기 위해 영어도 공부해야 하고 자격증도 따야 한다. 그렇게 해도 취업이 잘 되지 않는다. 공무원 시험의 경쟁률은 100:1을 넘어선 지 오래다. 40~50대가 되면 명예퇴직을 강요당하고, 퇴직금을 받고 명예퇴직을 한다고 해도 할 만한 자영업이 없다.

오죽하면 '기-승-전-치킨집'이라는 말이 떠돈다. 어떤 직업을 갖든 최종적으로는 가장 만만한 치킨집 사장이 된다는 의미다. 그나마 치킨은 '치느님'이라는 대접을 받으며 아직 승승장구하고 있는 아이템이니까. 그렇다고 해서 치킨집이 대안이라는 건 당연히 아니다.

올해 국회 예산정책처가 발간한 '자영업자 지원 사업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자영업자 가구의 부채 규모가 지난해 평균 9000만 원에 달한다고 한다. 한 마디로 학생도, 직장인도, 자영업자도 소위 '먹고사니즘'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얘기다. 아무리 경쟁을 해도 '의, 식, 주'조차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사회에 살고 있다.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욕구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사회다.

그러다 보니 젊은 층(20대)에서는 '헬조선'이란 말이 회자된다. '헬조선'은 지옥을 뜻하는 영어인 'hell'과 '조선'이 결합된 신조어로, 현재의 한국이 지옥과 같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근래에는 '죽창 앞에선 모두가 평등하다'는 표어(?)를 내건 홈페이지까지 생겼다. 홈페이지에 접속해 보면, 얼마나 한국이 지옥 같은지를 잘 알리는 사례들로 가득하다.

이러한 현실에서 살면서 분노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더 이상한 일일지 모른다. 그런 정당한(!) 분노가 '-충'이라는 말을 자신과 다르게 생각하거나 자신보다 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붙임으로써 해소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려스럽다.

일상 속에서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분노를 느낄 때 우리가 분노를 해소하는 방식은 나보다 약자인 사람을 괴롭히는 방식으로 드러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중, 고등학교에서 학교폭력이 증가하는 이유는 과도한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자신보다 약하다고 생각하는 존재들에게 풀어버리려고 하기 때문이다. '나는 (엄마나 선생님의 기대치에 맞지 않는) 루저(loser)이지만 나보다 더 루저인 사람이 있기'에 그들을 비웃으며 안도할 수 있다.

비단 십대들만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어려운 일을 겪고 있을 때 사람들은 "너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생각하라"며 위로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런 위로는 결국 '너보다 더 바닥인 인간'도 있으니 '너 정도면 다행'으로 생각하라는 말로 풀이된다. 십대들처럼 대놓고 괴롭히지는 않지만 우리는 '우리보다 못한 사람'을 생각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는 말과 뭐가 다른가. '무시의 카타르시스', 타인을 '-충'이라 부르며 사실은 그런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만약 그렇다면 그 또한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을 흘기듯" 엉뚱한 곳에 화풀이를 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정말 분노해야 할 대상이 '일베(일베의 경우는 예외로 하고 싶지만)'인이고, 지나치게 진지한 사람이고, 아이를 버릇없게 키우는 엄마 등인지 질문해 봐야 한다.

물론 정치적으로 지나치게 치우쳐 한때 대통령이었던 사람을 조롱하거나, 분위기에 맞지 않게 진지하거나, 공공장소에서 아이가 돌아다녀도 방치하는 사람들도 당연히 잘못이 있다. 하지만 '-충'이라고 부르며 그들을 혐오해봤자 우리의 근원적인 분노가 사그라질 리가 없다. 우리도 여전히 그들과 함께 '헬조선'에 살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베충' '맘충' 말고, 진짜 분노유발자를 봐야

문제를 일으키는 개인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무엇이 그들(혹은 우리들)로부터 문제가 생기도록 하는가를 진지하게 따져 보기로 하자. 일베가 사회적 문제가 된 이유는 정치적으로 지나치게 우편향 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다. 전라도 사람이나 여성들에 대해 근거 없고 원색적인 비난(홍어, 김치녀 등)을 일삼기 때문이다.

또 고인에 대해선 함부로 이야기 하지 않는다는, 예부터 내려 온 금기를 깨고 노무현 대통령이나 세월호 참사 피해자나 그 유족에 대해 조롱하고 비웃기 때문이다. 일베는 타인에 대한 몰이해 속에서 공감능력이 부재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만들어 낸 괴물이다.

(물론 십대 일베 이용자의 대부분은 일종의 '놀이 문화'로 일베를 수용한다. 하지만 그런 십대들은 왜 생겨나는 것일까? 역시 일상에서의 과도한 시험 스트레스를 타인을 무시하고 조롱하면서 풀어내고 있지는 않은가.

내가 본 일베를 하는 십대는 대체로 선생님이나 친구들에게 인정받는 아이는 아니었다. 다른 아이들도 일베를 하는 아이들을 일베충이라고 부르며 '오타쿠'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었다. 물론 '오타쿠'가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아이들 사이에서 '오타쿠'는 나쁘다가 아니라 '별종' 혹은 '특이함'을 나타내는 표현에 가깝다)

'일베충'이 꽤 오래 전부터 퍼져 있던 용어라면 '맘충'은 최근 들어 급부상했다. 그 기원이 정확한지 모르겠지만, 한 배달앱 중국집 서비스 평가에 '재연맘'이라는 닉네임으로 올린 리뷰가 유명해지면서부터다.

재연맘은 "서비스가 실망"이라고 평가했다. 이유는 "자장면을 두 그릇 시키면서 우리 아기가 다른 음식은 잘 못 먹으니 그나마 먹는 군만두를 서비스로 달라고 했는데 주지 않았고, 자장면의 양도 한 그릇은 아이에게 몇 입 주려고 낭낭하게 달라고 했는데 별 차이가 없었다"고 평가했다.

일반적으로 중국집에서 군만두 서비스를 주는 경우는 자장면이나 짬뽕과 함께 탕수육 같은 요리를 시켰을 때다. 그런데 고작 자장면을 두 그릇 시키면서 군만두를 서비스로 달라고 요구했으며 한 그릇은 "낭낭하게" 달라는 요구를, 오직 "우리 애기"를 위해서 할 수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맘충'이라는 용어가 자연스럽게 등장할 수 있었다. "낭낭하게"라는 표현의 유행과 함께.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여성혐오'는 꾸준히 인기를 끌어왔지만, 모성애마저 지금처럼 벌레 수준으로 끌어내려진 적은 없었다. 내 아이를 우수하게 키우고 싶다는 열망은 어쩌면 대부분의 어머니가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내 아이만 소중하다'는 의식은 자신의 아이를 위해서라면 타인은 무시해도 된다는 생각, 나아가 그것이 무엇이든 희생돼도 상관없다는 위험한 생각으로 발전할 수 있다. 게다가 돈을 낸 고객이니까 무리한 요구도 무조건 들어줘야 한다는 생각은 세상의 모든 가치가 돈으로 매겨진다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일베충과 맘충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결국 '무엇'이란 사회에 내재된 의식 즉, 시스템이다. 위의 예에서 우리 사회 전반에 펴져 있는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살 수 있다'고 믿는 천민자본주의, '나만 잘 살면 된다'는 무한이기주의를 읽어낼 수 있다. 또한 옳고 그름은 없고 내가 옳다고 믿으면 정의라는 믿음,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 타인을 밟고서라도 내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한다는 경쟁심 역시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사회 시스템이 한국을 '헬조선'으로 만들고 다수의 한국인을 벌레로 부르도록 만들지 않았을까? 스테디셀러인 <어린 왕자>의 구절처럼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니까. 이제 결정을 해야 할 때다. 그릇된 대상에게 계속 분노를 할지, 아니면 중요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이념과 싸울지는. 어쩌면 어려운 결정이 아닐지도 모른다.

한국인이 모두 벌레로 변신하기 전에,

"만국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 - 칼 마르크스, <공산당 선언> 중에서


태그:#헬조선, #-충, #일베충, #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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