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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문안 온 간디 아쉬람의 메니저와 가텀씨. 독일에서 명상센터를 운영하는 가텀씨는 델리 병원에 있다는 독일인 제자를 소개해 주겠다며  정밀검사를 권했다.
 병문안 온 간디 아쉬람의 메니저와 가텀씨. 독일에서 명상센터를 운영하는 가텀씨는 델리 병원에 있다는 독일인 제자를 소개해 주겠다며 정밀검사를 권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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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텀씨가 간디 아쉬람의 매니저와 함께 걱정어린 눈빛으로 찾아왔다. 퉁퉁 부어 오른 내 무릎을 어루만지며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됐냐며 말했다.

"코사니에는 X-ray 촬영이나 MRA 검사 장비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소."

정밀검사를 받기 위해서는 코사니에서 2시간 거리에 있는 알모라로 나서야 할 것이라고 한다.

"잘 아시다시피 나는 영어를 잘 못합니다. 병원에 가면 말이 통하지 않을 것인데 걱정입니다."
"내가 함께 가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하지만, 하루 이틀 더 지켜보고 결정하겠습니다."

만약 정밀검사를 받아 수술할 상황이 아니라면 굳이 알모라로 나갈 이유가 없다. 수술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라면 보험료를 감당할 수 없기에 어차피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하루 이틀 경과를 지켜보고 나서 결정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다.

"그나저나 걱정입니다. 이번 주에 송별회를 하기로 약속을 했는데..."
"그런 걱정하지 말고 몸이나 잘 간수하세요."
"부럼 선생과 단단히 약속을 했는데 어쩌죠?"
"부럼 선생은 학교 수업을 마치고 오후에 다녀간답니다. 그때 의논해 보세요."

가텀씨는 내가 코사니에서 떠나기 전에 조촐한 송별회를 갖자고 제안했었다. 그는 회식 장소를 코사니 상가에 자리한 요기 식당을 추천했다. 하지만 나는 부럼 선생네 집을 고집했다. 어쩌다 찾아가 값싼 음식만 골라 먹었던 요기 식당 주인에게는 미안한 일이었지만 송별회 음식을 부럼 선생 부인에게 부탁했고 그녀는 흔쾌히 승낙했다.

간디 아쉬람 매니저와 가텀씨가 돌아가고 나서 민박집 비노트씨가 사다준 약을 먹고 잠시 잠이 들었는데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약기운에 취한 상태로 비몽사몽 일어나 보니 민박집 주인 비노트씨였다. 그의 손에는 수건과 양동이가 들려있었다.

"잠깐 일어나 보세요. 무릎 찜질을 하면 한결 좋아질 것입니다."

아무런 조건없이 매일 아침 저녁으로 양동이에 뜨거운 물을 받아와 내 무릎을 마사지 해주었던 민박집 비노트씨.
 아무런 조건없이 매일 아침 저녁으로 양동이에 뜨거운 물을 받아와 내 무릎을 마사지 해주었던 민박집 비노트씨.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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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저녁... 민박집 주인의 정성스러운 찜질

내가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그는 뜨거운 물에 담근 수건으로 정성껏 내 무릎을 마사지 해주었다. 그는 젊은 시절 7년 넘게 군 생활을 했는데 무릎 부상으로 고생하는 동료들을 많이 봐왔다며 큰 부상이 아닐 것이라 강조했다. 그의 세심한 배려에 나는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를 연발 할 수밖에 없었다.

양동이의 물이 다 식어갈 무렵 비노트씨가 일어섰다. 그의 정성어린 마사지 덕분에 무릎이 부드러워졌다. 무릎을 굽혔다 폈다 해보았다. 어젯밤 보다 한결 나아진 느낌이다. 다리를 쭉 펴고 침대에 누워 조금 전에 그가 방문을 나서면서 했던 말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가 오늘 점심 식사를 주겠다는 것이었는지 저녁 식사를 챙겨 주겠다는 것이었는지 헷갈린다. 평소 복용하지 않던 약 기운 때문인지 정신이 몽롱하다. 모바일에 찍혀 있는 시계를 보니 열 한 시 오십분이다. 약을 먹기 위해서는 점심을 먹어야 한다.

꿈벅꿈벅 감겨오는 눈꺼풀 사이로 창문 너머 옥상에서 원숭이 큰 놈 한 마리가 보인다. 녀석은 내가 꼼짝없이 방안에 갇혀 있음을 알고 있는 모양이다. 창문 바로 앞에서 얼쩡거리고 있는 녀석을 향해 누군가 큰 소리를 내지른다. 비노트씨다. 그는 원숭이를 쫓아내고 나더니 금방 먹을 것을 가져 올 테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한다. 그가 점심 식사를 챙겨 주겠다고 했던 것이다.

무릎 부상으로 누워 있는 내게 민박집 비노씨네 가족이 꼬박꼬박 식사를 챙겨줬다.
 무릎 부상으로 누워 있는 내게 민박집 비노씨네 가족이 꼬박꼬박 식사를 챙겨줬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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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그가 식판 가득 고봉밥과 오이, 콩으로 만든 수프를 담아 왔다. 입맛은 없었지만 약을 먹기 위해 말끔히 비웠다. 약을 챙겨 먹고 나니 페트병 생수가 바닥을 내보였다. 식기를 가지러 온 그에게 생수를 사다줄 것을 요청했더니 원하는 무엇이든 부탁하라며 기분 좋게 웃는다.

오후에 민간요법을 공부한다는 젊은 사내가 찾아왔다. 부럼 선생이 보내서 왔다고 한다. 어딘가 모르게 낯이 익다. 그는 일전에 부럼 선생네 집에서 만난 사람 같기도 하다. 태권도를 배웠다며 내게 시범을 보여 달라 요청했던 기억 속의 사내가 아닌가 싶다. 내가 생각하는 그가 그인지 상관없이 그는 간단한 마사지와 함께 내 무릎 상태를 살펴보고는 상태가 좋지 않다고 말한 거 같다. 그리고는 태권도 단어가 들어간 말을 꺼낸다. 내가 생각했던 그 사내였다.

그는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약초를 무릎 부위에 꾸준하게 바르면 한결 좋아질 것이라며 민간요법을 권했다. 지금 상태로는 코사니 마트까지 걸어갈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지만 그가 어떤 말을 했는데 그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그가 내게 오겠다는 말인지 내가 가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영어 소통을 했다. 평소처럼 인터넷 번역기를 사용할 만한 심적인 여유가 없어 언어 소통이 힘들었다. 그는 자신의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고 동문서답하고 있는 내가 답답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 엉터리 영어에 끝까지 귀를 기울여 준 그가 고마웠다. 

락시미 아쉬람의 부럼 선생이 보낸 청년, 그는 민간요업을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락시미 아쉬람의 부럼 선생이 보낸 청년, 그는 민간요업을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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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몸조리 잘 하라며 일어섰다. 왕진비를 챙겨 주려고 지갑을 꺼내자 그는 극구 사양했다. 돈을 받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갑을 꺼낸 내 손이 부끄러웠다. 그는 락시미 아쉬람 학교의 간호 선생이 아닌가 싶었다. 그는 자신이 배우고 있는 민간요법으로 락시미 아쉬람 학교의 아이들과 가난한 농민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듯했다. 그가 떠나고 나서야 그의 이름조차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늦은 오후가 되자 학교 수업을 마친 부럼선생이 찾아왔다. 민박집 비노트씨와 친구 사이기도 한 그는 퉁퉁 부어오른 내 무릎을 살펴보더니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아 보는 게 좋겠다고 말한다. 나는 가텀씨에게 말했던 것처럼 하루 이틀 더 지켜보고 결정하겠다고 말해 놓고 송별회 얘기를 꺼냈다.

"무릎 상태가 좋아지면 약속한 대로 송별회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약속은 지키지 않아도 됩니다."

부럼 선생네 집에서 송별회를 고집한 이유

내가 가텀씨가 추천한 요기 식당을 등지고 부럼 선생네 집에서의 송별회를 고집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요기 식당에 지불할 돈을 음식 솜씨가 좋은 부럼 선생의 아내에게 주고 싶었던 것이다. 부럼 선생이 몸담고 있는 락시미 아쉬람 학교는 후원금으로 운영하고 있다. 한국의 열악한 대안학교의 선생들처럼 일반 학교 선생들 월급의 반도 채 안 되는 박봉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그런 부럼 선생에게 작은 성의를 보이고 싶었다. 낯선 이방인인 나에게 '내 집처럼 편하게 오고 가라며' 한 가족처럼 대해준 부럼 선생네 가족에게 뭔가를 통해 보답하고 싶었다. 하지만 가난한 여행자인 나로서는 딱히 도울 방법이 없었다. 적선하듯 몇 푼의 돈을 내민다는 것은 큰 실례인 것 같아 고심 끝에 생각해낸 것이 부럼 선생 아내에게 송별회 음식을 부탁하고 적은 액수의 돈을 주는 것이었다.

밤이 되자 통증이 밀려왔다. 진통제도 소용없었다. 통증은 흐릿한 정신을 예민하게 일으켜 세웠다. 잠이 오지 않았다. 불면증으로 시달리는 밤처럼 아내에 대한 분노심이 솟구쳐 올라왔다. 몸과 마음이 지쳐 어떻게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가 악몽에서 깨어났다.

이전과 거의 같은 악몽이었다. 아내가 나를 죽일 듯이 몰아 세웠다. 나는 그녀에게 바락바락 소리를 내질렀다. 제발 좀 나를 그만 괴롭히라며 분노했다. 분노에 휩싸인 채로 울부짖었다. 그리고는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어둔 공간 속에 갇혔다. 숨이 막혔다. 그 숨 막히는 공간에서 빠져 나오려 안간힘을 쓰다가 어느 순간 꿈이라는 것을 인식했다. 그 악몽에서 깨어나고 싶어 발버둥 치다가 숨을 몰아쉬며 겨우 깨어났던 것이다.

방안이 꿈속의 어두운 공간처럼 느껴졌다. 숨이 턱턱 막혀왔다. 침대에서 힘겹게 몸을 일으켜 조심조심 무릎을 접어 보았다. 퉁퉁 부어있는 무릎이 통증과 함께 쉽게 접혀지지 않았다. 겨우 침대 아래로 다리를 내렸다. 지팡이에 의지해 힘겹게 숙소 베란다로 나섰다.

별들이 쏟아져 내리는 밤하늘에 북두칠성이 또렷하게 보였다. 한국의 집 앞에서 보는 그대로다. 한국에서 머나먼 북인도까지 와서 나는 여전히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내 머릿속에 혼란스럽게 입력되어 있는 기억들을 지워 버리고 싶었지만 밤하늘에 선명하게 떠 있는 북두칠성처럼 도무지 지울 수가 없었다. 악몽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할수록 버럭버럭 화를 내며 나를 몰아세우고 있는 그녀의 일그러진 얼굴이 머릿속으로 또렷하게 박혀 왔다.

하지만 그녀가 내게 화를 내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그런 그녀를 미워하는 내 안의 분노심이었다. 그 분노심은 무릎 통증보다 더 가혹하게 나를 압박해 왔다. 3년 전 집을 나와 산중을 떠돌아다니며 어느 정도 벗어났다고 생각했던 분노심은 내 안에 뿌리 깊게 박혀 있었다. 그 분노심이 불꽃처럼 솟구쳐 오르기 시작하면 살아 있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다.

병원을 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무릎 통증이나 위장이 뒤틀리는 통증은 분노심에 휩싸여 있는 것에 비하면 잠시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 불과했다. 육신의 통증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것이지만 내 안의 분노심은 3년이 지나도록 사라지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내 안에 숨겨져 있는 분노는 꺼지지 않는 불씨였다. 그 불씨에 불이 붙으면 내 마음을 집어 삼킨다. 그 어떤 물로도 꺼지지 않는다. 온 바닷물을 다 들이부어도 꺼지지 않는다.

내 안에 깊이 박혀 있는 그녀에 대한 분노심만 없애 버릴 수 있다면 다리 한 짝을 희생시켜도 상관없다는 절박한 생각까지 들었다. 내 스스로를 갉아 먹고 있는 분노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나의 어리석음 때문이었다. 그 어리석음을 빤히 알면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 또한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다.

불현듯 중국선종의 2대조 혜가(慧可) 스님이 떠올랐다. 혜가 스님은 소림사에 머물러 면벽 좌선 하고 있는 달마대사의 제자가 되어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법을 구하기 위해 팔 한 짝을 잘라 받쳤다. 달마대사의 제자가 되기 전에 신광으로 불렸던 혜가 스님은 수행승이었다.

고통의 원인이 되는 세 가지 독소인 욕심, 분노, 어리석음의 탐진치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수행자들은 보다 깊은 고통 속에 빠져들기 마련이다. 물이 맑아질수록 티끌이 선명하게 드러나듯이 오감이 예민해질수록 내면에 숨겨진 고통의 원인이 되는 탐진치 또한 선명하게 드러난다. 수행승 혜가 스님에게 시시때때로 인지되는 탐진치는 고통, 그 자체였을 것이다. 달마대사는 부처님의 법을 통해 그 고통의 원인인 탐진치에서 벗어나는 길을 열어줄 수 있는 큰 스승이었기에 팔 한 짝을 베어내는 육신의 고통을 감수했을 것이었다.

혜가 스님이 달마대사에게 팔 한 짝을 잘라 받치기 전이었다. 달마대사는 석실 문 앞에서 새벽까지 눈을 맞고 서 있는 그에게 말했다.

"부처의 높은 도는 무한한 생을 두고 신명(身命)을 버리며 정진 수행해서 참기 어려운 일을 능히 견디고 하기 어려운 일을 능히 행하여서야 비로소 성취하는 것인데 너 같은 적은 덕과 적은 지혜를 가지고 게다가 가볍고 용렬하여 거만하기까지 한 그런 마음으로 어찌 진실한 불법을 감히 구하려 하느냐?"

혜가 스님을 향한 달마대사의 일침은 내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적은 덕과 적은 지혜를 가진 가볍고 용렬하고 거만한 자'가 바로 나였기 때문이다. 나는 아내에 대한 분노심조차 다스리지 못하면서 세상에 좋은 마음을 내놓아 가며 살고 지고자 했다. 적은 덕과 지혜로 가볍고 용렬하고 거만한 마음으로 얼치기 진보주의자가 되어 주변 사람들에게 툭하면 정의롭고 소박한 삶이 어떻고 행복한 삶은 어떠니 입버릇처럼 주절거리며 살아왔던 것이다.

다음 날 아침 가텀씨가 다시 찾아왔다. 그는 내 무릎 상태가 호전되지 않는 걸 확인하고는 알모라 보다는 델리로 갈 것을 권했다.

"송! 델리로 가요. 알모라에 갈 바에 델리에 있는 큰 병원에 가는 게 좋겠소. 나에게 명상을 배운 독일인 제자가 델리 병원에 있습니다. 그 제자에게 전화로 부탁해 놓겠습니다."

독일인 여자를 만나 독일에서 명상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가텀씨의 고향은 델리다. 델리에 자신의 형제들을 비롯해 지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고 한다. 만약 정밀 검사 끝에 무릎 상태가 좋지 않아 수술을 하게 될 경우 델리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독일인 제자가 도움을 줄 것이라 한다. 하지만 나는 이미 어젯밤 병원에 가지 않기로 결심을 굳혔다.

가텀씨 제자 덕분에 제대로 정밀검사를 받아 큰 돈 들이지 않고 수술을 한다 해도 더 이상 인도 여정은 어려울 것이었다. 결국은 병원 신세를 지다가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곧장 한국으로 날아가는 편이 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저 뿌리 깊은 아내에 대한 분노심을 내려놓지 않고는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을 작정이었다.

나는 무릎 통증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중병인 내 안의 분노심을 치유하는 데 온 몸을 던져 보기로 작정했다. 앞으로 남은 인도 일정 중에 분노심만 치유될 수 있다면 평생 무릎 때문에 고생한다 해도 상관없었다. 병든 마음자리에 몸이 성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너무나 고맙습니다. 가텀씨. 당신의 마음은 진실로 고마운데 병원을 포기할 작정입니다. 그냥 내 몸을 하늘에 맡겨볼 작정입니다."
"그래도 좋겠지요. 당신 마음속에 자리한 부처님이 그런 당신을 보호해 줄 것입니다."

병문안 온 락시미 아쉬람 학교의 부럼씨. 그는 민박집 비노트씨와 친구라고 한다.
 병문안 온 락시미 아쉬람 학교의 부럼씨. 그는 민박집 비노트씨와 친구라고 한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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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불교에 심취해 있는 그의 진심어린 말에 시간이 지나면 무릎이 괜찮아질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내 무릎에 힘을 불어 넣어주고 있는 사람은 그뿐만이 아니다. 어리석은 낯선 이방인인 내게 좋은 마음을 내주고 있는 부럼 선생과 민간요법 청년, 아침 저녁으로 꼬박 꼬박 뜨거운 물로 무릎 찜질을 해주고 있는 민박집 가텀씨와 식사를 마련해 주고 있는 그의 가족들이 있었다. 그리고 절룩거리며 길을 걷고 있는 나에게 근심어린 눈빛을 보냈던 아이들과 비탈길에 쓰려져 주저앉아 있을 때 내내 곁을 지켜 주었던 멍멍이 또한 내게 힘과 용기를 불어 넣어 주었다.

수행자가 어디 따로 있겠는가. 고통 받고 있는 내게 온정의 손길을 보내고 있는 이들 또한 수행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닦는 수행자는 자비롭다. 마음을 다스려 누군가에게 자비심을 베푼다. 누군가에게 자비심을 베푸는 모든 사람들은 수행자다. 다만 큰 산이 보다 많은 사람들을 품어 안을 수 있듯이 그 자비심의 품과 깊이가 다를 뿐이다.

나는 이들의 애정 어린 손길에 힘입어 조만간 자리를 털고 일어설 수 있는 것만 같았다. 설령 나중에 무릎이 잘못되어 평생 절름발이로 살아가는 최악의 사태가 발생한다 해도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었다.

이들이 내게 보내는 따듯한 손길은 뿌리 깊은 나의 병든 마음까지 치유할 수는 없지만 병든 무릎을 일으켜 세울 수 있을 것이었다. 침상에 누워 내게 자비심을 베풀고 있는 이들을 하나둘씩 떠올리고 있는데 마음 깊숙한 곳에서 분노로 가득한 내게 이르는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분노하라

너 자신을 위해 분노하지 말고
억압당하는 누군가를 위해 분노하라
너 자신을 위한 분노는
너를 갉아 먹고
또 다른 분노가 되어
그 누군가 너를 표적삼아
분노의 활시위를 당기게 하리라
분노하라
자비심으로 분노하라
자비심 가득한 분노는
잘 익은 효소처럼 세상에 향기를 주지만
자비심 없는 분노는
썩은 젓갈처럼 구더기들로 들끓게 되리라
분노하라
매순간 분노하고 있는
너를 지켜보며 분노하라
한 순간이라도
분노하고 있는 너를 놓치게 되면
분노의 화염 속에 갇히게 되리라

○ 편집ㅣ장지혜 기자

덧붙이는 글 | 달마대사와 혜가 스님에 대한 일화는 조사선(祖師禪)의 실질적 창시자라 할 수 있는 중국 선종의 6대 조사인 혜능 대사의 어록, <육조단경>에 기록된 내용이다.



태그:#북인도 코사니, #무릎 인대 파열, #온정의 손길, #달마대사와 혜가,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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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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