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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할 얘기가 있어요" 가슴 철렁이게 하는 말
          
지원이는 13살의 일을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내가 어쩌다 학교에서 있었던 작은 일화라도 꺼낼라치면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한다.

"그런 일이 있었어요?"

그러다가 내가 조금이라도 더 구체적으로 파고들면 금세 표정이 굳어지며 말한다.

"기분이 나빠져요.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아요."

무엇이 나의 딸 지원이의 기억 속에서 1년이란 시간을 통째로 사라지게 했을까? 6년이 지난 지금도 그 시간을 떠 올리는 것이 고통스러울 정도로 만들었을까?

ⓒ wiki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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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할 얘기가 있어요."

초등학교 6학년 2학기, 나의 딸 지원이가 말한다. "뭔데?"라며 아이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가슴이 철렁한다. 보통 아이가 할 얘기가 있다고 말할 때는 갖고 싶은 것이 있거나 여행을 보내달라거나 하는 경우다. 고민거리를 털어놓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때조차도 아이는 두 눈을 빛내며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이날은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나와 눈을 마주칠 생각도 않고 눈길을 바닥으로만 둔다. 얼굴에선 아이다운 태평스러움이 사라졌다. 엄마가 눈앞에 앉아 있건만 아이는 천애 고아 같은 표정이다.

아이는 말한다. '반 아이들이 이상하다. 쉬는 시간이 싫다. 학교 가기 싫다는 건 아니다.'
아이는 어깨를 누르는 근심의 무게와 고자질을 하고 있는 것만 같은 아이다운 양심의 가책 때문에 횡설수설한다. 나는 두루뭉술한 아이의 말에서 구체적인 정보를 캐내기 위해 인내심을 발휘하며 조금씩 질문을 던진다.

"쉬는 시간에 누가 지원이에게 무슨 말을 해?"
"애들이 쉬는 시간만 되면 내가 뭐 하나 봐. 문제집 풀고 있으면 '쟤 공부한다'고 해. 아무 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왜 가만히 있냐고 하고. 나더러 어쩌라는 말인지 모르겠어."
"그렇게 말하는 아이가 누구야?"
"임지수(가명)랑 이혜진(가명)."

나도 아는 이름들이다. 학기 초에는 서로의 집을 오가며 놀 정도의 사이였다.

"그 아이들 친구 아니었어?"

그 말에 아이의 표정이 더 굳어진다. 친구라고 생각했던 아이들 때문에 힘들고 괴로운 그 상황이 13살 아이에게는 설명도 감당도 하기 힘겨운 것이었다.

어디에도 끼지 못하면 꼼짝없이 왕따

도회지 문화에 적응하던 지원이, 하지만 6학년이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도회지 문화에 적응하던 지원이, 하지만 6학년이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 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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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이는 5학년 학기 중에 인근의 지리산 산골에서 진주로 전학 왔다. 진주에는 서부 경남의 시골에서 중학교 진학에 맞춰 전학 오는 학생들이 흔했고 이 아이들의 적응은 부모들의 공통된 관심사였다. 산골에서 자란 아이들에게 교육도시라는 진주는 일종의 시험의 장이었다.

도회지 아이들과 경쟁해야 했고 그 문화에도 적응해야 했다. 지원이가 전학한 이유는 다른 아이들처럼 교육환경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금세 새 친구들을 사귀고 수영과 바이올린도 배우며 산골보다 더 재미있어 하는 아이를 보며 결과적으로 이사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6학년이 되며 상황이 달라졌다. 담임이 수업하기 수월하다고 할 정도로 조용한 반이었다. 여학생들은 새초롬했고 남학생들조차 기를 못 폈다. 서너명씩 끼리끼리 어울리는 분위기의 그 반에서는 어디에도 끼지 못하면 꼼짝없이 왕따가 되었다. 실제로 왕따 당하는 남자 아이도 있었다. 지원이는 종종 그 남학생 이야기를 하며 반아이들이 그 아이에게 너무 한다며 분개하고는 했다.

5학년때 친했던 4인방 친구들과 반이 갈려 지원이는 그 반에서 새 친구들을 사귀었다. 그 아이들이 바로 임지수(가명)와 이혜진(가명)이었다. 임지수는 똑똑하고 얌전한 외양과는 달리 신경질적인 아이였고 그런 까칠함이 주위 아이들을 주눅 들게 하는 면이 있었던 것 같다. 상대적으로 평범했던 이혜진은 그런 임지수에게 맞장구를 쳐주는 아이였다. 일명 '꼬붕' 역할이다.

지원이는 그 아이들과 어울렸다. 그러다가 2학기 들면서부터 괴롭힘이 시작되었다. 그 아이들의 괴롭힘은 신문지상을 오르내리는 무서운 10대의 극악무도한 행동들이 아니었다. 얼핏 사소하게 보이는 행동들이었다. 그러나 그 근본은 똑같다. 상대적으로 약한 사람에 대한 힘자랑과 분풀이를 통해 얻는 기분전환이다.

천만 다행히도 지원이는 괴롭힘의 패턴이 굳어지기 전에, 13살 소녀들의 악마성이 더 힘을 얻기 전에 무엇인가 잘못되어 간다는 다소 막연한 느낌을 엄마와 나누기로 용기를 내었다. 그만큼 엄마의 능력을 믿었기 때문이겠지만 그 능력 있는 엄마인 나는 그날, 살이 떨리는 내 마음부터 굳세게 다잡아야 했다.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야지.", "네가 어떻게 했길래 그 아이들이 네게 그런 행동을 하니?"와 같은 질문은 아이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다는 것쯤은 나도 알았다. 우선은 아이의 이야기를 차근차근 이끌었다. 처음에 아주 사소한 문제로 임지수가 지원이에게 화를 내었다고 한다. 지원이는 사이가 나빠질까봐 마음에도 없는 사과를 했다. 그런 일은 반복되었다. 아이들의 요구는 과도해져갔고 비난하고 모욕감을 주는 말들의 수위는 높아져 갔다. 

"왜 네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사과를 했어?"

지원이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잘 모르겠다고 말한다.13살 아이에게는 너무 어려운 일이다. 져주어서라도 함께 어울려 다니지 않으면 외톨이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성인에게도 참으로 가슴 아픈 성찰이다.

나는 묻는다.

"그 아이들과 계속 친구로 지내고 싶어?"

지원이는 대답한다.

"그 아이들 친구가 아니에요. 나를 내버려 뒀으면 좋겠어요. 혼자 다니는 건 얼마든지 괜찮아요."

아이가 이렇게 말하자 나는 마음이 놓인다.

"정말 혼자 밥 먹고, 반에서 아무하고도 말 안하는 것 괜찮겠어?"

내가 묻는다.

"응, 괜찮아요. 다른 반에 친구들 있는데요, 뭘. 쉬는 시간에 그 반에 가서 놀면 돼요. 아니면 그 왕따 남학생이랑 놀까?"

지원이는 농담까지 할 정도로 기운을 회복한다.

나는 다음날 담임 선생님과 면담을 했다. 사실 담임에게는 별다른 기대도 하지 않았다. 엄마가 나섰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알리는 전시효과를 노린 것이다. 그리고 임지수와 이혜진에게 전화를 했다. 내가 딸 아이의 교우 관계에 개입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고 마지막이었다.

"나 지원이 엄마야. 네가 우리 지원이 괴롭혔다고 하던데 맞니?"

그러면 아이는 당연히 안 그랬다고 한다.

"네가 우리 지원이에게 이런 말을 하고 이런 행동을 한 것 맞니?"

구체적인 행동을 예로 들면 아이는 답을 못한다. 자신이 한 말과 행동이 맞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괴롭히는 거야."

그리고 말한다. 앞으로 지켜보겠다며, 지원이는 내 딸이라며 전화를 끊었다. 지원이가 가장 걱정한 것은 고자질했다는 아이들의 비난이었다. 나는 수차 말했다.

"이건 고자질이 아니야. 너는 어른에게 알려야 할 것을 알린 거야. 당당하게 나가."

마음을 이렇게 먹어도 막상 힘의 균형이 무너진 관계에서 갑자기 안 하던 말을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나는 지원이와 역할극까지 한다. 다양한 상황에 대비하여 지원이가 자신을 괴롭히는 그 아이들에게 맞서는 연습을 시킨 것이다. 내가 임지수의 역할을 맡아 말한다.

"야, 너 엄마한테 일렀지?"

역할극인데도 아이는 눈을 깔며 변명에 급급하다. 이런 식으로 당했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팠다. 나는 아이가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그래, 말했다. 왜?"라며 소위 '세게' 나갈 수 있을 때까지 몇 번이고 이 역할극을 반복했다.

다음날 아침 지원이는 '화이팅'까지 하며 등교를 했다. 전쟁터에 나가는 용사를 응원하는 심정으로 난 기도까지 했더랬다. 그날 저녁 지원이는 눈빛을 빛내며 말한다.

"엄마, 연극 연습하기 잘했어요. 정말 아이들이 똑같이 말하더라구요. 내가 속으로 '아싸'라며 연습한 대로 말하니까 애들이 움찔 하더라구요. 그리고는 종일 나한테 아무 말도 않고 쳐다보지도 않았어요."

그리하여 마침내 지원이는 자유를 얻는다. 그 아이들은 두 번 다시 지원이를 괴롭히지 않았고 지원이는 꿋꿋하게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리고 그 일들을 기억에서 지웠다.

그 이후로 분기별 행사처럼 나는 딸 아이에게 묻는다. 괴롭히거나 힘들게 하는 아이들이 있는지. 그러면 지원이는 또 그 질문이냐는 듯 웃으며 없다고 말한다. 나는 다시 말한다. 조금이라도 이상하다 싶거나 괴롭히는 아이들 있으면 엄마에게 꼭 얘기해달라고. 그리고 묻는다.

"네가 혹시 학교에서 다른 아이들 괴롭히는 일 있어?"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없다고 한다. 그러면 나는 말한다.

"혹시나 지원이가 괴롭힌다며 힘들어 하는 아이들 있을지 모르니 잘 살펴봐야 해."

아이는 그러겠다고 말한다.

그 후 딸의 인간관계는 더 풍부해졌다

지금도 나는 지원이가 더 심한 괴롭힘을 당하기 전에 그 문제를 해결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역시 다행으로 여긴다. 13살 소녀들 안의 악마성이 더 커지기 전에 멈추도록 한 것을. 지원이를 괴롭혔던 13살 소녀, 임지수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도 4년이 지나서 SNS를 통해 지원이에게 메시지를 보내왔다.

할 이야기가 있다며, 꼭 전화해달라며 전화번호를 남겨놓았다. 지원이는 그 메시지조차 2년이 지난 며칠 전에야 나에게 보여주었다. 그것도 내가 그때의 이야기들을 슬며시 꺼내자 굳은 표정으로 보여준 것이다. 당연히 연락은 하지 않았고 할 생각도 없다며. 

그 일을 계기로 지원이는 마음 맞는 사람이 아니면 굳이 친구로 지낼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부당하다 싶으면 참고 넘어가는 대신 말을 했다. 정 아니다 싶으면 이러이러한 이유로 더 이상 너와 친구로 지낼 수 없다고 말할 줄도 알았다. 오히려 그 결과 지원이의 인간관계는 더 풍부해졌고 그 재능은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금 더욱 빛을 발한다. 그러나 사라진 13살 지원이의 기억은 영영 되찾을 길이 없다. 


태그:#집단 괴롭힘, #왕따, #따돌림, #13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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