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남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 직접 접시닦이와 부랑자가 되어 경험한 이야기.
 남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 직접 접시닦이와 부랑자가 되어 경험한 이야기.
ⓒ 삼우반

관련사진보기


노숙인을 포함한 빈민층은 어떻게 탄생하는 걸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의 천성이 게으른 탓이라고 생각할거다. 왜냐면 우리들 중 부랑자가 된 사람은 없으니까. 그런데 명문사립고에서 교육을 받고 소위 엘리트의 길을 걸을 수 있었던 한 남자는 직접 걸인의 삶을 살기로 마음먹는다.

그는 두 곳에서 하위계급의 인생을 경험한다. 파리에서는 '접시닦이'로, 런던에서는 '노숙인'으로 살아간다. 그냥 흉내만 낸 것 아니냐고? 장장 5년간의 세월동안 진짜가 돼 본 그는 속내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속사정을 밝힌다. 그 내용은 고스란히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이라는 책에 담긴다. 모두들 알다시피 그의 이름은 조지 오웰이다(<동물농장>과 <1984년>이라는 책을 남겼다).

접시닦이는 누구보다 부지런한 사람이다

사실 이건 1900년대 초반에 쓰인 책이기에 지금의 직업군이나 생활상과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현대에 적용해볼 수 있는 부분이 많다. 지금이야 접시닦이라는 직업은 존재하지 않지만 진입 장벽이 가장 낮은 단순 노동직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생각하면 된다. 1928년에 조지 오웰이 직접 경험한 접시닦이의 노동 강도는 어마어마했다.

오전 7시부터 오후 9시까지 14시간을 일하는데 정당한 휴게시간이나 식사시간은 없다(혹시나 10분이라는 시간을 밥 먹는데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면 식사시간이 있긴 하다). 이렇게 주 6일을 일하는데 누군가 결근을 하게 되면 자다가 끌려 나간다.

즉 잠을 자고 일을 하는 시간 외에는 자기시간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아침형 인간'이 되라거나 '자기계발'을 운운한다면 조용히 끌려갈지도 모른다. 이들이 이 생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딱 죽지 않을 정도의 임금을 받기 때문이다. 일을 쉬게 되거나 큰 병에 걸리면 굶게 되고 방세를 내지 못 해 길거리로 쫓겨나 노숙인이 된다. 이게 바로 조지 오웰이 경험한 메커니즘.

"내가 제기하는 문제는 왜 이런 생활이 없어지지 않는가, 이 생활은 어떤 목적에 봉사하고 누가 그리고 왜 이러한 생활이 계속되기를 원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의 일은 노예적이고 기술이 없다. 그는 딱 살아 있을 만큼을 보수로 받는다. 그의 유일한 휴일은 해고이다. 그는 결혼의 길이 막혀있고 만일 결혼을 한다면 그의 아내도 일해야만 한다. (중략) 이들을 게으르다고 말할 수는 없다. 게으른 사람은 접시닦이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생각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는 일상의 덫에 걸려든 것이다."

밥을 먹기 위해 행군하는 사람들

파리를 떠나 런던으로 건너 간 조지 오웰은 여비가 떨어져서 가지고 있던 옷을 팔았다. 그는 육체노동자에서 노숙인으로 변신하게 된다.

우선 가장 저렴한 숙박시설에 묵으면서 일자리를 알아보러 다닌다. 그 와중에 가지고 있던 여비가 바닥난다. 전당포로 가 옷가지를 맡기고 푼돈을 받아 며칠을 더 버틴다. 돈이 다 떨어져 거리로 나앉고 옷은 누더기가 된다. 부랑자 보호소에 가서 하룻밤을 지내고 내쫓긴다. 또 한 끼를 먹기 위해 다른 보호소를 향해 걷는다. 이 과정에서 완벽한 노숙인으로 거듭나 구직의 기회조차 잃는다.

그렇게 조지 오웰은 전국의 부랑자보호소 즉, 오늘날의 노숙인 쉼터를 떠돈다. 이건 상상하지도 못한 광경이었다. 그들은 헤진 옷과 구멍 난 신발을 신고 몇 킬로미터를 넘게 행군한다. 사실 이 과정을 묘사한 대목은 비참하지만은 않고 나름 재미도 있다. 그건 조지 오웰 특유의 유머가 묻어나기 때문이다. 어느 보호소가 나은 지 평가도 해놨다. 마치 미슐랭가이드처럼.

"부랑인은 위험한 인물이라고 하는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관념을 살펴보자. (중략) 부랑자 구호소 한 곳이 보통 하룻밤에 백 명의 부랑인을 받는데, 이들을 다루는 직원이 기껏해야 경비원 세 명이다. 또 모든 부랑인이 술꾼이라는 관념을 살펴보자. (중략) 술을 마시려는 부랑인이 많다는 것만은 의심할 수 없지만, 본질적으로 이들이 그럴 만한 기회를 얻을 수는 없다. (중략) 부랑인은 '건장한 걸인'이고 염치없는 사회적 기생충이라고 여기는 관념은 근거가 전혀 없지는 않지만, 그러한 사례는 불과 몇 퍼센트에게만 적용된다."

나 역시 선입견에서 자유롭다고 말할 수는 없다. 혼자 앉아있는데 와서 도와달라고 하면 사실 무섭다는 생각부터 드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이 최소한 왜 그렇게 됐는지는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도 않았으며,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사연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장소를 서울로 바꿔도 소름끼칠 정도로 잘 맞아떨어지는 현실. 우리가 직접 건네는 잔돈만으로는 그들의 삶을 바꿀 수 없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1903년에 태어난 조지 오웰이 던진 그 물음은 여전히 유효하다.

덧붙이는 글 | 저자 조지 오웰|역자 신창용|삼우반 |2008.06.23|페이지 291|판형 A5, 148*210mm|정가 8500원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조지 오웰 지음, 신창용 옮김, 삼우반(2008)


태그:#조지오웰, #파리와런던의밑바닥생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