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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독자 여러분 그리고 10만인클럽 회원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지난 6월 14일부터 23일까지 일본 순회강연을 마치고 6월 24일부터 7월 9일까지 북녘의 수양딸을 찾아 북한을 여행하고 돌아왔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성원으로 '제17회 한겨레통일문화상'을 받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새 연재 '수양딸 찾아 북한으로'를 통해 그사이 있었던 일을 전하려 합니다. - 기자 말

 오사카 코리아 타운
 오사카 코리아 타운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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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사카 코리아 타운
 오사카 코리아 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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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6월 18일)은 오사카로 향한다.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오사카의 코리아 타운. 상가에 들어서자 한국(조선)음식점들과 상점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 지역에는 민단·조총련 구분이 없다. 한데 어울려 장사를 하며 생계를 꾸려가는 내 동포들만 있을 뿐이다.

많은 일본 관광객들이 주말에 이곳을 찾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이곳은 일본 극우단체들의 반한(반조선) 시위 장소이기도 하다. 그들은 이곳에서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온갖 혐오스러운 말로 재일동포들을 저주한다. 오래전부터 노략질로 한반도를 괴롭히더니 임진왜란을 일으켜 우리의 국토를 유린하고, 지난 세기에는 불법 강점으로 민족 말살까지
꾀한 일본. 강제징용으로 끌려와 모진 노동에 시달린 분들의 후손들에게 퍼붓는 극우 일본인들의 저주는 듣는 이로 하여금 소름을 끼치게 만든다.

코리아타운에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찾은 곳은 오사카의 조선학교(우리학교)인 '히가시 오사카 조선중고급학교'. 교실을 돌며 학생들의 수업을 참관했다. 벅찬 감동이 밀려온다. '우리학교' 아이들의 수업을 참관할 때면 늘 솟구치는 흐뭇한 감정이다. 아이들의 수업을 참관한 뒤 강당에서 열리는 환영 공연에 참석했다. 공연이 끝나자 교장 선생님께서 우리 부부에게 한마디 해줄 것을 부탁한다.

'통일조국' 국민들과의 대화


남편은 학생들에게 "우리 말을 열심히 공부하여 민족의 얼을 지키라"는 말과 함께 "우리 말을 잘하면 영어 발음도 잘한다"라면서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줬다. '미국에 사는 재일동포 친구들 중 우리 말을 못하는 재일동포의 영어발음은 일본인과 마찬가지로 형편없지만 우리말을 할 줄 아는 재일동포의 영어 발음은 좋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남편이 '막구도나루도(맥도날드), 그란도 개녀누(그랜드캐년), 사쿠시혼(색소폰)' 등 일본인들의 영어발음을 흉내 내자 학생들이 박장대소한다.

중·고등학생인 이들은 남과 북의 문화를 모두 이해하고 있다. 케이팝(K-Pop)을 즐겨 부르기도 하고 한국드라마를 보기도 한다. 그리고 북한의 문화도 잘 알고 이해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 문화, 서양 문화까지도. '우리학교'의 재일동포 학생들과 말을 주고받노라면 마치 미래 통일 조국의 국민들과 대화를 나누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나는 스스로를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에 살면서 북한도 잘 이해하고 있는 한민족의 일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일본에서 우리 민족의 얼을 간직한 채 남과 북을 모두 아우르는, 게다가 국제적인 감각을 갖춘 진정한 미래 통일 조국 국민의 모습을 봤다. 바로 '우리학교'의 재일동포 학생들이다.

 오사카 강연 현장.
 오사카 강연 현장.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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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장에 도착하자 안내를 맡은 주최 측 스태프들이 황급히 나를 둘러싸고 장내로 안내한다. 한 30분 전쯤 오늘 강연을 저지하기 위해 10여 명의 시위대가 빌딩 문 앞까지 왔었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온 지 채 5분도 안 돼 시위 '인증샷'을 찍은 뒤 떠났단다. 어디론가 인증샷을 보내야 했던 걸까. 사진만 찍고 돌아가는 이런 시위는 처음이다.

강연장에 들어서자 관객들이 이미 자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 큰 강당이 가득 차 일부는 서 있다. 지금까지 일본에서 한 강연 중 가장 많은 관객들이 모인 듯하다. 나는 그들과 혼연일체가 되어 통일조국을 그려본다.

고베 우리학교 주변에 구두공장 많은 이유

 '니시 고베 조선초급학교' 주위에 재일동포들이 운영하는 구두공장들.
 '니시 고베 조선초급학교' 주위에 재일동포들이 운영하는 구두공장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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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20일, 일본에서의 마지막 강연을 위해 고베로 향한다. 20년 전 대지진으로 인해 무려 6000여 명이 사망하고 어마어마한 경제적 타격을 입은 곳. 당시 재일동포들이 운영하는 많은 공장들이 파괴됐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다.

고베에서도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우리학교'인 '니시 고베 조선초급학교'. 이제까지 가본 '우리학교'들과는 달리 학교 건물이 너무 낡아 마음이 아프다. 학교 주변에는 재일동포들이 운영하는 신발공장들이 많이 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듣자 문득 오래전 일본인 유학생과의 대화가 떠오른다.


그의 말에 의하면 일본에는 '에타' '히닌' 또는 '부락쿠민'(우리 말로 부락민)이라는 천민 계급이 존재하며 그들은 주로 보통 일본인들이 기피하는 직종에 종사한다고 한다. 그 직종이란 정육점·구둣가게 등 가죽을 다루는 일과 대나무 제품이나 밧줄을 만드는 일 등이란다. 언뜻 불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일본인들이 살생과 관계되는 일을 기피해서 그런가 생각했다. 그런데 밧줄을 만들거나 대나무를 다루는 작업은 왜 기피할까 의문이었다.

그나저나 아직도 일종의 천민 계급이 존재하고 있고 이들이 사회적 차별의 대상이라니…. 이런 일본을 두고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일본이야말로 후진국 중의 후진국 아닌가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어지는 일본 유학생의 말이 가관이었다.

소위 천민 계급보다 더 못한 사람들이 있으니 그들이 바로 코리안이란다. 수많은 야쿠자들이 사실은 코리안들이며 그들 폭력 조직은 고리대금업, 성매매, 마약 거래 등 많은 범죄를 저지른다는 설명이다. 아마도 그 일본 유학생은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순간 잊었던 모양이다. 나는 그에게 "나는 바로 너희들이 조센진이라 부르는 한국인이야(I am a Korean, or Chosenjin as you guys commonly call)"이라고 말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학생들의 점심식사를 준비하는 '니시 고베 조선초급학교' 학부형회.
 학생들의 점심식사를 준비하는 '니시 고베 조선초급학교' 학부형회.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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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우리학교' 주위에 구두 공장이 많이 있다는 설명을 듣곤 떠오른 일화다. 그 일본인 유학생의 말대로 일본인들이 기피한다는 구두 제조업을 우리 동포들이 많이 하시는 모양이다. 훌륭한 우리 동포들이다. 제도적·사회적 차별이 만연한 이런 일본땅에서 자신이 조선인임을 숨기기는커녕 떳떳이 '우리학교'를 세우고 아이들에게 '민족의 혼'을 심어주다니…. 그저 이분들 앞에서 숙연해질 뿐이다.

학교 참관을 마친 뒤 교장실에서 학부모들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남편이 질문을 던졌다.

"미국에서는 이런 '우리 학교'를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주말에 운영하는 한글학교가 있기는 하지만요. 미국은 적어도 소수민족에게 제도적 차별은 없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흑인이 대통령도 할 수 있는 나라입니다. 그러니 우리 한인들도 아이들이 어서 빨리 미국 사회에 동화돼 주류 사회로 진출하게끔 노력하지요.

'우리학교'를 세운다는 것은 생각도 못하는 일이며, 설사 있다고 해도 '우리학교'에 자녀를 보내려는 재미동포는 아마 거의 없을 겁니다. 질문이 있는데 혹시 일본에 미국과 마찬가지로 소수민족에 대한 법적·제도적 차별이 없다고 해도 자녀들을 '우리학교'에 보내실 건지요?"

그러자 한 학부모님께서 차분하게 답한다.

"정 선생님, 우리 자녀가 일본 총리대신이 된다고 해도 우리는 자녀들을 '우리학교'에 보낼 겁니다. 우리 아이들이 일본사회에 진출할 길이 없어 '우리학교'에 보내는 건 아닙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내 얼굴이 화끈거린다.

죽어서도 차별받는 '조센진'

 고베 강연 현장.
 고베 강연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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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의 마지막 강연. 연단 근처까지 좌석을 늘렸음에도 뒤쪽 통로까지 많은 관객들이 서서 경청한다. 때로는 웃기도 하고 때로는 눈물을 훌쩍인다. 강연을 마치고 연단을 내려오며 속삭인다.

"동포여, 사랑합니다. 언젠가 통일이 되면 조국에서 함께 만나 덩실덩실 춤을 춰요. 고통의 눈물이 아닌 환희의 눈물을 흘리면서."

 고베 대승사에서.
 고베 대승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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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베 대승사에서.
 고베 대승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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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의 모든 강연 일정을 마치고 도쿄로 다시 돌아가기 전 고베의 대승사라는 절에서 재일동포 여성들과 식사모임을 가졌다. 절의 주지 스님께서 이 절이 주택가에 세워진 유래를 말씀해 주신다. 돌아가신 재일동포분들의 유골을 모시고자 일본의 절을 찾으면,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고 한다. 그래서 고인들의 유골을 모시고자 이 절을 세웠단다. 울분이 치밀어 올라 숨이 턱 막힌다.

얼마나 많은 재일동포들이 부모님의 유골을 가슴에 안고 이 절 저 절을 찾아 길거리를 헤맸을까. 일본 불교는 일본인들만을 위한 부처를 모시는 종교란 말인가. 하기야 내가 믿는 기독교도 별반 다르지 않다. 종교의 자유를 찾아 아메리카 대륙을 찾았다던 유럽인들은 인디언이라 불렸던 원주민들을 무참히 학살했다. '기독교인이 아니면 영혼이 없고, 영혼이 없으면 인간이 아니고, 인간이 아니면 죽여도 좋다'는 그들에 대해 <국부론>을 쓴 애덤 스미스는 '기독교가 인디언 학살에 도덕적 재가를 제공했다'라고 써놨다.

목화 농장에서 채찍을 휘두르며 아프리카 사람들을 짐승 부리듯 다루고, 집에 돌아와서는 저녁상 앞에서 "오, 주여!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했던 이들과 '조선인의 유골을 일본인의 유골과 함께 둘 수 없다'는 일본 불교인들과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우리나라 기독교의 타락 수준도 이들을 능가한다. 몇몇 대형교회의 목사들은 '무당' 수준으로 전락했고,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은 가진 자, 힘 있는 자를 위한 '신령님'에 불과하다.

죽어서도 차별받는 '더러운 조센진의 유골'을 모시는 고베의 '우리 절'에서 교토의 으리으리한 '기요미수데라'(청수사)에서 보지 못한 극락을 본다.

이제 간다, 수양가족 찾아 북한으로

 조선대학 캠퍼스에서 리산옥 교수님(오른쪽)과 함께.
 조선대학 캠퍼스에서 리산옥 교수님(오른쪽)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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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일동포들의 유일한 대학인 '조선대학'에서의 강연.
 재일동포들의 유일한 대학인 '조선대학'에서의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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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23일. 드디어 수양딸 설경이와 설향이를 찾아 북한으로 가는 날이다. 공항으로 가기 전 재일동포들의 유일한 대학인 '조선대학'을 방문했다. 환영 인사차 나온 분들 중 한 분이 낯이 익었다. 그분은 2013년 9월 북한 여행 당시 만난 분이었다. 그분은 <오마이뉴스>에 연재한 첫 번째 기행문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를 읽었다며 반갑게 나를 대해주셨다.

당시 평양에서 함께 사진을 찍은 적이 있지만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분을 이곳에서 만나다니…. 그 누군가 '통일은 도둑같이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라 하더니만 이런 예기치 못한 만남을 두고 한 말인 걸까.

조선대학 교정을 둘러보고 학생들과 함께 기숙사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마친 뒤 강당으로 향했다. 교정에 남아있는 학생들이 모두 모였단다. 비행기 출발 시각에 쫓겨가며 이곳에서 예정에 없던 강연을 한다.

일본 순회 강연을 통해 나는 재일동포들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 특히 우리가 반국가단체로 알고 있는 조총련에 대해서도 말이다. 한때 청와대에 근무하면서 대북 정책을 담당했고, 지금은 대학에서 북한학을 연구하는 한 교수는 북한에 대한 우리의 편견과 무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북한은 없다"라고. 나는 여기에 덧붙여 말하고 싶다. "우리가 알고 있는 조총련은 없다."

 나리타 공항에서 심양행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며 미국의 아이들과 대화하는 나.
 나리타 공항에서 심양행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며 미국의 아이들과 대화하는 나.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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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대학'을 떠난 우리는 서둘러 나리타 공항으로 향한다. 열흘 내내 함께했던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과 제대로 작별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헤어졌다. 늦은 밤 중국 심양에 도착한 남편과 나는 칠보산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칠보산 호텔은 북한이 해외에서 운영하는 유일한 호텔이었으나 지금은 중국 기업이 소유권을 갖고 있다고 한다.

침대에 누우니 그동안 쌓였던 긴장이 풀리면서 왼팔 마비로 인한 통증이 심하게 느껴진다. 평양의 수양딸들과 수양조카를 만날 생각에 잠이 오지 않는다. 둘째 수양딸 설향이가 편지에 결혼했다고 적어놨는데, 어쩌면 지금쯤 임신 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 순회 강연으로 인해 짐을 최대한으로 줄이려고 북한의 수양가족들에게 줄 선물을 많이 준비하지 못한 게 내내 마음에 걸린다.

느지막이 일어나 아침 겸 점심을 먹는다. 남편은 아침부터 해삼냉채와 냉면을 먹겠단다.
"아침부터 무슨 냉면이냐, 평양에 가면 곧 먹을 텐데 죽을 들라"고 말했지만 남편은 도저히 못 참겠다며 기어이 주문한다. "냉면맛이 평양과 아주 흡사하다"라고 종업원에게 말하자 요리사를 비롯한 모든 직원들이 북에서 왔다고 답한다. 곁들여 주문한 김치가 일품이다. 북한동포들의 표현을 빌리지만, "쩡"한 느낌이 입안에서 요동친다. 이미 마음은 평양에 가 있다.

여행사 직원을 호텔 로비에서 만났다. 북한 비자와 비행기표를 건네받고 그의 차에 올라 공항으로 향한다. 공항에는 우리와 함께 동행할 한 재미동포 교수가 기다리고 있다. 북한역사를 전공하는 그 교수(박 교수)는 지난겨울 함께 북한을 방문하기로 돼 있었으나 에볼라로 인해 북한이 해외관광객 입국을 금지하는 바람에 이번에야 방문하게 됐다.

고려항공 카운터에서 짐을 부치고 탑승구에 가니 비행기가 연착이란다. 중국 공항에서 평양행 고려항공이 연착되는 건 처음이다. 비행기 연착이란 흔히 있는 일임에도 조금 마음이 초조해진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조용히 눈을 감는다.

2014년 겨울, 서울에서 있었던 일들이 머릿속을 스친다. 무시무시한 종북몰이. 왜 일부 언론은 내가 하지도 않은 말을 만들어 허위보도를 일삼았는지…. 아무리 충격적인 뉴스도 1주일을 잘 넘기지 않는데, 거의 두 달이나 지속됐다. 나는 지금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

탑승을 시작한다는 안내방송이 들린다. 손가방을 들고 말없이 일어서 바닥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탑승구로 향한다.

 심양공항의 고려항공 탑승구.
 심양공항의 고려항공 탑승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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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김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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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음대 졸업.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 음악박사. 전직 성악교수 이며 크리스찬 입니다. 국적은 미국이며 현재 켈리포니아에 살고 있습니다. 2011년 10월 첫 북한여행 이후 모두 9차례에 걸쳐 약 120여 일간 북한 전역을 여행하며 느끼고 경험한 것들 그리고 북한여행 중 찍은 수만 장의 사진들을 오마이뉴스와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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