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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한여름에 틀던 선풍기는 선풍기이면서 아이들 놀잇감이 되어 주었습니다. 가만히 보면, 아이들한테는 무엇이든 놀잇감이고, 무엇이든 놀잇감으로 삼아서 웃는 아이들은 언제나 멋진 모델입니다.
 한여름에 틀던 선풍기는 선풍기이면서 아이들 놀잇감이 되어 주었습니다. 가만히 보면, 아이들한테는 무엇이든 놀잇감이고, 무엇이든 놀잇감으로 삼아서 웃는 아이들은 언제나 멋진 모델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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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풍키 슈풍키

'슈풍키(선풍기)'가 돌아갑니다. 다섯 살 어린이한테는 아직 '슈풍키'입니다. 여덟 살 누나가 "슈풍키가 아니고 선풍기야." 하고 알려주어도 다섯 살 어린이는 그저 '슈풍키'입니다. 슈풍키에 바람개비를 대고 돌립니다. 마당에서 달리지 않아도 입으로 바람을 일으키지 않아도, 바람개비는 슈풍키가 신나게 돌려 줍니다. 글씨를 읽을 줄 몰라도 어느 단추를 누르면 켜거나 끄는지를 알기에 놀이돌이는 아침부터 슈풍키 놀이를 하면서 신이 납니다. 나는 신나는 아이 옆에 가만히 서서 아침부터 재미난 노래와 이야기를 누립니다.

함께 마실을 다닐라치면, 언제나 아버지를 뒤에 멀리 두고 앞장서서 달리는 아이들입니다. 뒤에 처지며 쳇쳇거리다가도 저만치 앞장서서 달리는 아이들 뒷모습이 예뻐서 사진기를 손에 들 수밖에 없습니다.
 함께 마실을 다닐라치면, 언제나 아버지를 뒤에 멀리 두고 앞장서서 달리는 아이들입니다. 뒤에 처지며 쳇쳇거리다가도 저만치 앞장서서 달리는 아이들 뒷모습이 예뻐서 사진기를 손에 들 수밖에 없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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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저 멀리 달려

맨몸으로 함께 달리면 아이들을 따라잡기는 수월합니다. 짐을 든 몸으로 아이들하고 함께 걷다 보면 언제나 아이들이 저 멀리 사라지려 합니다. 두 아이는 함께 달립니다. 두 아이는 저 앞에서 달리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고는 "저기 아버지가 개미만 하네."라든지 "저기 아버지가 장난감 같아." 같은 말을 외치면서 깔깔깔 웃습니다. 이러다가 "우리, 아버지한테 달려가 볼까?" 하며 쪼르르 달려오다가 "와, 이제 커졌다!" 하면서 다시 뒤돌아서서 둘이 함께 저 멀리 달립니다. 나는 아이들이 사라지려고 하는 오르막을 바라보다가, 이 오르막 들길하고 맞닿은 하늘을 올려다보고, 먼 멧줄기와 짙푸른 들판을 돌아봅니다.

시골 어르신들은 나이 들어 농약을 손수 칠 수 없으면서, '농약 없는 시골살이'가 아니라 '돈으로 농약헬기를 사서 띄우는 농업'으로 바뀝니다. 농약헬기가 뜨는 날은 창문도 대문도 꼭꼭 닫고 집안에 숨거나 아예 먼 다른 마을로 떠납니다.
 시골 어르신들은 나이 들어 농약을 손수 칠 수 없으면서, '농약 없는 시골살이'가 아니라 '돈으로 농약헬기를 사서 띄우는 농업'으로 바뀝니다. 농약헬기가 뜨는 날은 창문도 대문도 꼭꼭 닫고 집안에 숨거나 아예 먼 다른 마을로 떠납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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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약 헬리콥터

이른새벽부터 윙윙 소리가 납니다. 문을 모두 닫아도 들리는 소리에 마루문을 열고 바깥을 내다봅니다. 꿉꿉한 냄새가 물씬 퍼집니다. 아 그렇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농약을 뿌리는 헬리콥터가 마을논에 떴습니다. 마을 할배가 호스로 농약을 뿌릴 적에도 바람을 타고 우리 집 마당으로 농약이 스미지만, 헬리콥터가 뜨면 농약바람은 지붕까지 타넘습니다. 안내방송 없이 '친환경농약'조차 아닌 '아주 센 농약'을 헬리콥터로 뿌립니다. 친환경농약을 칠 적에는 장독 뚜껑도 창문도 모조리 닫고 바깥마실도 다니지 말라고 안내방송을 했는데, '아주 센 농약'을 아무 말 없이 뿌리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다가 사진 한 장 찍어서 남깁니다.

아버지는 빨래터 물이끼를 걷고, 두 아이는 깨끗해진 빨래터에서 놀고. 그저 신나고 재미난 하루입니다.
 아버지는 빨래터 물이끼를 걷고, 두 아이는 깨끗해진 빨래터에서 놀고. 그저 신나고 재미난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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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터 2
 빨래터 2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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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터 3
 빨래터 3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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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터는 놀이터

빨래터에 물이끼를 걷으러 가면 아이들은 곧 물놀이를 하겠구나 하고 여기면서 기뻐합니다. 두 아이는 아직 빨래터에서 물이끼 걷는 일을 크게 거들지 못합니다. 나는 빨래터에서 아이들더러 여기를 밀라느니 저기를 쓸라느니 하고 시키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아버지가 빨래터에 낀 물이끼를 걷는 동안 요리조리 달리거나 샘가에서 물을 튀기다가 빨래터 치우기를 마치면 비로소 빨래터에 뛰어들어 온몸을 적시면서 놉니다. 한여름 더위를 식히면서 노는 빨래터이고, 한겨울에도 두 아이는 서로 물을 튀기면서 옷을 흠뻑 적십니다. 아마 먼먼 옛날에도 빨래터는 어른들 일터이자 아이들 놀이터로 오랫동안 예쁜 삶자리였을 테지요.

나들이를 갈 적에 먼저 신을 꿰고 마당에 내려서려는 아이들. 그래, 너희가 늘 앞에 서서 길을 열어 주렴.
 나들이를 갈 적에 먼저 신을 꿰고 마당에 내려서려는 아이들. 그래, 너희가 늘 앞에 서서 길을 열어 주렴.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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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늘 삶이네

아이들한테 마실을 가자고 이야기합니다. 두 아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마루문을 나서며 섬돌에 서서 발에 신을 뀁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다가 문득 몇 가지가 떠오릅니다. 가장 멋지며 아름다운 사진기가 있다면 바로 '눈'이요, 가장 멋지며 아름다운 필름이나 메모리카드가 있다면 바로 '머리'이고, 가장 멋지며 아름다운 빛이 있다면 바로 '마음'이며, 가장 멋지며 아름다운 어둠이 있다면 '말(이야기)'이고, 가장 멋지며 아름다운 모델이 있다면 바로 '노래'이니, 사진은 늘 기쁘게 흐르는 '삶'이로구나 싶습니다. 내 눈으로 바라본 모습을 내 마음을 움직여서 내 머리에 담으며 내 이야기가 되니 내 노래가 흘러서 내 삶이 됩니다.

옥수수를 심고 싶은 큰아이는 손수 옥수수를 심은 뒤, 싹이 트는 모습을 꾸준하게 그림으로 그립니다. 지켜보고 다시 보고 새로 보는 동안 옥수수싹이 다른 풀싹하고 다른 줄 스스로 깨달을 테지요.
 옥수수를 심고 싶은 큰아이는 손수 옥수수를 심은 뒤, 싹이 트는 모습을 꾸준하게 그림으로 그립니다. 지켜보고 다시 보고 새로 보는 동안 옥수수싹이 다른 풀싹하고 다른 줄 스스로 깨달을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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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옥수수싹

옥수수씨를 불려서 심습니다. 옥수수씨에 싹이 틉니다. 큰아이하고 함께 새싹을 지켜보면서 그림을 그립니다. 날마다 무럭무럭 자라는 싹을 보고, 줄기를 보며, 잎을 봅니다. 곁에 앉아서 풀내음을 맡고 흙내음을 들이켭니다. 곁에 앉아서 햇볕을 함께 쬐고 바람을 나란히 마십니다. 곁에서 지켜보면서 아끼는 마음이 되기에 그림을 그립니다. 아이는 옥수수싹 곁에 앉아서 사랑을 두 손에 실어 그림을 그리고, 나는 아이 곁에 서서 사랑을 두 손에 모아 사진을 찍습니다. 작은 옥수수싹은 아이와 나 사이를 한결 따스히 이어 주는 징검다리가 됩니다.

물결 뛰넘는 놀이는 아이여도 어른이어도 언제나 재미납니다. 옷 젖을 생각이나 걱정은 내려놓고 그저 놀면 돼요. 사진도 그저 그냥 찍으면 되고요.
 물결 뛰넘는 놀이는 아이여도 어른이어도 언제나 재미납니다. 옷 젖을 생각이나 걱정은 내려놓고 그저 놀면 돼요. 사진도 그저 그냥 찍으면 되고요.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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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결놀이 2
 물결놀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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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결 뛰어넘기

물결이 밀려듭니다. 놀이순이는 물결이 어떻게 밀려드는가를 가만히 살핀 뒤, 커다란 물결이 가까이 다가오면 껑충 뛰어오릅니다. 멋져, 훌륭해, 하고 외쳐 줍니다. 놀이순이는 지치지 않고 다시 뛰어오르고 또 뛰어올라요. 다섯 살 동생은 누나처럼 뛰어오르지 못합니다. 그저 물결을 온몸으로 맞으면서 비틀거리면서 까르르 웃습니다. 아이들은 즐겁게 놀고, 나는 아이들 곁에서 즐겁게 놀듯이 사진을 찍습니다. 물결도 예쁜 몸짓도 하늘도 숲도 고이 어우러진 바닷가에서 우리 하루 이야기가 새롭게 자랍니다.

한 해에 꼭 하루만 볼 수 있는 모습이란 무엇일까요? 나락꽃도 한 해에 꼭 한 번뿐이지만, 우리 삶을 이루는 모든 모습도 언제나 늘 꼭 한 번뿐입니다. 날마다 새롭게 찾아드는 꼭 한 번 누리는 삶을 기쁘게 맞이합니다.
 한 해에 꼭 하루만 볼 수 있는 모습이란 무엇일까요? 나락꽃도 한 해에 꼭 한 번뿐이지만, 우리 삶을 이루는 모든 모습도 언제나 늘 꼭 한 번뿐입니다. 날마다 새롭게 찾아드는 꼭 한 번 누리는 삶을 기쁘게 맞이합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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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락꽃이랑

석 달 동안 분홍 꽃송이가 찬찬히 터지면서 꽃내음을 퍼뜨리는 배롱나무가 있다면, 이른새벽에 피어서 아침에 지는 나락꽃이 있습니다. 봄이면 벚꽃잔치라든지 매화꽃잔치를 하는 곳이 많은데, 나락꽃잔치를 하는 곳은 없습니다. 나락꽃은 벚꽃이나 매화꽃이나 장미꽃처럼 큼직하고 알록달록한 꽃이 아니기에 꽃잔치를 안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늘 먹는 밥이 되어 주는 쌀알이 '나락'일 적에 '꽃'이 피는 줄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으리라 느낍니다. 나락꽃은 오직 시골사람만 흐뭇하게 바라보는 꽃이라고 할 만합니다. 우리 집 논이 아니어도 나락꽃은 반갑습니다. 골골샅샅 모든 나락꽃이 고요히 피고 지면서 들판이 차근차근 누렇게 익습니다.

아이들이 뛰놀기를 그치고 책읽기로 접어들면, 온 집안은 어느새 모든 소리가 사라지면서 고요합니다. 고요한 바람이 어쩐지 낯설어 아이들 뒤에 살그머니 서 봅니다.
 아이들이 뛰놀기를 그치고 책읽기로 접어들면, 온 집안은 어느새 모든 소리가 사라지면서 고요합니다. 고요한 바람이 어쩐지 낯설어 아이들 뒤에 살그머니 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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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책읽기

문득 온 집안이 조용합니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가 싶도록 조용해서 궁금합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우리 집에는 놀이순이와 놀이돌이가 있는 터라, 새벽부터 저녁까지 아주 짧은 동안조차 조용할 겨를이 없기 때문입니다. '노는 어린이' 둘은 그야말로 온갖 놀이를 다 하면서 떠들고 웃고 다투고 뒹굴고 뛰고 달립니다. 그런데 이런 놀이둥이가 아뭇소리 없이 조용할 때가 있으니, 잠이 들 때하고 책을 손에 쥘 때입니다. 아이들이 잠이 들면 참으로 조용하네 싶고, 아이들이 책을 보면 조용한 기운하고는 사뭇 다른, 여러모로 고요하면서 온 우주가 깨어나는 듯한 느낌입니다. 이야기에 빠져들어 책하고 한마음이 된 고요한 아이들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아이들 눈빛이 반짝반짝 빛나는 한때는 하루 내내 언제나 있기에, 하루 내내 함께 지내면서 재미난 사진을 고맙게 얻습니다.
 아이들 눈빛이 반짝반짝 빛나는 한때는 하루 내내 언제나 있기에, 하루 내내 함께 지내면서 재미난 사진을 고맙게 얻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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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가 쫀 무화과

우리 집 나무한테서 얻는 열매는 꼭 제철에만 맛봅니다. 처음 열매를 얻고 마지막 열매를 얻을 때까지는 열매가 나무에 대롱대롱 달려서 날마다 천천히 익는 줄 알아채는데, 마지막 열매를 먹은 뒤 새로 한 해를 기다리기까지는 아이들이 이 열매를 까맣게 잊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제철에 제철 열매를 떠올리며 맛보고, 또 마지막 열매를 먹은 뒤에는 다시 한 해 동안 잊을 테지요. 아이들이 따먹기 앞서 새가 먼저 쪼아먹은 무화과를 땁니다. 멧새도 무화과알이 맛있는 줄 알고 쪼아먹을 테지요. 얘들아, 새가 쪼아먹는 열매치고 맛없는 열매란 없단다. 우리는 예쁜 새하고 열매를 나눠 먹는 아름다운 사이로 이 시골집에서 함께 살지.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글쓴이 누리사랑방(http://blog.naver.com/hbooklove)에도 함께 올립니다.



태그:#사진노래, #삶노래, #시골노래, #사진 이야기, #사진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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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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