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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텐부르크 성곽 밖에 버스를 세우다

고속도로에서 바라 본 뷔르츠부르크
 고속도로에서 바라 본 뷔르츠부르크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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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푸르트를 떠난 버스는 E42번 고속도로를 따라 뷔르츠부르크(Würzburg)로 향한다. 이곳 뷔르츠부르크에서 우리는 낭만의 도로(Romantische Strasse)를 따라 퓌센(Füssen)까지 가려 한다. 낭만의 도로는 말 그대로 마인강에서 알프스까지 이어지는 낭만적인 도로다. 이 도로는 마인강변의 뷔르츠부르크에서 시작, 알프스 산록의 퓌센에서 끝난다.

길은 독일 중부에서 남부로 가면서 마인강, 도나우강, 레흐강을 지나간다. 이들 강변을 따라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이 많아 볼거리가 많다. 그러므로 낭만의 도로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자연을 즐기고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이 길 주변에는 또한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다. 그리고 옛날 전통과 생활풍속이 그대로 남아 있어 산 역사 교육장으로 여겨지고 있다.

성곽에서 바라 본 로텐부르크
 성곽에서 바라 본 로텐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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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는 마인강을 왔다 갔다 하면서 뷔르츠부르크에 이른다. 이곳에서 고속도로는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E43번으로 이어지고, 약 100㎞쯤 달리자 로텐부르크(Rothenburg ob der Tauber)로 빠진다. 로텐부르크는 말 그대로 빨간 지붕을 가진 성곽 도시다. 로텐부르크는 타우버 강가에 받달된 소도시로, 도시를 2.5㎞의 성곽이 둘러싸고 있다.

성곽은 1350년에서 1380년 사이에 축조되었고, 1631년 30년 전쟁 때 가톨릭 측 장군인 틸리 백작(Graf von Tilly)에게 점령 당했으나 파괴를 면할 수 있었다. 로텐부르크 성곽과 도시가 크게 훼손된 것은 1945년 3월이다. 연합군의 폭격으로 로텐부르크시의 45%가 파괴되었다. 그러나 전후 고증을 거쳐 원형대로 복원되었고, 현재는 독일에서 중세의 모습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도시가 되었다.  

골목길을 따라 시장 광장으로

지버탑 가는 길
 지버탑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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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 밖 동남쪽 주차장에서 버스를 내린 우리는 슈피탈 성문(Spitaltor) 북쪽 암문을 통해 슈피탈 거리로 들어간다. 슈피탈 거리는 성곽의 남쪽에서 시장 광장으로 이어지는 도로의 일부다. 이 거리는 북쪽으로 이어지다 지버탑(Siebersturm)에서 끝난다. 이 길 좌우에는 벽돌 또는 회벽으로 지은 3층 정도의 전통 가옥이 이어진다.  그러니까 지버탑은 성곽 안에 있는 중성문(中城門)에 해당한다.

지버탑을 지나면 길은 대장장이 거리인 슈미트가세(Schmiedgasse)로 이어진다. 거리 이름으로 봐서 길 주변에 대장장이들이 많이 살았던 것 같다. 그래선지 이곳 건물에는 쇠로 만든 장식품들이 많이 달려 있다. 독일 사람들은 간판 대신 이런 쇠장식으로 자기 가게의 특성을 알리는 경향이 있다. 술집은 포도송이를, 골든 히르쉬(Goldener Hirsch) 여관은 황금사슴을, 카페 겸 레스토랑은 간판 주변에 금도금 장식을 하고 있다.

간판장식이 두드러진 슈미트 거리
 간판장식이 두드러진 슈미트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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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슈미트가세부터는 보행자 전용지역이다. 그래선지 사람들이 점점 많아진다. 주변 가게들도 장사가 잘 되는 것 같다. 이 거리의 북쪽 끝에 시장광장이 있다. 시장광장은 로텐부르크 시내의 중심으로 이곳에 시청이 있다. 이곳에서 동쪽으로 가면 동문인 뢰더문(Rödertor)이 있고, 서쪽으로 가면 서문인 부르크문(Burgtor)이 있다.

시장광장에서 만난 즐거운 일들

시장광장으로 나오니 주위가 확 트인 게 시원하기 이를 데 없다. 지금까지 우리가 골목길을 다니면서 좁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광장이 더 시원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시장광장에는 시청, 시청 술집, 게오르크 분수, 전통적인 목조 뼈대집, 프란시스코 교회가 있다. 나는 그 중 가까운 곳에 있는 게오르크 분수를 먼저 살펴본다.

르네상스 양식의 조형물
 르네상스 양식의 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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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게오르크가 용을 퇴치하는 모습이다. 이 분수는 1446년 처음 만들어졌고, 1608년 르네상스 스타일로 전면 개조되었다. 분수에서 멀지 않은 곳에, 코린트식 석주 위에 여인이 하나 서서 거울을 들고 있다. 이것도 분수인지는 모르나 예술성이 대단하다. 분수 뒤에는 유명한 목조 뼈대집 두 채가 있다. 한 채는 정육점이고 다른 한 채는 사냥꾼의 집이다. 정육점 2층에는 댄스 홀이 있었다고 한다.

서양에서 정육업자는 돈 잘 버는 좋은 직업이었다. 인간의 욕구인 식욕을 충족시켜주는 데 육류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육점이 시내 중심부 가장 요지에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정육업자가 가축을 취급했다면, 사냥꾼은 산짐승과 들짐승을 사냥해 팔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곳에 오면 최고의 육류를 살 수 있었다. 그리고 이곳을 찾는 사람은 부자나 지위가 높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목조 뼈대집: 정육점과 사냥꾼의 집
 목조 뼈대집: 정육점과 사냥꾼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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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광장에서 가장 큰 건물이 시청이다. 시청은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으로 이루어진 복합건물이다. 현재 황제의 방이 있는 중심건물이 14/15세기 고딕식으로 지어졌다. 이 건물에는 탑이 있는데 높이가 60m로 올라갈 수 있다. 1572~78년에 그 앞으로 르네상스식 건물이 지어졌고, 1681년에는 시장광장 쪽으로 바로크식 아케이드가 덧붙여졌다. 고딕과 르네상스 건물 사이에는 마당이 있다. 이곳 시청에는 호주가(好酒家: Der Meistertrunk) 전설이 얽혀 있다.

30년 전쟁이 한창이던 1631년 틸리 장군이 지휘하는 6만의 구교 군대가 신교 도시인 로텐부르크를 점령했다. 틸리 장군이 이틀 동안 시청에 머물고 있을 때 시장인 누쉬(Georg Nusch)가 틸리 장군을 찾아가 술내기를 했다고 한다. 틸리 장군은 시장에게 3.25ℓ 짜리 와인을 단숨에 마시면 도시를 파괴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한다. 시장은 이에 따라 와인을 단숨에 마셨고, 도시를 구해냈다는 이야기다.

로텐부르크 시청
 로텐부르크 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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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사건을 기념해서 1881년부터 성령강림절에 <호주가>라는 연극이 매년 공연되고 있다. 연극은 실제 사건의 장소인 시청 '황제의 방'에서 공연된다. 그리고 2~3일 동안 축제 행사가 계속된다. 이 연극은 가을에도 두 번 더 공연된다. 시청을 구경하고 나오니 광장에서 젊은 연주자들이 공연을 한다. 바이올린, 기타, 클라리넷으로 이루어진 삼중주다. 그들이 연주하는 곡은 경쾌하고 빠르다. 곡 이름을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옷차림이나 헤어 스타일, 연주하는 모습이 천상 예술가다.

성 야곱교회에서 만난 리멘슈나이더의 조각 

성 야곱교회
 성 야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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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을 보고 나서 우리는 성 야곱교회로 간다. 그곳에 로텐부르크 최고의 예술품 성혈제대(Heilig-Blut-Altar)가 있기 때문이다. 성 야곱교회는 1300년대 지어진 고딕식 교회다. 그러나 종교개혁 후인 1544년 개신교회가 되었다. 2011년 리노베이션을 거쳐 새로운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성 야곱교회는 성혈 제대 외에 중앙 제대인 12사도 제대, 마리아 제대를 갖고 있다. 그리고 중앙 제대 뒤 스테인드글라스와 현대식 오르간이 유명하다.

성 야곱교회를 바깥에서 보면, 두 개의 고딕식 첨탑이 두드러져 보인다. 입구는 남쪽에 있다. 교회 안으로 들어가면 2층 합창대석 앞으로 해서 북쪽 창문 옆으로 난 통로를 따라 마리아 제대에 이르게 된다. 마리아 제대에는 왕관을 쓰는 마리아, 죽음을 맞이한 마리아가 표현되어 있다. 마리아 제대는 1520년에 리멘슈나이더(Tilman Riemenschneider)의 제자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중앙 제대
 중앙 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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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을 지나 교회 중앙으로 가면 중앙제대가 있다. 이 제대는 1466년 슈바벤 장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운데 위쪽에 십자가에서 수난을 당하는 예수가 조각되어 있다. 이들 주위로는 네 천사가 날고 있다. 그 아래로 6명의 성인이 이를 슬퍼하고 있다. 이들 여섯 명은 엘리자베트, 야곱, 마리아, 요한, 레온하르트, 안토니우스라고 한다. 이들이 조각이라면, 제대 좌우와 아래쪽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림은 헤를린(Friedrich Herlin)이 그렸다고 한다.

이제 가장 중요한 제대 하나만 남았다. 2층 합창대석 서쪽에 있는 성혈제대다. 이것은 로텐부르크 의회의 주문으로 1499~1505년 리멘슈나이더에 의해 만들어졌다. 리멘슈나이더는 뷔르츠부르크 출신의 조각가로 후기 고딕시대를 살았다. 그는 프랑켄과 바이에른 지역의 교회에 종교적인 작품을 많이 남겼다. 제대에 마리아와 예수를 가장 많이 조각했고, 성인과 성경 속 인물도 조각했다.

성혈제대의 최후의 만찬
 성혈제대의 최후의 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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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혈제대의 중심에는 최후의 만찬이 표현되어 있다. 가운데 예수가 있고, 왼쪽으로 유다가 예수를 바라보고 있다. 예수와 유다 사이에는 요한이 머리를 숙이고 엎드려 있다. 예수의 오른쪽에는 다섯 명의 사도가 있고, 왼쪽에는 일곱 명의 사도가 있다. 얼굴 표정과 머리 모양, 옷주름 등이 아주 정교하고 세밀하게 표현되어 있다. 수작임에 틀림없다.

제대의 좌우에는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예수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는 예수가 조각되어 있다. 그러니까 죽음을 예감하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최후의 만찬을 하고, 마지막으로 감람산 아래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를 올리는 것이다. 이것은 성경에 나오는 예수의 행적이다. 겟세마네 동산에 따라간 제자가 베드로와 제베대오의 두 아들이다. 예수가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리는 동안 이들 세 제자는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그리고 문과 담에서는 신도와 로마 군인이 지켜보고 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는 예수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는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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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표현된 것은 인간 소망이신 예수가 아니라, 고통의 예수, 피의 예수다. 그래서 모든 인물의 표정이 우울하고 절망적이다. 나도 덩달아 우울해진다. 여행을 하면서 가는 성당과 교회마다 보는 게 예수인데, 그것도 죽음의 예수인데 질리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이들을 종교적인 대상이 아닌 예술적인 대상으로 보기 때문이다. 고통과 피 그리고 죽음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고, 심지어는 추함 속에서도 즐거움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추미학(Ästhetik des Häβlichen)이라고 부른다.


태그:#로텐부르크, #시장광장, #시청 , #성 야곱교회, #성혈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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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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