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반빈곤권리장전>(아래 '권리장전')은 2015년 6월 29일부터 7월 10일까지 약 2주간 서울, 경기 곳곳에서 벌어지는 도시빈민에 대한 탄압 양상에 대해 조사하고, 도시빈민의 권리목록을 작성하여 발표하고자 모인 실천단입니다.

<권리장전>에는 약 130여 명의 대학생들이 참가하여 가든파이브, 철거민(돈의문, 서소문, 염리동, 노점상(DDP, 삼양동, 수유시장, 미아삼거리), 임차상인(만복, 보용만두, 신신원 등), 쪽방 주민(동자동), 홈리스(서울역, 홈리스행동)들을 만나 개별 면접조사 및 간담회 등을 통해 조사를 진행하였습니다.

본 글은 조사에 참가한 대학생들이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보고, 느끼고, 들은 바들을 많은 이들과 함께 나누고자 연속 르포 형태로 기고될 예정입니다. 각 지역에 대한 조사보고서 및 종합보고서는 빈곤사회연대 홈페이지 문서 자료실에 업로드 되어 있습니다. '길 위의 삶, 노점상을 만나다'는 면접조사를 통해 들어본 노점상들의 목소리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고민이 게재될 예정입니다. - 기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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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반빈곤권리장전 대원들이 노점상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2015반빈곤권리장전	관련사진보기

반(反)빈곤권리장전에서 '노점상'을 하시는 분들에 대해 면접조사를 해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처음 들었던 생각은 역설적이었다.

'아, 내가 노점상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구나.'

고등학교 때 주변 노점상에서 가끔 닭꼬치나 어묵, 핫바 등을 사 먹긴 했지만 배고프고 바빠서인지 '천 원짜리 음식을 사서 먹는 곳' 이상의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더군다나 요즘에는 떡볶이나 순대를 파는 분식집조차도 프랜차이즈화되어서, 흔히 노점상 하면 가장 많이 떠올랐던 분식 노점상조차 사라지고 있었다.

노점상에 대해서 머릿속에 마인드맵 그리듯이 떠올리니, '불법', '비위생적', '미관을 해치는'과 같은 단어들이 떠올랐다.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나와 마찬가지로, 대다수 사람은 노점상을 '세금을 안 내고 장사하는 사람들'로 인식하고 있었고 포털사이트 댓글만 뒤져봐도 이러한 논리로 노점상을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또한, 노점상이 비위생적이며 도시의 미관을 해치고 있다는 생각 또한 나 이외도 많은 사람이 하는 것이었다.

직접 만난 노점상, 편견이 깨지다

이런 편견을 가지고 조원들과 함께 6월 29일, 전국노점상총연합(아래 전노련)의 협조를 받아 삼양동 노점상분들이 어떻게 생활하시는지 듣게 되었다. 삼양동 시장 내부에 있는 총 21개의 노점이 우리의 면접 대상이었다. 날은 조금 더웠던 걸로 기억한다. 전노련 사무실이 있는 창동역에서 삼양동 시장 인근에 있는 미아사거리 역까지 가는 전철 안에서 조원 모두가 앉기를 포기하고 서서 에어컨 바람을 쐬는 것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삼양동 시장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놀랐던 것은 노점상 형태가 내가 생각하던 '떡볶이 등의 분식을 파는 포장마차'와 조금 달랐다는 것이다. 형태가 파라솔과 의자만 있는 형태의 노점상도 있었고, 파는 품목도 분식에서 뻥튀기 류의 과자, 멸치 및 건어물, 잡곡 등으로 다양했다. 기존에는 그냥 '재래시장의 일부', 그러니까 단순히 가게 중 하나로만 생각했던 점포들도 사실은 노점상이었다.

처음 인터뷰한 할머니께서 바로 파라솔과 의자만 있는 형태의 노점상을 하고 계셨다. 파라솔 그늘과 햇빛의 경계선에 걸쳐 있는 비닐봉지에는 멸치가 가득 담겨 있었다. "할머니 잠시 노점상 하시면서 어떻게 살고 계시는지 조사 좀 할 수 있을까요?"라고 내가 운을 떼자, "노점상 못하게 하려고 그러는 거여?"라고 경계심을 보이셨지만 웃으면서 "아니라"고 하자, 살아온 얘기를 들어주셨다.

"내가 전남 순천에서 왔는데, 남편하고 같이 살다가 농사가 잘 안되어서 홀로 상경했어. 그러고부터 지금까지 노점을 하게 된 거여. 그게 20년 전이여."

항상 어르신들의 인생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주위는 까마득해지고 주변 소음은 안 들리고 하는 습관이 있다. 이분의 이야기를 들을 때도 그랬다. 너무 긴 생애가 몇 마디 말로 튀어나올 때는 침묵이 그 말들 사이의 공간을 먹먹하게 수놓기 때문일까. 농사가 안되어서 홀로 상경한 노인에게, 노점은 마지막 생계수단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지금 여기서 일하는 것만 놔두었으면 좋겠고, 지금 경기가 안 좋고 일자리도 부족해서 멸치장사도 안되고 그려. 정부가 일자리를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어."

정부나 지자체를 향한 마지막 말씀을 부탁하자 소박한 바람, 이타적인 바람이 쭈글쭈글한 입에서 나왔다.

"가난 벗어나려 몸부림... 막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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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반빈곤권리장전 대원들이 시민들을 대상으로 노점상의 현실에 대해 알리는 모습
ⓒ 2015반빈곤권리장전	관련사진보기

두 번째로 만난, 분식을 파는 아저씨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전노련이 하는 일을 자체 감사하는 데에 참여하고 있다는 아저씨는, 2008년도에 터진 금융위기 때 실직하게 된 가장 같았다. 소시지를 튀겨주시면서, 사촌 동생이 원래 하던 자리를 5년 전부터 물려받아서 하고 계시다고 했다. 강북구청에서 더는 새로운 사람이 노점을 못하도록 막고 있어서 단속을 나온 구청직원한테 경고를 받은 적이 있다고 하셨다. 아저씨도 오로지 지금 이 자리에서 계속 일하게 해주는 것만을 바라시는 것 같았다.

세 번째로 맛난 과자를 파시는 아주머니는 인터뷰를 해도 되느냐는 질문에 시큰둥했다. 그러나 내가 과자를 두 봉지 산다고 하자 얼굴에 화색이 돌면서 당신의 생활에 대해 말씀해주셨다. 여름에는 사람들이 거리로 잘 안 나오기 때문에 하루하루 자리를 지키러 나오는 것이고, 겨울에는 생활비를 충당하러 나오는 것이라고. 그래서 일자리를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는 여름에는 남편이 생활비를 벌고, 일자리를 쉽게 구할 수 없는 겨울에는 남편이 생활비를 충당한다고. 아마 아주머니의 남편분은 하루하루 고용될 곳을 찾아보는 일용직 노동자 같았다.

마지막으로 만난, 시장 입구에서 잡곡을 파시는 할머니도 사정이 나아 보이진 않으셨다. 오히려 5년인가 6년 전에 사고를 당하셔서 더 생계가 막막하신 것 같았다. 그런데도 우리한테 뭐라도 손에 쥐여주려고 하셨다. 30년 넘게 장사하면서 파출소도 네다섯 번을 왔다 갔다 하셨다고 했다. 얼마 전 돌아가신 할아버지 생각에 잠 못 이룬다고도 하셨다. 정부나 지자체에 바라는 것 하나만 이야기해달라고 하자,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가난은 국가도 못 구한다고 했어. 그런데 그러면 최소한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을 치는 걸 방해하면 안 되는 거여. 국민이 국가 땅에서 장사한다는 걸 왜 막는지 도통 모르겠어."

인터뷰를 마치고 조원들과 모여 삼양동 시장 골목에 있는 후미진 주차장에서 빵을 먹었다. 대다수 사람에게 노점은 생계를 위한 유일한 보루였다. 몇몇 분들은 하루에 10시간, 12시간씩 노점을 하는 것도 모자라 자투리 시간에 폐지를 수집하셨다. 그들에게 보험과 같은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장치란 사치였다.

그리고 구청의 단속에 대한 두려움도 가지고 계신 듯했다. 노점상 역시도 세금을 내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철저한 신고제로 운영되고 있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일하게만 해'달라는 절절한 이야기들을 떠올리면서, '미관'을 위해 생계의 마지막 보루에 서 있는 누군가를 쫓아낸다는 건 잘못된 것임을 통감했다. 나중에 찾아보니 전노련에서는 노점 위생에 대해 노력도 하고 있었다.

빈곤과 대면했을 때의 무거운 마음과 학생들이라며 친절하게 대해주셨던 친절한 마음에 대해 따뜻함이 교차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빈곤을 없애기 위한 고민과 내가 당장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에 대한 무력감이 무겁게 내 머리를 짓누르듯이 얹어졌다.

앞으로 천천히 생각해 볼 일이다, 되뇌어본다. '빵빵' 하고 차 경적 소리가 울린다. 꽤 오랫동안 조원들과 함께 이 주차장을 무단점거하고 있었다. 주차장을 빠져나가니 쨍쨍한 햇빛과 함께 삼양동의 노점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이 시야에 다시금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