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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이병호 국정원장이 출석해 자리에 앉아 있다.
 지난 14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이병호 국정원장이 출석해 자리에 앉아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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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냈다, 해냈어. 국정원이 또 한 건 해냈어!"

말들이 쏟아진다. 국정원이 2012년 대선을 앞둔 시점부터 최근까지, '음지'에서 벌인 모종의 거래 정황이 '양지'에 폭로됐기 때문이다. 국정원은 이탈리아 해킹 프로그램 개발업체 '해킹팀'에 개인 노트북·데스크톱·스마트폰에 침투할 수 있는 스파이웨어(RCS, Remote Control System) 개발을 요청했다. 그리고 이는 해킹팀 내부문건이 유출됨으로써 드러났다. 이때 거래비용 출처는 국가기관이라는 특성상, '국민세금'일 가능성이 높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RCS가 '타겟'(목표)에 침투하는 원리는 '피싱 사기' 수법과 유사하다. 우선 가짜 URL, 메일, 문자, 앱 업데이트 정보 등을 타깃에 보낸다. 가령 스마트폰 이메일로 받은 가짜 URL을 타겟이 클릭했다고 하자. 그럼 진짜 URL로 넘어가는 시간 동안, 타겟의 스마트폰에 RCS가 침투한다. 그리고 타겟의 일거수일투족은 감시당한다. 카카오톡 등 메신저, 메일, SNS 등을 들여다 보는 건 물론이고, 심지어 도·감청이 가능하다고 한다. 스마트폰 '몰카'까지 가능하지만, 각종 백신 프로그램엔 잡히지도 않는다.

심각한 건 이론상으론 그 타겟이 국민 중 '누구라도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언론의 사실관계 확인 요청이 쏟아지자 국정원은 처음엔 '확인해줄 수 없다'며 취재를 거부했다. 그러다가 이병호 국정원장은 지난 14일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다음과 같이 해명했다.

"2012년 1월과 7월 해킹팀으로부터 총 20명 분의 RCS 소프트웨어를 구입했다. …  연구개발용이라 국내인을 대상으로 해킹할 수도 없고 오직 북한 공작 대상자들을 상대로 실험하고 있다. … 국민을 대상으로 해킹 했다면 어떠한 처벌도 다 받겠다."

그러나 이 해명과 달리, 그 이상의 정황들이 해킹팀 내부문건 검토로 지속적으로 보도되고 있다. 가령, 2012년 7월 이후에도 최근까지 안드로이드 기반 최신 스마트폰이 출시될 때마다 스파이웨어 업데이트를 요청한 내용, 또는 '떡복이 맛집' '메르스' '포르노 사이트' 등 상식적으로 북한 공작원보다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을 목표로 하는 쪽에 가까워 보이는 미끼 URL 제작 요청 내용 등이 그렇다. 인터넷 상에서는 이 원장의 해명에 대한 불신이 표출되고 있다.

이처럼 국가기관에 대한 불신, 불안이 심화되고 있다. 물론 국정원 스스로가 자초한 일이다. 전문가들은 국정원 대선개입이 인터넷 공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들고, 누리꾼들에게 자신도 심리전 대상이 될지 모른다는 스트레스를 남겼다고 지적한다.

동덕여대 홍원식 교수(저널리즘학)는 2014년 발표한 '박근혜 정권의 국정원 정치'(경제와 사회 101호)에서 "2012년 이후 댓글과 SNS에 대한 기존 평가(자율적 시민정치 공론장에 대한 기대)를 다시 살펴봐야 하는 새로운 상황을 맞이하게 됐다"라고 평가했다. "국가기관들이 '대북 심리전'의 이름으로 인터넷 공간을 활용해 우리 사회의 정치적 여론형성에 밀접하게 개입해온 것이 확인"됐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성공회대 김동춘 교수(사회학)도 지난해 발표한 '인터넷 공론장 돌아보기'(커뮤니케이션 이론 10권 4호)에서 국정원이 "4대강 등 각종 정치현안에 대한 비판적 여론을 희석시키고, 대선국면에서 노골적 선거개입을 한 행위를 적을 향해서 심리전을 펴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정당화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선거는 전쟁이 되었고, 야당 후보는 적이 되었으며, 그를 지지하는 국민 역시 잠재적 적이 된 셈"이라고 지적했다.

스스로 '원형감옥' 들어가는 국정원의 '감시정치'

밴담의 파놉티콘 모델을 실현한, 쿠바 독재정권 당시 프레시디오 모델로 감옥. 많은 인권 유린 논란을 불러왔고, 끝내 폐쇄됐다(Friman).
▲ 쿠바 프레시디오 모델로 감옥 밴담의 파놉티콘 모델을 실현한, 쿠바 독재정권 당시 프레시디오 모델로 감옥. 많은 인권 유린 논란을 불러왔고, 끝내 폐쇄됐다(Friman).
ⓒ wiki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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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의 본령은 역시 감시다. 감시는, 감시하는 자가 감시당하는 자에 대해 의심을 품을 것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그 의심은 국정원이 먼저 품었다. 국민들 상당수를 자신들의 국가안보관에 끼워 맞춰, 잠재적 '적'으로 의심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국정원의 감시정치는 상당히 '관음증'적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국가에 '무명(無名)의 헌신'을 한다는 나름의 자기위안을 경험했을 것이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 스스로도 이런 식의 대북 심리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으니까.

하지만 이러한 인식 아래에서는, 국민의 인권에 그늘이 드리운다. 일찍이 철학자 제러미 밴담도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즉 공공의 이익만 보장된다면, 무슨 짓도 정당화 된다는 논리를 폈다. 그가 범죄자들을 효율적으로 감시하고자 설계하고, 평생을 집착한 원형감옥 '파놉티콘(Panopticon)'은 그 결정체다. 원형 형태로 둘러싼 감방들이 있고, 감옥 한 가운데는 죄수들을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는 감시탑이 서 있다.

죄수들은 감시탑 안에 감시자가 있는지 없는지 파악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항상 감시자가 있는 것처럼 불안해하며 스스로를 '자기검열'한다. 국가권력이 국익을 자의적으로 앞세워, 국민을 죄수로 분류하고 감시와 인권탄압을 자행할 수 있는 사례인 셈이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다시는 감시탑 안에 들어가지 않겠어"라고 약속하던 국정원이 반복적으로 감시탑 안에서의 자신의 존재를 들키고 있다. 그럴 때마다 죄수들의 야유가 쏟아지듯, 국민들은 국정원을 지탄한다. 처음 한두 번은 내심 그 어설픔을 비웃던 경우도 있던 터였다. 그런데 노출이 반복되고 'RCS' 논란 같은 것을 겪자 국민들은 문득 '혹시 일부러 저러는 거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게 된다.

그리고 마치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는 노출증 환자를 쳐다보듯, 사람들은 중앙의 탑을 일제히 쳐다본다. 이때부터, 오히려 감시자는 국민들이 되고 죄수는 원형감옥 중앙에 노출된 국정원 자신이 된다. 즉 역 파놉티콘인 '시놉티콘(Synopticon)'으로 국정원 스스로 걸어들어가게 되는 셈이다. 이런 반복되는 상황에서 국정원은 어떤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일까. 그러나 '관음'이든 '노출'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그런 일을 겪고 싶어하는 국민들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관음증과 노출증은 모두 '성도착증'에 뿌리내리고 있고, 서로 뫼비우스의 띠(∞) 처럼 얽힌 관계라고 설명한다. 얽힌 매듭을 푸는 가장 호쾌한 모범은 고대 알렉산더 대왕의 방법이다. 그는 악명 높은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자신의 '특검(特劍)'으로 잘라내버렸다. 국정원이 매듭을 스스로 못 풀고 있다. 우리는 그들을 도와주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참고문헌
<문학비평사전>(한국문학평론가협회 / 국학자료원 / 2006.01.30)
<박근혜 정권의 '국정원 정치'>(김동춘 / 경제와사회 101호 / 비판사회학회 / 2014)
<인터넷 공론장 돌아보기>(홍원식 / 커뮤니케이션 이론 10권 4호 / 한국언론학회 / 2014)



태그:#국정원, #판옵니콘, #파놉티콘, #신옵티콘, #시놉티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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