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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타고 달리기 좋은 태화강변.
 자전거 타고 달리기 좋은 태화강변.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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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0년대 우리나라의 산업화시대 때 공돌이·공순이 소리를 들으며 힘들게 일해 나라의 발전에 기여했던 많은 젊은이들만큼이나 고생을 한 존재가 우리의 강과 하천이 아닐까 싶다. 서울 목동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내게 한강의 지류인'안양천'도 그런 하천 가운데 하나였다.

산업개발을 위해 안양천변에 지은 공장과 공단들은 안양천의 풍부하고 깨끗한 물을 공업용수로 사용했고, 용수를 공급한 발원지로 공장의 폐수를 흘러 보냈다. 공장에서 나오는 오수와 폐수들은 아무런 제한도 없이 그대로 하천으로 흘러들면서 안양천은 급격히 오염됐다. 서울의 많은 하천들이 이런 고생과 희생을 하다 1990년 대 후반에 들어서야 비로소 하천의 모습을 되찾았다. 한국의 산업개발과 하천은 이렇게 뗄 레 야 뗄 수 없는 사이다.

우리나라 산업 발전의 역사를 함께한 대표적이고 상징적인 강을 꼽자면 바로 울산에 있는 태화강이 아닐까 싶다. 석유, 중공업 등 한국 중화학 산업 발전의 역사가 태화강과 함께 이뤄졌다. 지도를 보니 울산광역시 울주군 성북면에서 시작된 46km의 강 물줄기는 도심 시가지를 지나 동해 바다로 이어졌다.

태화강은 울산 도심 한 가운데를 가르며 지나는, 서울 한강만큼이나 큰 물줄기다. 하천 이름은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울산시 태화동에 세웠다는 태화사(太和寺) 앞으로 흐르기 때문에 태화강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강변 자전거도로, 온갖 꽃들이 피어난 드넓은 둔치, 강가에 자리한 큰 장터, 보기만 해도 시원한 대나무 숲 등 TV뉴스를 통해 본 태화강변 길을 자전거 타고 신나게 달리고 싶어졌다. 애마 자전거와 함께 기차를 타고 태화강이 가까운 울산역으로 여행을 떠났다.

울산역에 내리면 거대한 고래가 수면위로 올라와 여행자를 반긴다.
 울산역에 내리면 거대한 고래가 수면위로 올라와 여행자를 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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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운 하천풍경과 비경이 이어지는 태화강 상류

역 이름과 달리 태화강 상류 쪽인 도시 외곽에 자리한 새 청사 울산역(울주군 삼남면)에 내렸다. 읍성이 있는 태화강변 동네 울주군 언양읍이 지척이다. 2010년 KTX가 서는 울산역이 이곳에 새로 개통되었고, 원래 울산역이었던 역은 태화강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자전거를 타고 이곳 울산역에서 강 하류에 있는 태화강역까지 강변을 따라 달려가는 게 이번 여행 계획이다.

다른 도시의 커다란 기차역과 별다를 게 없는 울산역 앞에서, 자전거 헬멧과 고글을 썼다. 일상의 삶이 평평한 거울 같다면 볼록하고 까만 고글속의 세계는 다른 세상으로 변한다. 헬멧과 고글을 쓰고 자전거 안장에 올라타는 순간, 지루하고 고단했던 일상의 나는 또 다른 자아를 갖게 된다. 네모반듯 평범했던 울산역이 새로이 보였다. 서울역 못지않게 큰 울산역 앞 광장에 거대한 고래가 숨을 쉬러 막 물위로 솟아오른 조형물이 여행자를 반겼다. 포경 즉 고래잡이의 도시였던 울산의 역사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거대한 현대식 울산역 건물과 달리 역에서 태화강을 향해 나서자마자 사위는 푸근한 전원풍경으로 바뀌었다. 모내기가 끝나거나 한창인 논과 밭 사이로 작고 풋풋한 태화강이 마을을 보듬으며 정답게 흐르고 있었다. 신통방통한 농기계 이양기가 논에 가지런히 모를 심어주니 농부, 농모님들이 한결 여유로워 보였다. TV를 통해 본 도회적이고 화사한 강의 모습과는 딴판이다.

속았다는 기분보단 잘 왔구나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정경이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태화강의 모습을 간직할 수 있겠다. 태화강의 명물 선바위까지 십여 킬로의 길은 자전거도로가 없는 강변의 마을길, 농로를 지난다. 강가를 지나면서 마주친 구수리, 무동마을, 진목마을... 어디나 비슷비슷한 도시의 강변 자전거도로보다 여행하는 기분이 들게 하는 길이었다.

한때 죽음의 강이었다는 게 믿겨지지 않는 태화강 풍경.
 한때 죽음의 강이었다는 게 믿겨지지 않는 태화강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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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강 상류엔 풋풋한 시골마을이 이어진다.
 태화강 상류엔 풋풋한 시골마을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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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 정자를 들인 집과 화려한 여름 꽃이 피어난 담벼락 옆을 지나는 '털털털' 경운기 소리가 전혀 시끄럽게 들리지 않았다. 허리를 숙여 혼자 밭을 돌보는 아주머니가 눈길을 끌었다. 허리에 줄로 이은 간이 의자로 보이는 것이 엉덩이에 붙어 있었는 일명 '일의자'때문. 힘들 때마다 혹은 주저앉아서 일할 때 딱 좋겠다. 세상엔 많은 의자가 있지만 이렇게 웃음이 배시시 나는 의자는 처음이다.   

강변에 범상치 않은 풍모의 바위가 나타나 자전거 페달질을 멈추었다. 바위 주변에 작은 물놀이 유원지가 조성된 이곳은 선바위 유원지(울주군 범서읍). 경운기를 개조해 만든 매점에 있는 아주머니가 먹을거리 안사도 괜찮으니 쉬었다 가라고 다정한 경상도 말투로 여행자를 반겨주었다. 여행할 때 마다 종종 느끼는 거지만, 경상도 사투리는 참 묘하다. 남자가 경상도 말을 하면 왠지 거칠고 투박한데, 여자의 경우엔 호의적이고 정감이 간다. 부산이 고향인 한 친구에게 이 얘기를 하자, "씰데없는 소리, 밥이나 묵자"한다.

선바위는 태화강이 품은 절경 가운데 하나다. 강물위로 우뚝 솟아오른 30여 미터의 선바위는 강이 한 바퀴 돌아나간다는 백룡담 위로 신비하게 서 있다. 기묘한 형상의 바위는 주변 바위들과 전혀 다른 질감이어서 더욱 신비감을 준다. 선바위의 절벽 위에 자리한 작은 정자는 조선 중기 때 생겨난 것으로 시인, 묵객들이 즐겨 찾았단다.

선바위는 날이 가물어 천지가 타오를 때 이곳에서 머리 숙여 기우제를 지내면 영험이 있었다고 한다. 깊고 푸른 태화강 수면 위 봉우리처럼 솟아오른 바위, 금강산 해금강의 한 봉우리를 옮겨 놓은 듯 아름답다. 선바위를 지나는 강물 또한 물고기들이 유영하는 게 훤히 보일 정도로 맑고 깨끗해 울산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물놀이 유원지가 될 만했다. 굳이 BOD, PPM 같은 수치를 말하지 않아도 물고기들의 출현은 깨끗해진 강물의 모습을 그대로 말해주고 있었다.

태화강의 비경이자 물놀이 공원이 있는 선바위.
 태화강의 비경이자 물놀이 공원이 있는 선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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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8경의 으뜸인 십리 대숲, 잠이 솔솔 오네

선바위 공원에서 태화강 하류로 이어지는 강변엔 자전거 도로가 깔려 있다. 도시 문명의 쾌적함과 편리함을 엉덩이로 체감하며 달려갔다. 조금 후 나타나는 너른 대나무 숲은 태화강의 대표적인 명소로, 울산의 8경중에서도 으뜸이라고 한다. 일제강점기 죽공예품의 가격이 오르자 주변 지역을 소유하였던 일본인 지주가 대나무를 심어 만들어진 인공림이 그 시초라고.

이후 홍수 방지용으로 대나무를 더 심으면서 숲은 점점 넓어졌고 오늘날 10리(약 4km)에 달하는 대숲이 되었다. 대숲 앞 안내판엔, 1749년 발간된 울산 최초의 읍지 '학성지'에 '오산 만회정 주위에 일정 면적의 대밭이 있었다'라는 기록이 나오는 것을 보면 역사적으로는 그 기원은 훨씬 이전으로 올라간단다.

자전거를 끌고 울창한 대나무 숲 안 산책로를 따라 걷다가 재미있는 경험을 했다. 눕기 딱 좋게 생긴 길쭉한 벤치에 사람들이 누워서 햇볕을 가려주며 머리 위로 쭉 뻗은 대숲을 바라보고 있었다.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에 유연하게 흔들리는 대나무사이에선 우리말 '숲'을 발음했을 때나는 시원하고 청정한 죽(竹)소리가 났다.

시원하고 상쾌한 기분이 드는 대나무 숲속.
 시원하고 상쾌한 기분이 드는 대나무 숲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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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강변 대나무 숲과 꽃단지에 나들이 나온 시민들.
 태화강변 대나무 숲과 꽃단지에 나들이 나온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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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여름 날 대나무 그늘이 진 숲속은 참 시원했다. 안내판 설명대로 대나무가 음이온을 많이 띄고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상쾌한 숲 기운이 주위를 감돌아 머리가 절로 맑아지는 기분이다. 사람들 따라 나도 벤치에 누웠다. '쏴아~' 마치 멀리서 들려오는 파도소리 같은 죽(竹)소리를 듣다가 그만 까무룩 잠이 들고 말았다.   

태화강 십리 대숲은 90년대 중반 개발의 논리에 밀려 잘려나갈뻔한 운명에 직면했었다. 대나무를 자르고 그 곳에 아파트를 짓겠다는 도시계획이 진행돼 70만 그루의 대숲 전체가 사라질 판이었다. 이것을 막고 나선 것은 울산의 보통사람들이었다. 십시일반 땅사기 운동을 벌이는 등 적극적인 반대로 마침내 택지개발 계획을 무산시키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이후 십리대숲을 중심으로 여의도의 2.5배나 되는 친환경 생태공원이 조성됐고 그것이 오늘의 태화강 공원으로 이어지게 됐다.

태화강 십리대숲은 '제13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공존상을 수상했다. '시민들이 뜻을 모아 지켜냈고 이후 시민들의 휴식처로 자리매김 하고 있어 이용과 보전의 측면에서 가치 있는 숲'이라는 평가가 수상의 이유다. 죽음의 강에서 생명의 강으로 거듭난 역사를 알게되니, 십리 대숲에 붙여진 '공존의 숲'이란 훈장이 그리 잘 어울릴 수 없었다.

징검다리위로 강을 건너는 시민들.
 징검다리위로 강을 건너는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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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업용수로도 못썼던 죽음의 강

울산은 1960년대부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공업도시로 개발되면서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등 중화학공업 중심도시로 발전하면서 공업용수 수요가 급격히 상승하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태화강에는 최초로 댐이 건립되었는데, 1965년 건립된 사연댐과 1969년 완공된 대암댐이 그것이다.

일자리를 찾아 전국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인구가 급증하여 1997년에는 광역시로 승격하였다. 이런 대도시에서는 대량으로 발생하는 생활하수와 공장폐수가 제대로 처리되지 않은 채 태화강으로 유입되면서 강물은 급속히 오염되었고 수많은 공장으로부터 내뿜는 대기오염 또한 극심하여 공해도시로 전락하고 말았다.

1990년대에 들어서 태화강의 수질은 대한민국의 하천 중에서 최하위권으로 떨어졌다. 1996년의 태화강의 생물학적산소요구량(BOD)은 11.3ppm으로, 환경부에서 정한 수질환경기준에 따르면 최하위등급인 5등급의 기준에도 미치지 못해 농업용수는 물론 공업용수로도 못쓰는 강물이 되었다. 이 시기 오염된 태화강은 한국의 산업발전에 희생된 환경을 상징하는 장면 중 하나였다.

연어, 황어 등 많은 물고기들이 찾아온다는 태화강.
 연어, 황어 등 많은 물고기들이 찾아온다는 태화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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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들이 유영하는 모습이 훤히 보이는 맑은 강물.
 물고기들이 유영하는 모습이 훤히 보이는 맑은 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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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강변에서 만난 자전거족 아저씨는 강물이 마치 먹물을 풀어놓은 듯 시커먼 색깔에 악취를 풍기는 하수와 같았단다. 매일 죽은 물고기가 떠오르고  악취와 모기가 기승을 부리는 강변에 산책은커녕 창문을 열고 살 수 없을 지경이었다고 손사래를 치며 말해 주었다.  

태화강의 수질개선 노력이 시작된 것은, 2000년대 들어서 울산시가 하수관리시설을 집중적으로 건설하기 시작하면서이다. 또한 2006년 4월 태화강 하류에 설치된 방사보를 철거했다. 보가 물의 흐름을 막아 수질을 악화시킨다는 것이 이유였다. 수중보 철거로 강물의 흐름은 원활하게 됐다. 수질저하로 녹조류가 창궐하고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등 몸살을 앓고 있는 4대강과 서울의 한강이 참고해야할 대목이다.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2000년 여름에 태화강에서 발생하였던 물고기의 집단 폐사 사건이었다고 한다. 숭어와 붕어 등의 각종 어종 1만 5천여 마리가 죽어 나갔다. 수많은 불쌍한 물고기들의 희생이 강을 살린 동기가 된 것이다. 

꽃 대궐, 큰 오일장터를 품은 강

강가에 광대하게 조성된 태화강 공원이 나타났다. '태화강 대공원 초화단지'라는 거창한 이름에 걸맞게 16만㎡의 강변 둔치에 꽃양귀비, 작약, 안개초 등 온갖 꽃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나들이 나온 남녀노소 시민들이 꽃 대궐 속에 파묻혀 즐거워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1990년대까지도 썩은 강, 죽음의 하천 소리를 들었던 태화강을 떠올려보면 놀라운 풍경이다. 이런 것을 어려운 말로 상전벽해라고 하나.  

공원을 지나다보면 강변을 달리는 자전거 여행자에게도 좋은 쉼터 태화루(울산시 주 중구 태화동)가 보인다. 태화강변 언덕배기에 있는 크고 넓은 누각 태화루에 올라서면 강변 둔치의 공원과 대나무 숲이 한 눈에 펼쳐진다. 태화루는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와 함께 '영남 3루'로 불렸다는 풍광 좋은 누각이다.

신라의 고승인 자장이 643년 선덕여왕 때 창건한 절 태화사의 부속 건물이다. 주변의 수려한 풍광을 바탕으로 빼어난 자태를 자랑하던 태화루는 울산의 수령을 포함한 관원과 나그네들의 만남의 장소이자, 전국 시인묵객들의 마음을 머물게 한 '풍류의 현장'이었단다.

'영남 3루'로 불릴만한 강변 누각 태화루.
 '영남 3루'로 불릴만한 강변 누각 태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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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상인들의 뜨듯하고 고단한 등을 맞대고 먹었던 태화 5일장터 백반.
 시장 상인들의 뜨듯하고 고단한 등을 맞대고 먹었던 태화 5일장터 백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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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루에서 도심 쪽 도로 건너편으로 5일장(매 5일, 10일)이 펼쳐지는 장터 태화종합시장이 있다. 울산에 사는 블로거 친구가 여행할 때 꼭 들러보라고 알려준 시장이다. 세련되고 도회적인 강변과 도시를 달리다 갑자기 시골마을속으로 들어선 느낌이다. 울산을 대표하는 5일장이라는 친구의 추천대로 물산 풍부했던 울산의 옛 정취를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도로변에서 이어진 작은 입구에 들어서면 생각보다 훨씬 크고 긴 시장통에 놀라게 된다. 경사진 언덕길에도 가게와 좌판들로 가득하다. 울산 시민들이 다 왔나 싶을 정도로 찾아온 사람들도 많고 붐볐다. 알록달록 여름과일들도 총출동했다. 때깔곱고 탱탱한 토마토 2천원어치를 샀다. 더운 여름날 자전거 여행자에게 물보다 더 좋은 갈증 해결사가 토마토다.

부추를 이르는 정구지는 푸르다 못해 시푸르고, 달디 단 자두향이 시장통에 가득하다. 울산은 바다를 인접하고 있는 곳이라 그런지 바다에서 잡아온 싱싱한 해삼물도 많고, 물고기도 많이 보였다. 바다 달팽이라고 불리는 볼수록 특이하게 생긴 군소들도 흔하고, 집에서 끓여 먹으라고 메기 매운탕도 포장해서 팔고 있었다. 장터엔 민물 매운탕 골목도 있다. 미꾸라지·메기·지름쟁이 매운탕이 있는데, 지름쟁이는 기름쟁이, 줄미꾸라지라고 하는 미꾸라지의 사촌 쯤 되는 민물고기란다. 몸에 세로 줄무늬가 있어 범미꾸리라고도 한다고.

북적거리는 시장통을 지나다보면 저절로 배가 고파온다. 어느 가게 아저씨에게 슬며시 다가가 가격 싸고 맛있는 식당 좀 알려달라고 하자 웃으시며 두 곳이나 알려 주셨다. 하나는 시장상인들이 많이 찾는 백반전문식당이고 또 하나는 5일장 날만 열리는 노상 장터국밥집이다. 5천원에 흰쌀밥, 된장 시래기국, 생선구이 한 마리, 집 반찬들이 풍성한 백반집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내 자전거를 본 아주머니가 먹다가 부족하면 말하라는 고마운 말에 밥 먹기도 전에 배가 불러왔다. 시장통 백반집은 지역마다 국과 생선, 반찬들이 조금씩 달라서 찾아가 먹는 맛이 있다.

시장통 한켠에 자리한 작고 좁은 백반집. 살림살이가 있는 방안에 들어가 시장상인들과 등을 맞대고 시래기 국에 밥을 말았다. 등짝에 닿은 상인 아저씨들의 등은 뜨듯하고 고단했다. 구수하고 뜨끈한 된장 시래기국과 시장상인들의 등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비슷하게 느껴졌다.  

태화강처럼 다시 살아난 야음동 신화마을.
 태화강처럼 다시 살아난 야음동 신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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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에 생겨난 태화강변의 동해남부선 기차역.
 1921년에 생겨난 태화강변의 동해남부선 기차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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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물산 풍성한 5일장터 구경을 하고, 백반을 배부르게 먹고 나니 왠지 모를 힘이 팔다리에 가득차 있었다. 한강처럼 폭이 무척 넓은 강변을 바람처럼 달렸다.   강 하류에 있는 태화강역(太和江驛, 울산시 남구 삼산동)은 동해남부선에 있는 기차역으로 화물열차가 오가는 장생포선, 울산항선의 시종착역이기도 하다. 1921년 10월 25일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한 오래된 기차역이다. 원래 이름은 울산역(蔚山驛)이었으나, KTX 울산역(울주군 삼남면) 개통 관계로 역명을 태화강역(太和江驛)으로 변경했다.

물통도 채우고 쉬어갈 겸 기차역 앞에 있는 관광안내소에 들어갔다가 자전거로 10분 거리에 있는 신화마을(울산시 남구 야음동)을 알게 되었다. 관광안내소 여직원이 울산에 오면 꼭 들려봐야 한단다. 신화(新和)마을은 신들의 이야기가 있는 마을이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역사가 담겨 있는 마을이다.

1960년대 울산 남구 야음·장생포동 일대에 석유화학공단이 들어서면서 고향을 떠나게 된 주민들이 인근에 새롭게 마련한 삶의 터전이다. 신화마을은 공장에서 뿜어내는 매캐한 냄새와 비좁은 골목, 낡은 주택 등 열악한 주거환경으로 인해 수 십 년 동안 울산의 대표적인 달동네였다.

이런 마을이 문화체육관광부와 울산시 공동 주관으로 2010년 시작된 '마을 미술프로젝트'와 지역 예술가들의 벽화 그리기 등으로 좋은 변화를 맞고 있다. 태화강이 그랬듯 신화마을도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곳이 되는 것 같아 흐뭇한 마음을 안고 태화강역으로 돌아왔다. 

* 주요 자전거 여행 코스 : 울산역 - 선바위 공원 - 십리 대숲 - 초화 단지 공원 - 태화루 - 태화5일장 - 태화강역 - 야음동 신화마을 (약 35km)

덧붙이는 글 | 지난 6월 20일에 다녀왔습니다.



태그:#자전거여행, #태화강, #선바위, #태화5일장, #십리 대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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