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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1일은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개소 8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이 글은 대구인권사무소 권혁장 소장이 8년을 돌아보며 느낀 개인적 소회의 글이며, 인권이 숨 쉬는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개인, 지자체, 인권시민단체 등의 연대의 필요성을 깊이 느끼며 쓴 글입니다.

8년 전의 마음가짐

2007년 6월 대구인권사무소 개소 (2007. 7. 1) 직전 대구시청 기자실에서, 나는 '인권공직자'로서의 첫발을 내딛는 나름의 다짐을 기자들께 밝혔다. 지역의 인권현안에 기다리지 않고 먼저 다가갈 것이고, 아픔의 현장에 함께 서 있을 것이며, 지역사회를 열린 인권공동체로 만들어 나가는 데 앞장서겠다고. 또한 사회운동가 출신으로서의 열정과 창의력을 이어가고, 공직사회의 일원으로서 체계적이며 강한 책임감을 갖고 일하겠다고 다짐했다.

그해 8월 30일 개소식 인사말을 통해 단칸 사글셋방에서 살면서도 뽀얀 쌀밥에 고깃국 끓여 갈 곳 없는 분들을 챙겼던, 그리고 몸살이 나면서도 동네 혼자 사는 어른신들의 김장김치를 매년 챙기셨던 어머니의 그 따뜻한 마음을 인권공직자로서의 마음가짐으로 지니겠다는 다짐을 했다. 돌아보면 부끄럽기 그지없지만 아직까지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으니 무기력하고 나태할 때 나를 채찍질할 수 있다.

이 길을 가는 동안 끊임없이 되새겨야 할 마음가짐이기도 하다. 사회운동을 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지닐 수 있는 마음이기도 하다. 운동가든 공직자든 보다 나은 세상을 꿈꾼다면 자기 삶의 이유를 해명하고 이를 함께 나누려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만남과 소통이 절실한 이유다.

내가 꿈꾸는 지역사회

한때 시민단체의 활동가로서 눈앞에 닥친 일에만 빠져 있을 때 들었던 심각한 고민 중에 하나는 '내가 꿈꾸는 지역사회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이었다. 몸담고 있던 단체의 성격 탓이었는지 거창한 꿈을 꾸었다. '시민참여와 시민자치가 실현되는 사회, 참여와 협력에 의한 지역복지공동체가 실현되는 사회, 성평등이 실현되고 아이들의 인권과 참여가 보장되는 사회, 아이들이 행복하고 부모와 보호자가 안심할 수 있는 사회, 시민 모두가 다양한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사회, 친환경적이고 생태순환적인 사회, 사람이 먼저 고려되는 도시가 만들어지는 사회, 자립적인 생활경제가  근간이 되는 사회' 대략 이런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참여민주주의와 인권이 살아 숨쉬는 사회'로 얘기할 수 있을 듯하다. 이 고민은 여전히 필요하며 집단적인 지성으로 만들어 가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열정과 우정이 넘치는 집단지성의 장이 꿈을 현실로 만들지 않을까 바람과 함께.   

큰 그릇이 되고 싶은 인권사무소

대구인권사무소는 참여민주주의와 인권이 실현되는 사회의 소중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여전히 믿는다. 인권사무소에 부여된 주요 역할은 다음과 같다. '인권상담과 진정접수, 구금보호시설 면전진정처리, 교정시설과 정신보건시설 그리고 지자체 인권침해 진정사건 조사, 인권교육과 홍보협력 등'이다.

솔직히 7명의 직원이 감당하기에 벅차다. 개소 초기에는 근근이 버티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업무는 폭증한다. 한 명의 직원이 6~7가지의 업무를 감당해야 한다. 직원들의 일상을 살펴보면, 하루는 상담자가 되었다가 다음날은 조사관으로 변신한다. 또 하루는 문서작성에 빠져있는 속기사가 되었다가 또 하루는 행사를 기획하고 추진하는 이벤트 기획자와 인권교육 강사가 되기도 한다. 때론 지역사회에서 제기되는 요청에 부응하지 못해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반면 힘겹지만 뿌듯하기도 하다. 직접 할 수 있는 진정사건조사 범위의 한계는 있지만 유의미한 결과를 냈을 때 지역사회에서의 반향은 상당히 크다. 지역사회와 관련한 인권침해와 차별 진정사건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는 정부와 지자체의 정책변화를 이끌어 내기도 한다. 민간이 참여하는 사회복지시설에 대한 전수조사, 지역사회 인권감수성의 변화, 인권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의 확산과 교육기회의 확대 등이 그것이다. 이는 지역사회 참여민주주의와 인권실현을 위한 거버넌스 구축의 근거가 된다.

욕심을 더 부린다면 인권사무소는 정부기구와 비정부기구의 중개자가 되어야한다. 정부기구와 비정부기구의 중간자적 위치에서 지역사회의 인권현안을 협의하고 조정하며 인권증진을 위한 공동의 협력과제를 도출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이행점검과 개선, 인권조례의 실효적 이행을 위한 과제의 도출, 주요 인권현안에 대한 공론의 장 마련, 지역사회 인권문화존중을 위한 교육홍보 활성화를 위한 협력 기반 조성 등 여건만 된다면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다.

새로운 마주침과 연대

그래 문제는 여건이다. 인권사무소만의 힘으로 지역사회의 요청에 화답할 수 없다. 인권시민사회단체와 공직사회가 함께 하지 않으면 인권사무소는 주어진 일에만 빠질 수밖에 없다. 인권사무소 또한 국가기관으로서 시민사회의 감시를 받아야 한다. 제 역할을 소홀히 한다면 야단 맞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다만 함께 무엇인가를 만들어 갈 수 있다면 힘을 모아야 한다. 소통(疏通)의 수행이 필요한 이유다. 막힌 것을 터버리고 타자와 연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막힌 것을 터버리기 위해서 자신을 먼저 터서 비워야만 한다는 것이다. 오직 그럴 때 타자와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타자의 미세한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그런 비워진 마음을 가질 것을 주문하는 것이다. 거의 느껴지지도 않을 것 같은 미세한 편차 '클리라멘'에 주목하고 우발적 마주침의 효과로 출현한 이미 만들어진 세계를 새로운 마주침을 통해 새롭게 만들 수 있음을 암시하는 말이기도 하다. "도는 걸어가는 데서 이루어진다"(道行之而成)는 것을 현실로 만들어보자는 결의이기도 하다.

"타자와 더불어 봄이 되도록 해야 한다"(與物爲春)는 말처럼 타자로 하여금 삶을 되찾도록 하고, 나 또한 연대를 통해 스스로의 즐거움을 지속시킬 수 있음을 확인하자는 의미이기도 하다. 힘과 돈의 위협으로부터 존엄한 삶을 지키기 위해서 그것에 저항할 수 있는 새로운 마주침과 연대는 불가피하다는 절박함이기도 하다. 개인, 조직, 지역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과제이다.

존엄한 삶, 인권을 위한 연대

존엄한 삶,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은 자유롭고 자율적인 존재의 따뜻한 연대를 통해 실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이는 각자가 자유롭고 자율적인 존재로 거듭나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이는 따뜻한 연대를 통해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자유롭고 자율적인 존재가 없는 연대는 따뜻한 봄을 함께 누릴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끊임없는 새로운 마주침과 소통이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존엄한 삶을 만들어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너무나 어려운 가치다. 자기에서 출발하는 비움과 새로운 연결을 통해서 가능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연결은 자동으로 생성되는 관념을 터버릴 때 가능하다. 자신과 타자의 존엄한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근간으로 둘 수밖에 없다. 새로워지려는 노력이 연결을 만들며, 연결의 노력이 새로움을 창조할 수도 있다.

존엄한 삶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주저하지 않는 비움의 만남, 만남을 통한 비움, 새로운 연결을 통한 인권의 발견, 뭐 이런 것 아닐까. 자신이 만든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경계의 가장자리로 다가가 연결의 가능성을 늘 열어 놓으려는 노력에서 존엄한 삶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을까. 인권침해와 차별의 발견에서, 무지의 방치가 인권침해로 이어지지 않는 배움의 장에서, 인권의 가치를 널리 공유하는 열린 마당에서, 인권을 국가와 지방정부의 책무로 제도화 하는 과정에서, 국민의 존엄한 삶을 보장하는 국가의 의무를 명시한 헌법의 정신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나와 우리의 존엄한 삶을 세워가는 과정에서 인권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비움의 만남을 시작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다. 그러한 만남의 자리에 대구인권사무소도 말석에 함께 하고자 한다.  

덧붙이는 글 | 인권위와 함께 하는 시민기자단이 꾸려갈 '별별인권이야기'는 일상생활 속 인권이야기로 소통하고 연대하기 위한 공간입니다. 그 첫 시작은 2015년 7월 1일 개소 8주년을 맞은 대구인권사무소의 권혁장소장님과 함께 합니다.



태그:#8주년, #인권, #대구사무소, #사람,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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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와 함께 차별없는 인권공동체 실현을 위하여 '별별 인권이야기'를 전하는 시민기자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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