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홍익대학교 서울캠퍼스 법과대학 학과장 류병운 교수가 고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을 비하하는 글을 기말고사 지문으로 사용해 물의를 빚고 있다(관련기사 : 홍대 교수, 시험 지문으로 전직 대통령 비하 논란).

홍익대 학생 중앙위원회의 6월 11일자 성명에 의하면, 류 교수는 그가 가르치는 미국법(American Contract Law) 기말고사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추락사고 후 충격으로 뇌손상을 입은 사람으로, 김대중 대통령은 호남 차별의 언어인 "홍어"와 결부시켜 인생낙오자(deadbeat)로 표현했다고 한다.

논란이 학교 밖까지 번지자, 류 교수는 수업 방법은 교수의 고유 권한이며, 정치적 표현은 자유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언론 보도는 전한다. 류 교수의 지문 속에 도사리고 있는 지역 편견과 학벌 차별을 고려하고서라도 그 말 자체는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정치적 표현은 자유"라는 류 교수

이 글을 읽는 대부분 이들이 동의 못 할 수도 있겠으나, 나의 사견은 편견과 차별 사상에 대한 직접 제재는 학문과 사상의 자유를 침해하기 쉽다는 것이다. 그 편견과 차별이 학문과 사상의 자유를 부정하는 경우라도 말이다. 다만, 정상적인 사회라면, 직접 제재가 없더라도 그런 증오 사상은 걸러지게 마련이고, 사회 언저리에서 들리는 소음으로 끝나기 쉽다. 

편협하고 증오적인 정치관 자체는 대학교수의 결격 사유가 될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정치사회관은 개인의 자유이기 때문이다. 결국, 류 교수의 편견과 차별 사상의 대책은 주관적 문제이다. 말하자면, 일차 당사자인 홍대 구성원이 류 교수의 증오사상을 그들 학문 공동체의 일부로 받아들일지 여부는 그들이 판단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류 교수 논란 덕에 삐져나온 객관적 측면도 있다. 객관적 측면인즉슨, 류 교수의 영어 지문은 도저히 시험 지문은커녕 영어라고 할 수 없는, 한 마디로 엉터리라는 것이다. 이력을 살펴보니, 그는 미국에서 외국인 법전공자가 미국에서 취득할 수 있는 법학석사(LLM) 소유자다. 

홍대 학생들이 공개한 류 교수의 시험 지문 한 문단만 살펴보자. 지나치게 영어문법 설명이 나와도 혜량을 바란다. 

"Roh was 17 year old and his IQ of was 69.  He suffered brain defective resulted from hisjumping from the Rock of Owl when he was six."
"노는 17세이고 지능지수는 69였다. 그는 6세 때,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려 뇌손상을 입었다."

편집자의 관점으로 글을 보다 보면, 위의 문장처럼 완전히 다시 쓰고픈 문장을 만나곤 한다. 우선, 첫 문장에서 '17 year old'는 틀렸다. 영어에서 나이가 주어에 따라오는 형용사 구문으로 나오면 나이는 단수를 쓸 수 없다. 문장에서 옳은 표현은 "Roh was 17 years old"이다. 물론, 나이 자체가 형용사, 또는 명사로 쓰이면 하이픈(hyphen)으로 연결 단수를 사용할 수 있다.

예컨대,

My eight-year-old boy goes to school.
The eight-year-old goes to school.   
               
"his IQ of was 69" 에서 "of"는 필요없다.  그리고 앞의 문장과 "and"로 연결됐으니, "was"도 굳이 필요없다. "IQ was of 아이큐 점수"식의 문장은 영어가 아니다. 첫 문장을 최소한 고쳐 보면,

Roh was 17 years old and his IQ 69.

두번째 문장에서, "defective"는 형용사이므로 쓸 수 없다. 결함을 뜻하는 명사인 defect를 사용해야 했을 터이지만, 추락 사고 후 입은 피해이니 "damage"가 더 적절한 낱말인 듯하다. 여하튼, "defective"라는 형용사를 써버리니, 뒤의 문장도 그냥 어그려져 버렸다. 최소한 다시 쓰자면 다음과 같다. 

He suffered from brain damage as a result of jumping from the Rock of Owl when he was six years old. 

홍대 학생들이 공개한 나머지 문장들도 모두 저런 식이었다. 그냥 낱말만을 나열한 문장.  그래서 문법, 어법 무시한 채 오직 낱말만 직역하면 이해할 수 있는 글이 류 교수의 지문이었다. 아니 비문이었다. 공개된 나머지 비문에 대해 하나하나 지적할 필요를 굳이 느끼지 않는다.

사실 나를 차라리 짜증나고 불쾌하게 한 것은 류 교수의 혐오 사상도, 영문 비문도 아니었다. 교수로서 그의 태도가 더 큰 문제였다.

류 교수는 '사회 낙오자 대중'(Dae-Jung Deadbeat)가 홍어 음식을 파는 식당을 연다고 지문에서 말했다. '홍어'를 표현하면서, 일반적으로 쓰는 'Skate' 대신 홍어의 종 명칭인 'raja-kenojei'를 쓰고, 괄호에 'hong-o'라고 음기했다. 

무슨 시험 문제가 이런가? 그럼 그 지문에서 나오는 사람이라 지칭하지 않고, 호모 사피엔스라고 표현해야 되는 게 아닐까? 가르치는 학생에 대한 무성의, 무례함 그리고 그의 실력 부족은 객관적 문제다. 이는 홍익대학교라는 학문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당사자로서 우선 대응해야 할 문제다.

한국 영어 문제의 한 단면을 보여준 류 교수 파문

류 교수 파문은 한국 영어 문제에 대한 단면을 보여줬다. 과연 류 교수가 한국 계약법 시험에 저런 식의 지문을 사용할 수 있었을까? 
              
사실, 모국어가 아닐 바에야 영어는 기능이나, 학문으로만 취급하면 된다. 장사하는 사람은 그에 필요한 만큼, 학문하는 사람은 거기에 필요한 만큼만 구사할 수 있으면 된다. 물론 개개인의 소질과 욕망에 따라 영어를 더 공부할 수도 있다. 영어의 숙련도는 각자 필요에 의해 결정되면 그만이다.

내가 알고 있는 한, 영어를 필요한 만큼 구사하는 대표적인 인물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조갑제 전 월간조선 사장이다. 김대중은 일제 강점기 태생, 조사장은 해방동이이다. 두 사람 모두, 부단한 개인의 노력 없이는 영어를 체계적으로 배울 기회가 없었을 터이다. 김대중의 영어실력은 보통 연설 후에 진행되는 즉흥 질의 답변 시간에 빛을 발했다. 

순발력도 순발력이지만, 한 마디 한 마디 다양한 어휘를 사용하려 하고, 또박또박 설명하려고 노력한다. 매우 호소력있는 언어 구사이다.



조갑제의 영어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있게 말하고, 실수를 안 하려고 노력한다.



아마도 둘의 공통점은 영어를 대화수단과 지식습득의 매체로 사용하지, 계층의 장식품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일 듯하다. 한국 영어의 문제는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해야 할 사람들이 그러지 못한다는 것이고, 그런 탓에 영어 숙련도가 상징 자본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상위 20%만 겪어도 되는 스트레스를 80%도 같이 겪고있는 셈이다. 그러니, 영어 지문을 시험 문제로 낼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법학 교수는, 그의 실력과 무관하게, 저리도 기고만장할 수 있으리라.

○ 편집ㅣ최은경 기자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설갑수는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최초의 종합적인 현장 보고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의 영문판 번역편집자입니다.



태그:#류병운
댓글15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