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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루 글, 그림
▲ <외톨이 꼼> 책읽는곰 이노루 글, 그림
ⓒ 최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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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영웅 시리즈의 결정판, '어벤저스'에는 우리가 이미 다른 이야기에서 알고 있는 영웅들이 다수 등장합니다.

각자 자신만의 영역을 가지고 있는 영웅들이 지구를 지키기 위해 힘을 모으는 이야기는 그 영웅들의 실존 여부와는 상관없이 보는 이들의 마음을 속 시원하게 해주는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웅들을 심리학적으로 바라보면 모두 조금씩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평범한 인간들보다 너무 뛰어난, 유별난 정체성을 갖고 있다 보니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기도 하고, 사회성이 떨어져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때로 영웅들끼리 화합하지 못하고 다툼이 일어나기도 하지요.

영웅들중에서도 가장 문제가 있어 보이는 영웅은 바로 '헐크'입니다. 그의 문제는 '분노조절 능력'이 떨어지는 것인데, 이것 때문에 엄청난 힘이 생기기도 하지만 분명 문제가 있어 보이기도 합니다. 아군, 적군 가리지 못하고 아무에게나 분노를 뿜어대는 시절도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전투 후에는 늘 벌거벗은 채 기진맥진하고 고뇌에 쌓인 과학자로 돌아오곤하니까요.

그렇다면 이 '분노'는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요? 마땅한 이유 없이 자신의 권리를 침해받았을 때나 고통이나 아픔을 당했지만 그 이유를 알 수 없을 때, 모두가 한편이 되어 자신만을 외톨이로 만들었다고 생각될 때, 믿었던 이에게 철저하게 배신을 당했다고 느낄 때... 이런 경우를 만나면 사람들은 '분노'라는 수렁에 빠지고 맙니다.

이노루의 <외톨이 꼼>에서도 이렇게 '분노'에 휩싸인 한 친구가 등장합니다. 바로 '외톨이 곰'입니다. 이 외톨이 곰은 사실 인형 가게에 가만히 앉아 있는 '곰인형'입니다. 아이들은 다른 인형들과 달리 늘 화가 난 듯 보이는 이 녀석을 무서워합니다. 인형 가게 아저씨는 고민 끝에 곰인형을 진열대 뒤쪽으로 밀어 넣었지요. 곰인형은 제대로 화가 났습니다. 화가 나서 점점 볼이 빵빵해지고, 몸도 빵빵해지고 몸이 점점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집채만큼 커져버렸습니다. 괴물이 되어버린 곰인형 때문에 도시는 난장판이 되고 맙니다.

곰인형은 쿵쾅쿵쾅 도시를 걷다가 어느덧 한적한 시골 마을에 도착합니다. 거기서 한 아이를 만나서 도시에서 했던 것처럼 위협적인 목소리로 '우워'해보지만 그 아이는 곰인형을 따라합니다. 하나도 무서워하지 않고 말입니다. 게다가 아이는 곰인형을 보고 웃습니다. 그리고 작은 발로 뛰어가 "꼼"이라고 외치며 안아줍니다. 자신을 괴물이 아니라 '곰'이라고 불러주는 아이 덕분에 곰인형의 얼굴에도 금세 웃음이 번지고 예전처럼 작아져 아이의 품에 폭 안깁니다.

'외톨이 꼼'이 분노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우리는 '화'가 난 사람들이 너무 많은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분노조절'이 안 되어 사랑하던 사람을 폭행하고 죽이고, '분노조절'이 안 되어 방화와 같은 '묻지마 범죄'를 저지르기도 하는 같은 병적인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안타까운 이유들로 '분노'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도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평생을 고통과 수치심의 기억으로 살아야 했던 위안부 할머니들의 분노, 군사독재에 항거하다 군부의 탱크와 총칼에 힘없이 쓰러져야했던 5.18광주민주화운동의 희생자 가족들, 생떼 같은 자식을 차가운 바닷물에서 아무런 손도 못 써보고 잃은 부모님들...

'외톨이 꼼'이 분노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누구도 자기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자기가 누군지 관심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저 무서워하기만 했지요. 아마도 곰인형은 "난 화가 난 게 아니야", "나도 친구가 필요해", "나를 무서워하지 마" 라고 계속 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도 듣지 않았기 때문에 화가 난 것이지요. 서울 시청 앞에 끊이지 않는 시위대의 연좌농성들도, 물대포와 싸우는 시민들의 분노도, 대기업 사옥 앞에 떡 하니 자리 잡은 천막 농성도, 끝없이 계속되는 노란 리본의 물결도, SNS를 타고 도는 숱한 메르스 괴담들도, 눈 감고 귀 막고 듣지도 보지도 않는 사람들 때문에 화가 난 사람들의 몸부림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분노를 잠재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무엇일까요? 분노로 부풀어올라 덩치 큰 괴물이 되었던 곰인형은 겁 없는 아가의 '꼼' 이라는 말 한마디였습니다. 무서운 괴물이 아니라 '곰'이라고 불러준 아이 덕분에 단 번에 사랑스런 곰인형으로 돌아왔습니다. 우리에게도 바로 이런 '이해'가 필요합니다. 물론 '진심 어린 이해'를 보여주는 데는 용기도, 의지도 필요합니다. 때로는 내 것을 내려놓는 '희생'도 필요하겠지요. 그래서 무척 힘들기도 하겠지만 분노로 괴물이 된 곰인형을 사랑스럽게 만드는 일이라면 한 번쯤 해볼 만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살면서 만약 나를 향한 '분노'를 만나게 되면 '진심 어린 이해'를 위해 마음을 열고 손을 내밀 수 있는 용기를 가져 보리라 다짐해봅니다. 이런 용기가 점점 더 많아지는 세상을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첨부파일
외톨이 꼼.bmp


외톨이 꼼

이노루 글.그림, 책읽는곰(2015)


태그:#외톨이 꼼, #그림책, #서평, #이노루, #책읽는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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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속 보물들을 찾아 헤매는 의미 탐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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