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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으애― ('―'를 붙이는 말투)

"부엉이는 창가를 한다. 부―엉 … 애기가 코― 자면서 … 너는 너는 나―리 … 들녘새는 펀―한 들녘 … 순이가 찾아내니까 으애― 하고 울었습니다 … 옛이야기처럼 살―살― 바람결에 고개를 … 이―슥하여 내리는 밤이슬 … 웃수머리 둥구나무, 조―그만하게 보였다."
<오장환-부엉이는 부끄럼쟁이>(실천문학사, 2014) 16, 18, 20, 27, 39, 42, 46, 62쪽

일본에서 나온 책을 보면 '―'를 퍽 자주 씁니다. 말을 늘인다든지 길게 소리내려고 하는 자리에는 어김없이 '―'를 넣습니다. '에또'는 일본말인데 이 일본말을 '에―또'처럼 적기도 해요. 이렇게 적으면 껍데기는 한글이어도 아주 일본말(일본글)인 셈입니다.

 부―엉 → 부엉 / 부어엉 / 부엉부엉
 코― 자면서 → 코 자면서 / 코오 자면서

긴소리를 나타내려고 '―'를 넣는다고도 할 수 있으나, 한국말에서는 '―'를 넣지 않고 긴소리를 나타냅니다. 영어 같은 서양말에서는 ':' 같은 기호를 써서 긴소리를 나타내기도 하지요. 그러나 한국말을 글로 적을 적에는 ':'도 쓰지 않고 '―'를 쓰지도 않습니다. 말소리를 그대로 받아서 적은 뒤, 입으로 읽을 적에 길게 소리를 냅니다. '부엉'이라 적더라도 이 글을 읽을 적에 '부어엉'이나 '부우엉'처럼 소리를 내지요.

너는 나―리 → 너는 나리 / 너는 나아리
펀―한 들녘 → 펀한 들녘 / 퍼언한 들녘

이 보기글은 오장환님이 일제강점기에 쓴 동시입니다. 일제강점기에 글을 쓴 다른 분들도 오장환님처럼 '―'를 으레 넣었습니다. 그무렵에는 '―'를 넣지 않으면 글이 안 된다고 여긴 듯합니다. '그녀' 같은 일본말도 일제강점기에 지식인이 받아들였고, 'の'를 '의'로 옮겨서 적는 글버릇도 일제강점기에 지식인이 받아들여 퍼뜨렸습니다. 그래도 요즈음에는 '―'를 넣어 글을 쓰는 분이 크게 줄었습니다. 한국말하고 어울리지 않는 기호이기도 하고, 입으로 소리를 내어 말을 할 적에는 이런 기호가 덧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으애― 하고 → 으앵 하고 / 으애앵 하고
살―살― 바람결에 → 살살 바람결에 / 사알사알 바람결에

한국말은 '붉다'를 '불그스름하다'라든지 '발그스름하다'라든지 '불그죽죽하다'처럼 새롭게 나타내기도 합니다. 붉은 빛깔이 살짝 옅거나 짙다는 느낌을 나타내려고 말을 늘여서 적습니다. 매미가 우는 소리를 '맴맴'처럼 적기도 하지만 '매앰매앰'처럼 적기도 하고 '매애앰매애앰'처럼 적기도 합니다. 한국말은 '매―앰'처럼 적지 않습니다. 홀소리를 사이에 넣어서 긴소리를 나타냅니다. 개구리가 우는 소리도 '개골개골'을 바탕으로 '개애골개애골'이라든지 '개고올개고올'처럼 적습니다.

'살살' 같은 낱말은 '살살살살'처럼 적을 수 있고, '사알사알'이라든지 '스을스을'이나 '사알살사알살'이라 적을 수 있습니다.

이―슥하여 내리는 → 이슥하여 내리는
조―그만하게 보였다 → 조그만하게 보였다

어느 모로 본다면 '―'를 넣어서 글을 쓰는 놀이를 한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얼거리로 ':' 같은 기호를 넣어 글을 쓰는 놀이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한겨레는 이런저런 기호가 없이도 얼마든지 닿소리와 홀소리를 늘이거나 줄이거나 깎거나 다듬어서 말놀이를 즐겼습니다. 한두 가지 기호로는 담아낼 수 없는 그윽하거나 너른 말맛을 닿소리와 홀소리를 쓰면 얼마든지 가꾸거나 북돋울 수 있습니다.

ㄴ. 땡땡이①

"외톨이 양말 중 하나는 보라색 물방울 무늬가 있어 '땡땡이'라고 불렀습니다. 땡땡이의 짝꿍은 어느 날 세탁기를 향해 날아가다가 세탁기 뒤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임정진-나보다 작은 형>(푸른숲,2001) 75쪽

 물방울 무늬가 있어 '땡땡이'라고
→ 물방울 무늬가 있어 '방울이'라고
→ 물방을 무늬가 있어 '동글이'라고
→ 물방을 무늬가 있어 '점박이'라고
→ 물방을 무늬가 있어 '점둥이'라고


'てんてん'이라는 일본말이 있습니다. 일본사람은 '点点(點點)'이라는 한자를 '땡땡'으로 읽는다고 합니다. 이 일본말은 '점과 점'을 가리키는데, 동글동글한 무늬가 있는 모습을 나타낼 적에 흔히 씁니다. 한국에서는 흔히 '물방울'이라고 나타냅니다. 일본사람은 "땡땡이 스커트"라 말하고, 한국사람은 "물방울 치마"라 말합니다.

그런데, '빵꾸'나 '만땅'이라는 일본말처럼 '땡땡이'라는 일본말은 한국 사회에 널리 퍼졌습니다. 이런 일본말을 아무렇지 않게 아무 곳에나 쓰고 맙니다. 이 보기글에서 보듯이, 어린이책에도 '물방울'이 아닌 '땡땡이'라는 낱말이 버젓이 튀어나옵니다.

물방울은 동그랗습니다. 그래서 '방울이'나 '동글이' 같은 이름을 새롭게 쓸 수 있습니다. '방울방울'이나 '동글동글'이라고 해도 잘 어울립니다. 옷에 넣은 무늬라면 "물방울 무늬"나 "방울 무늬"나 "동글 무늬"나 "동그라미 무늬"라고 할 만합니다.

ㄷ. 땡땡이②

[한국말사전]
1. 흔들면 땡땡하는 소리가 나게 만든 아이들의 장난감
2. '종(鐘)'을 속되게 이르는 말
3. '전차(電車)'를 속되게 이르는 말

[일본말사전]
1. (장난감) でんでん太鼓たいこ.
2.  [속어] (종) 鐘かね.

'물방울' 무늬를 '땡땡이(てんてん-)'라 말하는 일은 올바르지 않다는 이야기가 제법 퍼졌습니다. 다만, 제법 퍼졌어도 제대로 고쳐쓰거나 바로잡는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그런데, '땡땡이'라는 말은 무늬를 가리키는 자리에만 쓰지 않습니다. 다른 자리가 하나 더 있습니다.

두 가지 사전을 찾아보면, 한국말사전에 나온 '땡땡이'는 일본말사전에 나온 '땡땡이'와 똑같은 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한국말사전에 실린 '땡땡이'는 한국말이 아닌 일본말입니다.

[한국말사전]
땡땡이치다(속되게) : 꾀를 부려서 일이나 공부 따위를 열심히 하지 않다
- 수업을 땡땡이치다
땡땡이 :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눈을 피하여 게으름을 피우는 짓
- 학교에 가지 않고 땡땡이를 부리다

[일본말사전]
サボタ-ジュ : 사보타주, 태업, 게으름 피움
サボる : [속어] 사보타주하다, 게으름 피우다
- 授業をサボるのはよくないよ 수업 땡땡이치는 건 안 좋아

'땡땡이치다'라는 말을 한국사람도 널리 씁니다. 한국말사전에 올림말로 나옵니다. 그러면 '땡땡이치다'에서 '땡땡이'는 무엇을 가리킬까요? 바로 '쇠북'인 '종'을 가리킵니다. 일본에서는 쇠북을 치는 소리를 '땡땡'으로 적습니다. 이러면서 '쇠북'을 가리키는 낱말이 '땡땡이'인 셈이고, 이러한 말밑을 바탕으로 "꾀를 부려서 일이나 공부를 안 하는 모습"을 가리키는 자리에까지 썼어요.

한편, 일본에서는 '게으름 피우다'를 '사보타주'라는 외국말을 빌어서 '사보루(サボる)' 꼴로 씁니다. 그런데 이 말투를 한국말로 옮기거나 일본말을 배우는 분들이 '땡땡이치다'로 잘못 쓰거나 옮기기 일쑤입니다. 일본말을 다른 일본말로 옮기는 셈이라고 할까요.

油を賣る(あぶらをうる)

'땡땡이'와 비슷하게 쓰는 낱말로 '농땡이'가 있습니다. '농땡이'도 일본말입니다. 그러나 이 낱말도 한국말사전에 버젓이 올랐으며, 말밑이 무엇인지 제대로 밝히지 못합니다. 일본에서 '기름을 붓는 일을 하다가 노닥거리기만 한다'는 뜻에서 비롯한 낱말인 '농땡이'입니다. 그리고, '농땡이'나 '땡땡이'는 모두 막일판(공사판)에서 널리 썼다고 합니다. 막일판을 일본말로 '노가다(土方どかた)판'이라 합니다.

이제 간추려 보자면, 일제강점기부터 '노가다'가 한국에 들어오면서 '노가다'에서 쓰던 일본말 '땡땡이를 치다'와 '농땡이를 부리다'가 마치 한국말이라도 되는듯이 스며들어서 퍼진 셈입니다. '노가다'는 '막일'로 바로잡아서 쓴다고 하는데, 아직 '땡땡이'와 '농땡이'는 한국말로 바로잡지 못하는 셈입니다.

빼먹기 ← 땡땡이
빼먹다 ← 땡땡이를 치다
노닥거림 ← 농땡이
노닥거리다 ← 농땡이를 부리다

이제라도 한국말을 바르게 살펴서 옳게 쓸 수 있기를 빕니다. 굳이 일본말을 빌어서 '빼먹기'와 '노닥거림'을 나타내야 하지 않습니다.

ㄹ. 에또

"수염 한 가닥을 뽑아 비비 꼬면서, '에, 또, 그리고요….' 하고 중얼거렸고요 … '에, 그리고요….' 하고 말을 이었습니다."
<미야자와 겐지/박경희 옮김-쥐돌이 쳇>(작은책방, 2003) 41, 43쪽

에, 또, 그리고요
→ 에, 그리고요
→ 음, 그리고요
→ 그리고요


'에또'는 일본말입니다. 일제강점기에 한국에 들어와서 퍼진 말투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말투는 교사나 정치꾼이나 공무원이 흔히 썼고, 지식인도 곧잘 썼습니다. 요즈음에는 이 말투를 쓰는 교사가 거의 사라졌다고 할 만하지만, 한때에는 이 말투를 쓰는 교사가 꽤 많아서, '에또 선생'이라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 찌꺼기 가운데 하나인 '애국조회'를 할 적에 교장이나 교감 자리에 서는 어른들은 으레 '에또' 같은 말투로 말길을 열기도 했습니다.

ええと : 말이나 생각이 미처 나지 않아 좀 생각할 때 내는 소리. 저어. 거시기.(=えっと)

일본말사전 뜻풀이에 나오듯이, 한국말로는 '저'나 '저어'나 '거시기'를 쓰면 됩니다. 이밖에도 '음'이나 '으음'이나 '흠'이나 '흠흠'을 쓸 수 있습니다. '글쎄'를 써도 되고, '그러니까'나 '그러니까 말이지요'를 써도 돼요.

곰곰이 돌아보면, 지난날에 '에또'라는 일본말을 입에서 못 떼던 분들은 일제강점기 탓이라고도 할 테지만, '에또'라는 말마디에 얽매여서 한국말로 느낌을 밝히지 못했다고 할 만합니다. 말길을 처음 트면서 쓸 만한 말투가 무척 많은데, 이 많은 말마디 가운데 어느 하나도 제대로 살피지 못했구나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글쓴이 누리사랑방(http://blog.naver.com/hbooklove)에도 함께 올립니다.



태그:#일본말, #일본말투, #우리말 바로쓰기, #우리글 바로쓰기, #한국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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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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