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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이 나타났다!> 겉그림.
 <괴물이 나타났다!> 겉그림.
ⓒ 북극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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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학교에서 종종 공동체 놀이로 하던 게임 중에 '말 전달하기' 게임이 있었다. 처음 친구가 스케치북에 쓰여 있는 글을 보고 전달한 말은 한 사람, 두 사람을 거치면서 점점 변해버려 원래의 형태를 잃어버리곤 했다.

아이들은 이 변해버린 이야기를 보며 폭소를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이 놀이가 즐거운 게임이 되려면 전달되는 문장에 필수적인 조건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문장이 길고 복잡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한 문장은 암기가 쉽기 때문에 게임을 할 수 없다. 문장이 어려울수록 암기가 어렵기 때문에, 전달자는 자신이 듣고 이해한 대로 문장을 만들어 전달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문장은 변화무쌍해지는 것이다.

신성희의 그림책 <괴물이 나타났다!>는 이 '말 전달 놀이'가 이야기의 소재가 된 듯한 책이다. 이야기는 "평화로운 숲 속 마을에 동물 친구들이 사이좋게 살고 있었어요"로 시작한다. 어느 날 생쥐는 아주 이상한 동물을 본다. 물론 이 '이상하다'는 생각은 생쥐만의 생각이다. 실제로 이상한 존재인지 그저 생쥐가 모르는 존재인지는 알 수 없다.

생쥐는 고슴도치에게로 달려가 "목이 길고 등이 굽은 이상한 동물이 나타났어!"라고 이야기 한다. 그러나 고슴도치는 고슴도치의 세계밖에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 이상한 동물 이야기를 사슴에게 전하며 "목이 길고 등이 굽고 가시가 난 이상한 동물이 나타났어!"라고 이야기한다.

또 사슴은 사슴의 세계밖에 알지 못하기 때문에 "목이 길고 등이 굽고 가시가 있고 뿔이 난 동물이 나타났어!"라고 원숭이에게 전달한다. 이렇게 생쥐의 말은 동물들을 거치며 변한다. 고슴도치는 가시를, 사슴은 뿔을, 원숭이는 꼬리를 붙이고, 코끼리는 덩치가 크다는 것을 붙여 결국 사자에게 전달되었을 때는 "목이 길고 등이 굽고 가시가 있고 뿔이 나고 꼬리가 길고 덩치가 큰 동물이 나타났어!"라고 전달된다.

그래서 사자는 괴물이 나타났다고 결론짓고 "괴물이 나타났어!"라고 소리 지르고 만다. 평화롭던 동물 마을은 아수라장이 되고 동물들은 모두 숨어버리지만 정작 길을 지나가던 그 동물을 보니 '거북이'였다는 것이 이야기의 결론이다. 

평화 깨는 와전된 이야기, 내멋대로 해석에서 시작

이야기를 보며 너무나 요즘 세상 같다는 생각을 했다. 평화를 깨는 '와전'된 이야기는 '내 멋대로의 해석'에서 시작된다. 굳이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내가 알지 못하는 이야기였을 때 사람들은 쉽게 와전으로 '왜곡'을 만든다. 또, 아전인수(我田引水)의 필요성 때문에 의도적으로 와전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어떤 때는 군중심리에 빠져 흥분하다 생각 없이 뱉어낸 말들이 와전되기도 한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와전은 원래의 것을 왜곡시키는 심각한 사회적 병리현상이다.

와전은 연예인의 가정사를 왜곡시키고, 정치인의 삶을 왜곡시킨다. 증권가 '지라시'라는 이름으로 경제를 뒤흔들어 놓는다. '유언비어'는 사회를 혼란 속에 빠뜨린다. 평화를 깨뜨려버린다.

이 무시무시한 와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결국 그 원리는 '나'인가? '우리'인가로 귀결된다. 나밖에 모르고 내 세상 밖에 모르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와전을 만든다. 이야기 속의 동물들처럼 말이다.

그러나 넓은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타인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내 안에 갇혀 두려움으로 만들어내는 와전을 피할 수 있게 한다. 만약 생쥐가 다가가 거북이에게 말을 걸었더라면, 아니 동물 친구들 중 누구 하나라도 거북이에게 다가가 거북이의 실체를 보고 받아들였더라면 와전도 왜곡도 없었을 것이다. 

작고 연약한 거북이가 괴물이 되기까지 거북이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고, 거북이의 삶에는 아무 변화도 없었다. 그런데 졸지에 '괴물'이 되어 있었다. 우리는 늘 이렇게 괴물을 양산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평화를 깨면서 말이다. 가만히 돌아보라. 지금 내가 괴물이라고 외치고 있는 그가 알고 보면 작은 거북이에 지나지 않는지 말이다.

덧붙이는 글 | <괴물이 나타났다!> | 신성희 | 북극곰 | 2014-08-19 | 1만 5000원



괴물이 나타났다!

신성희 글.그림, 북극곰(2014)


태그:#그림책, #괴물이 나타났다, #신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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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속 보물들을 찾아 헤매는 의미 탐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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