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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불교가 산 속으로 들어간 까닭이 온전히 연산군과 중종에 있는 것만은 아닐 거라 생각됩니다.
 조선 불교가 산 속으로 들어간 까닭이 온전히 연산군과 중종에 있는 것만은 아닐 거라 생각됩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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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사에서 가장 혹독한 시련을 겪은 때는 조선시대입니다. 그러함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 심지어 불교 종사자들이 설명하는 조선시대 불교사는 '억불'이나 '배불' 정도로 뭉뚱그리는 막연함입니다.

세상에 원인 없는 결과는 없습니다. 불교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면 왕조가 고려에서 조선으로 바뀌는 경우라 해도 '억불'과 '배불'로 점철되는 그런 시련은 겪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가정이긴 하지만 불교가 불교 본래의 역할, 종교에서 찾을 수 있는 순기능적 역할에만 오롯이 충실했다면 배불의 명분을 주지 않았음은 물론 억압해야 할 대상이 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고려시대 말 불교는 그렇지 못했던 듯합니다. 조선왕조를 창건하는 데 필요한 정치적 명분 때문일 수도 있지만 시대적 당위성을 포함한 모든 문제, 조선시대 불교사에 명암으로 드리운 거반 문제의 원인은 불교에 있었고, 그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었던 해답 역시 불교사에서 찾을 수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한눈에 읽을 수 있는 <조선시대 불교사 연구>

<조선시대 불교사 연구> (지은이 이봉춘 / 펴낸곳 민족사 / 2015년 2월 10일 / 값 4만 3000원)
 <조선시대 불교사 연구> (지은이 이봉춘 / 펴낸곳 민족사 / 2015년 2월 10일 / 값 4만 3000원)
ⓒ 민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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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불교사 연구>(지은이 이봉춘, 펴낸곳 민족사)에서는 신라시대에는 국교였던 불교, 고려시대에 또한 그렇게 잘 나가던 불교가 조선시대를 맞이하면서 왜 그토록 혹독한 시련을 겪어야 했는지, 어떤 시련이 어떤 양상으로 조선불교사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음양회의소陰陽會議所에서 아뢰었다. 근래에 승속 잡류가 모여 떼를 이루고 이름을 '만불향도萬佛香徒'라 하여 혹은 염불과 도경을 하고 거짓으로 속이는 짓을 하기도 하며, 혹은 내외 사사寺社의 승도가 술을 팔고 파 마늘을 팔며… - <조선시대 불교사 연구> 37쪽

공민왕 초에 불교를 문제로 삼은 이색의 상서가 있은 이래, 왕의 불교 신앙 태도와도 관련하여 불교비판의 상서는 계속된다. 동왕 10년(1361) 5월에 어사대御史臺가 올린 글이다.

불교는 본래 청정을 숭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무리들이 죄와 복의 설로써 과부와 고녀孤女들을 유혹하여 비구니를 만들어 잡거하며 음욕을 자행하고. 심지어 사대부 및 종실의 집에까지 불사를 권하고 산속에 유숙시키며 때때로 추한 소문이 풍속을 오염시키고 있으니, 지금부터는 이런 일을 일체 금하게 하여 어기는 자는 논죄하소서. - <조선시대 불교사 연구> 55쪽

책에서 <고려사절사> 등의 기록을 인용해 고려시대 말 불교의 실상을 소개하고 있는 내용들입니다. 혹세무민하고, 패거리를 이뤄 이익을 추구하고, 음욕을 자행함으로 시대적 미풍양속을 어지럽게 해 사회적으로 척결되어야 할 민폐 대상으로 손꼽힐 만큼 타락해 있는 불교의 위상을 읽을 수 있는 내용들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교가 내리고 있는 뿌리는 깊었습니다. 하지만 타락한 불교가 내리고 있는 뿌리는 정치적으로는 척결해야 할 명분, 민심을 아우르려면 짓뭉개거나 잘라버려야 할 썩은 뿌리였을 겁니다.

조선시대를 연 개국공신들 중에는 표리적인 이유, 현실사회에서 드러나고 있는 불교계의 폐단만으로 그저 막연하게만 배불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정도전 배불은 논리적이고 학술적

정도전 같은 인물들이 주장하는 배불은 논리적이고 합리적이었습니다. 그래도 조선시대 불교가 겪은 수난의 단초는 불교 스스로가 자초한 업이자 불교 스스로가 극복할 수밖에 없었던 시련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대부분 유자들의 배불 형태는 다만 불교계의 현실적인 폐단을 문제 삼거나 비이성적인 감정을 앞세우고 있으며, 이론이라고 해봐야 중국 유학자들의 배불론을 원용하는 정도의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에 비해 정도전은 성리학적 합리주의에 입각하여 불교의 윤리 및 철학성에 관한 조직적인 분석을 통해 그 모순점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 <조선시대 불교사 연구> 116쪽

한편 이처럼 불교를 억압 배척하여야 할 당위적 명분으로써 내세우고 있는 것은, ①불교는 윤회 인과 등 허탄 허무한 이단사설로 믿을 것이 못 된다. ②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신불이 국가의 난망亂亡을 구원하지 못하였다. ③명군철보明君哲輔가 그 사탄무망邪誕誣妄함을 싫어하여 통제코자 하였다. ④승도는 윤리를 어지럽혀 해악을 끼치고 자재만 낭비하여 아무런 도움이 없다는 것 들이다. - <조선시대 불교사 연구> 187쪽

권력을 좇는 권승, 쾌락과 유희를 좇는 파계승들로 인해 정도를 벗어난 집단으로 인식된 불교는 억불과 배불이라는 시대를 맞아 연산군대에 이르러서는 파불破佛에 이릅니다. 중종대에는 폐불정책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기도 하니 조선시대 불교의 운명은 그 존속이 문제될 만큼 혹독합니다.

민심에 등 떠밀린 불교, 왕조에서 정권유지의 명분으로 내세우는 억압을 견디지 못한 불교는 결국 산으로 들어가기 시작해 상중승단의 시대를 열어갑니다.

산중승단의 시대는 사실상 연산군 말경부터 시작되고, 그것은 다시 종중대의 배불정책을 통해 돌이킬 수 없는 현실로 고정된다. 사림세력의 정계 진출과 그 영향력이 막대했던 종중대에는 연산군대의 배불에 비해 더욱 철저하고 완벽을 기하는 모습이다. 연산군의 배불이 원칙 없는 파불의 형태였다면, 종중대의 그것은 철저한 폐불정책으로서의 성격을 띤다. - <조선시대 불교사 연구> 484쪽

조선시대 불교가 조선왕조 내내 억압만 받고 배척만 당하였던 건 아닙니다. 왕권으로부터 존숭 받고 흥불興佛이라 할 만큼 권력으로부터 전폭적으로 지원을 받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흥불과 배불 역시 불교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자업자득입니다.
 흥불과 배불 역시 불교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자업자득입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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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왕이나 권력자 또한 호불호를 가질 수밖에 없는 인간입니다. 세조나 문정황후처럼 친불교적인 권력자들이 없지 않았음에도 조선시대 불교가 억불과 배불로 상징되는 데서 알 수 있듯 어떤 특정인이 갖는 호불호에 따른 조치는 일시적이고 한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정도를 벗어난 불교, 권력을 좇고, 이익을 좇고, 성적 쾌락과 유희를 좇은 게 조선불교를 억압과 배불로 점철케 한 문제의 원인이었다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근본적 해답 또한 결국은 그들이 되찾아간 정도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특히 ①타율적이기는 하지만 산간총림불교가 갖는 순수 수행승단으로서의 전환 ②피폐한 경제환경 속에서 자립경제기반 구축활동을 통해 얻게 된 불교 교단의 자율성 ③사회와 국가를 위한 다양하고 적극적인 현실참여 활동 ④민중과의 유대와 결속이 가져온 진정한 기층 민중불교시대의 개막 등은 다른 시대의 불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내용들이다. -<조선시대 불교사 연구> 518쪽

민심에 의한 배불· 억불, 불교역사와 함께 할 한쪽 수레바퀴 

역사는 돌고 돈다고 합니다. 불교라고 해서 돌고 도는 역사에서 예외 일수는 없을 겁니다. 딱히 조선시대 불교만큼이라고 정량화해 비유할 수 없지만 오늘날 한국 불교, 권력다툼과 도박, 성추문과 파계 행위와 관련한 소문이 끊이지 않고 있는 현실 불교의 처신도 결코 녹록치 않다고 생각됩니다.

호가호위형 출가자, 호랑이의 위엄을 빌어 행세하는 여우처럼 부처님의 위력을 빌어 행세하는 출가자도 없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출가자가 머물고 있는 절에는 그런 출가자의 명분(스님)을 빙자해 꼬락서니 우스운 행세를 자행하는 종사자(보살)들 또한 없지 않습니다. 

시대가 바뀌었으니 불교가, 불교종사자들이 제 아무리 정도를 벗어난 행위를 해도 조선왕조와 같은 억불이나 배불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조선시대 불교사 연구>(지은이 이봉춘, 펴낸곳 민족사)를 통해서 들여다보는 불교사를 통해, 비록 왕권에 의한 억불이나 배불은 사라졌을지라도 민심에 의한 배불, 민심에 의한 억불은 불교가 존재하는 한 언제까지나 함께 존재할 또 하나의 가치입니다. 또 역사를 함께 굴려 갈 수레바퀴 한 쪽이라는 걸 깊이 새기게 되리라 기대합니다.

덧붙이는 글 | <조선시대 불교사 연구> (지은이 이봉춘 / 펴낸곳 민족사 / 2015년 2월 10일 / 값 4만 3000원)



조선시대 불교사 연구

이봉춘 지음, 민족사(2015)


태그:#조선시대 불교사 연구, #이봉춘, #민족사, #흥천사, #산중승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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