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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칼라 문(Puerta de Alcala). 1778년 카를로스 3세에 의해 만들어지기 시작한 문으로 한때는 마드리드의 동쪽 경계를 담당했다.
▲ 알칼라 문 알칼라 문(Puerta de Alcala). 1778년 카를로스 3세에 의해 만들어지기 시작한 문으로 한때는 마드리드의 동쪽 경계를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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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20일, 여행 18일째. 내일이면 스페인을 땅을 떠나게 된다. 작별의 시간이 다가올수록 아쉬움과 함께 후련함이 몰려왔다. 분명 나중에는 다시 스페인 땅을 그리워하겠지만 그 당시에는 빨리 여행의 종착역으로 향해가고 싶었다.

후련하다는 감정이 든다는 건 무언가 확실히 뽑아냈다는 뜻일 것이다. 정확히 어떤 것을 뽑아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하나 있었다. 그것이 무엇이냐? 바로 '똥배'였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포함해서 계속 강행군을 했더니 '똥배'가 쏙 들어간 것이다. 여행 기간 동안 화장실을 잘 갔더니 배가 홀쭉해졌던 것이다.

역시 도보여행은 다이어트의 지름길이다. 한 해 한 해 나이가 들수록 늘어나는 건 똥배뿐이었고, 그에 따라 허리띠도 길어졌다. 그런데 짧은 기간이나마 허리띠가 줄어드는 신기한 경험도 해보았다. 물론 서울에 돌아와서는 다시 원상복구가 됐지만...

축구팀 레알 마드리드의 홈구장인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축구팀 레알 마드리드의 홈구장인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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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알 마드리드 홈구장보다 상암구장이 더 좋더라

스페인에 와서 정작 수도인 마드리드를 돌아보지 못했던 탓에 그날은 작정하고 마드리드 일대를 탐방하기로 했다. 마드리드 구도심은 도보로 이동을 해도 끝에서 끝까지, 약 1시간 정도 밖에 소요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지도로 중요 지점을 찍어가면서 시내 탐방을 하기로 했다.

처음으로 길을 잡은 곳은 축구팀 레알 마드리드의 홈구장이 있는 산티아고 베르나베우(Santiago Bernabéu)였다. 스페인 프리메가리그의 팬이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팬인 필자에게 레알 마드리드의 홈구장 방문은 그 자체로 흥분거리였다. 그곳은 구도심에서 좀 멀기에 지하철을 탔는데 이동하는 내내 심장이 '쿵쾅쿵쾅' 거렸다. 

드디어 고대하고 고대하던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 도착했다. 경기가 없는 날이라 시합 구경은 못하더라도 구장 일대를 탐방할 수 있다는 생각에 한껏 기대감이 차올랐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중심가에 서 있어서 그런지 레알마드리드 홈구장은 차도로 둘러싸여 있었다. 차도로 꽉 막힌 산티아고 베르나베우는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FC서울의 홈구장인 상암 월드컵 경기장이나 맨체스터 유나이티트의 올드 트레포드처럼 공원형 구장을 상상했는데... 그 공원에 앉아 느긋하게 커피 한 잔을 마실 생각이었는데... 그런 기대들이 무참히 사라졌던 것이다.

그래도 여기까지 온 김에 잔디라도 한 번 밟아봐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 매표소에서 구장 투어 가격을 알아봤다. 무려 19유로(한화로 약 2만3천 원)였다. 19유로면, 톨레도 왕복 차비에다 점심까지 먹을 수 있는 돈이다. 미련 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속으로 욕에 욕을 해댔다.

'FC 서울이랑 할 때는 당연하고, 레알 마드리드랑 맨유랑 붙었을 때도 맨유 응원해야지! 상암 구장이 훨씬 낫네. 인근에 하늘공원도 있고 말야.'

프라도 미술관 앞에 서 있는 고야 동상
▲ 고야 프라도 미술관 앞에 서 있는 고야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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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도에는 '게르니카'가 없더라

다음 이동 장소는 프라도 미술관이었다. 세계 3대 미술관 중 하나라고 불리는 프라도 미술관은 1819년 개관했다. 프라도 미술관은 엘 그레코, 벨라스케스, 고야 등등... 미술계에 큰 족적을 남긴 유명 화가들의 작품 6천여 점을 보유하고 있는 유서 깊은 미술관이다.

미술에 문외한인 필자가 프라도 앞을 서성였던 건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보기 위해서였다. 화가 피카소를 좋아하고, <게르니카>의 가치를 잘 아는 만큼 직접 작품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워낙 유명한 곳이라서 그런지 미술관 앞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프라도 앞에서 그려야 '그림빨'이 사는지 열심히 스케치에 몰두하고 있는 예비 화가들, 느긋하게 잔디에 누워 늦가을 햇볕을 쬐고 있는 커플 등등... 그 중에는 한국인들도 많았다. 역시 이곳은 전세계적으로도 유명한 곳이었다.

"여기 게르니카가 없다고요? 왜요? 프라도면 당연히 게르니카가 있어야 되지 않나요?"

레알 마드리드 홈구장에서처럼 필자는 발길을 돌려야 했다. 당연히 세계 3대 미술관이라는 프라도 미술관에 <게르니카>가 있을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충격과 함께 창피함이 몰려왔다.

현재 왕립 소피아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게르니카>는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하고 있던 피카소가 1937년 6월에 완성한 작품이었다. 그해 파리에서 만국박람회가 열렸는데 고국 스페인관에 내걸 벽화를 의뢰받았다. 당시는 스페인 내전 초기였는데 여기서 '고국'이라하면, 당연히 프랑코 정권이 아닌 인민전선 정부를 말한다.

처음 피카소는 작품 구상에 시간을 허비했다고 한다. 그러던 차에 4월 28일 바스크 지역에 있는 게르니카에 독일군이 무차별 폭격을 가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되고, 혼신을 다해 그 참상을 화판에 담아낸다. 그렇게 하여 탄생한 것이 <게르니카>였다.

왕립 소피아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게르니카.
▲ 게르니카 왕립 소피아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게르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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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도에서 소피아 미술관으로 이전된 게르니카

예전 일이다. 필자는 게르니카가 당연히 카탈로니아(동부) 지역인 줄 알았다. 스페인 내전 중에 카탈로니아에 대한 탄압이 극심했고, 이후에도 분리독립 운동이 활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게르니카는 바스크(북부) 지역이었다. 필자가 번지수를 잘못 안 것이다.

프라도의 명예 관장이었던 피카소는 프랑코 독재에 대한 항거의 뜻으로 <게르니카>를 스페인으로 보내지 않았다. 이후 <게르니카>는 조건이 하나 붙여진 상태로 뉴욕 근대 미술관으로 보내졌다. 스페인에 민주주의가 회복되면 프라도에 내건다는 조건이었다.

1975년 프랑코가 사망한다. 그렇다고 프랑코 체제가 일거에 사라지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게르니카>는 1981년 9월 9일 고국 땅을 밟게 된다. 하지만 또 문제가 하나 생겼다. 프라도 미술관은 20세기 이후의 작품을 소장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만약 1937년도에 탄생한 <게르니카>를 소장한다면 스스로의 원칙을 깨게 되는 셈이다.

결국 <게르니카>는 왕립 소피아 미술관으로 이동을 하게 된다. 결국 <게르니카>는 왕립 소피아 미술관으로 이동을 하게 됐다. 소피아 미술관이 현대미술을 전문적으로 소장 전시하는 곳이기에 그런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프라도가 19세기 이전의 작품만 소장한다는 원칙과 소피아 미술관이 현대미술의 보고라는 것만 알았어도 허무하게 발길을 돌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번 실수를 발판 삼아 미학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무식하다'는 쓴소리를 밑천 삼아서 더 열심히 책을 뒤적거려야겠다.

 해군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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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선이 아쉽다... 스페인 해군 박물관에서

다음 탐방지는 프라도 미술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해군 박물관이었다. 원조(?) 무적함대의 나라 스페인에 왔으니 해군 박물관까지 걸음을 하게 됐지만 이곳은 한국인 방문객들에게는 큰 인기가 없는 곳인 듯싶었다. 민박집 추천 리스트 중에서도 이곳은 빠져 있었다.

앞선 두 탐방지에서 허탕을 쳤기에 이곳에서는 좀 진득하게 둘러봤다. 공항 검색대를 뺨칠 정도로 까다로운 보안 검색을 통과 한 후 입장을 했다. 입장료 3유로가 아깝지 않을 정도로 전시물들이 다양했다. 해군이나 배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면 한 번쯤 방문해 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배의 실물이 전시되어 있는 것은 아니고 축소된 모형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대포나 총기류, 칼과 같은 비교적 소형 장비들은 실물이 전시되어 있었다. 동양관에는 중국이나 일본, 베트남의 전통 함선들도 전시되어 있었지만 아쉽게도 우리나라와 관련된 것들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최초의 철갑선인 거북선이 그 곳에 당당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뒤로 하고 마드리드 시내를 가로질러 숙소로 향했다.

전체적으로 마드리드 여행은 허탕을 쳤고, 그만큼 아쉬움도 컸다. 하지만 후회는 없었다. 왜? 다음에 다시 오면 되니까. 그때는 좀 더 알차게 탐방하면 되니까.
   
마드리드의 핵심이라고 불리는 솔 광장. 각양각색의 희극인들이 쇼를 선보이며 관광객들의 시선을 모으고 있었다. 사진 중앙에 빨간색 옷을 입은 광대는 공중부양을 하고 있었다.
▲ 솔 광장 마드리드의 핵심이라고 불리는 솔 광장. 각양각색의 희극인들이 쇼를 선보이며 관광객들의 시선을 모으고 있었다. 사진 중앙에 빨간색 옷을 입은 광대는 공중부양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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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안녕하세요? 역사트레킹 마스터 곽작가입니다.

http://blog.daum.net/artpunk



태그:#알칼라문, #프라도미술관, #피카소, #게르니카, #마드리드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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