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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대학입시를 거부한다. 오늘 우리와 같은 청소년들 수십만 명이 대학수학능력평가, 수능 시험을 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안다. 그 시험은 대학에서 배울 준비가 되었는지 알아보는 시험이 아니라 수십만 명을 점수로 등급으로 줄 세우기 위한 것이라는 걸. 대학입시 경쟁은 남의 꿈을 밟고 올라가는 전쟁이라는 걸. 우리의 삶에 가격을 매기는 상품화의 과정이라는 걸."

대학 입시 거부 선언문의 도입부다. <대학거부 그 후>는 대학 진학을 거부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에세이 형식으로 담았다. 한국 사회가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대학 입시'를, 강요 당하지 않는 선택지 중 하나로 삼아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대한민국의 20%로 살아가는 사람들

<대학거부 그 후>의 표지. 대학 입학을 거부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에세이 형식으로 담았다.
 <대학거부 그 후>의 표지. 대학 입학을 거부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에세이 형식으로 담았다.
ⓒ 교육공동체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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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학 진학률은 80% 정도로 집계된다. 뒤집어 말하자면 20% 정도의 인구는 대학교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말이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등학교에서 자연스럽게 대학으로 발을 옮기는 동안, 누군가는 사회의 다른 부분에서 살아간다.

<대학거부 그 후>는 대학에 가지 않은 8명의 삶을 조명한다. 그들 자신의 이야기로, 대학을 가지 않은 '선택'의 이유와 그 이후 겪은 일들을 적었다. 대부분의 인물들이 털어놓는 것은 불안함, 타인의 따가운 시선, 그리고 차별로 인한 아픔들이다.

내게는 학벌로만 설명할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들이 간절하게 필요했지만 사회는 오로지 '학벌'이라는 단 하나의 기준으로 '서울대 간 너는 인생의 승리자, 지잡대 간 너는 인생의 패배자, 대학도 못 간 너는 낙오자'라고 이야기할 뿐, 대학이라는 굴레 속에서 다양하게 억압받는 삶에 대해서는 좀처럼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럴수록 내가 입시에 성공하는 것이 정말로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게 하는 요인일까에 대한 의구심은 커져만 갔다. 결국 나는 입시만이 전부였던 지난 시간들을 뒤로하고, 대학을 포기했다. (본문 34쪽~35쪽 중에서)

대학에 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다정했던 직장 동료가 날 바라보는 눈길이 싸늘해지고, '문제아'로 바라보는 분위기. 혹은 아르바이트를 구할 때 학력란을 비워 놓게 되는 일. 글쓴이들이 살면서 겪은 상황들이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인사처럼 묻는 "학교는 어디 다니니?"에 "안 다녀요"라고 대답하면, 삶에 대한 온갖 충고가 쏟아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이 모든 것들이 '대학은 꼭 가야만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국에서 대학 졸업장 없이 살아간다는 것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수능을 보기 전까지 '대학 진학'이 유일한 목표로 아이들에게 강요된다. 다른 종류의 삶은 생각조차 못하도록, 경쟁만능의 입시교육이 교육제도에 깊게 뿌리내린 상태다. 그런데 만약 대학을 가지 않는다면 어떨까? <대학거부 그 후>의 필진들은 '패배하거나 패배감을 느끼거나'로 이를 요약한다.

대학을 졸업하지 못하는 경우, 많은 사람들은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이나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려서 살아가야 한다. 고용측에서 사소한 업무조차 대학 졸업자를 뽑기 때문이다. 적은 임금과 노후 걱정이 미래를 어둡게 하고, 의식주와 문화생활도 힘들어진다. 결국 대학 졸업이 사회의 불평등을 만드는 요소 중 하나로 작용하는 셈이다.

그럼에도 8명의 저자는 자신의 삶을 후회하지 않는다. 자신이 스스로 택한, 대학 거부를 오히려 더 당당하게 말하려고 노력한다. 한국에서 대학 졸업장 없이 살아간다는 것, 그 자체를 하나의 '잘못된 상태'로 보는 세상의 시선도 함께 거부하겠다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대학입시, 혹은 거부라는 이름의 갈림길을 한참 지난 곳에도 어김없이 선택의 기점은 존재했다. 이번에는 입시 혹은 거부라는 식의 두 갈래길이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자기 점검과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에 대한 고민이라는 망망대해에 떠 있는 느낌이다. (본문 83쪽 중에서)

삶의 방향을 두고 한 선택, 이것이 정체성으로 각인되어 살아가는 동안 차별을 겪는 요소가 된다면 분명 잘못된 것 아닐까? 대학생이라는 타이틀과 스펙,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어쩌면 삶의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때문에 수천만원의 학자금 대출에 시달려야 하는 현실은 무얼 말할까?

이를 거부한 8인의 저자는 말한다. 이런 억압을 거부할 수 있는 삶도 존재한다고 말이다. 한국이 진정 기회가 공평한 사회로 진입하려면, 대학에 가지 않을 '선택의 자유'와 더불어 대학 졸업장이 없더라도 소외받지 않을 권리도 주어져야 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대학거부 그 후> (한지혜,정열음,박고형준,민다영 외 4명 / 교육공동체벗 / 2014. 11. 28 / 11000원)



대학거부 그 후 - 졸업장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

한지혜 외 지음, 교육공동체벗(2014)


태그:#대학거부 그 후, #대학거부자, #입시제도, #무한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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