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냉전 한가운데 공산당 선언, 그리고 50여 년에 걸친 지루한 경제제재의 시작

현대 쿠바 경제의 시작은 독재자 풀헨시오 바티스타가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도망가고 혁명이 완수된 1959년 1월 1일 이후로 볼 수 있다.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 등으로 구성된 게릴라 세력은 혁명에 성공한 이후 쿠바에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했던 미국에 대해 적대적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1959년 4월 피델은 미국을 방문해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리처드 닉슨 부통령을 만나기까지 했다. 그러나 1960년 쿠바에 소재한 모든 미국 기업들이 보상 없이 국유화되었다. 미국은 결국 쿠바와의 외교관계를 단절하고 피델은 쿠바를 공산국가로 선언하며 소련과의 동맹을 공식화하게 되었다.

공산국가 선언 이후 쿠바는 강력한 중앙정부에 의해 계획경제가 실시되었다. 특히 이 시기 경제는 국립은행 총재와 산업부 장관을 역임한 체 게바라의 도덕성에 기초한 이상주의 원칙 아래 운영됐다.

집단화와 국유화 정책에도 불구하고 경제위기에 직면한 쿠바 정부는 1970년대부터 물질적 인센티브를 강조한 유연한 정책들을 시행했다. 소련식 변화를 도입하게 된 것이다. 대외적으로 이 시기 쿠바는 '코메콘(Comecon)'에 가입하면서 본격적인 사회주의 경제블록 편입을 시작한다. 그러나 쿠바는 이후 일관되게 소련식 개혁을 추진하지 못했다. 체 게바라식 발전과 소련식 변화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던 쿠바 경제는 1990년대 소련 및 동구권에 위기로 난관에 봉착하였다.

1990년대 경제위기 직면, 완강한 피델 고집 버리고 경제개혁 시도

1990년대 쿠바경제위기는 사실상 이전까지 갈지(之)자 행보를 거듭해오던 경제정책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 정책 일관성이 떨어진 상태에서 대외 악조건들이 터져 나오자 쿠바경제는 극심한 유동성 위기 및 무역 감소를 겪었다.

이를 해결하고자 쿠바 정부는 초기 긴축정책을 실시했다. 그러나 정치적인 고려가 앞서면서 복지혜택 유지를 위한 재정지출을 막지 못했다. 흐름을 놓친 정책대응으로 인해 유동성이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재화 공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는 자연스레 암환율 상승과 암시장 확대를 부추기게 됐다.

국영 상점에 물건은 없는데 주민들 수중에 돈이 풀리자 암시장이 급격하게 팽창했다. 암시장 환율은 80년대 후반 달러 당 6페소에서 93년 초반 40페소까지 급등한다. 경제위기가 최악의 상황이던 1994년에는 1달러 당 150페소까지 떨어졌다. (신석호 2008, 139)

배급제가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않으면서 노동자들이 각자의 생존에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였고 공식경제에서 이탈하게 된 쿠바 대중들은 자급자족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재화공급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못하는 상황에서 암시장에만 의존해야 하는 대중들은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대중의 저항은 개혁과 마르크스 레닌주의 사이에 갈등하던 피델을 개혁의 길로 돌려세웠다. 쿠바 내 개혁을 맡은 실무자들은 시장도입 및 분권화를 거론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쿠바 개혁은 이상의과정을 통해 나오게 되었다.1993년에 자영업을부활시켜 경제의사적부문을 합법화했고 비효율적인 국영농장을 협동농장의 일종인협동조합 생산기초조직(las unidas basicas de produccion cooperativas, UBPC)체제로 개편했다.내국인의 달러 보유를 허용하고달러 상점을개설했다. 1994년에는농민시장(Mercados Agropecuarios, MA)과 공산품시장(IndustrialMarket) 및 공예품시장(ArtisanMarket)을 부활시키며,공공재와 서비스에대한 가격 인상 및 각종 세금 부과 및 인상 조치를단행했다.

경제위기가 심화되자 시장의재도입을 주장하는목소리가 높았다.그러나 1986년에 시장을폐쇄했던 카스트로는 끝까지 강하게반대했다. 그러나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대규모 난민사태등 인민들의저항이 거세고동생 라울까지국가안보를 이유로시장 허용을요구하자 손을 들었다. 카스트로의 권위가 추락했지만 위기 극복과사회 안정을위해 물러서야만 했다. (신석호2008, 162)

베네수엘라 의존도 줄이고 보다 자립적인 경제모델 구상, 개혁움직임 가속화

2000년대 들어 쿠바는 관광산업, 니켈 수출 붐, 농업과 서비스 부문의 개혁을 통해 소폭의 경제조정을 실시했다. 특히 해당 기간 동안 관광산업이 붐을 이루게 되면서 주요 외화 벌이 수단으로 자리잡게 된다.

이와는 별개로 해외로부터 받는 송금액의 경우 2010년 20억 달러를 달성하였다. 하지만 미약하게나마 시도되던 개혁경제정책들은 베네수엘라로부터 값싼 석유가 들어오자 유야무야 됐다. 베네수엘라의 미션사업을 보조하기 위해 쿠바는 의사들을 파견했고 그에 대한 대가로 쿠바는 싼값, 보다 정확히는 저리로 석유를 공급받았다. 이를 바탕으로 개혁 작업들은 일시 정지됐고 다시 기존의 중앙집권화 된 경제체제로 회귀하게 되었다.

그러나 거듭된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시도되었던 개혁정책의 성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기존의 배급제, 계획경제에 의해 통제되지 않는 민간 부문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사후적으로라도 일어나고 있는 개혁움직임을 제도권 내로 수용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북한과 함께 21세기에도 존속하고 있는 사회주의 국가 쿠바 또한 일련의 개혁 작업을 진행 중에 있다. 개혁 시도의 직접적 원인은 경기하강으로 지적된다. 더불어 2008년 2월 출범한 라울 카스트로 정권의 기민한 현실인식에 따라 개혁은 본격화되었다.

2008년 4.1%를 기록한 쿠바의 경제성장률은 1년 뒤인 2009년 1.4%로 추락한다. 2010년에도 1.9%를 기록하면서 경제적신호가 감지되었다. 이 기간 2008년 말 불어 닥친 허리케인으로 인해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허리케인 피해의 여파는 2009년 이후 생필품 부족으로 나타났다. 출범한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내부불안에 부딪친 라울은 2010년 다시 개혁 작업에 착수하게 된다.

베네수엘라와의 밀월관계에도 불구하고 2000년대 후반부터 저성장에 빠진 쿠바. 자료: (Brookings institution 2014, 18)
▲ 쿠바 실질국내총생산 경제성장률(1990-2014) 베네수엘라와의 밀월관계에도 불구하고 2000년대 후반부터 저성장에 빠진 쿠바. 자료: (Brookings institution 2014, 18)
ⓒ Brookings institution

관련사진보기


먼저 라울 정권은 2009년 대규모 정부조직 개편을 단행했고 주요 장관 및 공기업 사장 등의 요직을 자신의 정치기반인 군부 중심으로 채워 넣었다. 14년 만에 개최된 제6차 공산당 전당대회(2011.4)에서 라울은 당시 피델의 제 1 서기직 공식사퇴로 제 1 서기직에 올랐다. 사실상 실권자로 떠오르게 된 라울은 이 자리에서 "인민들의 물질적, 정신적 기본욕구 충족을 우선시 하겠다"는 내용의 연설을 하였다. 이후 개혁 작업은 탄력을 받게 되었고 각종 개혁조치들이 꾸준히 발표됐다.

라울 정권이 들어서면서 진행되고 있는 일련의 개혁작업에서 해외투자 유치는 경제개혁의 성패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과제다. 현재까지 쿠바정부는 해외를 돌며 외국인 투자설명회를 여러차례 갖았다. 사진은 올해 KINTEX에서 열린 '서울 국제식품 산업대전'에 참가한 쿠바 부스 모습.
▲ 해외투자 유치에 노력하고 있는 쿠바 라울 정권이 들어서면서 진행되고 있는 일련의 개혁작업에서 해외투자 유치는 경제개혁의 성패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과제다. 현재까지 쿠바정부는 해외를 돌며 외국인 투자설명회를 여러차례 갖았다. 사진은 올해 KINTEX에서 열린 '서울 국제식품 산업대전'에 참가한 쿠바 부스 모습.
ⓒ 안준모

관련사진보기


대외적으로도 이 시기에 개혁추진의 긍정적인 여건들이 갖춰지게 된다. '봉쇄정책(Containment Policy)'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는 미국에서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것이다. 쿠바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하던 기존의 공화당 부시정권보다 유화적인 입장의 민주당 오바마 정권이 들어섰다. 오바마의 경우 대선 후보 시절부터 이란, 북한, 쿠바와 같은 적성국의 지도자들과도 대화하겠다고 공언한 유연한 인물이었다. 쿠바에서 개혁조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미국에서 먼저 쿠바 제재 완화 정책을 발표했다.

ⓒ 안준모

관련사진보기


2010년 1월 9일에 '경제사회정책노선안(Proyecto de Lineamiento de la Política y Social)'이 단행되었다. 개혁안과 관련하여 약 9백만 명의 쿠바인들이 약 3개월에 거쳐 토론을 가졌다. 최종적으로 31개의 개혁조치들로 정리가 되었고 2011년 4월 18일 제6차 공산당 전당대회에서 승인되었고 8월 1일 의회에서 통과되었다. 개혁안의 핵심내용은 아래의 다섯 개 분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① 경제사회발전모델 제시 ② 정부조직 개편 및 역할 개선
③ 쿠바 국민의 삶 개선 ④ 산업 분야별 발전 ⑤ 기타

전체적인 개혁안의 골자는 중앙계획경제 부문을 다수 민간에 이양하는 것이다. 세부 개혁조치들은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며 2014년 3월 발표되어 6월 27일 발효된 신 외국인 투자법까지 이어지고 있다. 주요 개혁조치 및 세부 내용은 아래의 표와 같다.

ⓒ 안준모

관련사진보기


참고자료

이성형(2011), 「최근 쿠바의 경제모델 개혁:2010-2011」, [지정학 연구시리즈2] 쿠바: 라울 카스트로의 시대, pp. 147-156
KOTRA(2014), 「변화기의 쿠바, 우리기업 접근전략」, Global Market Report
신석호(2008), 『김정일과 카스트로가 경제위기를 만났을 때』, 전략과 문화.



태그:#쿠바, #경제개혁, #경제제재, #공산당 선언, #오바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