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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선진화법 주요 내용
▲ 국회 국회선진화법 주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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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정부예산안은 국회에서 12년 만에 처음으로 법정처리 시한 안에 통과되었다. 2012년 통과된 '국회선진화법' 덕분이다. 본래 국회선진화법이라는 이름의 특별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국회에서 자주 벌어졌던 날치기 법안통과와 이를 막기 위한 각종 의사진행 방해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취지에서 한꺼번에 개정된 국회법 제85조, 제106조, 제148조 등의 조항을 묶어 통상 국회선진화법이라고 부른다.

이번 예산안에 적용된 것은 85조의3으로 내용은 각 상임위원회가 예산안 심사를 기한 내에(11월 30일) 마치지 못하면 자동으로 본회의에 상정된다는 것이다(예산안 자동부의제). 그 이외에 국회선진화법이 담고 있는 내용들을 보면 아래와 같다.

주요내용을 살펴보면 과반의석을 차지한 여당이 법안을 날치기로 통과시키는 것을 막기 위해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요건을 대폭 강화하는 대신, 신속한 처리가 필요한 조항에 대해서는 재적의원 5분의3 동의로 "신속처리안건지정동의"를 하게 된다.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되면 해당안건이 일정기간 동안 상임위나 법사위를 통과하지 않을 경우 자동으로 처리된 것으로 본다. 그리고 회의진행과 법안처리를 저지하기 위해 국회의장석, 상임위원장석을 점거하거나 회의장을 출입방해 할 시 해당 의원은 최고 제명까지 징계가 가능하다.

국회의 역할은 국민 대신해 행정부 견제하는 것

그동안 첨예한 쟁점법안이 있을 때마다 국회가 보여 왔던 모습을 보면 많은 국민들이 이 법안의 필요성에 공감할 수도 있다. 실제로 오랜만에 예산안이 큰 잡음 없이 통과되자 진보진영 언론에서도 환영의 뜻을 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잡음 없이 정치일정이 술술 진행된다고 그것이 선진화된 민주주의인가? 법안이나 예산안을 표결도 없이 자동으로 통과시킨다는 것은 그 자체로 민주주의 원칙에 대한 심각한 훼손이다.

사실 국회에서 일어나는 폭력사태를 무조건적으로 '악'으로 규정짓는 시각에도 문제가 있다. 국회 폭력사태는 외국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대립된 정치적 관점을 가진 주체들이 정면으로 맞붙는 곳이 국회이기 때문에 가끔 어느 정도의 파열음이 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를 법을 통해 강제적으로 억제한다는 것은 빈대를 잡기 위해 초가삼간을 태우는 격이다.

국회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국민을 대변하여 행정부를 견제하는 것이다. 그리고 국회는 행정부가 편성한 예산을 심사하고 문제가 있다면 변경할 권한이 있다. 이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시간이 지체되더라도 짚을 것은 제대로 짚어야 한다.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 국민의 대표인 의원들 스스로의 의사로 합의에 도달하는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이러한 절차를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상태에서 '자동'으로 처리된다면 국회가 존재할 필요가 없어진다. 즉 국회선진화법은 사실상 국회의 심의·의결 기능을 훼손시켜 국회의 존립근거 자체를 흔드는 법안이다.

실제로 자동부의를 통해 통과된 예산안이 받아들일 만한 수준이라면 긍정적인 측면을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올해 통과된 예산안의 세부적인 내용을 뜯어보면 한숨이 나온다. 비정규직 처우개선 예산, 교육과 의료의 공공성 확보를 위한 예산, 복지사각지대 지원을 위한 예산은 턱없이 부족하다.

무상급식은 정부 부담분이 너무 낮게 책정되어 지자체가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으면 무산될 위기에 처했고 누리과정 예산은 지방채 발행과 우회지원 등 미봉책으로 간신히 필요재정을 메웠다. 갈수록 붕괴되고 있는 농업을 위한 농정예산도 제대로 확보되지 않았다. 더 심각한 것은 위에서 거론된 대부분의 예산항목이 사실 박근혜 정부 대선 공약에 포함된 내용들이라는 점이다. 처음부터 약속을 하지 않았다면 모를까, 약속을 해 놓고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거기에 대한 국회의 심의와 비판마저 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문제 예산들, 시간에 쫓겨 변화 없이 통과

반면 국방부문 예산은 최근 드러난 방위사업비리 사태를 보아도 누구보다 철저한 심의가 필요한 부분이었다. 그러나 시간에 쫓겨 정부안에서 별다른 변화 없이 통과되었다. 4대강 관련 추가투입 예산도 그렇고 타당성 분석도 없이 추진된 신규 댐 건설 등 토건족을 위한 예산도 거의 문제없이 통과되었다.

예산조달 방식도 문제인데 담뱃세 인상안은 정치권의 야합으로 손쉽게 통과된 반면 대기업 법인세는 오르지 않았다. 오히려 배당소득 과세 특례 등 대기업의 세수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통과되었다. 이렇게 문제가 많은 예산안이 통과되었는데도 법정기한을 지켰다는 이유만으로 칭송하는 것은 형식적 민주주의만을 중시하는 기만적 태도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형식적 민주주의가 아니라 실질적 민주주의이다.

진정한 국회 선진화는 민중의 삶을 균형 있게 고려하는 정책과 이를 뒷받침하는 예산내용이 논의될 때 가능한 것이다. 근본적인 문제점은 집권정부와 여당이 이런 원칙을 무시하고 거침없이 반서민, 친재벌 정책을 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양식 있는 야당 의원이라면 모든 권한을 동원해서 막아내는 것이 당연하다. 국회에서 가끔 벌어지는 야당의 발목잡기와 시간 끌기, 혹은 여기서 더 발전한 날치기와 폭력사태가 보기 싫다면 애초에 자신의 공약도 지키지 못하는 정부여당부터 비판할 일이다.

근본적인 문제점을 내버려 둔 채 선진화를 빙자하여 외형적인 결과만을 강조하는 것은 국회를 후진시키는 것이다. 실제로 행정부가 유신독재세력의 손에 넘어간 상태에서 국회마저 제 역할을 못한다면 이 나라의 민주주의는 완전히 70년대 혹은 그 이전으로 돌아가게 된다. 따라서 국회선진화법의 독소조항은 폐기되어야 하며 과거 국회가 보여주던 지루한 합의 과정이나 과격성을 띤 양상도 민주주의의 한 부분으로 이해하는 사회적 지각이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진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입니다.



태그:#국회선진화법, #예산안 자동부의제, #예산안 법정기한, #날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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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책연구원은 통합진보당의 싱크탱크입니다. 민주노동당 원내 진출 이래 10년간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정책을 연구하며 진보의 발전을 위해 매진해왔습니다. 오마이뉴스를 통해 매주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진보적 시각으로 분석하고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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