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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방송사 씨앤앰 비정규직 노조 조합원이 12일 서울 서울파이넨셜센터 앞 광고탑 위에서 케이블 비정규직 노동자 대량 해고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케이블방송사 씨앤앰 비정규직 노조 조합원이 12일 서울 서울파이넨셜센터 앞 광고탑 위에서 케이블 비정규직 노동자 대량 해고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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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광화문 네거리에서 고공농성을 시작한 임정균씨가 소속된 희망연대노동조합에서 아내에게 보낸 편지글을 보내왔다.

임씨는 수도권 최대 케이블방송업체인 (주)씨앤앰 외주업체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다. 그는 해고 당사자는 아니지만 해고된 동료들의 복직을 요구하며 이날 새벽 중구 프레스센터와 파이낸셜 센터 사이에 위치한 전광판 위로 올라가 "해고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내려오지 않겠다"라고 밝혔다.

해고된 씨앤앰 비정규직 노동자 109명은 모두 노동조합 소속이다. 이들은 지난 7월 씨앤앰 하청업체 세 곳이 바뀌는 과정에서 계약 만료로 인한 해고 통지를 받고 파이낸셜 센터 인근에서 127일째 노숙 중이다. 

아래는 편지글 전문이다.

사랑하는 당신에게

내가 노조에 가입한지 어느덧 2년이란 시간이 지나고 있는 것 같구나. 처음과는 다르게 조금씩 변해가고 있는 내 모습을 지켜봐줘서 고마워…. 많이 힘들었을 텐데 내가 하고싶은 것을 할 수 있게끔 옆에서 묵묵하게 응원해주고 힘든 일, 괴로운 일이 있을 때엔 같이 울어주고 즐거워하고 괴로워해주는 당신이 있었기 때문에 힘을 낼 수 있었어.

지금 내가 하려는 것을 말하지 못한 거 정말 미안해. 나중에 알게되면 정말 많이 놀라고 힘들거라는 거 알아. 하지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이것 말고는 없다는 생각에 결정하고 하는 거라 이 못난 남편 이해해줘…. 오빤 아직도 강하고 강하잖아….

사실 많이 두렵다. 처음해보는 거라. 많이 떨리기도 한다. 하지만 해고대오(해고당한 사람들 모임)들 생각하면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아. 미안하고 죄송해서. 그사람들과 얘기하면서 느낀건데 회사에 대한 원망보다도 사랑하는 사람한테 배신당한 것 같대…. 젊은시절 회사를 위해서 누구보다 잘하고 열심히 하려고 노력도 하고 했는데 이제는 별로 필요없어서 버려진 것 같다고 많이들 아파해.

무슨 회사가 이럴까? 어떤 회사에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할까? 109명이란 사람들을 해고시켜놓고 5개월 넘게 노숙하는 사람들을 향해 배가 덜 고픈 것 같다고 말하는 회사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아 답답하고 욕이 나온다. 요즘 더욱 더 심해진 것 같아.

해고대오 사람들과 만나면 내가 죄인이 된 것 같다. 해고대오 사람들 앞에서 잘하고 있다고, 여러분을 존경한다고 멋지게 얘기하고 희망도 주고싶고 이길 수 있다고 확신도 줘야 하는데 그냥 해고대오들 앞에 서서 말을 하면 목이 메이고 눈물이 먼저 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가족도 있지만 어느새 해고대오들도 내 가족같이 된 것 같아, 이들의 힘든 하루하루와 아픔이 막 전해져와서 하루하루가 너무 아프다. 이런 선택한 나를 이해해줘.

난 따뜻한 방에서 자고 있는데 우리의 해고동지들이 점점 추워지는 길바닥에서 자고 있다고 생각하니 매일매일 하루가 지옥이다. 아이들 앞에서는 재미있는 아빠, 좋은 아빠, 당신 옆에서는 든든한 배우자, 회사에서는 일 잘하는 직원이 되야만 했는데 그런데 내 마음속 한구석은 계속 망가지고 있었나봐. 내가 이렇게 즐겁고 행복해도 되나라고.

내가 정말 시간이 길어지면서 우리 해고동지들을 처음처럼 생각 안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 며칠이 될지, 얼마나 있을지, 지금은 알 수가 없어. 몸 상하지 않고 건강하게 내려올지 아님 어찌될지도 모르겠다. 술을 먹어도 잠이 안와….

너와 애들은 옆에서 자고 있는데…. 이쁜 우리 똥강아지에게 너무 미안하고 매일 아빠 일찍 들어오라고 말하는 아이들에게 당분간 못 들어온다고 차마 말을 할 수가 없더라. 당신에게 말하면 너무 놀랄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혼자 결정하게 된거 다시 한 번 미안해. 그냥 애들이 아빠 왜 안들어오냐고 하면 좋은 회사 만들기 위해 당분간 못 들어온다고 잘 말해줘.

미안해 항상 부탁만 해서 이제껏 나랑 살면서 좋은 거 맛난거 맘편하게 해주고 싶었는데. 몸도 고생 마음도 고생만 시킨 못난 남편이라 점점 할말이 없다.

하지만 말야, 누구보다 너를 사랑하는 건 알지…. 그건 그 누구보다 잘할 수 있다. 한번만 더 나를 믿어주고 내려오게 되면 크게 말해줄게 사랑해라고….

2014년 11월 11일 못난 남편이


태그:#C&M, #고공농성, #광화문, #전광판, #씨앤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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