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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신풍애양원 도성교회 한센인 회복자 이동훈 장로가 강연회에서 꽃다발을 받고 있다.
 여수 신풍애양원 도성교회 한센인 회복자 이동훈 장로가 강연회에서 꽃다발을 받고 있다.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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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한센씨는 여수 애양원에서 나가지도 못했다. 아이들이 공부하고 싶어도 학교에서 받아주지 않았다. 냉대와 멸시 속에서 살아왔다. 이 같은 사진전시회(우리 안의 한센인 100년 만의 외출)를 열게 한 박성태 작가와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은혜받기를 원한다."

한센인 회복자 이동훈 장로의 말이다. 자그마한 체구에 검은 안경을 쓴 그의 음성은 또렷했다. 대중들 앞에서 이 말을 꺼내기까지 이동훈 장로에게는 기나긴 시간이 필요했다.

일본인 심금 울린 한센인 '텟짱' 

일본인 한센인 권철 작가가 박성태 작가의 작품인 민선식 할머니 사진 앞에서 그가 쓴 일본 한센인 텟짱의 책을 들어 보이고 있다.
 일본인 한센인 권철 작가가 박성태 작가의 작품인 민선식 할머니 사진 앞에서 그가 쓴 일본 한센인 텟짱의 책을 들어 보이고 있다.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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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오후 여수진남문예회관에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권철씨의 강연을 듣기 위해서였다.

권철 작가는 1994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20년 동안 일본 한센인 시인 '텟짱'씨를 사진으로 기록한 한센인 전문작가다. 텟짱은 17세에 한센병에 걸려 모든 피부 신경 조직을 잃고 요양소에서 부인을 만났으나 중절수술로 인해 부인과 자식을 잃는 아픔을 겪었다. 텟짱은 자신의 절망적 상황을 시로 승화해 일본인들의 심금을 울렸다.

한센인들은 국가의 차별과 사회적 차별을 고스란히 받으며 살아왔다. 그나마 전남 여수는 한센인 시설 애양원이 있었기 때문에 한센인 인권 문제가 어느 지역보다 잘 해결됐던 지역이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의료 선교사들이 한센인들에게 인간적인 대우를 했기 때문이었다.

권철 작가는 누구?
권철 작가는 한센인 병에 감사한 시인이자 한센인 회복자 텟짱의 일대기 쓴 사진작가다.

1994년 사진을 공부하기 위해 일본 유학을 떠나 일본 사진 예술전문학교 보도사진학교를 졸업했다. 1997년부터 작업한 한센인회복자 시인 텟짱을 테마로 작년 사진집을 발간해 일본열도에 이름을 알렸다.

권 작가는 또 일본 최대 환락가인 가부키초를 10년 이상 촬영해 지난해 가부키초 사진집으로 일본 최고권위 퓰리처상인 고단샤 출판문화상을 수상해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권철 작가는 "일본에서 한센인들의 명예회복이 이뤄지고 한센인들이 관련 재판에서 승리하면서 그 영향이 대만에도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유감스럽게도 소록도에 수용된 분의 명예는 약간 회복됐지만 소록도가 아닌 곳에서의 한센인 명예회복 문제가 아직도 숙제로 남아 있다"라고 전했다.

이날 행사장을 찾은 정근식 서울대 교수는 "박성태, 권철 작가를 통해 한센인 회복자 얼굴을 직접 만나볼 수 있게 돼 반갑다"라면서 "20년 전 한센인 연구를 시작했을 당시에는 사람들의 편견이 심했다, 한센인들 역시 다가가면 오지 말라고 할 정도로 다른 사람에 대한 불신이 심했다"라고 회상했다.

이어 그는 "나는 미국에서 여수 애양원을 설립한 윌슨 선교사의 아들 집에 머물면서 애양원의 역사를 공부했다"라면서 "이후 제자에게 '조선총독부 한센인 정책 소록도 문제'를 연구 시키면서 본격적으로 우리나라 한센병의 역사를 연구했다, 박성태 작가에게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허락해준 애양원 할아버지 할머니 들께 감사드린다"라고 말했다.

도성교회 송찬석(50) 전도사는 "앞으로 10년, 20년이 지나면 우리나라 한센인이 없어진다고 한다, 지금까지 소외당하는 우리 이웃들에게 마음을 열면 좋겠다"라면서 "편견, 차별, 소외된 약자에 대해 우리 사회가 어떻게 이들을 대해 왔는지를 이번 전시회를 통해 되돌아보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다음은 20년 동안 일본 한센인 문제를 다룬 권철 작가와 나눈 인터뷰 내용이다.

한센인 차별 사죄한 일본... 여전한 한국

이날 많은 청중이 참가한 가운데 여수작가회 화요문학회동인에서 활동하는 주명숙 시인(가운데)이 여수애양원 평안의 집 한센인 시인 이상구씨의 시를 낭송해 감동을 줬다.
 이날 많은 청중이 참가한 가운데 여수작가회 화요문학회동인에서 활동하는 주명숙 시인(가운데)이 여수애양원 평안의 집 한센인 시인 이상구씨의 시를 낭송해 감동을 줬다.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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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텟짱>에는 어떤 내용이 들었나?
"텟짱은 한센인 회복자의 이름이다. 그는 수정같이 맑은 인물이다. 그가 시인이기 때문에 책에는 많은 시가 나온다. 책 속에는 그 사람의 일대기가 들어있다. 그분을 10년 동안 밀착 취재해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이후 2011년 그분이 돌아가시고 책을 펴냈다. 그는 한센병에 걸려 많은 사람을 만났기 때문에 한센병에 감사했다. 또 많은 사람과 교류할 수 있는 '인연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더라. 그분을 통해 나를 깨달았고, 사진작가로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배웠던 것 같다."

- 멀리 여수까지 왔다.
"한국에서도 여수 박성태 작가가 한센인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을 책으로 읽었다. 5월 소록도에서 만난 것이 계기가 됐다. 많은 사진작가들이 아집이 세다 보니 같은 테마에 부딪히면 '라이벌 의식'을 가진다. 허나 다른 테마 같으면 모르지만 이것은 인간의 존엄성이랄까, 억울하고 힘들게 살아오신 분들의 일대기를 사진작가가 예술로 승화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서로 응원했다. 이 영역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함께 개척해 나가야 할 주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박 작가를 응원하는 차원에서 여수에 왔다."

- 일본 한센인과 우리나라 한센인과 관련해 가장 큰 차이점이 있다면?
"가장 큰 차이는 문화다. 국민성의 차이다. 우리가 일본이라는 나라를 '나쁜 나라'라고 낙인을 찍지 않나. 하지만 실제 일본에 가서 살아보면 사람들이 착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한국인이 참 못됐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 사람 중에는 '나'밖에 모르는 사람이 많은 듯하다. 나만 잘 먹고 잘살면 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이점은 우리가 일본인에게 배워야 할 점이다.

그런데, 한센인 같은 경우를 보면 반대다. 한국 소록도 같은 경우는 일제강점기 시대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센인들이 격리 수용됐지만, 다른 곳 같은 경우 독립시켜 강제적인 억압을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 일본 한센인은 처음부터 아우슈비츠 수용소 같은 곳에서 범죄자 취급당했다. 한센인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두 나라의 차이가 확연하게 보이는 대목이다."

한센인 전문 사진작가 권철씨는 "제가 돌 맞을지 모르지만 한국 사람들이 나밖에 모르는 잘못된 사람이 많다, 나만 잘 먹고 잘살면 된다는 못된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센인 전문 사진작가 권철씨는 "제가 돌 맞을지 모르지만 한국 사람들이 나밖에 모르는 잘못된 사람이 많다, 나만 잘 먹고 잘살면 된다는 못된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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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적 보상은 어떤가?
"그것은 일본이 확실히 잘 돼 있다. 한센인들에게 거의 다 보상을 했다고 볼 수 있다."

- 일본은 어떻게 보상했나?
"일본말로 라이(한센병) 예방법을 1996년 새롭게 지정해 발족했다. 2004년 고이즈미 정부가 환자에 대한 억압 등에 사죄한다는 의미에서 1인당 1000만 엔(한화 1억 원 가량)을 보상했다. 병이 다 나은 상태임에도 한센인을 나라에서 격리수용했고, 일본 정부는 이 부분에 대해 사죄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한국은 극소수에게만 보상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은 보상이나 교육적인 측면에서는 아직 어두운 것 같다."

- 우리나라 한센인 관련 정책의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나.
"지난 20년 동안 일본에서 살다 보니 한국에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한센인 관련 정책은 여전하다. 타인을 배려할 수 있는 정책이, 사회의 시선이 필요하다. 잘못한 것을 반성해야 한다. 주위에 우리보다 못한 사람, 불쌍한 사람, 학대받았던 사람들을 통해 우리의 잘못을 제대로 봐야 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한센병자가 애들을 잡아가서 먹는다고?"

강연에 앞서 한 참가자가 권철 작가에게 꽃다발을 선사했다.
 강연에 앞서 한 참가자가 권철 작가에게 꽃다발을 선사했다.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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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1일) 행사에는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나?
"난 일본에서 20년 동안 한센인 회복자를 대상으로 사진 작업을 했다. 한국에서 작가 몇 분이 한센인을 촬영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앞으로 한센인을 보는 시각을 넓혀 그분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운동을 해보고 싶다. 오늘 행사에는 그런 의미가 있다.

편견은 교육에서 나온다. 한센병은 일종의 피부병인데, 어릴 적 많은 사람들이 '문둥병자가 애들을 잡아가서 먹는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오늘과 같은 행사를 통해 한센인들의 생활을 공유하고 함께 대화하면서 편견을 허물어가는 활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오늘이 그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 박성태 작가의 작품을 보고 느낀 소감은?
"박 작가의 사진을 본 지 두 달 가까이 돼 간다. '10여 년 전부터 찍은 것 아니냐'고 박 작가에게 물어봤는데 '1년 작업했다'라고 하더라. 이 정도 작업을 1년에 한다는 건 박 작가가 마음을 활짝 열고 뛰어든 결과물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사진을 통해 박성태 작가가 따뜻한 마음으로 피사체에 접근했다는 것을 읽을 수 있었다."

- 다른 작업으로 일본의 환락가도 찍었던데.
"그곳은 신주쿠 가부키초라는 동네다. 우연히 학교에 다니면서 이곳을 지나가다가 야쿠자의 패싸움을 보고 흥미를 느꼈다. 얼마 전 눈빛 출판사에서 가부키초 한국번역판이 나왔다. 그 작업을 하면서 '텟짱'의 다큐멘터리를 병행했다.

두 테마 중 하나라도 없었다면 난 20년 동안 일본에서 살 수 없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다시 말해 한센인 텟짱 다큐멘터리는 가부키초 다큐멘터리의 밑거름이 됐고, 가부키초 환락가 텅스텐의 현란한 불빛과 야쿠자들의 싸움은 텟짱으로 대표되는 여러 한센인들과 만남을 통해 얻은 힘이지 않았나 생각한다. 두 테마가 있었기에 사진작가 권철이 존재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여수넷통> <전라도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권철, #한센인, #텟짱, #박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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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하고 싶은 일을 남에게 말해도 좋다. 단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라!" 어릴적 몰래 본 형님의 일기장, 늘 그맘 변치않고 살렵니다. <3월 뉴스게릴라상> <아버지 우수상> <2012 총선.대선 특별취재팀> <찜!e시민기자> <2월 22일상> <세월호 보도 - 6.4지방선거 보도 특별상> 거북선 보도 <특종상> 명예의 전당 으뜸상 ☞「납북어부의 아들」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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