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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행정병으로 군복무를 하던 시절에 감사철만 닥치면 서류상에는 있지만 실제로는 없어진 물건들을 다시 찾느라 애를 먹던 기억이 아직도 납니다. 그나마 내구연한이 지나서 폐품처리 했다고 서류 처리를 할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취득한 지 얼마 안 된 물건이라면 새벽에 선임들과 옆중대 창고를 털어서 겨우 우리 중대 물품을 채우고 안심을 하곤 했었죠.

쓸 만한 사무용품들을 간부들이 집에 집어갔는지 감사를 대비해 옆중대에서 미리 훔쳐갔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수많은 사례들은 '관행'이라는 이름 하에 묵인되고 많은 남성들의 술자리에서 안주거리로 씹히고 있을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우리 사회에서는 '관행'이라는 이름 하에 너무나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남는 예산 하나 허투루 쓰지 않기 위해(?) 연말만 되면 꼼꼼하게 보도블록을 뒤엎어 주시던 관행은, 보는 눈이 많아졌는지 예전에 비해 많이 줄어들었지만 알게 모르게 아직도 많은 '관행'이 남아있습니다.

매번 보고하기가 번거롭기에 미리 법인카드를 사용해 카드깡을 해서 부서 회식비로 자유롭게 활용한다거나, 부서별로 부여된 공용 차량을 부서장이 개인용으로 사용하는 일들은 누구나 알지만 '관행'이라는 이름 하에 지금도 우리 사회 어딘가에서 묵인되고 있을 겁니다.

군사 독재 정권을 거치면서 우리 공직사회는 정권에 위협적일 수 있는 누군가를 감시하고 억압하는 '관행'이 독버섯처럼 자리잡았고 민주화가 자리잡은 오늘 날의 대한민국에도 아직 없어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2012년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속칭 '민간인 불법 사찰 증거인멸' 사건의 주인공 장진수 주무관이 본인의 최후 고백을 한 권의 책으로 펴냈습니다. 청와대의 푸른 지붕, 그리고 당시 장진수 주무관의 우울하고 힘들었던 시간을 의미하는 '블루(Blue)'를 워터게이트 사건에 빗대어 <블루게이트>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관행에 익숙한 '영혼 없는 공무원'에게 닥친 큰 사건

 <블루게이트> 표지
 <블루게이트> 표지
ⓒ 오마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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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부터 국무총리실에서 근무를 시작한 7급 공무원 장진수씨는 국무총리실 여러 부서를 돌며 근무하다가 2009년 7월부터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일하게 됩니다. 그리고 2010년 민간인 불법 사찰 증거인멸 사건에 휘말리며 그의 삶은 180도 바뀌게 됩니다.

나는 한편으로 '진 과장 말처럼 그 문건(김종익씨 음해문건)으로 여론이 돌아선다면, 내가 근무하는 사무실에 다시 평화가 찾아올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안이한 기대를 품고 있었다. 옳고 그름은 외면한 채 나만 편하면 그만이라는 비겁하고 소극적인 태도. 정말 부끄럽게도 '영혼 없는 공무원' 그 자체 였다. (본문, 118p)

검찰 조사를 받기 전까지 그는 '영혼 없는 공무원'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판단을 배제하고 상사의 말에 복종하는 성실한 모습을 보이는 것, 묵묵하게 일하면 자신의 성실성을 알아주겠거니 하고 조직에 충성하는 말단 공무원의 모습이 책의 초중반부에 여실히 드러납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지만, 당시에는 특별히 이상하다거나 하물며 범죄에 해당하는 일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공무원들이 자료를 파쇄하는 일은 항상 있는 일이었고, 뭔가 문제의 소지가 생기면 당연히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몰랐다는 것이 참으로 부끄럽지만, 사실이었다. (본문, 81p)

늘 해왔던 '관행'으로 대했던 일이 이렇게 커질 것이라곤 그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겠지요. 책은 사건 당사자들의 실명과 직책이 그대로 거론되고, 등장인물들이 나눈 대화들이 장진수 주무관이 기록한 녹취록과 그의 기억을 토대로 실려있습니다.

말단 공무원의 시선에서 바라본 대형 정치 스캔들을 기록한 <블루 게이트>라는 책은 참 독특합니다. 초반부에 가볍게 지나가는 대사 하나하나가 후에 사건의 향방을 가르는 중요한 복선으로 작용하기도 하고, 이 사람만 믿으면 모든 일이 해결될 것 같던 상사들이 배신을 하기도 합니다.

민주화가 정착한 것처럼 보이는 21세기의 대한민국이라는 배경까지 겹치면 너무나 허황된 이야기같아 마치 한 편의 잘 쓰여진 추리소설을 보는 듯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게 한 개인이 겪은 사실이며, 이 책은 그 스스로도 범죄의 한 역할을 담당한 말단 공무원의 고발입니다.

우리는 그를 잊어선 안됩니다

내부 제보자를 대하는 부정적인 시선 역시 녹록하지 않았다. "한 번 배신자는 영원한 배신자"라는 말과 함께 "왜 처음부터 사실을 말하지 않고 뒤늦게 폭로를 하느냐"라며 진정성을 의심할 때는 솔직히 곤혹스러웠다. 그러나 모두 내가 짊어져야 할 몫이었다. "진실과 거짓 중에 거짓을 배신했으니 괜찮다, 괜찮다" 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머리말, 8p)

장진수 전 주무관의 내부 고발은 많은 고민 끝에 일어났습니다. 특히 공직을 잃을 상황에 그의 입을 막기 위해 그의 손에 쥐어졌던 돈을 뿌리치지 못한 일은 그 스스로에게도 큰 부끄러움이었습니다.

2012년 오마이뉴스 팟캐스트 <이털남>을 통해 자신의 치부를 포함한 모든 이야기를 용기내어 공개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요? 책의 말미에 실린 <'장진수'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라는 추천사를 쓴 김종배 시사평론가는 그의 이 행동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습니다.

"증거인멸 사건의 은밀한 실체 외에도 자신을 짓누르던 부끄러운 행적마저 내려놓았다. '남'을 고발하는 데 머물지 않고 '나'까지 고발함으로써 그는 비로소 자유를 얻었고, 양심 있는 국민이 되었다.(추천사, 286p)"

2012년 온 나라가 들썩이게 했던 이 사건이 지금은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4월, 온 국민을 아프게 했던 세월호 사건을 통해 우리는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쌓인 부패가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늘 그래왔기에 안전 점검을 대충하고, 높으신 분이 타고 가야 하기에 구조 활동보다 의전에 헬기를 먼저 사용하고, 슬픔에 젖은 유가족에게 장관님이 오셨다는 것을 굳이 알려주는 공무원들의 모습에 우리는 전율하고 격분했었습니다.

이 책이 누군가에게는 영화 <매트릭스>의 빨간 알약처럼 정부의 추악한 이면을 직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서평] <블루게이트> (장진수 씀 / 오마이북 / 2014.06 / 15,000 원)

이 글은 기자의 블로그(mimisbrunnr.tistory.com)에도 게재되었습니다.



블루게이트 - 불법 사찰 증거인멸에 휘말린 장진수의 최후 고백

장진수 지음, 오마이북(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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