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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 동포 모국 방문 환영사하는 광경
▲ 고려인돕기 운동본부 이광길 대표 고려인 동포 모국 방문 환영사하는 광경
ⓒ 여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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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땅 농사의 성공 신화를 갖고 있는 고려인들이 전에는 총칼로 대한민국 독립을 위하여 애를 썼다면, 이제는 대한민국의 평화 통일과 통일 후 안정적 번영에 기초가 될 수 있는 식량문제 자급을 위해 뛸 수 있는 해외농업의 선봉대로서 일할 수 있는 소중한 우리 동포들이다."

고려인돕기 운동본부(대표 이광길)는 한인 러시아 이주 150주년을 맞이하여 고려인 동포 124명을 초청했다. 이광길 대표는 "이번 고려인 모국 방문은 단순이 조국의 발전상만 보러 왔다가는 방문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큰 획을 긋는 의미가 있는 방문이 되길 기대하고 바란다"고 했다.

- 이번 고려인 동포 모국 방문의 큰 의미와 결실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고려인들은 경제적으로 빈곤하지만 남북한을 동시에 방문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남북한 신뢰의 연결고리가 될 수 있고, 평화통일의 연결고리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고려인들은 큰 땅 농사에 저력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경제 15위라고 하지만 식량 절대부족 국가입니다. 쌀을 포함한 식량은 외국에서 73%을 수입해야 합니다. 쌀을 제외하면 98%을 수입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자손 대대로 식량을 70%이상 수입해서 먹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고려인들은 큰 땅 농사에 성공한 저력 있는 민족이라 중앙아시아 넓은 땅에 농사를 지어서 한국으로 역수출을 해서 자손 대대로 민족의 번영의 기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려인들이 한국 정부에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미국에 있는 재외 동포들처럼 고려인들도 마음껏 방문하고, 마음껏 취업하고, 마음껏 교육을 받을 수 있고, 원하는 사람은 귀화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국 재외동포들보다 더 나은 대우가 아닌, 똑같은 대우를 받기를 원합니다.

2007년 재외동포법을 제정해서 고려인들이 이제야 조국을 방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고려인들은 법무부에서 차별대우를 합니다. 마음대로 왕래하는 것도 25세 이상이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고, 또 마음대로 직장 취직도 못합니다. 정해진 곳만 취직해야 합니다. 고려인들이 와서 다른 직장 취직을 하니까 불법 취업이 됩니다. 한마디로 미국에 있는 우리 재외 동포들과 똑같은 대우만 해주어도 됩니다. 더 나은 대우를 바라지 않습니다. 이런 독소적인 조항을 없애고 고려인들에 대한 법적 지위를 향상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모국 방문을 통해 이것을 법적으로 추진하자고 국회위원 130명이 사인을 했습니다. 곧 입법화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 고려인 동포들이 다른 동포들처럼 대우를 받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고려인들을 만나면서 본국에 알려지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한국말을 잊어버렸다는 것과 고려인 35만 명이 살고 있는 중앙아시아는 한국으로부터 8000km나 멀리 떨어진 곳이라는 것입니다.

스탈린에 의해 우리나라에서 8000km 떨어진 중앙아시아에 강제 이주를 당했기 때문에 그들은 왜, 우리가 여기에 태어났는지 알지도 못했습니다. 우리 민족적 채무가 있는 것입니다. 빚이 있는 것입니다. 한국말을 모른다는 이유와 공산주의였다는 이유 때문에 재외동포법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차별대우를 당하고 있습니다.

이번 모국 방문의 의미는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행복이 독립군 후손들인 고려인 동포들의 흘린 피의 값으로 누리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려인 동포들에게 미국에 있는 재외동포법과 똑같이만 적용해 달라는 것입니다. 대한민국동포로서 법적지위를 똑같이 해달라는 것입니다."

- 이 대표님은 고려인을 알게 된 계기가 있을 텐데요 언제부터 고려인과 인연을 맺게 되었나요?
"저희가 1994년도에 해외 농업을 시작 했습니다. 중국을 거쳐 연해주에 농장을 개척하면서 그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러시아에 우리 동포가 55만 명 살고 있고, 그들이 자랑스런 독립군들의 후손인 고려인들이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아, 내가 누리고 있는 자유에는 이런 분들의 피와 땀이 뿌려져 있었구나' 처음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독립운동가 최재형, 김경천, 박밀양 선생의 후손들과 국회 환영식에서 기념촬영
▲ 독립군 후손들과 기념촬영 독립운동가 최재형, 김경천, 박밀양 선생의 후손들과 국회 환영식에서 기념촬영
ⓒ 여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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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인 돕기 운동본부는 언제 세워지게 되었나요?
"1999년도에 고려인돕기 운동본부를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지속적으로 그들을 지원해주고 사업을 전개해왔습니다. 고려인들과 자매결연을 맺어 한글학교 교사 및 문화교류지원 자원 봉사자를 파견해서 한글을 가르쳤고, 러시아 연해주 문화원을 설립 했습니다.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에 유치원을 설립했고, '고려인 문화의 날 '러시아 정부와 함께 문화 공연도 같이 했습니다. 2001년도에 '고려인 날'을 설립을 해서 '고려인은 조국으로 버려진 약소민족이 아닌 자랑스런 대한민국 국민이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가두행진을 하고 체육대회와 문화 공연도 했습니다."

- 고려인 동포 모국 방문 초청행사는 처음인가요?
"고려인 동포 모국방문 초청은 소수 초청은 15번을 했습니다. 20명 이상는 7번을 했고, 100명이상 큰 규모는 이번을 포함하여 3번을 했습니다. 단일 규모로는 이번이 제일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 한국에서는 고려인들이 '고려시대 사람들이 아니냐?'는 말을 할 정도로 고려인들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데요. 고려인들에 대해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한마디로 고려인들은 독립군들의 후손입니다. 역사의 뒤안길에서 잊혀진 우리 동포들입니다. 대한민국이 일본의 침략으로 꼼짝 못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연해주에서는 고려인들 20만~30만 명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독립운동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대한민국에서는 일제 탄압으로 모국어 배우기도 어려울 때였습니다. 하지만 연해주에서는 한국어 학교가 380개 이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글로 내는 신문사가 8개 이상 있었고, 월간 잡지사가 7개 이상 있을 만큼 한국인들의 독립의지가 뜨겁게 불타고 있던 곳이 연해주였습니다. 이들은 1937년도에 앞으로 일본과의 전쟁이 터지면 일본군과 피부 색깔이 비슷한 고려인들이 일본군의 앞잡이 스파이 될 수 있다는 명목으로 스탈린에 의해 강제이주를 당했습니다. 강제이주 전야에 러시아는 고려인 지식인 대표 2000명을 밤에 끌고 가서 일거에 총살해 버렸습니다.

강제이주 후 스탈린이 통치하는 16년 동안은 고려인들에게 거주이주의 자유가 없었습니다. 포로 아닌 포로생활을 했습니다. 그때부터 벼농사를 시작하여 중앙아시아에 벼농사를 처음으로 전달했습니다. 또 채소 농사를 짓는 것도 우리가 중앙아시아에 처음으로 전달을 했습니다. 중앙아시아 사람들은 유목민족이라 과일과 고기를 먹지 채소와 벼농사 짓는 것을 몰랐습니다. 고려인들이 건너가 목화, 벼, 채소 농사를 지으면서 그곳 생활을 개선했습니다.

1953년~1991년도 소비에트가 무너질 때까지 고려인들이 다시 일어나서 각계각층에서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동포들은 러시아인들에 비해 부지런하고 머리가 좋아서 성공한 집단 농장에는 반드시 고려인 디렉터들이 있었습니다. 고려인들은 성공 신화는 놀랍습니다. 소비에트 통치 70년 동안 노력영웅이 1200명 정도 나왔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750명이 고려인들이었습니다."

- 노력영웅이 무엇입니까?
"생산을 많이 한 영웅들입니다. 고려인이 전체 러시아중에 극소수민족인데도 불구하고 750명의 영웅들이 나왔습니다. 그들이 말하기를 '성공한 집단 농장에는 반드시 고려인이 있습니다. 고려인은 근면하고 머리가 잘 돌아간다'고 했다 합니다. 러시아에서 농사를 잘 지으니까 우대 정책을 했습니다. 농사로 다시 일어나고 각계각층에서 살만하게 될 때 러시아가 1991년 무너지면서 CSI 5개국이 독립했습니다.

그동안은 러시아 말을 썼던 민족들이 독립 후 자국어를 쓰게 되면서 고려인들의 수난은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고려인들이 잘사니까 그들에게 시기 질투 대상이 되어 "너희들은 너희 나라로 가라. 너희들은 러시아 사람이 아니냐?" "연해주로 가라."며 아파트에 돌을 던지고 직장에서 '왕따' 당하며 수난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다시 눈물 뿌리고 10만 명이 연해주고 넘어왔습니다.

- 모국방문을 기획하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독립군 후손들이 원하는 것은 다른 것이 없습니다. 어떤 경제적인 지원보다 제일 원하는 것은 목숨 바쳐 조상들이 싸운 조국 땅에 발을 딛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고 싶은 그들의 소원을 풀어주는 행사입니다. 조국이 저들을 잊지 않았다는 것, 그래서 저들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긍지를 가지고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는 힘을 주기위해서 고려인 모국 동포방문을 기획했습니다."

- 이번 방문단에 독립 운동가 후손들이 함께 왔다고 들었는데 소개 부탁드립니다.
"이번 방문단에는 일제강점기 러시아 연해주에서 항일 독립운동을 주도했으며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암살 등을 지원을 돕던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의 증손자인 쇼루코프 알렉산드르(43)씨와 그의 아들(13), 박밀양 선생의 조카 김리마(81)씨, 김경천 장군의 후손 샤라피예프 에밀(16)군이 포함되었습니다.

고려인들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 결과 오늘날 좋은 결실을 거두게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도 지속적인 지원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태그:#고려인돕기 운동 본부, #석선 선생님, #이광길 대표, #한인 러시아 이주 150주년, #고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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