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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저를 이 자리에 부른 이도 그분이고, 거두어들일 수 있는 이도 그분이다."

참으로 민망하고 낯부끄럽다. 언론인 출신이라는 것을 믿기 어렵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한 정홍원 국무총리 후임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지명한 문창극 총리 후보가 국민 앞에 밝힌 '사퇴의 변'은 한편의 '멘붕 코미디'와도 같았다. 박 대통령은 그를 총리 후보자로 지명하면서 "국가를 개조하고 적폐를 해소할 적임자"라고 자랑했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인사 참사'로 막을 내렸다.

극우 언론인 출신을 총리 후보로 지명한 후 2주 내내 황당한 궤변과 코미디와 같은 강변으로 국민과 맞서게 하더니 결국 자진 사퇴의 길을 택하게 한 셈이 됐다. 그 많은 정보력과 우수한 인력, 시설 등을 갖추고도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탓이 크다. 6일 만에 자진 사퇴한 안대희 총리 후보에 이어 박근혜 정부 출범이후 벌써 두 번째다.

적임자라더니... 2주 만에 막 내린 '문창극 버티기'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24일 오전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후보사퇴 입장 발표를 위해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 긴장한 문창극 총리 후보자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24일 오전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후보사퇴 입장 발표를 위해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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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은 인사 청문회가 도입된 2000년 이후 6번째 중도 낙마한 총리 후보자로 기록됐다. 그러나 과거 낙마사례와 다르다. 국가개조와 적폐 해소는커녕 국가위기와 정부에 대한 불신만 가중시킨 꼴이 되고 말았으니 대통령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됐다. 열심히 '문창극 구하기'에 나섰던 <중앙일보> 등 보수언론도 마찬가지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신세'에 다름 아니게 됐다.

더구나 문 후보가 사퇴를 선언한 이날은 293명의 고귀한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 발생 70일째 되는 날이었다. 수많은 고귀한 생명들이 무참히 수장되는 광경을 국가와 국민이 눈뜨고 바라만 보아야 했던 그날의 참혹함이 아직도 생생하다. 황망한 사고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 그리고 아직도 찾지 못한 실종자와 그 가족들을 생각하면 호사스런 '수첩인사 돌려막기'와 코미디 같은 '자리 버티기'는 가당치 않다.       

'박근혜 연출, 김기춘 감독, 문창극 주연, 보수세력·보수언론 후원'으로 거창하게 개봉한 '문창극 버티기'는 결국 2주일 만에 막을 내린 희대의 '정치 코미디'에 불과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간의 행보를 복기해보면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지만, 분명 잊지 말아야 메시지들이 분명히 내재돼 있다. 

무엇보다 이번 총리 후보자에 대한 검증과정에서 KBS의 역할이 매우 컸다. '청영방송' 또는 '관제방송'의 오명을 낳게 만든 장본인이었던 길환영 사장 퇴진을 성공적으로 이끈 KBS 노동조합을 비롯한 전 구성원들의 값진 개가로 볼 수 있다. 지난 11일 KBS는 <뉴스9>을 통해 문 총리 후보자 '망언' 소식을 톱뉴스로 전했다.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기 위한 첫 시도로 단연 주목을 끌었다. 2011년 문 후보자가 한 교회 특강에서 한 발언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하나님은 왜 이 나라를 일본한테 식민지로 만들었습니까'라고 우리가 항의할 수 있겠지. 속으로. 아까 말했듯이 하나님의 뜻이 있는 거야. 너희들은 이조 5백년 허송세월 보낸 민족이다. 너희들은 시련이 필요하다."

국민들을 멘붕에 빠트릴 정도로 보도의 파급력은 컸다. '문창극 인사'가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부실하기 짝이 없는 임기응변식, 돌려막기 인사라는 사실을 KBS가 제대로 고발해 준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KBS는 여러 측면에서 총리 후보 자격에 문제가 있음을 연일 심층보도 함으로써 오랜만에 공영방송의 제구실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집요했던 <중앙>의 '문창극 구하기'... 낯 뜨거운 저널리즘   

특히 KBS 특종보도 이후 총리실이 이를 반박한다며 문 총리 후보자의 강연 동영상을 홈페이지에 올려 누구나 볼 수 있도록 했지만 여론악화를 막진 못했다. 여권에서조차 문 후보의 자진사퇴가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나올 정도였다. 그동안 '국민의 방송'이 아닌 '권력의 방송'이란 소릴 들어온 KBS가 앞으로 국민의 편에 서서 제대로 된 공영방송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란 일말의 기대와 희망을 안겨준 신호로 비쳐지기에 충분했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검증되지 않은 수첩인사를 국민들에게 슬며시 꺼내 보인 뒤 여론에 맡긴 채 무책임하게 외국 순방길에 나섰다. 아닌 게 아니라 이런 틈새를 이용해 '문창극 구하기'에 나선 <중앙일보>를 비롯한 일부 보수언론사와 보수세력들이 집요하게 문제의 본질을 호도한 점은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가뜩이나 이번 인사는 초기부터 극우적 사고를 가진 인사, 또는 도덕성이 부족한 인사, 화합보다는 갈등을 초래할 수 있는 인사란 비판이 거셌다. 게다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 회피로 비난이 고조되고, 인적 쇄신을 통한 박근혜 정부의 국가개조론도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는 판국이었다.

그런 와중에 KBS의 특종보도로 인해 총리 후보자의 과거 허물이 만천하에 드러나자, 보수언론들은 역겨울 정도로 '문창극 편들기'에 몰두했다. 특히 자사 주필 출신을 총리로 만들기 위한 <중앙일보>의 과도한 노력과 집착은 저널리즘의 본질을 외면했다고 봐도 될 정도였다.

<"문창극 총리 후보자 청문회 해야">
<'총리 후보 '인격살인' 악순환 끊자'>
<'KBS 문창극 보도, 저널리즘 기본원칙 지켰는가'>

문 총리 후보자에 대한 여론이 여당 내부에서조차 냉기류로 돌아설 정도였지만, <중앙일보>는 '문창극 살리기'에 끝까지 올인하는 의리(?)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제목과 내용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후안무치의 궤변 또는 적반하장의 논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중앙일보>가 MBC 칭찬한 이유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망언을 보도한 11일 KBS 9시뉴스 화면.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망언을 보도한 11일 KBS 9시뉴스 화면.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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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은 문창극 총리 후보가 지명되자마자 지면을 통해 마치 국무총리를 배출한 신문사가 됐다는 듯이 흥분하며 환호성을 질렀다. 제목과 기사, 사진들에서 묻어났다. 그럼에도 반대여론이 비등해지자 <중앙>은 23일 대대적인 '문창극 구하기'에 나섰다. 대통령 귀국 일정에 초점을 맞춘 듯하다. 1면에서부터 6면과 7면 전체를 할애해 마치 '문창극 애찬가'를 부르듯, 그를 옹호하며 심지어 그를 비판하는 언론을 호통 치며 나무랐다.

<중앙>은 특히 KBS가 단독으로 내보낸 문 후보자 교회 강연 내용 보도를 집요하게 꼬투리 잡으며 문제 삼았다. 이날 <중앙>은 1면과 7면에서 '각계 원로·중진 인사 482명의 성명'을 빌려 "KBS가 문 후보의 교회 강연의 일부만 인용해 친일·반민족으로 몰아간 것은 언론의 본분을 망각한 너무도 중대한 잘못"이라고 반복해 보도했다.

그런가 하면 문 후보자가 자진 사퇴를 한 24일에도 <중앙>은 사설에서 '문창극 지키기'와 'KBS 흠집 내기'에 주력했다. 신문은 'KBS 문창극 보도, 저널리즘 기본원칙 지켰는가'란 제목의 사설에서 "지난 11일의 KBS 메인뉴스 보도를 정파적 입장을 떠나 저널리즘 기본원칙에 따라 판단해볼 필요가 있다"며 "강연 내용을 집중분석·탐사보도하지 않고 허겁지겁 내보낸 것도 성숙한 언론의 모습은 결코 아니었다"고 군색한 논리를 펼쳤다.

<중앙>은 대신 사설에서 MBC를 부추기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지난 20일 급하게 편성된 한 대담프로그램에서 문 후보자의 강연 내용 전체를 그대로 내보낸 것 때문이다. <중앙> 사설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심의규정 9조(공정성), 14조(객관성), 20조(명예훼손 금지)에 따라 KBS 보도를 심의해야 한다"는 주문도 했다.

그래서인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의 '온누리교회 발언'을 보도한 KBS <9시뉴스>를 심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참으로 발 빠른 협력시스템이다. 저널리즘의 기본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중앙>의 사설과 기사들을 보면서 최근 시청자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는 자사 종편 JTBC를 비교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너무도 대조적이기 때문이다. 자사 종편의 절반만이라도 본받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가득 남는다.

KBS, '기레기' 더 이상 용납해선 안돼

그러나 무엇보다 걱정스러운 것은 보수세력과 보수언론의 KBS 흔들기다. 문창극 총리 후보자 사퇴 다음날인 25일 우려했던 대로 '조중동'은 일제히 KBS를 겨냥해 포문을 열었다. 이들 신문은 일반기사와 사설 등에서 "KBS의 보도를 계기로 문 후보자는 '친일 반민족'으로 몰렸다"며 "KBS가 문 후보자에 대해 마녀사냥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의 사퇴를 못내 아쉬워하면서도 화살을 애꿎은 KBS에 돌린 행태가 지난 정권 시절 초기와 흡사하다.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조중동'의 집요한 '공영방송 흔들기'는 결국 KBS 정연주 사장을 끌어 내린 것도 모자라, 정권의 낙하산 사장체제로 탈바꿈시키는데 크게 일조한 전력이 있다.

2009년 5월 19일 당시 <중앙일보>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KBS 사장'이란 제목의 사설 등에서 공영방송을 향한 칼날을 맘껏 휘둘렀다. "정 사장은 더 이상의 논란거리를 만들지 말고 이사회 결정을 수용해 당장 퇴진해야 마땅하다"며 "민간 기업이었다면 진작 해임됐을 인물"이라고 비판에 앞장섰다.

<중앙>은 당시에도 "정치권이 개입할 사안이 아니다. KBS가 제대로 된 언론이 될 수 있는지를 지켜보라"고 겁박했다. 결국, KBS가 선택할 수밖에 없는 길은 험난한 가시밭길뿐이었다. <중앙>을 포함한 보수언론사들의 집요한 KBS 흔들기는 그 뒤로 뜸했다.

그러나 그때처럼 보수세력과 보수언론들이 힘을 합세해 KBS를 흔든다면 모처럼 맞고 있는 KBS 공정성 확보와 정치적 독립 등 새로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다. 제2의 길환영 또는 문창극과 같은 인물을 KBS 사장으로 불러들이기 위한 꼼수인지도 모른다, 더 이상 '청 바라기 사장'아래 '기레기' 체제를 용납해서는 안 된다. 그동안 당해도 너무 당했다.


태그:#문창극, #중앙일보, #박근혜, #인사참사, #국무총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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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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